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사리(佛齒舍利)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 Sri Dalada Maligawa - 성스러운 불치 사원
마하왐사 Mahāvaṃsa(=대사(大史)와 다타왐사Dāṭhavaṃsa(=Dhātuvansa)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다비 이후에 당시 제자인 케마Khema 존자가 부처님의 왼쪽 송곳니를 수습하여 인도 동부에 있던 칼링가 Kaliṅga의 브라마닷테 Brahmadatte왕에게 전해주었다. 왕은 치아사리를 단타푸라(현지명은 단타푸람Dantapuram)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치아사리를 소유한 사람이 국가통치의 신성한 권리를 가진다고 알려지게 되었고 칼링가의 구하시바Guhasiva 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치아사리(齒牙舍利)를 둘러싼 전쟁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영험이 있다는 소문으로 인해 칼링가는 수많은 분쟁을 겪어야 했다. 싱할라(=스리랑카)의 마하세나 왕도 많은 보물을 바치며 치아사리를 스리랑카에 양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던 중, 전쟁에서 불리함을 느낀 구하시바 왕이 이웃 나라로 시집간 공주 헤마말라Hemamala와 그의 남편인 단타Dantha에게 “치아사리를 싱할라의 마하세나 왕에게 전하여 여법히 모실 수 있도록하라”는 말과 함께 치아사리를 전해주고 죽음을 각오하며 전장으로 떠났다. 이들 부부는 머리카락에 치아사리를 숨겨서 길을 떠났고, 천신만고 끝에 싱할라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마하세나 왕은 죽고 그 아들인 스리 메가와르나 Keerthi Sri Meghavarna(= Kithsirimevan = Sirimeghavanna. 301~328) 왕이 즉위한 후였다. 스리 메가와르나 왕은 부왕의 대원(大願)이 성취된 것을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치아사리를 모실 사원 -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의 메가기리 위하라(현재의 이수루무니야)를 궁전 옆에 조성하고, 자신이 직접 불치를 안치(安置)하며 성대한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이후 치아사리는 싱할라 왕조가 수도(首都)를 옮길 때마다 함께 옮겨져 봉안됐으며 “치아사리가 있는 곳에 곧 왕이 있다”라는 왕권의 상징이 되었다. 아누라다푸라 왕국, 폴론나루와 왕국, 담바데니야 왕국, 감폴라 왕국, 코테 왕국 시대마다 당시의 군주들은 왕궁과 매우 가까운 곳에 치아 사리 사원을 건립하여 치아사리를 안치하였다.
치아사리를 모신 자가 싱할라의 지배자라는 민중의 인식은 캔디Kandy 왕조가 1815년 영국에 의해 막을 내린 이후에도 이어졌다. 영국의 식민통치가 시작됐지만 민중들은 영국을 지배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항쟁이 끊이지 않았다. 1818년 영국이 치아사리를 손에 넣은 후에야 싱할라의 새로운 지배자로서 실제적인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 은사스님과 은사스님의 도반스님들을 모시고 불치사를 방문했을 때
사리함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