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4-15)
40년 전에 이 말씀의 앞부분의 감사도 빼고 뒷부분의 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도 빼고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이 말씀만 굳게 붙잡은 적이 있습니다. 좌우간 하나님께서 위기에서 건져 주실 것 같은 느낌 들었고 건짐을 받아야 하는 절박함이었죠. 그 당시엔 주님이 나를 찾아와 주셨다는 사실엔 뜨겁게 감사를 하고 그 피가 나를 구속하셨다는 사실엔 눈물을 펑펑 쏟으며 감사를 했지만 범사에 감사라는 봉투는 하나님 제발 나를 해코지 하지 말아 주세요 하고 매 주 준비하는 뇌물이었죠. 그래서 저는 감사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면 돈이었으니까요. 감사절만 되면 돈 이야기를 하니 당연히 감사하면 돈인 줄 알았지요.
하나님을 알고 나서 비로소 그 사랑을 알고 하나님은 땅엣 것을 받지 않으신다는 걸 알았지요. 하늘의 보물이 다르고 땅의 보물이 다르다는 걸 알고 나니 그 동안 감사가 부담이 되었던 어리석음에 대한 회한이 옵디다. 땅의 보물을 하늘에 쌓을 수 있다는 사람들은 보이스피싱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통장이 있을까요? 금고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계좌로 안 들어가면 그게 보이스피싱이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유대교의 성전의 제단을 엎으신 것은 보이스피싱하는 자들의 행태를 책망하신 겁니다. 만민이 기도해야 할 집을 일부특권 인사들이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장사꾼 집단을 만들고 있으니 강도의 굴혈이 된 거죠.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시50:13) 그럴 일은 추호도 없지요.
그러나 그들은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린다고 보이스피싱을 하고 제대로 검수도 하지 않고 받아 챙겼죠. 사실 그들이 성전을 신성시한 것은 제단을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이죠. 성전보다 제단을, 제단보다 예물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지금도 교회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의심해 봐야 합니다. 그건 알아서 기며 좀 갖다 바치라는 뜻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주려도 우리에게 땅에 것을 가져오라고 하실 분이 아닙니다(시50:12) 삼림의 짐승과 뭇 산의 가축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시50:10) 산의 새들, 들의 짐승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시50:11-12)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복은 당연히 감사해야죠. 주께서 나를 구속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주의 이름 안에서 하늘에 감추어 둔 보화를 구할 수 있으니 감사해야죠. 또한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고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올라가 은혜의 보좌에 닿기로 마음으로 다짐을 했으니 지켜야죠. 주 안에 부름을 받고 택함을 받은 걸 감사하고 주님의 충성스런 팔로어가 되야죠. 그리고는 환난의 날에 주님을 불러야죠. 주님에게 무엇을 달라고 간접 목적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로 직접목적으로 불러야죠. 주님이 우리의 감사의 원천이고 우리의 구원이시고 우리의 영광이니까요. 우리 속에 나타나는 주의 영광으로 인해 우리가 영화롭게 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