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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자전거 1
최 종 한
어릴 적 자전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누구든 세발자전거로부터 시작되는 추억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처음 만났던 자전거는 모두 세발자전거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막 걸음마를 떼고 나서 뒤뚱거리며 뛸 정도가 되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패달을 밟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자전거를 대하는 것이 내겐 경이였고 새로운 사물에 도전하고자 의욕을 보이는 세 살 박이 어린놈이 부모님껜 또 경이였을 것이다
패달을 구르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 쓰던 내 모습보다 외려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을 하시던 어른들과 형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 보조바퀴가 달려있긴 했지만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고 형들의 꼬임과 부추김에 드디어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뒤에서 잡아주고 따라오는 안심시키는 말들을 들으며 조심스레 두발자전거의 바퀴를 굴려 나갔던 일, 점점 멀어지는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수상하여 뒤를 돌아보았을 때, 형은 이미 손을 놓고 있었으며 말로만 안심을 시켰던 것이다.
그때의 당혹감으로 패달의 구르기를 멈추게 되었고 순간 자전거는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자전거는 구르기를 멈추면 반드시 넘어진다는 운동의 법칙과 항상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돌려야 넘어지지 않는다는 무게중심의 법칙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에 진학하여 물리시간이 되어서였다.
물론 그러한 이론보다는 몸으로 자전거의 운전을 체득하게 되었고 어느덧 자전거에 자신감이 붙게 되었을 때 나의 넘치는 호기심은 아버지의 새로 장만하신 멋진 신사용 자전거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출타하신 틈을 타 나의 은밀한 도발은 시작되었다. 그 멋진 신사용자전거를 가지고 드디어 큰길까지 나간 것이다. 짧은 다리로 안장에 탈 수는 없었고 자전거의 왼쪽에 붙어서 한쪽다리를 옆으로 비스듬히 빼내어 기묘한 자세이긴 하지만
패달을 부지런히 반 회전만 지기는 방법으로 자전거를 타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성취감에 들떠 우쭐한 마음으로 독립문에서 신작로를 따라 신나게 속력을 높이다가 보생당약방의 커브를 돌때 미처 핸들을 꺾지 못해 영광유기점의 문에 부딪치며 유리창을 박살내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아버지는 팔에 약간의 출혈이 있는 핑계로 엄살을 부리는 나를 별 꾸중 없이 넘어가 주셨다.
그 일도 이제 사십 년이란 퇴색될만한 시간의 흐름 뒤에 자리하는 추억이 되었다.그리고 자전거를 떠올릴 때면 항상 엄 하시면서도 깊은 사랑으로 자식을 위하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한 사연의 자전거는 항상 나의 뇌리 속에 자리하고 있었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쓰러지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부지런히 패달을 밟아 스스로 은빛바퀴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 이러한 관념 속의 추억으로만 떠올리던 자전거가 내게로 온 것이다.
자전거의 주 구성요소인 프레임의 알미늄이란 금속성, 고무바퀴, 안장, 패달, 등등의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사물과의 만남에서 이토록 교감을 가지고 친근한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의 정신과 육체 자체가 자전거의 동력원으로서 함께 조응하면서 도로에서 ,산에서, 들에서 혹은 호수의 언저리에서 호흡하며 달릴 수 있는 것은 내게 주어진 하나의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환경친화적인 이동수단이고 연료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 체력증진과 건강의 효과 등등의 자전거에 대한 여러 장점들은 굳이 다 열거하지 않아도 된다. 당장 자전거를 타고 한산한 시골길을 한번쯤 달려보아라. 그 목가적인 풍경 속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나를 한번 그려 넣어보자.
나는 그대로 풍경이 되고 풍경에 묻힌 나는 또한 자연이 된다. 자전거를 타는 매력 중에는 언덕을 오를 때를 뺄 수가 없다. 언덕을 만나 종아리의 힘살이 툭툭 불거질 때면 숨은 턱에 와 닿아 부풀은 폐부는 터질 듯이 가쁜 호흡을 한다.
정수리에서부터 흐르는 땀이 청동 빛 몸에 흘러내릴 때 길은 빠르게 내 몸속을 지나고 나의 정신은 고갯마루에 도달해 아득한 동해의 수평선 바라보며 세상사 더럽힌 마음 행군다.
사람들이여! 자전거에 도전해보라.
언젠간 나처럼 “자전거중독”이란 중병에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 병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지병이 될 것인가.
(추억의 자전거)
추억의 자전거가 내게로 왔다.
은색의 매끈한 자태로 내게 왔다.
내 몸이 너의 엔진 되어 앞으로 나아갈 때
너는 나의 몸을 받치고 나는 너를 구르며
전혀 다른 둘은 오직 한 곳을 향해 나아간다.
떠날 때는 항상 목적지의 반만 가는 법.
돌아올 거리의 힘을 남겨야 한다.
언덕마루 오를 때 다락 논 아래
종다리는 하늘을 쏘고
햇빛 받아 부서지는 은륜의 동그라미들
고된 농사 허리 펴고 바라보는
촌로의 얼굴에도 추억은 묻어난다.
길 위에 자전거가 있고
자전거 위엔 내가 있고
그 위로 맑은 하늘이 있는데
추억의 자전거가 이젠 하늘을 건너고 있다
딸들이 태워주는 비행기
인간은 종족번식의 본능에 의해서 자녀를 출산하게 되고그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며 성인이 될 때 까지 돌보는 의무를 부모로서 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마 자녀에 대해 누구나 얘기하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이해일 것이다. 부권중심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아들이 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남아를 선호하는 사상이 생기게 되었고 자연히 일반의 자녀에 대한 인식을 왜곡되게 지배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남아를 선호하는 잘못된 사회풍토가 출산의 성비 불균형을 가져오고 근래에는 정부의 오랜 동안의 인구 억제정책의 잘못된 결과로 빚어진 저출산 까지 겹쳐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춘남녀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또 결혼을 하드라도 아이를 갖지 않는 가정이 늘고 있는 현상과 함께 우리 사회의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의 감소로 국가 경쟁력이 계속 떨어지는 심각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웬만한 가정이 3~5자녀는 보통으로 출산을 하였는데 요즈음 농촌에서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보기조차 힘든 지경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만하지 않은가.
옛말에 三喜聲이란 말이 있다. 이는 세 가지의 기쁨을 주는 소리라는 뜻인데, 그 하나가 사랑하는 지아비의 옷을 지어 곧게 펴고자 늦은 밤을 다듬이질로 채우는 노동과 생산과 정겨움의 다듬이 소리요, 그 둘은 호롱불을 밝힌 선비가 밤새도록 낭낭한 음성으로 서책을 읽어 내려가며 마음의 양식을 쌓는 학문의 소리요, 그 셋에 있어 바로 생명탄생의 신비와 기쁨을 알리는 신생아의 첫 울음소리라 하였다.
그런데 그 三喜聲 가운데도 가장 큰 기쁨의 소리인 탄생의 소리가 언제부턴가 우리의 주변에서 서서히 끊겨지고 만 것이다. 저출산과 더불어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한 가운데 시쳇말에 “딸 가진 사람은 비행기만 탄다.”고 하여 딸이 아들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비율이 높음을 두고 얘기하는 유행어가 있다. 난 현재 딸 넷을 둔 딸부자인 아빠이다.
그 얘기대로라면 우리 부부는 이담에 매일 비행기만 탈거라고 넷째도 역시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내게 말한 위로(?) 섞인 축하의 전언이다. 넷째가 태어났을 때 나는 정말 너무 좋아서 그놈의 날 때부터 웃자란 새카만 머릿결을 쓰다듬으면서 환호 했는데, 그네들은 입으로는 축하한다고 하면서도 눈길로는 한결같이 측은한 감정을 내게 실어 보내는 것이었다.
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기는 성별을 떠나 출생 자체가 신의 은총이며 환희이며 신비가 아닌가. 난 요즘도 우리 애들을 키우며 순간마다 새록새록 기쁨의 샘솟음을 느낀다. 큰 놈은 중3으로, 그래도 컸다고 동생들의 잘못을 일일이 지적하는 의젓함을 보이며 든든함을 준다. 둘째는 초등학교를 1년 남겨두었는데 사려 깊고 이해심 많고 무엇이든 배우려고 열성적인 성격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셋째, 초등학교를 엊그제 입학하였는데 성격이 반듯하고 말끝마다 사극에 출연하듯 아버님, 어머님, 하며 말 주머니 같은 놈은 그놈대로 얼마나 대견한지..... 넷째, 20개월 된 떼쟁이 예영이, 이놈은 정말 연구대상이다. 또 나의 금연 결심에 공헌을 한 놈이기도 하다. 한창 말을 배우며 온갖 사고와 예측할 수 없는 행동과 해프닝으로 또 나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렇듯 무한한 기쁨을 주는 자녀란 우리의 인생을 통해 얼마나 큰 기쁨이며 행복인가.
진정, 자녀란 부부의 사랑의 결실이며 생활의 활력이며 인생의 보람이자 부모의 존재이유와 가치가 아닌가 한다. 이담에 비행기 탈거라고? 아서라.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데 훗날의 보답을 바라겠는가.
오히려 그들이 없었다면 자라면서 황량하기만한 부모의 인생에 자녀로서 시시각각으로 선사하는 기쁨과 희망과 보람은 누구라서 대신 줄 수 있겠는가. 난 이미 그들이 마련해준 전용비행기를 매일 타고 있다. 전담 스튜어디스 4명이 보좌하는 에어포스원에 나는 오늘도 타고 있는 것이다.
미녀 보좌관 네 공주는 나에게 매일 신선한 감동과 인생의 의미와 새 활력을 선사한다. 나의 딸들아, 난 너희와 함께 이 지구라는 별에서 부모형제로 만나 너무 기쁘고 행복하구나. 진실로 난 이 기쁨과 행운을 주님께 감사한다. 날 아는 사람들아. 나의 행복을 시기하지 말고 또 나를 팔불출이라 놀리지 마라.
다만 우리 딸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길 ......
추억의 자전거 2
서림의 그루터기식당에서 모임이 있었다. 클럽의 여름 야유회를 냇가에 인접한 그곳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집사람과 애들은 차로 이동하라고 하고 푹푹 찌는 더위지만 새벽에 자전거를 못 탔으니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머리수건을 두르고 헬멧을 쓰고 햇볕이 너무 강해 팔에도 토시를 씌우기로 했다. 밸로드롬의 황제로 등극하였던 경륜선수 인영이가 입고서 영광의 패달을 힘차게 밟던 특선선수복은 언제 입어도 나의 몸에 딱 맞고 왠지 자부심을 갖게 하는 묘한 감흥을 준다.
MTB보다는 사이클이 더 좋을 것 같아 사이클을 끌고 나왔다. 속도계를 0점에 맞추고 출발했다. 서림까지 가기 위해서는 몇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그렇게 강파른 고개는 아니지만 매번 고개를 만나면 우선 의욕이 너무 앞서고 성급하게 패달을 밟게 돼 마음을 먼저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고개를 만나 고갯마루를 너무 의식하고 패달을 밟는다면 마음에 부담이 생기고 항상 체력안배가 되지 않아 만족한 주행공략이 나올 수 없다. 고개를 만나도 넘어야할 정상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한 바퀴 두 바퀴 패달과 은륜의 끝없이 이어지는 회전운동에만 전념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구르는 이 바퀴의 구동축이 그린 동그라미는 바로 과거가 되고 마음은 바로 앞의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또 패달을 밟는다. 나의 다리와 패달과 빛나는 은빛 바퀴가 협력하여 만든 동그라미는 미끄러지듯 뒤로 후퇴하고 다시 앞의 동그라미를 추구하며 전진에 전진을 거듭한다.
이렇게 쉼 없이 이어지는 동그라미의 연속성과 연결감이 우리가 삶을 통해 꾸준히 만들어 가는 자기의 인생이 아닌가 한다. 그 무수한 과거의 동그라미들이 모여서 현재를 만들고 그 현재를 바탕으로 우리는 또 내일을 바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길을 자전거로 달릴 때 나는 길이 내 몸 속에 들어오는 착각에 빠진 적이 간혹 있다.
그러다 길과 달리는 자전거와 내 육신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어느 틈엔가 나의 정신은 육체를 이탈하여 관찰자의 눈을 가지고 한걸음 비켜난 자리에서 나의 주행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옆에서 바라보는 나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가히 만족스러운 것이다. 은빛 바퀴들이 무수한 햇살을 튕겨내며 동그라미들을 엮어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착각을 일으키며 넓적다리에서 종아리로 이어지는 근육의 쉼 없는 동력과 심장의 피돌기와 허파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자신의 힘든 주행을 육체를 이탈해서 바라보는 경험은 아주 경이로운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나의 관념에서만 이루어진 착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프레임과 바퀴, 안장과 패달 등의 고무, 가죽, 금속성으로 이루어진 기계장치가 정신과 육체를 지닌 인간을 만나 그토록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하나의 기계에 지나지 않고 이동, 교통수단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자전거가 이토록 의미 있고 마치 생명체를 대할 때 느낄 수 있는 친근감을 준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인 것이다. 모임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는 소나기를 만났다. 갑자기 어디에서 그렇게 쏟아지는지 장대 같은 빗줄기가 얼굴과 온몸에 송곳처럼 파고드는데 달리면 달릴수록 그 강도는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이젠 비 멈추기를 오히려 내가 포기하고 편한 마음으로 모든 비를 다 맞으며 느긋하게 패달을 밟았다. 돌아오는 양아치고개는 한결 수월했다. 높은 지대에 있는 목적지를 향해 떠나면 돌아오는 길은 항상 수월한 법이다. 당도한 목적지에서 돌아가는 길은 고도가 낮아지니 자연히 수월하게 되는 이치인 것이다.
나의 금연기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몇 가지씩의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이루기 위해 새롭게 각오를 다지곤 한다. 각오로 말하자면 신년을 맞으며 하는 각오나 해 묵어서 하는 각오나 그게 그거겠으나 새해의 각오가 왠지 신선하고 더욱 실현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모두 새해를 맞이하는 신년의 벽두에 동해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며 맘속에 염원하는 소망이나 바람 한 가지씩을 걸어놓고 이루어지기를 빌거나 또한 실행의 각오를 다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맹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금연이나 금주가 아닌가 한다. 누군들 1월1일, 금연이나 금주의 맹세를 한두 번 해보지 않은 적이 있겠는가. 그러나 돌같이 굳은 맹세도 날이 갈수록 점차 희미해지고 깨진 맹세의 나약한 마음은 다시 설날을 기점으로 재 각오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허나 수십 번의 각오를 다지고 맹세를 하면 무얼 하는가.
나도 몇 번의 맹세를 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던 과거가 있기는 하다. 과거라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지금은 성공했다는 전제라 할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몇 번의 금연에 실패했던 경험에 미루어 담배를 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도 잘 알고 있다. 금단증상이 심한 사람은 온몸에 오한이 나고 얼굴이 충혈 되고 숨이 가빠져서 무척 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도 보았다.
오죽했으면 차라리 피우는 편이 낫다고 주위사람들이 권해서 다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겠는가. 담배를 피우지 못해서 받는 스트레스가 담배를 피움으로 해서 받는 유해함보다 더 크다고 판단하여 그냥 피우는 편을 택한 것이다. 이런 것만 보아도 담배의 중독성이 얼마나 극심한지 알 수가 있다.
내가 담배를 끊게 된 사연은 이렇다. 나의 직장은 그 특성상 연세가 지긋한 분들을 많이 접해야 한다. 어디든 그렇듯이 요즈음에 흡연자들이 어디 대우를 받기나 하든가. 그날 나도 그 천시 받는 담배를 사무실에서 옆 사람에게 간접흡연의 고문을 가하며 피울 수가 없어서 밖에 나가 한대를 피어 물고 느긋하게 끽연의 희열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폐부 깊숙이 들어 마신 담배연기를 입과 코로 나누어 제법 멋있게 내 뿜고 있는데 어르신 한 분이 내 쪽으로 오시며 반갑다고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연기를 내뿜고 미처 못 끈 담배를 황급히 화단에 던지고는 손을 내밀어 그 어르신께서 청하신 악수를 하였는데, 그때의 황당함과 어색함, 계면쩍었던 일은 하루 종일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술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나 담배에 대해서는 엄격한 편이어서 삼갈 때 삼가지 않으면 본인은 물론 부모께도 누를 끼치는 결과가 되기에 담배는 항상 조심하는데 아무래도 큰 실수를 한 것 같았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서 나는 담배를 끊게 되었다.
담배가 무슨 보약도 아닌데 장복을 하고 식후에도 꼭 광고에 나오는 자일리톨 껌처럼 빠짐없이 찾게 되는지? 하여튼 나는 그러한 황당한 일을 겪고 나서 그 일을 계기로 금연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감하게 담배를 끊게 되었던 것이다. 담배를 끊고 보니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아 좋고 주머니도 깨끗하고 건강도 크게 느낄 정도로 좋아진 것은 틀림이 없다. 특히 그 지겹던 알레르기성 비염은 거의 완치 되었다.
나는 금연을 맹세했다.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대로 담배를 끊었다. 그러나 끊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끊고 나서 다시 피우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할 것이다. 신경 쓰이는 일을 핑계로, 혹은 의지가 약해져서 또다시 담배를 입에 댄다면 그땐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나를 탓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해를 맞아 나는 자신과의 약속 지키기를 소망한 만큼 이번엔 꼭 나에게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거꾸로 쓴 福자의 의미
새해가 되면 난 어김없이 옛 성현들의 좋은 글귀를 골라 먹을 갈고 붓을 들어 휘호를 써서 벽에 걸어놓고 그 글귀에 담긴 깊은 뜻을 마음으로 새기며 생활하기를 연례행사로 해왔다. 이런 습관은 지금은 작고하신 나의 스승, 月湖선생님께 배운 옛 선비들의 지극히 고상하고 아름다운 풍습이다.
요즘은 지인들에 대한 새해인사를 흔히, 천편일률적이고 다소 정성이 결여된 편리하고 신속한 전자우편이나 카드로 대신하곤 하는데, 그것보다는 옛 선비들처럼 화선지나 한지에 사군자나 작은 산수를 그려 넣고 직접 화제를 적어 넣어 낙관을 찍어 보낼 수만 있다면 새해의 인사는 얼마나 멋들어지고 품격이 있고 기억에 남을 수가 있을까 생각한다.
그것도 그렇고 또 옛 어른들은 새해가 지나고 입춘이 되어 “입춘대길”이니 “건양다경”, “가화만사성”이나 “천상운집”이니 하는 귀에 익은 글귀들의 입춘첩을 써서 집의 대문이나 기둥에 붙이고 오랍들에 전해주는 좋은 행사를 해왔다. 이러한 풍속들은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고 전통의 가치가 무시 되는 가운데서도 거기에 담긴 정서적인 품격의 고상함이란 우리의 생활을 통해 계속 이어져야할 좋은 전통이며 우리문화의 가치인 것이다.
나도 옛 선비들의 품격이 좋아 나만의 행사를 해오고 있다. 나는 좀 특이하게 연초에 목욕재계를 한 후 정성을 다하여 복 福자를 화선지에 크게 쓰고 낙관을 찍어 평소 친한 분들에게 보내드리는 혼자만의 인사를 오랫동안 해왔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새해에 복자를 거꾸로 써서 대문이나 집안에 붙여놓는 풍습을 보고 일견 내 나름대로의 예술적 행동이 그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으나 많은 분들이 그 연유를 묻고 또 물어 이에 대한 설명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중국에서의 의미는 그렇다. 明太祖인 주원장으로부터 시작되는 전설이 있는데, 류백온은 주원장이평복차림으로 민정시찰을 하는 때에 맞춰 황제의 덕을 칭송하고자 붉은 종이에 福자를 써서 각 대문에 붙이라고 백성들에게 명하였다. 이는 주원장의 朱자와 붉을 紅자는 그 뜻이 같아 황제폐하가 백성들에게 복을 내린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두 붉은 종이에 복자를 써서 자기 집 대문에 붙여 놓았다. 그런데 민정사찰을 하던 주원장의 눈에 복자를 거꾸로 쓴 단 한 집이 눈에 띄게 되었다. 주원장은 자기를 비방하는 뜻이라 생각하고 그 집의 일가족을 몰살하라고 명하였다. 그런데 꽤가 많은 류백온이 황제에게 아뢰었다.
“폐하! 이는 그 집에서 폐하가 오심이 복을 내려주고, 바로 복이 도착했음을 알리고자 복자를 일부러 거꾸로 써 붙인 것입니다.”
그러니 황제폐하를 칭송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倒와 到는 동음이고 복은 행운, 행복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곧 복이 도달한다, 복이 많이 쏟아진다는 “따오푸”라는 발음이라고 한다. 이에 주원장은 크게 마음이 흡족하여 그 집에 상을 내렸다고 한다. 결국 무지의 소치이지만 그 행위가 복을 가져다주는 의미가 되었고 후세에서는 복을 구하는 기복행위로 변하였다고 해석이 가능하여진다. 어찌되었든 중국에서는 이런 풍습이 계속 전해내려 오고 있다.
그런 행위가 진짜 복을 가져다주는 것이지는 알 수 없지만 한해를 시작하는 새해의 벽두에 그런 글씨하나 걸어 넣고 진실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런 행동을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목욕재계를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씨를 써서인지,또 복을 주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전하여진 것인지는 몰라도 글을 써준 집들이 하나같이 장사가 잘 되고 집안의 대소사가 잘 이루어진다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여기저기 알음알음으로 글씨를 써달라는 집이 많아져 꽤 많이, 잘 쓰지도 못하는 글씨를 남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명한 서예가의 글씨가 아니면 어떠랴.
내가 진심으로 복을 바라고 써준 그 분들의 소탈한 웃음과 그 글씨에 만족하는 소박함이 얼마나 좋은지 난 나의 거꾸로 쓴 福자를 원하는 분들이 있는 한 언제든지 써드릴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행복해 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글씨로 인해서 그들의 프라시보 효과와 긍정적인 자기최면 샐리의 법칙과 신념의 마력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바란다.
내가 만드는 내 얼굴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나서 내각을 조직할 때의 일이라고 한다.
그의 비서관이 아주 유능한 어떤 사람을 각료로 추천했다. 링컨은 그 사람을 면접하게 되었는데 면접이 끝나자 대뜸 그 사람은 안 된다고 했다.
비서관은 그 사람의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링컨은 딱 잘라서 그 사람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얼굴이야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고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하고 반문하는 비서관의 말에 링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그렇다네. 하지만 태어날 때 처음의 얼굴은 부모님이 만들어 주는 것이지만 나중의 얼굴은 자기의 노력으로 만들어 지는 것으로 자기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랬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 얼굴이야 말로 자기의 인생의 축소판이고 자서전과도 같은 것이다. 얼굴엔 그 사람이 인생을 통해서 느끼고 추구하고 몸담았던 모든 것이 나타나고 그의 사상과 감정, 철학 더 나아가 영혼까지도 담아내는 것이 또한 우리의 얼굴인 것이다. 그런 것을 볼 때 우리나라 재계의 굵은 획을 그었던 고 이병철 회장이 신입회원 면접에 항상 신통한 관상가를 대동했다는 예사롭지 않은 일화는 그 시사하는 바가 있다. 변호사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그들의 사건을 접하면서 나름대로 얼굴을 통해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능력을 기른 링컨이 훗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통치하면서 그동안의 관상능력을 정치에 접목, 응용하였던 점이나 이병철회장이 먹고 먹히는, 속된 표현을 빌자면 냉혹한 장사꾼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서 피아를 구분하거나 인성이나 능력을 판별할 수 있는 관상가를 대동하고 자기의 사람을 선택한 점에서는 지장의 면모를 갖춘 두 사람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얼굴이 남들에게 평가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단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몇 달 전, 우리 가정에서는 넷째 딸이 태어났다. 늦게 본 간난아이의 모습은 얼마나 큰 감동이며 경이이며 축복인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엽다고, 새근새근 잠든 평화로운 아기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란? 세상에서 제일로 착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기의 얼굴이 아닌가한다. 자다가 살짝 찡그리는 배냇짓으로도 순간 소리 없이 활짝 피어나는 환한 박꽃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이렇게 순진무구하고 아름답던 얼굴이, 그 미소가 세월이 지나 사춘기, 청년기, 장년기 등을 거치면서 고뇌하는 얼굴, 사색하는 얼굴, 분노하는 얼굴, 슬퍼하는 얼굴, 모의하는 얼굴, 등등의 수많은 표정을 연출하며 방황하다가 비로소 어느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사십의 나이가 되면 어지간히 자기의 얼굴을 만든다고 한다.
어찌 보면 습관이 제2의 천성을 만들 듯 습관적인 행동과 심상이 그의 얼굴에 특정한 상을 고착시키는 것은 아닐까. 좋은 상, 좋은 얼굴을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본인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매일 웃는 사람은 은연중에도 그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감돌아 자신에게도 항암과 통증해소의 호르몬인 엔돌핀의 분비로 건강한 생활이 이어지며 남에게는 싱그러움과 푸근함, 즐거움을 선사하는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항상 남을 비난하고 해코지하려고 기회만 노리고 배배꼬인 심성을 가진 사람, 그런 일만 행하는 사람은 역으로 나쁜 기운과 구겨진 표정이 항상 얼굴에 삼엄하게 자리 잡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부모님이 비록 선천적으로 좋은 그릇과 같은 보기 좋은 외양을 물려준다 한들 그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지 못하고 남에게 해만 끼치다 종국에는 그 그릇과 외양까지 망가트리고 마는 것이다.
마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처럼...... 그리하여 난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욕실로 달려가 거울속의 내 얼굴을 드려다 보며 내 자신에게 묻곤 한다. 난 남에게 어떤 얼굴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책임져야할 내 얼굴은 어떠한 상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남에게 편안함과 신뢰감을 주는 얼굴이 될 수 있을까? 또한, 사랑하는 내 딸들의 얼굴에 감도는 저 순진무구함과 평화로움을 언제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하고.
사라진 편지문화
삐리릭! 삐리릭 !
쉴 새 없이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다. 새해를 맞아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라는 전언이다. 선출직에 있는 분이나 영업사원 또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보내는 메시지이다.
과거에는 그래도 전화로나마 안부를 주고받으니 상대의 음성이라도 들을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획일화된 문자를 휴대폰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보내니 그 편리함이야 좋겠지만 이건 도무지 인간적이지 않아 건조하고 썰렁한 느낌이 든다.
얼마 오래지 않은 예전에는 밤을 밝혀 글을 써서 고이 접은 편지지를 예쁜 편지 봉투에 넣고 정성껏 수신인의 주소와 성명을 쓰는 수고를 하며 그리운 사람의 안부를 묻곤 하였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이 지나니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가 발달되어 간편하게 그리운 사람의 음성을 마치 얼굴을 마주하고 듣는 듯이 또렷하게 들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가난하게 살던 시절에는 마을에 몇 안 되는 전화기가 있었고 얼마간의 통화료를 내며 이웃집의 전화를 빌려서 쓰기도 하였다. 대학시절 자취를 하면서 주인집으로 걸려오는 시골집의 전화를 받으려고 애를 태우며 초조하게 기다렸던 일들도 지금의 신세대는 이해하지 못하는 추억일 수 있을 것이다.
휴대폰이 나오기 전에는 도로변에 공중전화 부스가 설치되어 있어 동전을 넣고서 전화기를 사용하곤 하였는데 금액에 맞춰 “딸깍딸깍”하고 동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시간에 쫓겨 통화를 하였던 기억도 이젠 옛말이 된 것이다. 하기야 휴대폰이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보급되어 도로변의 공중전화 부스도 이젠 거의 남아나지 않게 되었다.
전화로 하는 안부인사도 얼굴을 마주하며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속 깊은 얘기를 진솔하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맨 마찬가지이겠으나 그래도 “삐리릭” 하며 문자로 뚝딱 보내는 메시지보다는 좀 더 나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자를 보내는 사람의 뜻이야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도 편리함만 추구하는 현 세태의 방식이 왠지 정성과 마음 씀이 결여된 듯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심지어는 많은 사람들이 무작위로 보내는 스팸문자에 대해서는 문자 메시지 공해라고 하며 성토하기도 하니 이에도 마땅한 예의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호롱불을 켜놓고 밤새 만단설화를 엮으며 한지에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써서 그 두루마리를 지인이나 애인에게 보냈던 그런 통신수단이란 얼마나 멋스러웠던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완당을 위해 멀리 청나라에서 귀한 서책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변함없는 마음 씀에 스승이 제자에게 그려준 세한도를 보면 현대의 어느 드라마가 이처럼 감동적일 수가 있겠는가.
추사는 발문에서 사기와 논어를 인용하여 “날이 추워진 연후에야 솔과 잣의 나중에 시듬을 안다“고 하여 제자 이상적의 어짐과 절개를 극찬하였다. 후에 이 완당의 세한도는 우리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스승과 제자가 교신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영원히 전하고 있다.
기축년엔 지필을 갖춰서 먹을 갈아 나름의 사연을 적고 낙관을 곱게 찍어서 아침의 찬바람을 맞으며 우체국으로 달려가 나의 그에게 두툼한 편지를 보내고 싶다.
나의 그가 되어줄 사람 어디 없나요?
늦둥이 유치원 가는 날
그러니까 우리 늦둥이가 45개월째 접어든 것이다. 큰 애로 시작하여 내리 딸을 낳았는데, 넷이나 되고 보니 기집애들은 사내아이보다 말이 빠른 점도 있지만, 그렇게 말이 좋은 언니들과 함께 자라는 요놈의 언어표현은 정말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겠다!
못하는 말이 없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저 조그만 머리에서 어찌 그런 표현과 소견이 나오는지 싶게 탄복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새로운 어휘는 새로운 발상을 만드는 걸까? 아는 것이 많으니 먹고 싶은 것도 많을 거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가까운 동네 마트에 제 어미의 손을 잡아끌고 가 생떼를 쓰는 것은 기본이요, 제 아빠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졸라 TV 광고에서 본 무엇 무엇을 사오라는 요구사항을 열거하는 것도 점점 늘어났다.
우리 아이의 표현대로 “아버님! 우리 바담 쒜러 한 바꾸 삔 돌까요?” (아버님! 우리 바람 쐬러 한 바퀴 삥 돌까요?)라고 하여 할 수없이 마트에 들렀다. (실제 사극버전으로 꼭 아버님 어머님의 호칭과 존댓말을 씀.) 만나는 사람들마다 코가 땅에 닿을 듯 하는 배꼽인사며 톡톡 튀는 인사말로 인해 딸내미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그러다보니 저출산으로 어린아이들의 울음이 끊긴 이 조그마한 동네에서 자연스레 우리 늦둥이의 존재는 오랍들이의 마스코트요,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는 피로회복제였다.
수퍼나 마트에서만도 누구누구의 딸내미로 통하지 않고 오히려 예영이 아빠인 누구라고 하듯이 마당발이라고 불리는 나도 막내둥이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그런 우리 늦둥이가 3자녀 이상의 학원비 행정지원에 힘입어 반액정도의 보조금을 받아 유치원을 가게 된 것이다. 제 언니들이 학교를 갈 때 마다 항상 따라가고 싶어 같이 차를 타고 배웅을 하던 막내로서는 언니들에 치어 옷도 대충 물려 입고 그 귀염성에 맞춰 딱히 막내로서의 편애는 엄두도 못 내다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유치원에 다니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몇날며칠 세뇌시키고 다짐을 받고 또 받아 드디어 유치원에 입학할 날을 하루 남겨놓았다. 그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몇 번 씩 꼽아보며 묻고 또 물으며 기다린 제 딴에는 무척이나 마음이 설레는 시간이었나 보다. 하기야 우리 막내라고 왜 그 나이에 접하는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하고 재미있지 않겠는가?
순백의 도화지처럼 꿈꾸는 모든 그림을 다 그릴 수 있고 푹신한 스펀지처럼 어떠한 지식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왕성한 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진 사고뭉치의 한창 때가 아닌가?
내일이면 입학식을 할 막내를 데리고 목욕을 시킬 요량으로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예의 깍듯한 배꼽인사, 계단을 오르며 하나, 둘, 셋, 넷을 세는 숫자놀이. 우리는 옷을 벗어 옷장에 넣고 탕 안의 의자에 들어가 앉았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어느 한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무언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무심코 그곳을 쳐다봤는데 타지에서 온 조폭(?)인 듯 보이는 젊은 사람 하나가 용과 장미, 호랑이문신이 함께 새겨진 육중한 알몸을 희뿌연 수증기 속에 언뜻언뜻 드러내며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아차! 싶었는데, 갑자기 나의 귀에 작은 손을 대고 소곤소곤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아버님! 낙서를 아무데나 함부로 하면 나쁜 사람이죠!” “그렇죠?”
제 어미가 유치원에 가면 아무데나 낙서하지 말 것, 친구들과 싸우지 말 것 등등 주의할 사항들을 세뇌시키더니 정말 효과가 있구나. 하! 하! 하! 나는 웃을 수도 없고 귀속 말로 “그래! 그래! 맞아!”라고 얘기해주고는 막내를 살포시 안아 주었다. 손님이 뜸한 탕 속에서 수영을 하며 장난을 치는 귀염둥이를 불러다가 씻겼다. 고집을 부려 제 스스로 머리를 감는데 제법 샴푸를 풀어 거품을 내면서도 눈이 아프다고 하지 않고 능숙하게 감는 대견스러움을 보인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빗겨줄 차례였다.
“어떻게 빗겨줄까?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처럼 해줄까?”
“아니! 아니! 아버님! 평범하게 해 주세요.”
“아아~주 평범하게......”
이놈은 정말 말단지다. 순간순간 싱그럽고 아름답고 상큼한 말들이 막 튀어 나온다.
우리 늦둥이는 이담에 커서 무엇이 될까나? 나는 오늘 너의 덕에 팔불출이 되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딸내미가 굳이 혼자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는데 난 노파심으로 골목에 숨어 그의 행동거지를 지켜보았다. 곧장 집을 찾아가는 막내둥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이제 그의 앞길도 제 스스로 커 작은 어려움들을 뚫고 당당히 걸어가는 오늘이나 생애 처음으로 유치원 가는 날인 내일처럼 특별한 날들을 무수히 만날 것이며 그때가 되어 간혹 좌절감이 들 때에도 부디 발을 헛디디거나 쓰러지지 말고 특히나 길이 아닌 길을 따라 가는 우를 범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따라 꾸준히 걷는 우리 늦둥이의 은총 받은 길이 되기를 뜨거운 어버이의 마음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내 고향 남대천과 연어
지금 양양의 남대천은 얼어있다. 내 그리움의 원천이고 그 지독한 그리움이 있도록 한 유년의 추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어머니의 강인 남대천의 겨울은 그러나 지금도 얼어붙은 물길의 얼음장 밑으로 가슴을 녹이는 이야기들이 졸졸졸 흐르고 있다.
남쪽을 향해서 흐르는 시냇물은 대개 남대천이라 얘기들 한다. 그래서 무척 많은 남대천이라 불리는 강들이 생겨났고 강릉에도, 고성에도 또 다른 곳에도 남대천은 남으로 남으로 쉴 새 없이 흐른다. 그러나 나의 유년을 모두 지켜보며 흐른 양양의 남대천에 대한 나의 감상은 다른 강들을 대하는 감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나는 남대천의 청정수를 마시며 설악에서 내리 부는 바람과 한계목을 거스르며 몰아치는 마파람을 맞으며 강을 따라 삶을 영위하던 투박하고 순박한 인심 속에서 순전히 촌바우 같은 심성을 키우며 내 유년을 살찌웠다.
문둥이의 전설이 살아있는 갈벌의 갈대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양강지풍의 이름 값처럼 봄바람 몹시 부는 초봄이 오면 설악의 골짝마다 푸근한 기운으로 얼음이 녹아 계곡물이 흘러내리고 양양 중심에 있는 현산공원은 온통 벚꽃으로 물들어 벚꽃놀이 하는 상춘객들과 밤마다 가로등 불빛 밑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꽃잎을 술잔에 담아 나누는 낙화주, 꽃비놀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맘 때 쯤 가리가 붙어 황금빛으로 변한 황어들이 한개목을 거슬러 물 반 고기 반으로 올라온다. 우리는 각종 어구들을 마련해 냇가로 나가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황어들을 잡아서 뭉텅뭉텅 썬 회를 풋풋한 흙냄새를 맡으며 배부르게 먹곤 했다.
더 어렸던 시절, 강줄기를 따라 돌다 모래언덕에 닿으면 궁금한 입을 채우기 위해 “뽐”이라 부르는 풀을 뽑아 껌처럼 턱이 아프도록 씹었던 추억, 나뭇가지와 풀을 엮어서 송장을 만들고 반두를 대고 강바닥을 쓸어가며 뚜거리, 미꾸라지, 참게, 민물새우, 칠성장어 등을 잡아 즉석에서 끓여 먹던 민물매운탕, 어릴 적이었지만 우린 그때 천렵을 하여 끓인 매운탕을 몇 그릇씩 비우곤 했다.
한여름, 햇살에 반짝이며 은빛으로 빛나는 잘생기고 미끈하게 빠진 은어의 철이다.맛도 수박향의 산뜻한 맛이려니와 보기에도 웬만큼 즐거운 은어는 전국의 강태공들과 일본관광객들의 손맛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어느덧 설악의 봉우리들이 위에서부터 붉은 옷으로 치장을 하고 아래로까지 단풍물이 들 때가 되면 천 수 백날의 그리움을 안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남대천의 하구에 짐을 풀고 잠시 긴 여행에서 몸을 추스르며 기다린다. 양양의 남대천을 찾은 귀한 손님, 물고기의 황제인 연어인 것이다.
무엇이 있어 그들의 행로를 이곳까지 이끌었던가. 누군 별빛을 쫒아 온다고 했고 누군 모천의 물 냄새를 맡으며 온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천 수 백날의 기다림과 수만리 길의 고통을 감내하는 진정 미물로써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귀향길이며 인간들로서도 힘든 형극의 길일 것이다.
남대천을 찾은 연어들은 종족의 번식을 위한 숭고한 의식을 행하고는 영원한 안식에 든다. 그 모성애와 귀소본능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고 연어의 일생을 보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항상 숙연케 한다.
자기가 태어난 남대천의 물냄새, 흙냄새, 물줄기, 모래톱, 이 모든 것이 그 미물의 뇌리 속에 철저히 각인되어 자기를 길러준 어머니의 강을 찾는 것은 아닐까. 인간만이 두뇌를 가지고 있고 인식능력이 있으며 감정을 느껴 슬픔과 괴로움을 아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연어의 삶을 보면 가슴에 서늘한 감동과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연어를 보면 인간만이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다고는 감히 고집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인간의 삶보다는 연어의 삶을 배워 나는 양양의 남대천을 어머니의 강, 그리움의 강이라고 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고향, 내 유년의 성장무대, 그리고 내 인생이 꿈을 꾸며 뜻을 펼치던 곳, 나중에 내 인생의 종착역이 될 곳. 내 뼈와 살을 묻을 그곳. 나의 그곳은 바로 남대천이고 연어가 그랬듯이 양양을 고향으로 하는 모든 사람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을 얘기할 때 항상 남대천을 얘기하고 남대천을 얘기할 때면 반드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연어가 된다.
그 지독한 그리움의 화신인 연어, 남대천을 찾아 종족의 번식을 마치고 영면을 맞이하는 숭고한 가슴을 가진 물고기의 황제인 연어의 일생 또한.......
연어 1
최 종 한
험난한 행로를 쫒아
남대천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진정 그리움이다.
그 지독한 그리움이 없었다면
넌 단지 미물에 지나지 않았으리
금지된 심장을 가진
매끈한 골격에 빼어난 자태.
은빛용포 걸친 종족의 기상으로
청록의 강을 유영하며
황제의 모천을 찾는 너는
본래 그리움의 종족이었나 보다
누군 별빛을 쫒아 온다고 했고
누군 물 냄새 맡으며 온다고 했다
그러나 너의 싸늘한 두뇌에 각인된 기억과
뜨거운 심장에 설설 끓는 그리움이 없었다면
천 수백 날.
기다림의 입술 쩍쩍 갈라져
먼저 간 사람들의 내일이던 오늘.
추억의 강가에서 어찌 우리 만날 수 있었으랴
기다림의 가슴만큼 깊어진 물길 속.
도도한 너의 은빛 유영을 보며
스러지는 내 별빛,
이젠 눈을 감으리라.
죽음처럼 집요한 그리움의 남대천에서
장엄한 황제의 향연을 보며
금지된 심장을 가진
은빛연어의 주검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