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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절대평가 (1)
실현 될까? 실현 가능성이 꽤 높아진 것 같다. 환영한다. 그 전제하에 얘기하자면, 그러나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이게 생각보다 먹을 게 없다. 삼국지의 조조가 말한 ‘계륵’이라고나 할까? 버리기엔 아깝지만 막상 먹으려들면 먹을 게 별로 없을 것이다.
수능 절대평가 (2)
< 1등급 기준점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
절대평가 찬성론자들은 9단계가 아닌 7단계나 5단계 절대평가를 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별 영양가 없는 주장이다.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그들이 주로 내세우는 두 개의 논거 어느 쪽을 봐서도 다 그렇다.
진짜 중요한 것은 1등급 기준점을 낮추는 것이다. 1등급 기준점을 90점에서 85점으로 낮추는 것이 실질적으론 더 중요하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1등급 기준점은 90점이다. 교육부가 이미 그렇게 고지했다. 아무도 이것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았다. 다른 과목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누가 특별히 시비를 걸지 않으면 국어와 수학은 백 퍼센트 그렇게 정해질 것이다. 인간의 손가락이 10개니까 이렇게 정하는 것이 본능적으로 깔끔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절대평가 도입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기 어렵다.
(A) 9등급제를 유지하면서 1등급 기준을 85점 (또는 80점이어도 나쁘지 않다)으로 하는 것.
(B) 7등급~5등급으로 등급 수를 줄이면서 1등급 기준점을 90점으로 하는 것.
언뜻 생각하면 (A)보다 (B)가 더 수능 준비 부담을 덜어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A)가 부담을 더 많이 덜어 줄 수 있다.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미치는 영향도 (A)가 더 클 것이다.
물론 앞의 페북 글에서도 말했듯이 수능 절대평가는 생각보다 별로 먹을 게 없는 제도다. 학생들의 수능 준비 부담을 그다지 크게 덜어주지 못한다. 학교내신제도가 유지되는 현재 상황에서는 학교교육에도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크게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 조금도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학생들의 부담은 꽤 덜어줄 수 있다. 학교교육에도 조금의 긍정적 영향은 미칠 수 있다.
그런데 그 조금의 긍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키우려면 등급수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등급의 기준점을 낮추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시행하는 영어 수능 절대평가는 이렇다.
90점 이상 1등급, 80점 이상 2등급, 70점 이상 3등급, 60점 이상 4등급 ~
내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절대평가는 이렇다.
85점 이상 1등급, 80점 이상 2등급, 75점 이상 3등급, 70점 이상 4등급 ~
1등급 기준점만 낮춰졌지 3등급부터는 오히려 기준점이 올라갔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수능 절대평가 (3)
< 학생들의 부담을 얼마나 줄여줄까? >
결론을 먼저 말하자. 2-9등급 학생들의 부담은 줄여주지 못한다. 1등급의 아래쪽 절반 학생들의 부담도 줄여주지 못한다. 1등급 상위권 학생들의 부담만을 줄여줄 수 있을 뿐이다.
절대평가로 바뀌어도 입시에 대한 부담이 그대로라면 2-9등급 학생들의 수능 부담은 여전히 그대로다. 점수를 올리는 것이 등급을 올리는 것으로 바뀔 뿐이다. 점수만 올려서는 이익이 안 되고, 등급을 올려야 이익인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게 한편으론 부담을 줄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부담을 키운다. 서로 상쇄하면 부담의 총량은 거의 그대로다.
그러나 최상위권 학생들, 즉 수능 모의고사에서 1등급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학생들은 다르다. 그 학생들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그래서 수능 준비를 덜 해도 된다. 수능 준비 부담이 확실히 준다.
같은 1등급이 나와도 안정적으로 나오지 않는 학생들의 부담은 여전히 크다. 자칫 평소보다 한 문제만 더 틀리면 2등급으로 떨어질(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절대평가로 인해 부담이 줄어드는 학생은 1등급 중에서도 상위권 학생들뿐이다. 따라서 절대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려면 안정적으로 1등급이 나오는 학생의 숫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여기엔 2가지 방법이 있다.
(1) 시험을 쉽게 출제하는 방법.
(2) 1등급 기준점을 낮추는 방법.
(1)도 좋지만 이것만 갖고는 부족하다. 이것만으론 1등급 학생들의 불안 심리를 덜어주지 못한다. 자칫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이 나쁠 수 있기 때문이다. 90점이 1등급 기준점이라면 시험이 아무리 쉬워도 90점을 초과하는 학생들도 안심할 수 없다. 최상위권 학생조차 내심 불안할 것이다. 자칫 한두 문제를 실수로 더 틀리면? 바로 2등급이다. 시험을 쉽게 하고 1등급 기준점을 높이면 최상위권 학생들의 공부 질을 크게 떨어뜨리게 된다. 그 학생들의 공부는 실수하지 않기 위한 공부로 전락할 것이다.
수능 준비 부담을 줄이려면 안정적으로 1등급이 나오는 학생들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그래야 부담을 더는 학생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 가장 좋은 방법은 등급 수를 5~7단계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1등급 기준점을 낮추는 것이다.
~ 이런 측면에서 보면 수능 절대평가의 최대 수혜자는 최상위권 학생들이다. 이런 측면에선 그들이 수능 절대평가를 제일 찬성해야 마땅하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 학생들이 절대평가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들일 것이다. 입시 경쟁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리 더 공부해봐야 올라갈 곳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보다 점수가 낮았던 학생들과 동일한 등급을 받아야 한다. 입시 경쟁이란 면에서 이 학생들이 가장 불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학습 부담의 측면에서만 보면 이 학생들이 절대평가의 최대 수혜자들인 것은 분명하다.
수능 절대평가 (4)
< 고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 >
수능 절대평가는 고교 수업에 얼마만큼의 긍정적 영향을 미칠까? 그 크기를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게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주 크다, 크다, 중간, 작다, 아주 작다 등등 어떤 말을 사용해도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교 수업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라고 말하려 한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다시 한 번 말하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수능 절대평가를 환영하는 전제하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반대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수능 절대평가제 (9등급제) 그것 하나만으로는 고교수업에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수능 절대평가만으론 역부족인가? 비유적으로 얘기해보자.
학교수업 = 사람
학교시험 = 총알
수능시험 = 화살
지금의 학교수업(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은 학교시험(총알)과 수능시험(화살)이다. 다른 것도 많지만 우선은 이 두 개에 초점을 맞춰보자. 수업이 살아나려면, 즉 수업이 정상화(?)되고, 저차원적 모습에서 벗어나려면 총알도 피하고 화살도 피해야 된다. 어느 하나만 피하면? 어차피 죽는다. 아니면 심한 중상이다.
수능 절대평가는 수능시험의 부정적 영향(화살)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지금의 절대평가로는 부족한데다 여전히 학교시험의 부정적 영향(총알)이 남아있다.
총알을 막아내면서 화살까지 막아낼 수 있다면 사람(수업)은 산다. 하지만 화살만 막아내고 총알은 막아내지 못하면 사람은 살지 못한다. 즉 학교시험이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설사 수능시험을 폐지한다할지라도 학교수업은 살아나지 못한다.
게다가 원래부터 학교수업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쳐온 입시는 학교시험 그 자체였다. 수능은 그 다음이었다. 그리니까, 아래의 1번은 진실일 수 있지만 2번은 거짓인 것이다.
1. 수능의 영향력 약화 + 학교내신제도(학교시험) 획기적 개혁 = 학교수업의 긍정적 변화
2. 수능의 영향력 약화 + 학교내신제도(학교시험) 현상 유지 = 학교수업의 긍정적 변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수능시험의 문제점이 더 많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학교내신제도의 문제점을 외면하고 수능시험의 문제점만 비판해선 학교수업의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
사실 학교시험은 수능시험이 없었으면 지금보다 더 암기 위주 시험으로 흘렀을 수 있다. 수능시험이 그것을 막아준 측면도 있다.
아래 글은 그러한 문제의식으로 썼던 글이다. 오래 전 페북에 올렸던 글이지만 다시 올린다.
...
김도연은 진실의 절반만을 보고 있다. 절반의 진실 가지고는 문제를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다. 절반은 제대로 보았으니 절반은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다.
교통체증을 부르는 병목구간에 비유해서 얘기해보자.
수능시험은 심각한 병목구간이다. 그럼 수능시험이란 병목구간을 뚫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해결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심각한 병목구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 중의 하나를 뚫었으니 문제의 절반 정도는 해결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다. 다른 또 하나의 병목구간에 막혀 차량의 속도는 여전히 그대로 일 것이다. 오히려 차량의 속도를 더 늦출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두 개의 병목구간을 전부 뚫어야 한다. 하나만 뚫어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이 얘기했듯이 수능시험은 정말 문제가 많은 시험이다.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을 가로막는 선다형 객관식 시험이다. 수능시험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더 가혹해도 된다. 그런데 그는 또 다른 심각한 병목구간 하나를 놓치고 있다. 그래서 만약 그의 문제의식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김도연의 말대로 학생들로 하여금 차원 높은 공부를 하게하려면 수능시험이라는 병목구간을 뚫어야 한다. 하지만 수능시험이라는 병목구간을 뚫어도 다른 병목구간이 그대로라면 차들은 시원하게 달릴 수 없다. 즉 여전히 학생들은 객관식 문제풀이 위주의 저차원적 공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 하나의 병목구간은 무엇인가? 내신 성적을 산출하는 학교시험이다.
학교마다 다르고 학생마다 차이가 있지만 학생들의 학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험은 수능시험이 아니라 학교시험이다.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시험은 사실상 수능시험처럼 객관식 시험이다. 물론 학교시험에서는 선다형 객관식 문제 외에 서술논술식 문제가 꽤 존재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정책 사항이다. 그러나 학교시험의 서술형 문제는 형식만 서술논술 형식을 취할 뿐 내용적으로는 대부분 객관식 문제다. 즉 무늬만 서술논술 문제인 것이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그야말로 소수의 예외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무늬만 서술논술식 객관식 문제는 순수한 선다형 객관식 문제보다도 폐해가 더 클 수 있다. 정답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서술형 문제들은 선다형 객관식 문제보다 암기식 공부를 더 크게 조장한다. 선다형 객관식 시험에서는 대략적으로 암기해도 괜찮을 수 있지만 정답이 뚜렷한 서술형 문제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암기를 해야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의 예외를 무시하자면 대부분의 학교시험 문제는 수능시험 문제보다 단편적 암기공부를 더 크게 조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능시험을 없앤다고 해보자. 문제가 해결되나? 여전히 심각한 병목구간이 남아있기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 남아 있는 병목구간의 정체를 극도로 심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김도연은 “포스텍도 수능 성적이 아닌 '입학사정관제(학생부종합전형)'로 전원 선발합니다. 수능 성적으로 뽑았을 때보다 더 창의적인 학생들이 들어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학생들이 당초 포스텍에만 들어오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수능 공부를 다 한 학생들입니다. 오지선다형(型)의 사고에 매여 있다는 뜻입니다."
학생들이 오지선다형 사고에 얽매인 게 여전히 존재하는 수능시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부분적인 진실일 뿐이다.
‘포스텍에 들어온 학생들도 학교시험 공부를 한 학생들입니다’
이 말이 추가 되어야 김도연의 말은 부분적 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까 수능시험을 없애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학생을 선발해도 포스텍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여전히 지금과 마찬가지로 오지선다형 사고방식에 매여 있는 학생일 수 있다는 얘기다.
비교과로 떠들썩하지만 학종에서 실제 중요한 것은 교과 성적이다. 학종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내신(교과 성적)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진다. 이것은 실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내신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학교시험은 점점 더 객관식 시험을 지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점점 더 무늬만 서술형 문제를 출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적 압력을 받게 된다.
결국 이렇게 되면 수능시험이 없어져도 여전히 학생들의 공부는 저차원적 공부일 수밖에 없다. (수능시험을 없애지 말자는 결코 얘기가 아니다. 없애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학생부종합전형의 다른 측면이 학교 수업의 차원을 높이는 쪽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이 그것이다.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은 교사와 학생으로 하여금 고차원적 수업을 하도록 하는 압력을 가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학교시험이 객관식 시험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학종이 중요해질수록, 즉 내신 성적이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학교시험은 또 그 반대 되는 방향에서 압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부와 교육청이 서술논술식 문제를 아무리 강요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서술논술식 문제가 출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들만 고달프게 할 뿐이다.
어떻게 해야 되는가? 어떻게 하면 학교시험에서 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추방할 수 있을까? 독일이나 프랑스 학교시험처럼 온전한 의미에서의 서술논술식 문제를 출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하려면 글이 길어진다. 지금의 내신제도가 선진국처럼 바뀌어야 한다. 반드시 여러 개가 함께 바뀌어야 하는데, 그 중 두 번째쯤 중요한 것을 간단히 얘기해보자. 그것은 현재의 상대평가제를 절대평가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무늬만 절대평가 말고 온전한 절대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학교시험은 상대평가다. 성취평가제인 절대평가가 병존하니까 절반은 절대평가 아니냐고 말하면 상황을 모르는 얘기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공존하면 상대평가만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평가는 절대평가와 공존해도 상대평가의 본질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지만 절대평가는 다르다. 절대평가는 상대평가와 공존하게 되면 절대평가의 장점을 조금도 살리지 못한다. 쓸데없이 불필요한 일만 증가시킬 뿐이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그런데 선진국의 학교시험처럼 바꾸면 필연적으로 학교시험(내신)의 입시변별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학종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의 학종은 학교시험이 만들어 준 입시변별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비교과가 전부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더 중요한 것은 교과 성적이다. 이것은 입학사정관들이 일관되게 하는 얘기다.
만약 수능시험을 폐지하면, 수능시험으로 선발하는 정시가 사라지고 수능최저등급이 사라지면 상위권 대학들은 입시를 점점 더 학종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학교시험의 중요성이 현저히 더 커지게 되고 학교시험은 점점 더 객관식 시험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아무리 서술논술식 문제를 강요해도 무늬만 서술논술식 문제를 출제하게 된다. (이때 제발 교사의 자질과 역량만을 탓하지 말아 달라.)
학종의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이라는 요소가 반대 방향에서 압력을 가하겠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역부족이다. 결국 수능이 사라지고 학종이 입시의 대세가 되어도 학교시험이 변하지 않는 한 여전히 학생들은 저차원적 객관식 문제풀이 공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글 서두에서 말했듯이 학생들에게 저차원적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수능시험 하나만이 아니다. 학교시험 또한 수능시험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저차원적 공부를 강요한다. 가혹한 진실을 얘기하라면 학교시험이 수능시험보다 오히려 더 심각하게 저차원적 공부를 요구한다.
수능시험은 심각한 병목구간이 분명하지만 학교시험은 어쩌면 더 심간한 병목구간인 것이다. 불행히도 이 중 하나만 뚫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둘 중의 하나를 뚫었으니 문제가 절반은 해결되지 않겠냐고? 그렇지 않다.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차량의 전체 주행속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두 개의 병목구간을 전부 뚫어야 한다.
수능시험 절대평가 (5)
< 내가 예상하는 결과 >
현 학교내신제도의 획기적 개혁은 무엇을 말하는가? 학점제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것이다. 학점제 교육과정이란 말은 내가 만든 용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교학점제’ 공약에 착안하여 만든 용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학점제 교육과정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나?
학생 선택 + 절대평가 + 교사별 평가 + 교과서 자율선택제 등이다. 교육 선진국들의 교육과정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점제 교육과정의 필연적 결과는 무엇인가? 학교시험(내신) 입시 변별력의 현저한 약화다.
수능 절대평가의 결과는 무엇인가? 수능 입시 변별력의 약화다. 9단계가 아닌 5단계 수능 절대평가의 결과는? 입시 변별력의 더 현저한 약화다.
학교 수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둘 다를 각오해야 한다. 하나만 가지곤 어렵다. 특히 현 학교내신제도는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을 그대로 유지해선 수업이 바뀔 수 없다. 수능이 아예 폐지돼도 바뀌지 않는다. 현 학교 수업이 가진 모든 문제점을 수능시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수능시험 없었으면 학교시험은 지금 보다 더 심하게 암기 위주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신 입시 변별력 약화 + 수능 입시 변별력 약화> 구도는 존재하기 어렵다. 도대체 입시는 어쩌란 말이냐? 특히 상위권 대학의 입시를 어쩌란 말이냐?
우리가 막히는 지점이 항상 여기다. 여기서 막혀 해법을 못 찾는 것이다. 해법은 없는가? 없다. 아니다.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법은 존재하는데 그것 또한 상당한 문제점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도입을 못할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사회적 합의와 결단 차원의 문제다. 우리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가 결단을 못하면?
< 학점제 교육과정 + 수능 절대평가 >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논술시험이 폐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현실적 선택은 다음 3개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1. 현재의 학교내신제도 유지 + 현재의 수능 상대평가 유지 = 전체적인 현상 유지
2. 현재의 학교내신제도 유지 + 수능 절대평가 = 수능 입시 변별력만 약화
3. 학점제 교육과정 + 현재의 수능 상대평가 유지 = 내신 입시 변별력만 약화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2번으로 갈 것만 같다. 풍선 효과를 무시하면 수능의 입시 변별력만 약화시키고 내신의 입시변별력은 유지하는 쪽이다. 풍선 효과를 고려하면 수능의 입시 변별력은 약화시키고 내신의 입시변별력은 강화하는 것이다.
뭐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착각은 금물이다. 크게 볼 때 우리 사회가 얻는 교육적 이익은 별로 없다.
다만 세부적으로 보면 이익-손해 양쪽 다 있다. 그 지점이 달라질 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입시 경쟁의 질은 좀 더 나빠진다. 풍선효과에 의해 내신의 비중이 커지면 내신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그런데 내신 경쟁이 수능 경쟁에 비해 교육적으로 더 나쁘다. 예를 들어보자. 전교 1-2-3-4등을 다투는 아이들, 즉 서울대 지역균형전형 티켓 2장을 놓고 경쟁하는 아이들의 내신 경쟁은 치열하다. 그 아이들이 그날그날 시험이 끝날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는가? 경쟁자의 점수다. 자신은 1개 틀렸는데 경쟁자가 2개 틀리면? 진심으로 기뻐한다. 집에 가서 부모와 함께 좋아한다. 경쟁자가 0개 틀렸다면? 진심으로 슬퍼한다. 부모와 함께 슬퍼한다. 이게 만약 수능 경쟁이었다면? 질투야 물론 하겠지만 한편으론 상대방에게 축하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신의 강화는 필연적으로 경쟁의 질을 타락시킨다.
교육(입시)의 불평등은 조금이나마 개선될 것이다. 내신은 학교 간의 학력 격차를 무시한다. 강남학교의 1등급과 강북 학교의 1등급이 같고, 특목고의 1등급과 일반고의 1등급이 동일하다. 물론 대학은 온갖 방법으로 고교 간의 학력격차를 보려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고교 간의 학력 차이를 보려 해도 내신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내신의 평등성이 완전히 무시되지는 않는 것이다.
2번으로 결정되면 입시 경쟁의 질이 조금 더 나빠지는 대신 교육불평등은 조금 더 완화될 것이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건데 2번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제일 큰 것 같다. 오백원 건다.
아, 수능의 전면적 절대평가가 아닌 일부 과목 절대평가의 가능성도 여전히 크다.
수능 절대평가 (6)
< 비겁함은 디테일에 숨어 있다 >
위의 제목은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을 비틀어 만든 말이다. <사회적교육위원회>의 기자회견문을 읽으면서 디테일에 숨어 있는 게 악마만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만들어 본 말이다.
<사회적교육위원회>는 수십 개 단체가 연합한 단체다. 내가 후원금(또는 조합비)을 내는 단체가 5개나 속해 있다. 기자회견문을 찾아 읽으며 후원을 중지해버릴까, 잠시 생각했다. 기본 내용과 주장 때문이 아니다.
‘학교 내신은 성취평가(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동시 제공’ 라는 아주 사소한 표현 때문이다.
그들의 기본 요구는 학교 내신제도의 기본 틀을 유지하고 수능만 절대평가제 바꾸자는 것이다.
수능 전 과목 5단계 절대평가 + 학교 내신은 성취평가(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동시 제공
나는 이 요구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그들은 이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내신과 수능 모두를 절대평가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게 현실이다. 사실은 그들도 마음속으로는 학교 내신까지 절대평가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하지 않아서 수능 절대평가만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럼 내가 잠시나마 후원을 중지해버릴까 하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학교 내신은 성취평가(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동시 제공’ 이란 표현 때문이다.
이게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에겐 이게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비겁하게 느껴진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고등학교 내신제도는 <성취평가(절대평가) + 상대평가>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게 맞다. 하지만 설명 없이 그렇게 얘기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 성취평가제가 완전한 껍데기라서 그렇다. 실질적 차원에서 보면 현재의 내신제도는 완전한 상대평가제이다. 대학입시가 반영하는 것도 상대평가제고 수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상대평가제이다.
교사들은 평소에 성취평가제의 존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교사들이 그것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그것과 관련한 행정업무를 할 때뿐이다. 아무 쓸데도 없는 일을 하면서 불평을 할 때뿐이다. 학생들은 더더욱 아무런 존재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성취평가(절대평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상대평가제 하나 뿐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표현이어야 진실한 것이다.
“학교 내신은 상대평가 유지”
그러면 그들은 굳이 왜 ‘학교 내신은 성취평가(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동시 제공’ 이란 복잡한 표현을 사용했을까? 왜 성취평가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그것은 성취평가제 초기에 교육부가 했던 것과 비슷한 행위 아닌가? 나는 여기서 그들의 비겁함을 보는 것이다.
비겁함은 디테일에 숨어 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내 주관적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