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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철수 (계명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출처 : 무경계. 도서출판 무우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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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출판 무우수에서 출간한 '무경계' 에 계명대학교 김철수 교수가 쓴 해설 부분입니다. 저자와 출판사의 허가를 얻어 이 게시판에 올립니다. 저작권자의 허가없이 다른 게시판이나 인터넷에 올릴 수 없습니다. 개인적, 관용적 용도로만 사용하여 주십시오.
켄 윌버의 사상
김철수
사상의 전개과정
윌버는 23세 되던 1972년 겨울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자신의 첫 번째 저술 집필에 전력투구한다. 하루 10여 시간 이상을 오직 집필에 전념한 끝에 불과 3개월만에 육필 원고를 완성하고 74년 가을 타이핑까지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문제는 출판사를 찾는 일이었다. 무려 3년간 거의 30여 개 출판사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하는 우여곡절 끝에, 존 화이트John White(저술가이자 의식 연구가)의 도움으로 1977년 마침내 퀘스트 북스Quest Books 출판사에서 출간되기에 이른다. 이 책이 바로 『무경계』의 전신인 『Spectrum of Consciousness(의식의 스펙트럼)』이다. 윌버는 고마움의 표시로 이 책을 존 화이트에게 헌정했다.
『의식의 스펙트럼』의 가장 큰 공헌은 탄생에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죽음과 그 너머를 포함해서) 인간 의식의 다양한 단계와 수준 그리고 가능성을 하나의 비유로서 마치 전자기장電磁氣場electromagnetic field처럼 모든 대역을 보여 주면서, 서양의 과학적 심리학과 동양의 형이상학적 신비사상의 최상의 업적을 독창적으로 결합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윌버 자신이 말하듯이, 『의식의 스펙트럼』은 "심리학과 심리치료에 관한 동서양 접근법의 종합일 뿐만 아니라, 서양의 심리학과 심리치료에 관한 종합이자 통합"인 스펙트럼 심리학의 해설서이다. 이는 저자의 나이를 감안해 볼 때 실로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책이 출판되자 초개인 심리학자들은 20대의 젊은 친구가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이루어 놓았음을 즉각 알아챘다. 초개인 심리학회의 전前회장이었던 제임스 패디먼James Fadiman 박사는 "윌리엄 제임스 이후 가장 두드러지고 가장 포괄적인 의식에 관한 책"이라고 평가했으며, 역시 초개인 심리학자인 진 휴스톤Jean Houston은 "프로이트가 심리학을 위해 기여한 것만큼 윌버는 의식연구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슈워츠Schwartz는 이를 두고 "프로이트와 부처의 결혼"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존 화이트는 "켄 윌버: 의식연구의 아인슈타인"이라고 평가하면서, "프로이트, 마르크스, 아인슈타인이 세계관을 바꾸어 놓은 만큼이나 윌버는 머지않아 다방면에 걸친 새로운 세계관의 창시자로 인식될 것이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책이 출간되고 난 후 1년 동안 윌버는 자신의 성공을 만끽했다. 곳곳에서 쇄도해 오는 강연의뢰, 면담요청, 회의참석에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곧 그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다시 접시닦기와 엄청난 양의 독서 그리고 하루 2시간 이상의 명상이라는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그 당시를 회고하면서 윌버는 "그때 나는 대중과의 만남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연구와 저술을 그만둘 수도 있었고,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고독하고 외로운 저술가로 되돌아갈 수도 있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나는 예외없이 오직 집필에만 전념하면서 그때의 결심을 지켜왔다."고 말한다. 본래 대단히 사교적인 윌버였지만, 집필과 방대한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명상과 관조를 심화시키기 위해 유명인사의 지위에서 거의 은둔자에 가까운 생활로 스스로 복귀한 것이다.
20년이 넘도록 저술에 전념해 온 윌버는 90년대 말경 자신의 저술을 회고하면서 그동안 전개해 온 자신의 사상을 네 개의 국면phase으로 구분한 바 있다. 각 국면마다 강조점과 관심영역이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인 통합적 비전이라는 이론적인 핵심에서 볼 때 모든 국면이 통일성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각 국면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Wilber/Phase 5는 본인의 구분이 아니라 Visser와 Reynolds의 구분임).
Wilber/Phase 1 (1973-1977)
'의식의 스펙트럼'과 '무경계' - 하(잠재)의식, 자기의식, 초의식(또는 이드id, 자아ego, 신God)을 망라한 의식의 스펙트럼을 제시한 점과 본래 갖고 있었지만 성장과정에서 상실한 상위단계의 잠재력을 회복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낭만적('선성善性의 회복' recaptured-goodness) 관점을 취한 시기이다.
Wilber/Phase 2 (1978-1983)
'진화 혁명' - 낭만주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발달단계(또는 수준)에 따라 의식의 스펙트럼이 전개해 가는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진화적/발달적('선성으로의 성장' growth-to-goodness) 관점을 확고하게 다진 시기이다.
Wilber/Phase 3 (1983-1994)
'통합적 비전: 자기, 수준 및 노선' - 전반적인 의식의 스펙트럼 수준을 통과해 가면서 비교적 독립적인 방식으로 진화하는 20여 개의 발달노선(신체, 인지, 정서, 도덕성, 영성 등)을 추가한 시기이다.
Wilber/Phase 4 (1995-2000)
'사상한四象限four quadrants 및 탈근대 비판' - 윌버는 이때부터 사상한이라는 새로운 개념, 즉 주관적(의도적) 차원, 객관적(행동적) 차원, 간주관적(문화적) 차원, 간객관적(사회적) 차원을 총망라한 가장 성숙한 통합모델을 도입한다.
Wilber/Phase 5 (2000년 이후)
'통합적 AQAL 접근' - 네 번째 시기의 "전 상한All Quadrant, 전 수준All Level" 또는 AQAL접근을 지속적으로 확고하게 다지면서, 자신의 모형과 방법론을 적용하여 기업, 정치, 교육, 의료, 과학, 영성 등 다양한 실용적 분야를 진단하고 적절한 통합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윌버의 가장 성숙한 통합모형인 사상한 모델을 기준으로 해서 볼 때, Wilber/Phase 1에 속하는 『무경계』는 『의식의 스펙트럼』과 마찬가지로 사상한 중 개인의 주관적(의도적) 차원에 초점을 맞춘 저술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저술에서는 객관적인 차원과 집합적인 차원들(간주관적/간객관적 차원)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무경계': 일반독자를 위한 배려
윌버의 첫 번째 책 『의식의 스펙트럼』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그는 이 한 권으로 일약 초개인 심리학계의 중요한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성공은 대체로 학계, 특히 초개인 심리학 전문가들에 한정된 것이었다. 370여 쪽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양과 학술적인 체제, 추상적인 내용 그리고 수많은 인용문과 그림들로 인해 일반 대중이 소화해 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던 윌버는 첫 번째 책이 출판되기 이전에 이미 그 책의 핵심주제를 좀 더 간단하고 대중적인 형태로 알리기 위해 두 번째 저술을 집필하기 시작한다(물론 일반 대중이라고 해도 최소한 자기성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을 말한다). 원래 『Boundary of Consciousness(의식의 경계)』라는 제목으로 노트에 쓰여진 원고였으나, 1975년 존 화이트의 제안에 따라 『No Boundary(무경계)』로 제목이 바뀌었으며, 이 책 역시 출판사를 찾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1979년 LA에 소재하는 선원禪院에서 한정판으로 먼저 출판된 후 1981년 샴발라Shambhala에서 출판되어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낭만적 시기 또는 Wilber/Phase 1로 불리는 두 권의 책 중 특히 『무경계』에서 윌버가 제시한 것은 의식 스펙트럼의 다양한 '대역'은 근본적으로 다른 정체성이며, 따라서 각 스펙트럼의 수준은 자신의 '자기', 진정한 정체성을 협소하게 하거나 제한시킨 것이라는 점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자기 정체성(또는 경계)의 수준은 원초적인 저항으로 인해 만들어지며, 그것들 모두는 기본적으로 객체/주체, 아는 자/알려진 것, 내측/외측 등의 근본적인 이원론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윌버는 서양 심리학에 기초하여 인간의 정신이 페르소나/그림자, 자아/신체, 유기체/환경과 같은 다양한 인식 수준으로 분할되는 또 다른 이원론을 제시하면서, 이르 페르소나/그림자 수준, 자아 수준, 켄타우로스/실존 수준, 초개인적 수준 및 합일의식으로 구분한다. 이 자기 정체성 수준에 따른 구분은 다양한 심리치료와 영적 수행법에 대응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무경계』에서 윌버는 정신분석에서 선에 이르기까지, 게슈탈트에서 TM에 이르기까지, 실존주의에서 탄트라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심리학과 심리치료에 대한 단순하지만 포괄적인 지침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면서, 다양한 치료법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배경으로 『의식의 스펙트럼』에서 제시했던 내면세계의 지도를 적용한다. 특히 7장 이후부터는 독자 스스로가 각 치료의 성질과 실천방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문헌들을 소개하면서, 모든 사람의 내면에 언제나 존재하는 합일의식 또는 초개인적 자기, 주시자를 깨닫도록 이끌어간다. 이 스펙트럼 모델에 따르면, 모든 치료가 가장 깊은 합일의식에 도달할 때까지 스펙트럼 내에서 더 깊은 수준으로 이끌어주긴 하지만, 개인수준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심리치료를 거치지 않고 합일의식과 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선 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보여 준다. 개인 수준의 문제들이 심층의식의 확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합일의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선 심리치료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스펙트럼 모델은 일견 상호 모순된 접근처럼 보이는 많은 치료법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윌버 자신도 『무경계』는 '언제나 이미'라는 '영원의 철학'의 근원적 통찰을 담고 있으며, 이 책이 여전히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책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1978년 이후 몇 년간은 윌버가 영적 수행으로부터 결실을 수확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비교秘敎문헌을 통해 지적으로 알게 된 내면의 심오한 의미를 하루 수 시간의 끈기있는 명상수련을 통해 직접적으로 발견한 것이 이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윌버는 『무경계』의 마지막 장인 '궁극의 의식상태'에서 자신의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궁극의 의식상태란 언제나 현존하는 각성에 대한 오류없는 직접적인 1인칭 기술'이라고 쓰고 있다. 윌버 자신도 이 비이원적 의식상태를 체험했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적절하게 묘사될 수 없으며 단지 직접적으로 깨달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 심리학의 많은 지도(이론/모델)를 충실히 감싸안는 포괄적인 지도를 그려내는 것이 그의 목표였으며, 이러한 시도의 결과물이 『무경계』였다고 할 수 있다. 윌버는 자신이 그려낸 의식의 지도가 완전하다거나 완벽한 것이라고 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깊이와 높이를 포괄하는 '다소간 완전한 모습의 의식에 관한 지도'라고 생각했다.
윌버가 『의식의 스펙트럼』과 『무경계』에서 서양 심리학과 동양의 신비전통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 점은 형이상학적 맥락에서 볼 때 분명히 지적으로 만족스러운 성취였다. 이 두 권의 책만 남겨 놓았더라도, 윌버는 요즘의 전체론적wholistic 입장을 선도한 인물로 인식되었을 것이며, 동성양의 사상을 하나의 포괄적인 모델로 통합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을 만큼의 지적인 성실성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쓴 두 권의 책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윌버는 스펙트럼 모델에 뭔가 크게 잘못된 곳이 있다는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된다. 무엇이 그를 지적인 곤경상태로 몰아간 것일까? 과연 스펙트럼 모델의 어떤 점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초기 스펙트럼 모델의 문제
『의식의 스펙트럼』을 쓰면서 윌버는 그 출발점으로 무시간인 영spirit을 채용했으며, 『무경계』에선 심리치료와 영적 수행을 하려고 하는 이미 성인이 된 사람에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유아에서 성인에 이르는 것일까? 스펙트럼 모델과 관련시켜 볼 때 유아에서 성인으로의 발달과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978년 경, 『무경계』 집필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초기 저술과 논문에서 자신도 깰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전문적으로 '낭만적인 입장'을 견지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당황하게 된다. 이러한 치명적인 문제는 윌버의 책이 역행적retro 낭만주의에서 주창한 '신성의 회복' 모델을 채택하고 제안했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러한 이론적인 문제, 즉 '신성의 회복' 모델에 심대한 오류가 있다는 인식은 그의 다음 저술(『Atman Project』와 『Up From Eden』)을 집필하면서 점점 더 선명하게 부각된다. 윌버는 자신이 밟아온 단계를 거슬러 내려가 다양한 학문으로부터 수집한 증거들을 기초로 상세히 재검토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한 지적인 훈련을 넘어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잡을 때 따르는 육체적인 고통이자 일종의 실존적 위기'였다. 윌버는 그때를 회고하면서 "내가 낭만적 모델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노력하면 할수록(나는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 모델의 부적절성과 혼동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낭만적/Wilber 1 모델이 '유아기적, 전자아기적 구조'를 '원초적 기반, 완벽한 정체성, 신과의 합일, 전 세계와의 통일'로 보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음을 찾아낸다.
스펙트럼 모델의 관점에서 볼 경우, 신생아는 영spirit, 신 또는 천국과 무의식적으로 합일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아는 이 합일상태에서 서서히 빠져 나오게 되고 스펙트럼의 여러 대역을 통과해 성장하면서 전 우주와의 접촉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먼저 자신을 순전히 마음으로 여기게 됨에 따라 켄타우로스라는 유기체적 심신일여 상태를 잃게 되고, 그런 다음 자신은 순전히 페르소나로 여김에 따라 마음의 통일성도 상실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그는 몸과 환경, 전 우주와의 접촉을 상실한 가장 먼 반대 극에 도달한다. 이 지점에 도달한 성인은 치료과정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를 수용하도록 배울 수 있으며, 따라서 페르소나와 그림자가 통합된 자아를 회복한다. 그런 다음 켄타우로스로, 또 다시 초개인 대역을 거쳐 전 우주와의 합일상태를 회복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삶의 과정은 두 개의 주요 국면으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유아로부터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성인으로부터 깨달은 존재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영적 발달이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유아기의 합일상태를 되찾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아동기에 상실한 낙원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의식의 스펙트럼』과 『무경계』 집필을 끝낸 후, 윌버는 자신의 스펙트럼 모델을 갖고 유아에서 성인에 이르는 과정을 기술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일은 발달 심리학 분야의 과학적 연구에서 도출된 타당한 자료를 근거로 출발했지만, 특히 출생 초기의 과학적 연구결과와 비교하면 할수록 신생아의 의식상태는 영성의 (무의식적) 정점일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스위스의 발달 심리학자 피아제Piaget의 연구, 특히 "신생아의 자기는 물질적이다"라는 한 구절이 윌버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주었다. 그 당시를 회고하면서 윌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신생아의 자기는 물질적이다'라는 구절은 나를 올바른 자리에 돌려놓았다. 원시적인 물질적 혼융상태가 진정한 자기와 동격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유아는 세계 전체와 하나가 아니다. 출발선상에서 볼 때 유아는 정신세계, 사회세계, 상징세계, 언어세계와 하나가 아니다. 이들 중 어떤 것도 아직 출현하지 않았으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아는 이런 수준과 하나가 아니며,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지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단지 물질적 환경 그리고 어머니와 하나일 뿐이다. 그 이상의 어떤 수준도 유아의 원시적 혼융상태에 들어와 있지 않다. ...... 따라서 어린애에서 어른으로의 성장은 낙원에서의 추락이 아니라, 성장 길목에서 무의식 상태로부터 출현한 하나의 곤경으로 보아야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깨달은 존재로 성장해 가는 것은 한때 잃어버린 합일상태로의 복귀(선성의 회복)가 아니라 출생 시 이미 시작된 발달과정의 연속(선성으로의 성장)이 된다.
낭만주의적인 관점에 따르면 유아는 천국과 무의식적인 합일에서 삶을 시작한다. 즉, 유아의 자기는 환경(또는 어머니)에서 분화하지 않은 채 존재의 역동적인 기저와 합일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합일은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의식적이다. 지복으로 가득 찬 신비적이고 낙원적인 상태에서 이윽고 자기는 환경에서 분화하고 존재의 기저에서 실추한다. 주객이 분리되고 자기는 무의식적인 천국에서 의식적인 지옥으로, 즉 분리, 소외, 억압된 그리고 공포와 비극으로 가득 찬 자아 수준으로 이행한다. 그러나 자기는 성장 도중에 U턴하여, 유아기의 합일상태로 귀향해서 존재의 기저와 다시 결합한다. 즉, 이번에는 완전히 의식하는 자기실현적인 상태로 천국을 발견한다. 이것이 낭만주의 관점의 핵심이다.
이 관점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첫 단계, 즉 선성과의 무의식적인 합일을 상실하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이미 언제나 선성, 즉 존재의 기저와 하나이며, 그 합일을 잃으면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물이 존재의 기저와 하나인 이상 그 일성一性을 알아차리든가 알아차리지 못하든가 어느 하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신적인 기저와는 두 가지 관계만이 가능하다. 만일 존재와의 합일에 무의식적이라면 존재론적으로 말해 그 이상 나쁜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실을 알아차릴 만큼의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소외와 분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아상태의 실체, 즉 무의식적인 지옥이라는 것이다. 유아적 자기가 비교적 평화스러워 보이는 것은 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옥의 불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아는 존재에 내재하는 괴로움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윤회에 내재하는 고뇌, 현상세계에 잠복해 있는 광기를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괴로움이 시작된다. 이렇듯 자기는 의식을 깊게 하면서 성장해 간다. 무의식적인 지옥에서 의식적인 지옥으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이 지옥에서 모든 삶을 소모하는 경우도 있지만, 진정한 영적 영역으로 성장 발달을 계속해 갈 수도 있다. 분리된 자기감을 초월해서 자기를 해방시킬 수도 있다.
이것이 '무의식의 지옥에서 의식된 지옥 그리고 의식된 천국으로'라고 하는 인간 개체발달의 실제 궤적이다. 자기는 결코 존재의 기반을 상실하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낭만주의 관점은 두 번째와 마지막 단계(의식된 지옥과 의식된 천국)에 대해서는 옳지만, 첫 번째 단계 즉 유아기를 무의식의 천국상태라고 한 점에서는 전적으로 잘못이다. 유아기는 초개인 단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전개인적 단계이며, 초합리성이 아니라 전합리성, 초언어적이 아니라 전언어 단계일 뿐이다.
낭만주의는 전단계와 초단계를 혼동했기 때문에 전단계를 초단계의 영광으로 끌어올리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윌버가 이러한 낭만주의의 오류를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이 경계해야 할 오류를 범했었기 때문이다. 이는 환원주의자가 초단계를 전단계로의 퇴행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두 가지 혼란과 혼동, 즉 격상과 격하는 전/초 오류를 구성하는 두 가지 주요 주제이다. 중요한 점은 발달이란 자아 이전상태로의 퇴행이 아니라 자아를 초월하는 진화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때 낭만주의에 매료되었던 Wilber 1시대는 막을 내린다.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의 실존적 악몽에 눈뜬 자아는 그 후 두 개의 기본적인 선택지를 갖게 된다. 의식의 진화와 성장을 위한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의식을 지우고 고통에 대해 마비된 퇴행의 길을 택할 것인가이다. 만일 전자를 선택하면 자기는 적절한 영적 훈련과 더불어 진화적 성장을 해가면서 비시간적인 원초적 본질을 재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결코 과거 유아기에 상실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의 세계가 아닌 현재, 다만 지금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본성의 재발견이며, 하강에 앞서 현전해 있던 궁극의 의식상태, 즉, 합일의식의 상기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성장 발달은 무의식적 천국에서 의식적 지옥 그리고 의식적 천국이라는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지옥, 의식적 지옥 그리고 의식적 천국으로의 과정이 된다. 이것이 Wilber 1에서 Wilber 2로의 전환이었다.
'전/초 오류'의 극복과 새로운 출발
윌버의 낭만적 지향은 '전/초 오류Pre/trans fallacy'를 밝혀냄과 동시에 급진적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인간 의식의 진화에서 전개인 영역과 초개인 영역의 차이점을 명백하게 규정하고 설명한 '전/초 오류'는 윌버가 지금까지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켜 오면서 보여준 이론적 급선회 중 가장 큰 변화이며, 가장 심오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일 것이다. 의식의 전개인적 구조와 초개인적 구조 사이으 구분, 즉 "전합리적 상태와 초합리적 상태는 둘 다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훈련되지 않은 눈에는 혼동되던가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는 '전/초 오류'를 확립한 이후, 윌버는 이것이 갖고 있는 함의와 통찰을 널리 알리는 한편 그런 오류가 내포된 주장이나 이론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무경계' 이후 윌버는 낭만적 입장(선성의 회복 모델) 대신 진화 발달에 대한 '선성으로의 성장' 모델의 옹호자가 되었다. 그는 성장의 전개인적(또는 전 합리적), 개인적(합리적) 그리고 초개인적(초합리적) 단계의 중요한 차이점을 고려해서 새롭게 이론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구분은 Wilber/Phase 2 이후 전개된 국면과 최근의 통합비전에서도 여전히 주된 원리로 남아 있다.
'전/초' 구분을 제시함으로써, 윌버는 '자아에 봉사하는 퇴행regression in service of ego'으로 알려진 표준적인 심리학 모델을 역전시켰다. 최상의 궁극적인 신神실현 또는 신성한 깨달음을 향한 발달의 진보를 강조하는 발달적 스펙트럼 모델은 의식진화에 있어서 고차단계로의 발달을 제시했기 때문에 신비사상과 영성 심리학을 포함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윌버의 심리학 모델은 진정한 영성은 전개인적인 깊이(심층)에서가 아니라 상위대역인 초개인적인 높이(고층)에서 발견된다고 제안했다.
1979년 전/초 오류의 확립과 자신의 깨달음을 기반으로, 윌버는 훨씬 더 강력한 자신의 발달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신성으로 복귀하는 것은 유아기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다. 신비사상은 자아에 봉사하는 퇴행이 아니라 자아를 초월해 가는 진화이다." 그 후 모든 저술에서 윌버는 초월적 자기는 역행적 낭만주의 또는 유아적 우주의식의 정반대 방향에 놓여 있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 "영은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일 뿐만 아니라 언제나 현존하는 진화의 기반"이라는 심오한 역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초기 스펙트럼 모델의 약점은 성인단계 이전의 전개인적인 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개인(페르소나)으로부터 초개인(합일의식)으로의 성장만을 다뤘다는 것이다. 이러한 약점은 Wilber/Phase 2의 새로운 스펙트럼 모델에서 "전개인적, 개인적, 초개인적"이라는 세 개의 범주로 확장되면서 완전히 해소되었다. 두 모델을 비교해 보면, Wilber/Phase 1에서 제시했던 개인적인 상태에서 초개인적인 상태로의 하강이 Wilber/Phase 2에서는 전개인적인 상태에서 개인적 상태를 거쳐 초개인적인 상태로의 상승으로 변화되고, 그 출발점은 합일의식이 아니라 몸으로, 이미 발달된 성격을 갖고 있는 성인이 아니라 자아와 성격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신생아로 변화되었다. 발달과정의 출발점으로 신체, 물질적 실재라는 기반을 채택함으로써 윌버는 전혀 새로운 발판으로 옮겨간 것이다.
스펙트럼 모델 내에 전개인적인 영역을 설정함에 따라, 윌버는 중간 영역인 개인적 수준의 자아에 더 큰 가치를 보여하게 된다. 자아는 '무경계'에서 제시한 것처럼 합일의식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합일의식과 신체라는 양극 사이의 중간 위치에 있는, 성장과정에서 중요한 지위를 점하게 된다. 자아는 유아에서 성인으로 발달해 가는 과정에서 영성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달성한 중요한 발걸음이 된다. 수정된 모델에서는 초기의 의식 스펙트럼에서와는 달리 신체는 자아보다 진정한 자기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점이 된다. 따라서 이제 의식 스펙트럼의 양극단에는 신체와 진정한 자기가 자리 잡게 된다. 이를 확장시켜 구체적으로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Ⅰ. 전개인적prepersonal 수준
1. 감각신체적sensoriphysical: 물질, 감각 및 지각 영역
2. 환상적-정서적phantasmic-emotional: 정서적, 성적 수준
3. 표상적 마음representational mind: 피아제의 전조작적 사고
Ⅱ. 개인적personal 수준
4. 규칙/역할 마음rule/role mind: 피아제의 구체 조작적 사고
5. 형식적-반성적 마음formal-reflexive mind: 피아제의 형식 조작적 사고
6. 비전논리vision-logic: 개인영역의 가장 통합된 구조
Ⅲ. 초개인적transpersonal 수준
7. 심령적psychic: 비전논리의 완성이자 비전적 통찰
8. 정묘精妙(혹은 미세微細)subtle: 원형, 플라톤의 형상, 초월적 통찰
9. 시원始原(혹은 원인元因)casual: 모든 구조의 비현시 근원 또는 초월적 기반: 공, 무형
10. 궁극적/비이원적ultimate/nondual: 절대, 하나이자 모든 것, 현시(형形), 비현시(무형無形)의 완전한 통합
개인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 다음 발달과정에서 두 개의 다른 방향, 즉 신체(와 정서)로 퇴행할 수도 있고 진정한 자기를 향해 진보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퇴행할 경우 보다 원시적인 측면에 접하게 되고, 진보해 갈 경우 신성한 본성과 만나게 된다. 윌버의 초기 스펙트럼 모델은 이러한 미묘한 차이점을 전달하는데 제한점이 있었다. 개인적(페르소나)인 상태를 출발점으로 삼을 경우 발달은 신체를 거쳐 진정한 자기로 가는 하나의 방향 밖에는 취할 수 없게 되며, 의식의 보다 원시적인 수준으로의 퇴행과 영적인 수준으로의 진보 사이의 이론적인 구분을 할 수 없게 된다. 『의식의 스펙트럼』과 『무경계』에서 윌버의 기본적인 관심은 어떻게 하면 심리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존재의 근원과 하나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실천적이고 치료적인 데 있었다면, 후기 저술에서 윌버가 보여 준 관심은 어떻게 해서 유아로부터 성인으로 그리고 성인에서 깨달은 존재로 성장해 가는가를 이론적으로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초기 모델과 수정된 모델 사이의 이와 같은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은 윌버의 후기 저술과 그의 통합적 비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사항이라 할 수 있다. 1995년부터 시작된 Wilber/Phase 4에서 윌버는 "역사는 최후의 심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전체성을 향해 가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윌버의 일상생활과 영적 수련에 관한 견해
끝으로, 윌버의 일상생활과 영적 수행에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담 하나를 소개하면서 마치고자 한다. 이 대담은 스코트 워렌Scott Warren(초개인 심리학 박사과정 대학원생)과 나눈 것으로 『One Taste』(1999) 6월 12일자에 실린 일기의 일부이다.
워렌: 평소의 하루 일과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윌버: 새벽 3-4시경에 일어나 한두 시간 명상을 한 다음, 5-6시경에 책상 앞에 앉습니다. 오후 2시 무렵까지 쉬지 않고 꽤 많은 작업을 합니다. 그런 다음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합니다. 그리곤 자질구레한 일을 끝내고, 5시경에 저녁을 먹습니다. 그리고 나선 대체로 영화를 보러 외출하거나, 집에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한 잔 하거나, 손님을 만나거나, 가벼운 책을 읽거나, 전화도 하고, 10시경에 잠자리에 듭니다. 누군가와 만날 때는 저녁을 함께 보내기도 합니다.
워렌: 2시까지 작업을 하신다고 했는데, 주로 어떤 작업인가요?
윌버: 그건 연구냐, 집필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연구할 때는 그저 예전 방식대로 숙제하듯이 하지요. 마냥 읽고, 읽고, 또 읽습니다. 하루에 보통 2권 내지 4권을 읽는 편인데, 필요한 곳은 메모해 가면서 아주 빠르게 읽어 나갑니다. 중요한 책을 발견하면, 읽는 속도를 늦추고 상세히 메모해 가면서 일주일 또는 그 이상에 걸쳐 읽습니다. 정말로 좋은 책은 2, 3회 반복해서 읽기도 합니다. 집필할 때는 조금 다릅니다. 매우 집중해서, 일종의 변경된 의식상태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처리합니다. 때로는 하루 15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집필할 때도 있습니다. 대단히 피곤한 일이지요. 육체적으로 탈진상태가 됩니다. 운동을 하는 주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워렌: 책 한 권을 집필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는지요?
윌버: 책을 쓰기 전에 1년여에 걸쳐 수 백 권의 책을 읽고 머리속에서 한 권의 책을 구성하는 것이 나의 일반적인 집필방식입니다. 책을 머리속에서 쓰는 거지요. 그런 다음 앉아서 컴퓨터에 입력하는데, 대체로 1, 2개월, 어떨 땐 3개월 정도 걸립니다.
워렌: 그렇다면 그 모든 책들이 몇 개월만에 집필된 것들인가요?
윌버: 그렇습니다. 『Sex, Ecology, Spirituality』은 예외입니다. 그 책을 집필하는 데는 3년이 걸렸습니다. 정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요. 하지만 실제로 쓰는 데 걸린 시간은 꽤 짧았습니다. 몇 개월 정도...
(중략)
워렌: 좋습니다. 몇 가지 이론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선 광범위한 비교比較문화적 문헌을 기초로 해서, 초개인적 또는 영적 발달을 심령心靈psychic(조대粗大한 각성상태), 정묘精妙subtle(혹은 미세微細, 정묘한 꿈의 상태), 시원始原causal(혹은 원인元因, 깊은 무형의 상태), 비이원非二元nondual(그 모든 상태의 통합)이라는 네 개의 상위 수준/영역으로 나누었습니다. 또한 각 영역은 네 개의 서로 다른 영적 체험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자연신비주의nature mysticism, 신성신비주의deity mysticism, 무형신비주의formless mysticism 그리고 비이원신비주의nondual mysticism를 만들어 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윌버: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론 옳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체계는 그것들 모두를 자각으로 불러들인다는 점을 중요시합니다. 근본적인 각성과 무선택의 자각은 생명의 모든 영역 - 깨어있는 상태, 꿈꾸는 상태, 잠자는 상태 - 에 침투해 있습니다. 어떤 영역에 있어서도 깨어난 일자Awakened One로 있다는 것은 대단히 평범한 것, 단지 그러한 것을 의미합니다.
워렌: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초개인transpersonal 치료사와 영적spiritual 치료사들은 선생님의 견해를 대단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란 선생님께서 제시한 상위단계를 암기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선이나 요가, 묵상기도와 같은 영적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이미 모든 결과를 밝혀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윌버: 그 사람들이 나 때문에 수행을 하지 않는다구요? 맙소사. 그건 내 의도와는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나는 이런 상위의 고차적 발달단계를 실제로 알고 이해하기 위해선 실천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 교시敎示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습니다. 혹시 농담하신 것 아닙니까?
워렌: 아닙니다. 그들은 선생님의 단계를 기억하는 것이 좋은 초개인 치료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윌버: 농담이 아니었군요. 그것은 마치 내가 바하마 섬의 정밀한 지도를 작성했으니, 이제 당신은 휴가기간에 실제로 바하마 섬에 갈 필요는 없고 그저 거실에 앉아 지도를 보면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끔찍하군요. 바하마 섬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 그곳 여행가이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워렌: 그들이 하는 일반적인 실천은 대체로 신체에 초점 맞추기bodily focusing나 감각적 인식sensory awareness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신체감각에 대한 자각을 영적 자각과 혼동하고 있는 듯합니다.
윌버: 그렇습니다. 그게 아주 일반적이지만, 잘못된 것입니다. 신체감각에 대한 각성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적 각성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비이원적 또는 영적인 각성은 '심신탈락', 즉 심신과 그것의 사고, 감정과의 배타적인 동일시를 멈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신과 사고, 감정은 여전히 존재하고 충실히 기능하지만, 그런 것에 더해서, 당신은 모든 현시된 것과의 확장된 정체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신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만으론 전혀 도달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워렌: 그 치료사들은 체험적으로 신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깨달음과 똑같은 상태를 가져다준다고 말합니다.
윌버: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명상은 흔히 호흡 따라가기, 이런 저런 신체감각이나 느낌에 초점을 맞추기 같은 신체적 각성과 더불어 시작하지만, 결코 그곳에만 머물지는 않습니다. 명상적 각성 - 공평하게 관조하는 능력 또는 무엇이 일어나든 순수한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 - 은 몇 분에서 몇 시간에 이르기까지 확장되고, 집중적인 훈련기간에는 하루 온종일 확장되기도 합니다. 일단 하루 종일 주시하는 것이 안정적으로 가능해지면, 그 거울같은 명상적 각성은 꿈꾸는 상태로 확장되고 일종의 명석몽明晳夢처럼 됩니다. 그런 다음 그곳에서 꿈 없는 깊은 잠으로 확장되고, 마침내 투리야turiya, 즉 고차의 순수한 주시, 깨어 있고, 꿈꾸고, 잠자는 세 가지 상태를 초월한 '제4의 상태'가 됩니다. 그런 다음 투리야티타turiyatita, 즉 '한 가지 맛One Taste' 또는 모든 가능한 상태를 초월하면서 포함하는, 또한 아무 것도 제한하지 않는 '영원한 각성', '항상적constant 의식', '근본적인 각성', '무선택의 자각'을 의미하는 '제4상태의 초월'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주시자'가 아니라, 근본적인 영spirit 자체인 비이원적 의식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이 깨어 있는 동안 체험적으로 신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발견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표적을 빗나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심층생태학deep ecology, 생태여성학ecofeminism, 신이교신앙neopaganism, 융Jung심리학, 생명의 직물web-of-life, 생태심리학 또는 신新패러다임 이론가들의 문장 속에서는 이와 같은 '항상적 의식' 같은 것은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든 - 나는 그들 연구의 팬입니다 - 그들은 '항상적 의식', '거울 같은 자각' 또는 언제나 존재하는 비이원적 '영'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워렌: 그것이 제가 하려던 다음 질문입니다. 영적 치료에 있어서 또다른 일반적인 접근은 일종의 시스템 이론적인 사고방식 또는 가이아Gaia사상, 생태심리학, 생명의 직물이론 등입니다. 이런 생각은 만일 당신이 전체론적으로 생각한다면 더 나은 것을 얻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이아 혹은 생명의 직물이 '영'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윌버: 그러나 아시다시피, 생명의 직물은 그저 하나의 개념, 단지 하나의 사상思想에 지나지 않습니다. 궁극의 실재는 그런 사상이 아니라 그런 사상의 주시자witness입니다. 이 주시자를 탐구해 보십시오. 누가 분석적 개념과 전체론적인 개념 양쪽 모두를 인식하는 것일까요? 지금 이 순간 당신 안의 누구 또는 무엇이 그 모든 이론을 알아차리는 것일까요? 아시다시피, 그 답은 이 주시자 쪽에 있습니다. 사고의 대상 쪽에 있지 않습니다. 사고 대상들이 옳은지 아닌지는 핵심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순수한 공空인 진정한 자기, 주시자입니다. 분석적 개념이 생겨나면, 우리는 그것을 주시합니다. 궁극의 실재는 옳든 그르든 개념 속에 있지 않고 주시자 안에 있습니다. 당신이 사고와 개념수준, 관념과 심상수준에서 작업하는 한,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워렌: 순수의식이란 순수한 공입니까?
윌버: 그렇습니다. 근원적인 의식은 무엇이라고 한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순수의식이란 순수한 공이라고 은유적으로 시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공이란 개념이 아니라 단순하고 직접적인 각성입니다. 자, 보세요. 지금 당신은 다양한 색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는 초록색이고, 저기 있는 나무는 붉으며, 하늘은 푸릅니다. 당신은 색을 볼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자각 그 자체는 무색無色입니다. 그것이 당신 눈의 투명한 각막과 같습니다. 만일 각막이 붉다면, 붉은 색을 볼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이 붉을 색을 볼 수 있는 것은 각막이 '붉음 없음' 또는 무색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똑같이 당신의 현재 의식이 색을 보는 것은 그 자체가 무색이기 때문입니다. 공간을 볼 수 있는 것은 당신의 현재 의식은 무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시간을 의식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의식은 무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형체를 보는 것은 의식이 무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기본적인 의식, 즉각적인 의식 - 의식의 대상이 아니라 - 그 자체, 주시하는 각성은 무색, 무형, 무공간, 무시간입니다. 바꿔 말하면, 당신의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각성은 한정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에는 형태, 색, 공간, 시간이 없습니다. 이 순간 당신의 의식은 순수한 공이며, 또한 우주전체가 생겨나는 공입니다. 이 순간 푸른 하늘이 당신의 의식 안에 존재합니다. 이 순간 붉은 대지가 당신의 의식 안에 존재합니다. 이 순간 저 나무의 형상이 당신의 의식 안에 존재합니다. 바로 이 순간 시간이 당신의 의식 안에서 흘러갑니다.
따라서 이 순간, 유형의 세계전체가 당신 자신의 무형의 의식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해, 공空과 형形은 둘이 아닙니다. 그 둘은 이 순간 속에서 한 가지 맛입니다. 또한 당신이 바로 그것이기도 합니다. 정말입니다. 공과 의식은 동일한 실재에 대한 두 개의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주전체가 순간순간 생겨나는 광대한 개방성openness과 자유입니다. 공이란 이 순간 당신 자신의 원초적인 자각입니다. 공이란 다른 이름으로 말하자면, 근원적인 영 그 자체입니다.
전혀 별개의 문제이지만, 현시된 세계란 실제로 어떤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상호침투하는 과정으로 서로 잘 짜여진 네트웍 또는 홀론holons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일종의 전체론적 모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델의 진위 - 현시된 세계의 진실 - 를 현시된 세계를 연구함으로써 확인합니다. 우리는 내면의 나 - 나 I - I (마하르쉬가 자각의 원천인 관조자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독특한 개념)를 탐구함으로써 영의 진실을 확인합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둘이 아니라는 것은 옳지만, 그 실재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객관적인 세계 주위를 내달리는 것으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표적을 빗나갈 것입니다.
워렌: 그렇다면 선생님께선 영적 치료사의 역할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윌버: 나 스스로는 꽤나 멋지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습니다(웃음). 물론 모두에게 흥미를 갖도록 할 수는 없겠지요. 의학에서는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GP)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족의family doctor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의학전반에 관해 훈련을 받지만 전문화된 의사는 아닙니다. 그들은 뇌수술을 할 수는 없습니다. 복잡하고 특이한 진단을 하거나, 연구실에서 연구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전문의를 알고 있고, 꼭 필요한 경우 당신에게 적합한 전문의를 소개하도록 훈련받습니다.
나는 영적 치료사도 일반의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의식 스펙트럼의 모든 수준, 즉 물질matter, 신체body, 마음mind(주술적magic, 신화적mythic, 합리적rational, 통합적-비조망적integral-aperspectival), 혼soul(심령psychic과 정묘subtle), 그리고 영spirit(시원causal과 비이원nondual)에 관해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친숙해야 합니다. 매 수준마다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유형의 병리현상과도 친숙해야 합니다. 신체감각에 초점 맞추기와 심리적 해석과 같은 일반적인 하위수준 기법을 훈련받아야 합니다. 페르소나, 그림자 그리고 자아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구체적인 상위의 고차적인 수행 또는 관조수행을 해야 합니다. 또한 상하위 할 것 없이 의식의 전 스펙트럼에서 발생하는 특정 병리에 초점을 맞추도록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다룰 수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전문가를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아마도 최상위 수준의 경우에는 선禪, 위파사나vipassana, 베단타, 초월명상TM, 기독교의 묵상기도, 수피의 지크르zikr, 다이아몬드Diamond 접근, 요가 등이 해당될테고, 하위수준에선 웨이트트레이닝, 에어로빅, 영양학적 상담, 롤핑, 바이오에너제틱스 등이 해당되겠지요. 중요한 것은 그들 스스로 뇌수술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일차적인 책임은 첫째, 내담자에게 일반적인 심리치료와 약간의 초개인 치료를 하는 것이고, 둘째, 만일 필요하다면 다른 전문의를 소개하는 것이고, 셋째는 내담자의 다양한 변형도구transformational tools 모두를 통합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모든 치료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현재, 너무나 많은 초개인 치료사와 영적 치료사들이 모든 치료를 자신들이 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담자를 위해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도 좋아할 것 같진 않지만, 이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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