코이카는 한국의 정부기구(GO)로서 후진국을 상대로 무상원조하는 단체이다.
이 단체의 요원이 되면, 정부에서 책정한 급료를 받으면서 정한 기간(2년정도)동안
사역하게 된다.
몽골에도 코이카 요원들이 많이 있고 역사도 꽤 되었다.
이곳 초이발산에도 코이카 젊은 요원이 2명있는데, 1명은 임기를 마치고
내일 한국으로 출국하게 되어 당분간 1명이 남는데, 그 젊은이의 이름이 O수종이다.
초이발산에는 한국인이 이제 수종이와 우리내외, 그리고 이단 교회의 사역자만 있다.
이단과는 교제하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자연히 수종이와 우리 부부는 친하게 지낸다.
수종이는 코이카 일반요원이 아니라 군복무대체자로 이곳에 와 있다.
오늘 예배후 함께 식사를 하면서 수종이가 코이카로 오게된 간증을 들었다.
수종이는 모태신앙이지만 자신의 입으로 진정한 고백을 한 것은 고등학교때이다.
수종이는 고등학교때 교회에서 시행하는 몽골 단기선교에 동참했다.
그때 몽골에 와서 단기선교 사역을 하는 중에 몽골에 코이카로 온 젊은 봉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 이후 자기도 코이카 요원이 되어 몽골에 오고 싶다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몽골에서 코이카로 사역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했다.
그만큼 그의 기도가 간절했고 하나님은 확신을 주셨다고 했다.
명지대학교를 들어간 후에도 코이카가 되고자 하는 꿈을 계속 꾸었고 다시 몽골 선교에 동참했는데
여전히 몽골을 향한 꿈이 식지 않았다.
그런데 코이카 , 특히 군복무 대체 지원자는 20명을 선발하면 300명이 지원할 정도로 (약15:1의 경쟁률)
경쟁률이 상당히 높았고 대부분 학력과 스펙이 높기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이 만류했다고 한다.
"너의 학력과 스펙으로는 코이카에 들어가기가 어려워, 힘드니까 시간낭비 하지 말고
차라리 그냥 군대를 다녀와"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니까 은근히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코이카 군복무 대체 요원 선발은 결코 수월하지 안았다. 왜냐하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선발 과정이 매우 엄격할 수 밖에 없었다.
전공시험도 보고, 영어 시험도 보고, 복잡한 면접 절차등을 거치는 데 만일 내가 대학교 4학년을 마치고 코이카
선발 시험에 떨어지면 그 후 한국의 군대에 갔을때 나이많은 설움을 어찌 견뎌낼 수 있을지....여러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고 수종이는 회상했다.
하지만 하나님께 서원했던 지난 날과 몽골 단기선교시 믿었던 하나님의 약속등을 확신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코이카 시험을 밟아나갔고 하나님은 1차 시험, 2차 시험, 3차시험을 거쳐 완전히 합격하게 해 주셨다.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재밌었다. 1차를 붙으니 "그래~ 잘했는데 2차는 아마 힘들거야" 대부분 그런 반응이었고
2차 시험에 붙으니 "열심히 했구나 그것만도 다행이다. 떨어지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마"
이런 반응이었다. 그 만큼 젊은이들이 군복무 대체자로서 코이카에 지원할 때 붙을 확률이 매우 적었다는 반증이다.
3차에 붙었을때는 "난 네가 붙을줄 알았어" "대단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반응들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 수종이는 초이발산 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지도하고 학교내에 영상 스튜디오를 만들고 있다.
수종이의 간증을 들으면서, 한 젊은이의 꿈을 실현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마치 내게 해주신 것처럼...
사실 코이카 요원이 입신양명하는 그런 대단한 자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단지 후진국 사람들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나중에 다시 와서 봉사하겠다던 수종이의 마음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순수함이다.
하나님은 순수한 마음과 순수한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