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졸업식 노래’ / 임 병 호 논설위원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 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반세기 세월이 흘렀어도 가사가 잊혀지지 않는 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의 ‘졸업식 노래’다. 8·15 광복을 맞이했어도 우리 노래로 만든 졸업식 노래가 없었던 1946년 처음 불렸다. 교육당국이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 ~ 2003) 선생에게 급히 간청해 하루만에 지어졌다고 한다. 작곡자 정순철(1901 ~ ?) 선생은 6·25 때 납북됐다.
지금도 졸업식 때 부르는 이 노래 1절은 재학생, 2절은 졸업생, 3절은 합창한다. 요즘도 눈물을 흘리는 졸업생들이 있는지 궁금하지만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 갑니다’ 하고 노래를 부르다 졸업생들이 울고 교사들은 눈물을 훔쳤다. 강당에서 열리는 졸업식에 모든 학생들이 참석할 수 없어 재학생들은 반별로 10명씩 뽑혀 참석했는데 졸업식 반 대표로 뽑히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졸업식 노래’를 연습했다. 졸업식 날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라고 한 3절이 끝나면 박수소리는 졸업식장을 넘어 운동장으로 펴져 나갔다.
이렇게 다정다감했던 졸업식이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폭력적으로 변질돼 안타깝다. 졸업식 뒤풀이가 밀가루 세례와 교복 찢기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술에 취해 길거리를 활보하며 고성방가도 서슴지 않는다. 과거에도 스크럼을 짠 고교생들이 찢은 교모를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교복 잔등에 ‘축 졸업‘이라고 페인트로 낙서한 채 고함치듯 유행가를 부르며 거리를 누빈 일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요즘의 ‘알몸’ 뒤풀이' 등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행위다.
졸업식 진행도 문제가 없지 않다. 주인공인 대다수 졸업생들을 소외시킨 채 교장, 내빈, 몇몇 성적 우수학생 시상 등을 위주로 하는 졸업식은 다른 수 많은 졸업생에게 ‘우리는 들러리’라는 불만을 갖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위적인 졸업식도 많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올해 눈물겨운 정경이 펼쳐진 졸업식이 전국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수원정보과학고등학교의 경우 졸업생들이 부모들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사하며 발을 씻겨드리는 세족식을 가졌다. “생전 처음 부모님의 발을 씻겨 드리며 절 키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고 학생들은 눈물을 보였다.
화성 동화중학교는 졸업식에서 교사, 학부모들이 직접 붓글씨로 쓴 좌우명을 졸업생들에게 나눠 주었다. 졸업생들은 ‘초지일관' ‘호연지기’등 좌우명을 받아들고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되새겼다. 동화중 학생들은 졸업장 수여식이 끝난 뒤 담임교사의 영상편지, 반별 장기자랑 공연, 편지낭독 등으로 교사와 학부모들 간 감동의 자리를 마련했다.
충북 증평군 증평읍 형석고등학교는 졸업식 날 졸업생들이 담임교사를 가마에 태우고 졸업식장에 입장했다.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교사들도 흡족해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은평구 동명여고는 졸업생들이 한복을 입고 댕기를 드린 차림으로 교사와 부모들에게 큰절로 감사를 드렸다. 성년례를 겸해 열린 동명여고 졸업식은 잔칫날처럼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졸업식장을 가득 채웠다.
초·중 ·고등학교의 졸업식은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진출하는 졸업식이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학교 스스로가 졸업식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졸업식 노래’처럼 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졸업생들이 우리나라, 우리사회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졸업식 문화가 일신돼야 한다. ‘졸업식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