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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인천&시흥 93코스 역방향 제2부
소래습지생태공원남문-소래어시장-해오름광장-
새우타워-해넘이전망대-해넘이다리-배곧신도시-
한울공원-배곧생명공원-배곧한울공원해수체험장
20240724
1.코스 소개
1)코스개요
-이국적인 느낌이 풀씬 풍기는 습지공원과 과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소래포구를 지나는 역사, 문화, 생태 코스
-수도권에서 제일 가까운 바닷가 수산시장 소래포구 등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들을 잇는 코스
2)관광포인트
-해안 경비초소로 쓰이던 곳으로 산책로, 야자수, 조형물 등이 조성된 '배곧한울공원'
-갈대군락지와 습지가 어우러져 있는 '배곧생명공원'
-조선시대의 군사요충지였던 지역으로 현재 항구와 횟집, 관광지구가 조성된 '월곶포구'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니던 철교로 현재는 인도교로 활용되는 '소래철교'
-대규모 염전을 활용해 갯벌과 염생식물 등을 복원하고 생태교육관 등을 조성한 '소래습지생태공원'
-소래포구어시장에는 횟집과 수산물직판매장이 모여 있으며 가을마다 소래포구 축제가 열림
3)여행자 정보
-시점 : 시흥시 배곧동 307 배곧한울공원 해수체험장 북서측
교통편) 지하철4호선 오이도역에서 99-3번 버스 이용, 한울공원해수체험장 하차, 도보 200m
-종점 : 인천시 남동구 수산동 595-24 남동체육관 입구, 장수천2교 아래 다리 서측
교통편) 인천지하철 2호선 남동구청역 정류장에서 지선 순환56번 버스 이용, 남동체육관 하차, 도보 300m
-주요경로 : 해수체험장 2.5Km 배곧생명공원 6.2Km 월곶포구 4.2Km 소래습지생태공원 3.4Km 남동체육관 입구
-길이 12.1km, 소요시간 4시간, 난도 쉬움
2.소래포구와 늠내 배곧에서 배우다
제2부 : 소래습지 생태공원 정문을 나와 소래갯골 야외교실과 소래갯골 탐방데크 앞을 통과해 길을 따라오면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에 이른다. 이 지하통로를 소래습지 생태공원 남문이라 이르는 것 같다. 지하통로를 통하여 소래포구어시장 쪽으로 나와 뒤돌아보면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 상단에 소래습지 생태공원 표지판이 붙어 있고, 벽면에는 '수인선 소래철교', '소래염전', '소래포구의 형성과 소래어시장' 등 소래포구 역사를 설명하는 게시판이 붙어 있다. 안내문에는 일제시대인 1930년대로부터 지금까지의 이 지역민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하통로를 나오면 소래포구 앞 거리가 복잡하다. 앞에서는 국도 제77호선 '소래로'의 소래대교가 머리 위로 지나가고, 그 뒤에는 소래대교 아래 원형교차로에서 시작하여 미추홀구 숭의동 능안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아암대로(兒岩大路)가 벋어 있다. 어수선한 풍경 속으로 들어가 소래대교 아래의 난전시장을 통과하여 아암대로 남쪽 소래포구 해안에 자리한 소래포구어시장 앞을 지나간다. 아직 아침인지라 상인들만 부산하게 움직이고 손님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소래포구 출입로는 소래포구항 공사로 인하여 출입이 통제되어 있고, 상인들과 공사 인부들이 부산할 뿐이다. 소래포구어시장 앞을 통과하여 아암대로 남쪽 보도를 따라가면 끝에 소래포구전통어시장 출입로가 나온다. 소래포구 시장들이 몇 곳에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음을 알겠다. 소래포구를 중심으로 한 상권은 난전시장, 소래포구어시장, 소래포구전통어시장, 또 아암대로 북쪽에 생겨난 소래포구종합어시장 등 네 곳이라는 것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소래포구전통어시장 오른쪽 골목은 소래철교 출입로이며, 이 길이 원래 서해랑길 93코스 탐방로인데, 시흥시 월곶지구 해안 공사 때문에 93코스 탐방로는 소래철교를 건너지 못하고 인천시 논현동 해안길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소래철교 아래 지금은 섬이 아니지만 예전에는 섬이었던 장도에 개항기인 조선 고종 때 일본이 서해안을 측량하는 것을 보고 포대를 설치했다는 장도포대지가 있는데, 들르지 않고 그냥 통과한다. 장대포대지 북쪽에 소래역사관이 있으며, 현재 그 앞에는 수인선을 운행하던 협궤증기기관차(혀기-7형) 보존처리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가림막이 둘러처져 있다.
소래역사관 남쪽 도로는 아암대로, 그 서쪽 도로는 소래역로이다. 소래역사관은 아암대로와 소래역로가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소래역로 서쪽에 수도권전철 수인분당선이 북쪽 소래포구역을 향하여 지나간다. 수인분당선은 옛 수인선을 대체하여 생겨나 서울까지 연장한 전철인데, 소래포구역은 옛 소래역에서 떨어진 곳에 새로이 건설하였다. 그래서 도로명을 소래포구역로가 아니라 옛 소래역을 기리는 소래역로라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래역사관 바로 뒤에 소래포구종합어시장 건물이 자리한다.
소래포구에 와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전혀 낯설다. 소래포구는 소래포구대로 낯설고, 소래포구 논현동 택지 개발에 의한 논현신도시의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아파트 빌딩숲에도 낯설게 기가 질린다. 그러나 그 앞에 넓게 조성된 해오름광장의 꽃게 조각상이 탐방객의 마음을 풀어준다. 해오름광장에는 여러 조형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황금 꽃게상, 새우 모양 음수대, 태양광 파고라 그늘막, 광철선 선박 등 조형물을 살피며 새우타워전망대 방향으로 내려간다. 해안길은 단순하게 고적하다. 이 고적한 단순함이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해안길에 조성된 바람개비가 길게 줄지어서 있다. 바람개비는 바람을 따라 돌아간다. 탐방객 또한 세월의 바람을 따라 돌아간다. 탐방객은 바람개비가 돌아가듯 시간의 바람을 따라 걸어간다. 이도 단순하다. 해안 남과 북에서 시흥시 월곶신도시와 인천시 논현신도시의 마천루(摩天樓) 고층아파트숲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서있다. 이 또한 단순하다. 단순하게 솟아서 단순한 풍경을 조망하며 단순한 문명의 편리함을 구가하는 단순함의 극치가 소래포구까지 올라오는 서해 바다의 풍경을 이룬다.
새우타워 앞에서 전망대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을 버린다. 욕망을 비우고 새우타워를 지나니 소낙비가 쏟아진다. 해안길에, 바다에, 마천루 아파트빌딩숲에, 소낙비가 마구 퍼붓는다. 소낙비는 군자만의 모든 풍경을 순식간에 단순화한다. 비 내리기 전 단순함의 극치를 느꼈는데, 소낙비 퍼붓는 풍경은 단순함의 절대처럼 보인다. 욕망과 복잡함과 갈등을 순식간에 무화하여 단순화하는 소낙비의 힘, 이 절대적 단순함 속에서 길을 걷는 탐방자 또한 절대적 단순자가 되었다.
해넘이전망대 광장에서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과 작별한다. 이별의 작별이 아니라 더 깊은 사랑을 위한 작별이다. 해넘이 뒤 해돋움처럼 찬란한 재회의 영광을 위하여 너와 작별한다. 해넘이다리를 건넌다. '해넘이다리'는 지명 속에 이미 넘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인천시 논현동에서 시흥시 배곧동으로 넘어간다. 해넘이다리를 건너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논현신도시에서 시흥시 배곧동 배곧신도로 넘어갔다. 배곧이 무슨 뜻인가?
이 지역은 원래 군자염전을 매립한 군자매립지이다. 이 매립지를 1985년부터 1996년까지 (주)한화에서 화약성능 시험장으로 매립하여 사용하였는데, 2006년 시흥시에서 토지를 매입하여 신도시로 개발한 뒤, 이곳의 지명을 2012년 10월 '배곧신도시'라고 명명했다. 배곧? 이 지명은 주시경(周時經) 선생이 1914년사용한 ‘한글 배곧’, 즉 '한글 배우는 곧'에서 따왔다고 한다. 배우는 곧, 그래서 '배곧'이다. 곳의 옛말은 '곧'이다. 배우는 곳인 '배곧' 지명에는 군자매립지라는 옛 지명의 군자(君子)라는 뜻을 살려, 학문과 지성이 겸비된 글로벌 교육 도시를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배곧신도시는 배우는 도시이다. 배넘이다리 남단에서부터 서해랑길 93코스 시작지점인 배곧한울공원 해수체험장까지는 한울공원으로 명명되어 있다. 이 한울공원 공원길을 따라가며 배워야 할 것이 아득하다. 이곳은 (주)한화에서 화약성능 시험장으로 사용했던 곳, 그래서 해안에 초소들이 늘어서 있다. 이 초소들을 새롭게 꾸며서 초소공원을 조성하였다. 놀이터와 쉼터, 위인 등 초소공원으로 새롭게 꾸며진 초소공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곳은 생명체들을 살상하는 화약성능 시험장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생명체들이 평화로운 공생을 꿈꾸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가꾸어야 한다. 한울생명공원이 이러한 꿈을 대표하는 공간이며, 배곳의 다른 모든 공간에서 이 지역민들만이 아니라 이곳을 지나가거나 탐방하는 모든 사람들이 생명 존중과 문화 창조 사상을 꿈꿔야 할 것이다. 이러한 꿈을 배곧 위인공원 세종대왕 초소에용비어천가 2장을 응용하여 표현했다. '뿌리 깊은 나무 늠내, 샘이 기픈 물 배곧'. 늠내는 시흥시의 옛 지명으로, ‘뻗어 나가는 땅’, ‘넓은 땅’의 의미라고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기 때문에 꽃이 좋고 열매가 많습니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기 때문에 내를 이루어 바다에 이릅니다." (용비어천가 현대어 풀이) 시흥과 배곧의 무궁한 문화 창조와 번영을 기원한다.
시흥시 대표 캐릭터가 해로와 토로임을 어린이놀이터 초소에서 배웠다. 바다거북이 해로와 육지거북이 토로는 아름다운 시흥 바다와 풍요로운 시흥 땅에서 태어난 거북이를 토대로 제작됐으며, 해로 머리에는 불가사리, 토로 머리에는 연꽃이 앉아 있는 캐릭터이다. 또한 위인초소를 통하여 베토벤, 이순신 장군, 제임스 와트, 장영실, 라이트 형제, 세종대왕, 헬렌 켈러 등 위인들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되새기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가슴이 출렁인다. 삶이란 죽음의 그 순간까지 배워야 하는 것, 실천하여야 한다. 배곧에서 큰 소리가 울린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2.3km
전체 소요 시간 : 3시간 21분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를 통하여 '소래로'로 나간다. 이 지하통로를 소래습지 생태공원 남문이라 이른다.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 서쪽 출입구에 '소래포구 역사' 설명안내판이 붙어 있다.
1)수인선 소래철교 : 수인선(水仁線)은 1935년 9월 23일 민간철도회사인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총독부로부터 인천~수원 간 철도 부설 인가를 얻고, 1936년 6월 1일부터 본격적인 부설공사를 시작하였다. 출연장 52km, 선로너비 762mm 협궤선인 수인선은 17개의 정차장과 임시정류장을 설치하고 인천~수원 간을 1시간 40분에 연결하였는데, 총 17개소의 정차장 가운데 10개소는 정식 정차장으로 역사(驛舍)를 두고 역무원이 배치되었지만, 7개소의 임시 정류장은 역사와 역무원이 없었다. 수인선은 초창기부터 '꼬마기차' 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소래, 남동, 군자 등지에서 생산한 소금을 인천으로 실어 나르는 한편 경기 각지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송하기 위해 이미 건설되었던 수려선(수원~여주 간 73.4km)을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등 식민지 경제침탈을 수행하는 데 목적을 두었던 노선이었다. 광복 직후에는 사철의 국유화 조치에 따라 철도청이 수인선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업구조 개편과 도로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쇠퇴일로를 걷게 되었다. 1973년 7월 13일에는 수인선 구간 중 남인천~송도 구간 5km가 인천시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되어 송도~수원간 46.3km로 영업구간이 축소되었다. 1977년 국도 42호선의 포장을 계기로 화물 수송이 급감하자 1977년 9월 1일부터는 객차와 화차가 혼합된 증기기관차를 여객 수송만을 전담하는 디젤기관차로 교체하면서 화물수송을 전면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수인선은 주변 경작 농민이나 어민, 통학생 등의 제한적인 여객 수송 기능을 담당하며 겨우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1980년대 들어 수도권 개발로 인해 인전~안산~수원과의 연계보다 서울과의 연계성이 높아지면서 여객마저 급감하여 수인선은 적자투성이의 '애물단지'로 전락하였다. 이에 따라 철도청에서는 송도~한양대앞 간 26.9km를 1994년 9월 1일자로 폐지하고, 이듬해인 1995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한양대앞~수원 간 20.2km의 운행을 중단함으로써 1937년 첫 운행 이후 58년4개월 만에 기나긴 여정을 마감했다.
2)소래염전 : 소래염전의 1구와 2구는 1934년 6월에, 3구는 1935년 1월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일찍이 주안, 소래, 남동 등 염전지대에서 천일염이 성행하여 한국 최초로 천일제염을 개척한 선구지이면서 한때 한국 최대의 소공 생산지이기도 하였다. 소래염전은 일제 강점기부터 염전으로 개발되어 소래 갯벌로 들어오는 바닷물을 이용하여 소금을 생산하였고, 이 소금은 소래포구를 통하여 수인선 협궤열차나 배로 인천항으로 옮겨져 일본으로 보내졌다. 소래염전의 소금은 생필품만이 아니라 일제의 전쟁을 위한 화악학 제조용 군수품으로도 쓰였다.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며 주안, 남동, 군자염전이 그 자리를 공업용지나 주택용지로 내주었지만, 소래염전은 1996년 7월 31일까지 소금을 생산하였다. 이후 소래염전 1구는 과거의 명성을 잃어 폐허로 남아 있다가 2009년에 소래습지생태공원으로 조성되었다.
3)소래포구의 형성과 소래어시장 : 대한민국 포구의 대명사라 할 만큼 널리 알려진 인천의 명소 소래포구는 1934년 전국 제일의 소래염전이 들어서고, 1937년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가 다니는 수인선이 개통됨에 따라 발전된 곳이다. 폭 100m 남짓한 갯골을 따라 형성된 포구로 썰물 때는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고 밀물 때면 물길을 따라 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천연포구이다. 60년대 초 5~6척의 돛단배로 시작된 조그마한 어촌인 소래마을이 이젠 도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명물로 자리하는 큰 어시장으로 발전한 데는 태풍과 해난사고가 거의 없었던 지형적인 특성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포구가 활성화된 이후 소규모의 어업이 이루어졌으며, 동력선의 보편화로 인해 어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소래포구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특산물로는 새우, 꽃게, 젓갈 등이 유명하고, 매년 10월 소래포구축제를 개최하는 등 현재는 연평균 300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관광명소로 발돋움하였다.
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 서쪽 출입구 상단에 소래습지 생태공원 표지판, 오른쪽 벽에 '소래포구 역사' 설명안내판이 붙어 있다.
영동고속도로 서쪽에 '소래로'가 평행으로 달린다. 서해랑길은 소래대교 아래를 통과하여 소래포구어시장으로 이어간다.
왼쪽에는 영동고속도로의 소래교, 서해랑길은 오른쪽 국도 제 77호선 '소래로'의 소래대교 아래를 통과한다.
국도 제77호선 '소래로'의 소래대교 아래를 통과하여 소래포구어시장 앞 아암대로(兒岩大路)로 나간다.
소래포구어시장 앞으로 나와서, 아래로 통과한 국도 제77호선 '소래로'의 소래대교를 뒤돌아본다.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어시장이 소래포구 북쪽, 아암대로 남쪽에 길게 이어진다.
소래포구항 공사로 인하여 난전시장이 소래대교 아래쪽으로 옮겨졌음을 알리는 교통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서해랑길은 아암대로 남쪽 보도를 따라간다. "아암대로(兒岩大路)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 소래대교 북단과 미추홀구 숭의동 능안삼거리를 잇는 인천광역시 도로이다."(위키백과)
아암대로 남쪽 보도를 따라오면 소래포구어시장 끝에 소래포구 전통어시장 출입로, 그 오른쪽에 옛 수인선 협궤철도의 소래철교 출입로가 있다. 수인선 협궤철도는 1995년 폐선되었으며 소래철교는 현재 인도교로 사용되고 있다.
왼쪽 길은 옛 소래철교 출입로, 오른쪽 구릉 옆은 장대포대지 입구, 맨 오른쪽 위는 수인분당선 소래철교이다. 장도포대지(獐島砲臺址)는 조선시대의 포대가 있던 곳으로, 2001년 4월 2일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아암대로 소래역사관 버스정류소 북쪽의 소래역사관 앞에 협궤증기기관차(혀기-7형) 보존처리공사 사업 가림막이 쳐져 있다.
소래역사관(蘇萊歷史館)은 소래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자 2012년 6월에 개관한 인천광역시의 박물관이라고 한다.
소래·논현 도시개발사업의 추진과 함께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 등으로 소래지역의 역사와 전통적인 문화가 잊혀져 감에 따라 소래역사관을 건립하여 소래지역의 역사를 보존하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추억해 보고자 합니다. -소래어촌의 생활풍습, 어구 등 어촌의 전통 및 생활사 보존. -소래염전의 유래, 소금생산과정 및 도구 등 보존. -소래역사(驛舍), 수인선 협궤열차 등 추억과 낭만을 재현 : 소래역사관 웹사이트 http://m.namdongcmc.co.kr
왼쪽에 수인분당선이 지나며, 소래역로 끝에 소래포구역이 있다. 오른쪽 소래역사관 뒤에 소래포구종합어시장이 보인다.
아암대로가 오른쪽으로 지나고 논현신도시 고층아파트들이 줄지어 솟아있다. 왼쪽은 해오름광장이다.
해오름광장에 황금 꽃게 조형물, 그 오른쪽에 새우 모양의 음수대와 태양광 그늘막, 중앙 뒤에 새우타워 전망대가 보인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대표적 어시장인 소래포구를 따라 조성된 해오름광장은 수변광장이라고도 불린다. 포구를 따라 길게 조성된 광장에 있는 새우타워 전망대에서는 포구 전체를 조망할 수 있으며, 황금 꽃게와 선장의 키, I♡SORAE 조형물 등은 포토 스폿으로 인기 있다. 광장에서는 매년 10월경 ‘소래포구축제’가 열리고 있다. 여름에는 물놀이장, 겨울에는 얼음썰매장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지하철 수인 분당선 소래포구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이내 거리에 있다. - 인천투어
해오름광장에 소래포구의 대표 특산물인 꽃게 조형물, 그 오른쪽에 새우 모양의 음수대와 태양광 그늘막 파고라가 조성되어 있다.바다 건너편은 시흥시 월곶동 신도시이며 월곶초등학교와 월곶중학교가 가늠된다.
소래포구 어시장의 대표 수산물인 꽃게를 형상화한 꽃게상은 높이 3.5m, 폭 4.5m 크기의 황동 재질로 만들어졌다. 태양광으로 충전하는 파고라는 야간에 LED 별자리가 나타나고, 사람이 앉으면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 35m 길이의 태양광 그늘막에는 꽃게·낙지·소라 등 소래포구 대표 수산물 7종의 LED 조명이 설치됐다. - 경인일보 2013.11.20.
바로 앞에 수인분당선 소래철교, 건너편에 장도포대지, 그 뒤에 옛 수인선 협궤철도의 소래철교가 있다.
장도포대지(獐島砲臺址)는 조선 고종 16년(1879) 일본측이 서해안을 측량하면서 개항지를 탐색하는 것을 보고 인천을 개항 후보지로 요구할 것을 대비하여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가 인천과 부평 연안에 화도진(花島鎭)을 설치하고 포대를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서 1999년 "화도진도" 원본 확인을 통해 이곳에 3혈(穴)의 포대를 설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는 포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문헌에는 포좌 3기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수인선 건설 당시 일제에 의해 소실되었으나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원을 보존하고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자 인천광역시 및 남동구에서 2006년에 복원 및 관리하고 있다. 2001년 4월 2일 인천광역시의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었다. 화도진지(花島鎭址)는 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에 있는 화도진(花島鎭)이 있던 터이다. 조선 후기 자주 나타나는 서구의 함선을 감시하기 위해 군대가 주둔하던 곳이다. 1990년 11월 9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었다. - 위키백과
황금꽃게 조형물 뒤에서 조형물을 바라보았다. 앞쪽에 수도권전철 수인분당선 소래철교가 지난다.
꽃게상 뒤에서 조망한다. 왼쪽 앞에 새우 모양의 음수대, 그 왼쪽에 태양광 그늘막, 건너편에 에코메트로12단지가 솟아 있다.
태양광 그늘막과 그 오른쪽의 배 조형물을 지나 해안길을 따라간다. 바다 건너 왼쪽은 시흥시 월곶신도시이다.
앞쪽에 수도권전철 수인분당선 소래철교, 그 뒤에 지금은 인도교로 사용되는 옛 수인선 소래철교, 그 뒤에 국도 제77호선 소래로의 소래대교와 영동고속도로의 소래교 등 4개의 다리가 소래포구를 건너고 있다. 오른쪽에 옛 월곶포구가 있었다.
소래철교는 1937년 인천 논현동과 시흥 월곶동에 걸쳐 있는 수인선 철교로 설치되었다. 소래 인근의 염전과 갯벌에서 생산되는 소금과 어패류 등의 실어 나를 목적으로 수원~인천을 잇는 철도가 건설되면서 소래철교가 놓이게 됐다. 원래 이름은 ‘경동철교’였으나 흔히 ‘소래철교’라 불렸다. 협궤 열차가 다니는 철교로 높이 10m, 폭 1.2m, 길이 126.5m 규모로 설치됐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소래철교를 이용해 피난을 떠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소래철교 위로 사람이 다니는 것을 금지했지만 사실상 인도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경제발전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수인선 열차 운행 횟수가 줄어들었고, 결국 1994년 열차가 다니지 않게 되었다. 1995년 협궤 열차가 폐선이 되면서 선로를 없애고 바닥과 난간을 설치해 인도교로 재탄생했다. 소래포구가 관광지로 유명해지면서 소래철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소래포구를 찾는 관광객이 꼭 찾는 명소가 됐다. 옛 소래철교가 소래와 월곶 사람들의 통행로로 쓰였다면, 그 옆으로 새로 놓인 소래철교는 수인선 광역철도가 오가고 있다. - 인천투어
해안길에 바람개비들이 돌아가고, 그 뒤에 소래포구의 대표 특산물인 새우를 조형화한 새우타워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새우타워 전망대에 올라 보아야 하는데, 오르지 않고 그대로 해안길을 따라간다.
새우타워 전망대는 높이 21m, 너비 8.4m 규모의 전망대로 외관의 모습이 새우를 닮았다. 새우타워가 들어선 옛 5부두는 배가 정박하지 않아 방치된 상태였다. 2020년 11월 12일 준공식을 열고 전망대가 개장하면서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늘어나고 있다. 새우는 소래포구의 대표 특산품으로 새우타워는 새우 머리 부분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는데 긴 수염 두 가닥이 휘어진 부분까지 그대로 살렸다. 멀리서 보아도 시선을 잡아 끄는데 이제는 소래포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다. 탁 트인 새우타워 3층 전망대에서 서면 시원스레 펼쳐진 소래 앞바다를 만끽할 수 있다. 야간에는 7가지 색의 LED 조명이 은은하게 빛을 내며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한다. 소래포구를 물들이는 낙조 시간대 방문해도 좋다. - 인천투워
군자만 북쪽 해안길을 따라 해넘이다리로 이어간다. 해넘이다리 뒤의 다리는 군자대교이다.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뒤돌아서서 소래포구 해안과 오른쪽의 시흥시 월곶동(月串洞)을 바라본다.
시흥시 월곶동은 조선시대 안산군 마유면 월동리와 월서리였다가 1789년(정조 13)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월곶리로 나온다. 대한제국기에는 ‘월동리'와 ‘월서리'로 일시 분리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2년 2월 5일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로 안산군 내 동·리의 구역과 명칭을 변경할 때 월곶리로 합쳐졌다. 그 뒤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1914년 3월 1일을 기해 안산군이 시흥군과 수원군으로 분리 통합될 때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으며, 같은 해 3월 13일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3호에 따라 옛 안산군의 마유면, 대월면, 와리면을 합쳐 군자면을 설치함에 따라 시흥군 군자면에 속하게 되었다. 1989년 1월 1일 시흥군이 폐지되고 소래읍, 군자면, 수암면을 합쳐 시흥시로 승격되자 시흥시 월곶동이 되었다. 당시 행정동은 거모동이었으나, 1994년 6월 시흥시 조례 제374호에 의해 행정동 명칭이 군자동으로 변경되어 군자동에 속하게 되었다. 인구 증가로 2014년 3월 1일에 행정동인 군자동에서 분리되어 법정동이면서 행정동이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시흥시 월곶동 매립지에 월곶신도시가 조성되었으며, 그 오른쪽 해안을 새롭게 월곶포구라고 이른다.
월곶동은 시흥시 서남부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따로 관할하는 법정동은 없다. 월곶동은 조선시대 수군(水軍) 만호(萬戶)가 설치될 만큼 군사상 중요한 곳이어서 월곶진(月串鎭)이 있었는데, 진 이름에서 마을 이름을 칭한 것으로 보인다. 월곶은 마을의 형세가 육지에서 바다로 내민 모습이 마치 반달 같아서 얻은 이름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월곶 갯골 왼쪽에 시흥시 월곶동 월곶포구와 월곶신도시, 오른쪽은 시흥시 배곧동 배곧신도시 지역이다.
시흥시 월곶동은 본향산을 중심으로 이어진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을 사이로 작은 하천이 흐르는 농경지와 염전이 펼쳐져 있던 자연 마을과 해안을 매립하여 새롭게 형성된 해안 마을로 나뉜다. 시흥시 중심부에서 서남쪽에 자리하며, 북쪽으로는 방산동과 포동, 동쪽으로는 장곡동, 남쪽으로는 정왕동과 거모동에 접해 있다.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영동고속도로에 이어 평택시흥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자연 마을 통심이와 월동의 마을 모습이 변하였고 주변 마을의 세대 규모는 작아졌다. 해안을 매립하여 형성된 신도시에는 수인선이 지난다. 남아 있는 농경지를 이용한 논농사와 임대형 공장들이 늘어나는 자연 마을과 어촌 관광단지 개발이 한창인 신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월곶 해안가에는 횟집을 비롯한 식당들이 즐비하며 해안 경관을 자원으로 하여 관광화를 추진하고 있다. 월곶초등학교, 월포초등학교, 월곶중학교가 있으며 영동고속도로, 제3경인고속화도로, 평택시흥고속도로가 관통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군자만 북쪽 매립지에 배곧신도시가 조성되어 있으며, 오른쪽에 해넘이다리가 보인다.
해넘이다리는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논현신도시와 시흥시 배곧동 배곧신도시를 이어준다.
해넘이전망대 앞 광장에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해안산책로를 따라 에코메트로12단지에서 9단지까지 걸어왔다.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군자만 북쪽 해안에 소래해넘이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논현신도시와 시흥시 배곧동 배곧신도시를 잇는 군자만의 해넘이다리를 건너 배곧신도시로 넘어간다. 해넘이다리의 길이는 315m, 폭은 6.5m라고 한다.
중앙 맨 끝에 소래포구, 왼쪽은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논현신도시의 에코메트로 한화꿈에그린 고층아파트, 오른쪽은 시흥시 월곶동 군자만 매립지에 조성된 월곶신도시 고층아파트들이 솟아 있다.
왼쪽은 시흥시 월곶동 매립지에 조성된 월곶신도시, 월곶포구 오른쪽은 시흥시 배곧동 배곧신도시이다.
해넘이다리를 건너, 맞은편의 군자만 매립지에 조성된 시흥시 배곧동 배곧신도시로 넘어간다.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소래해넘이전망대 뒤에 에코메트로9단지 한화꿈에그린 고층아파트가 솟아 있으며 왼쪽 뒤에 제3경인고속화도로의 군자대교가 보인다.
제3경인고속화도로의 군자대교는 시흥시 정왕동에서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으로 이어진다.
제3경인고속화도로는 2010년 개통한 경기도의 지방도로 노선 번호는 330번이다. 시흥시 정왕동, 월곶동, 장곡동, 장현동, 하중동, 하상동, 금이동, 논곡동, 목감동을 지난다. 지방도지만 자동차 전용도로로 건설되었으며 민간 투자 사업으로 건설되었다. 도로 설치물로는 목감나들목[IC], 도리분기점, 도리터널, 연성나들목, 물왕요금소, 월곶분기점, 정왕나들목, 군자대교, 고잔영업소 등이 있다. 제3경인고속화도로는 고속도로가 아닌 경기도가 주체인 지방도이며 민자(民資) 사업자인 제3경인고속도로주식회사가 30년간 운영한다. 도로 구간이 서울을 거치지는 않으나, 기존 경인고속도로 및 제2경인고속도로를 대체한다는 의미로 ‘제3경인고속화도로’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제3경인고속화도로는 시흥시 목감동과 인천광역시 송도 신도시를 잇는 도로로 총연장 14.3㎞, 시흥시 구간은 13.2㎞이다. 폭 23~30m의 왕복 4~6차선으로 민간 자본과 경기도 도비(道費) 등이 투입되어 완공되었다. 통행료는 전 구간 유료이며 지방도로 건설되어 제한 최고 속도는 90㎞/h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해넘이다리를 건너 해넘이다리 북쪽 출입구로 내려가 배곧신도시 해안길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시흥시 군자만 매립지에 시흥시 배곧신도시가 조성되었다.시흥시 정왕동 일대 군자 매립지에 조성된 곳으로 서울대학교 시흥스마트캠퍼스와 교육·의료 클러스터를 부각시키는 측면에서 배곧 신도시라는 명칭을 선정하였다. 이 명칭은 1914년 주시경이 조선어강습원의 명칭을 ‘한글 배곧’이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군자(君子)라는 한문 이름과 어울리는 이름으로 학문과 지성이 겸비된 글로벌 교육 도시를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해넘이다리를 건너서 배곧신도시 배곧한울공원으로 내려왔다. 서해랑길은 배곧신도시 해안에 조성된 한울공원의 공원길을 계속 따라서 배곧한울공원 해수체험장까지 이어간다.
원래 배곧신도시의 자리에는 군자매립지가 있었으며 1985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화약주식회사[1993년 (주)한화로 상호 변경]에서 화약 성능 시험장으로 매립하여 사용하였다. 2006년 시흥시에서 토지를 매입하여 군자지구 개발을 통해 시가지를 연결하고자 신도시로 개발하기로 하였다. 2012년 10월 13일 배곧신도시 명명식과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며, 2만 5000여 세대에 인구 5만 6000여 명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추진 과정을 보면 2005년 ‘군자 매립지 개발 사업 타당성 조사 및 기본 계획 구상 용역’ 결과를 토대로 2007년부터 간척 사업을 시작하였다. 2012년 간척을 마무리하고 택지 지구 사업이 시작되었는데, 2000년대 이후 추진되는 신도시 사업 중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사업 기간은 2018년까지이나 좀 더 연장될 예정이다. 광역 교통망으로 제3경인고속화도로 정왕 나들목[IC]이 배곧신도시 북부를 지나 배곧신도시와 인천광역시와의 접근성을 강화하여 준다. 배곧신도시와 시흥시 내부를 연결하는 교통망으로는 배곧1로, 배곧2로, 배곧3로, 배곧4로가 있다. 이 도로들은 모두 서해안로와 접한다. 철도교통으로는 수도권전철 수인선 달월역이 2014년 개통하였으나 국도제77호선[서해안로]으로 가로막혀 실질적으로 이용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오이도역이나 월곶역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현재 위치인 맨 왼쪽 해넘이다리 아래에서 맨 오른쪽 해수체험장까지 한울공원 공원길을 따라간다.
배곧한울공원은 해수체험장까지 조성되어 있기에, 서해랑길 93코스 시점인 해수체험장까지 해안의 공원길을 따라간다.
시흥의 대표 캐릭터 해로와 토로가 어린이놀이터에 조성되어 있다. 바다거북이 해로와 육지거북이 토로는 아름다운 시흥 바다와 풍요로운 시흥 땅에서 태어난 거북이를 토대로 제작됐으며, 해로 머리에는 불가사리, 토로 머리에는 연꽃이 앉아 있다. 오른쪽에 해넘이다리가 보이며 건너편에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논현신도시 에코메트로 한화꿈에그린 고층아파트가 솟아 있다.
배곧신도시 한울공원과 서해 바다 사이는 조류서식처이므로 공원 밖 해안 진입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해설내용 : 이곳은 서해바다와 인접한 조류서식처로서 각종 조류(철새 포함) 및 소생물들이 쉬어가고 살아가는 생태적인 공간입니다. 배곧신도시 조성 당시 기존 토사를 이용하여 부지를 조성하였으며 바닷가 지역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멀리서 관찰하시고 조류 및 소생물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진입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요시설 및 수종 면적 : 7,949m², 수종 : 갈대, 수크령, 영생식물(나문재, 해홍나물, 칠면초), 시설물 : 돌무더기(2개소), 솟대(4개소 77ea), 고사목 놓기(4개소)
조류서식지에 나무솟대들이 조성되어 있다. 맨 오른쪽에 군자대교, 건너편 맨 오른쪽은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중앙 뒤는 남동구 고잔동, 맨 왼쪽 뒤는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도시라고 가늠한다.
왼쪽은 군자만 배곧신도시 해안이며, 건너편 끝에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인천신항 컨테이너터미널이 있다.
건너편 중앙에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도시, 왼쪽 끝에 인천신항 컨테이너터미널이 가늠된다.
오른쪽에 군자대교, 건너편 왼쪽은 남동구 고잔동, 건너편 해안의 도로는 아암대로, 그 뒤는 남동구 논현동 지역이다.
제3경인고속화도로 군자대교가 서해 바다를 가르고 건너편 해안에 논현신도시 고층아파트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앞을 아암대로가 지난다. 군자대교 뒤쪽에 해넘이다리와 소래해넘이전망대가 보인다.
서해랑길 93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하고 있기에 배곧 한울공원도 역방향으로 탐방한다. 이순신 장군 공원은 배곧 위인공원 5번째 순서이다.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무릇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조선의 장수. 왜적의 침략에 맞서 수많은 전투와 해전을 승리로 이끈 애국과 충절의 장군이다. 조선을 구해 낸 영웅. 충무공 이순신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이끈 장군이다. 강인하고 올곧은 성격과 정직하고 바른 품성을 지녔던 장군은 그 성격 때문에 모진 고초를 많이 겪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샘과 모함에 벼슬을 잃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다. 결국 모함하던 사람들이 쫓겨난 후 다시 조선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최고의 지위에 올라 왜적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하며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었다. 마지막 해전에서 목숨을 잃는 순간까시도 장군은 전투를 걱정해 자신의 죽음을 숨겼다. 죽음을 넘어서 나라를 지켜 낸 장군의 업적은 500년이 지난 후에도 한국인의 마음속에 위대한 인물로 자리하고 있다. - 설명안내판
이순신 장군 공원은 전체 외곽을 조선판옥전선 모양으로 꾸며, 갑판 중앙에 지휘소인 2층 누각을 설치하고 북을 달았다.
'너와 나, 여기 배곧'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바다 건너편은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도시이다.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어린이놀이터가 넓게 자리하고, 오른쪽 뒤에 '제임스 와트와 증기관차' 배곧 위인공원 4가 위치한다.
증기의 힘이 만들어 낸 현대문명 : 제임스 와트(1736~1819) 증기기관을 개량해서 널리 보급시켰다. 증기기관은 방적기, 기차, 선박, 자동차 등 많은 기계류의 시초가 되었다. 이로 인해 산업혁명이 시작됐고, 인류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다. 제임스 와트는 건강 문제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기계공이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뉴커먼 기관이라는 증기기관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자금 문제, 기술적 한계 등 다양한 문제 앞에서도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새로운 증기기관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와트의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 위인소개 안내판
'I Can Beileve ICan Fly 배곧, 날아오르다'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해송십리로가 달리고' 그 위에 육교가 놓여 있다. 뒤쪽의 언덕을 중심으로 배곧생명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언덕 꼭대기는 배곧생명공원의 정상으로 '배곧마루'라 불린다.
배곧생명공원은 '생명을 품은 도시'를 지향하는 배곧 신도시에 조성된 생태 공원이다. 배곧생명공원은 자연과 함께 하는 도시 조성을 위해 2013년부터 공원 건립을 추진하여 2015년 11월 14일 개장하였다. 배곧생명공원은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기수역(汽水域) 공원으로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2014년 세계조경가협회[IFLA: International 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s] 아태 지역 총회에서 조경 계획 부문 의장상을 수상하였다. 2016년에는 제8회 대한민국 조경 대상 생태 조경 부문에서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배곧생명공원은 배곧마루, 스카이데크, 갈대 산책로, 공연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란뜰이라는 가족 피크닉장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로 즐기기에 좋으며, 다양한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는 갈대랑길과 하늘마루 등이 조성되어 자연 속에서 산책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갈대 습지원과 새봄마루[새 보는 마루]에서는 기수역 공원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배곧생명공원의 정상인 배곧마루는 높이 29m의 평평한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소규모 야외 행사 및 현장 학습이 가능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해송십리로 육교 앞 바다는 갯벌체험장이다. 오른쪽에 갯벌체험장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배곧 갯벌체험장 해안에 갯벌체험장 안전수칙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바다 건너 왼쪽은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도시, 오른쪽은 남동구 고잔동이다.
서해랑길 93코스 시점인 해수체험장 2.7km 지점이다. 지금까지 11.8km를 걸어왔다.
장영실 위인초소는 혼천의 모형물로 조성되어 있다.
배곧동 군자만 해안의 옛 초소를 새롭게 단장하여 위인초소를 꾸민 것 같다.
혼천의와 자격루 : 장영실은 조선시대 최고의 발명가로 조선과학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미천한 신분을 딛고 일어선 그는 재능하나로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종3품 벼슬인 상호군(上護軍)의 자리에 올랐다.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장영실은 천체관측기구인 혼천의, 물시계인 자격루,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발명해 농사를 이롭게 했다.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구였다. 천체운행을 관측하는 것이 큰 목적이었던 중국의 혼천의와는 다르게 장영실이 제작한 혼천의는 정교한 동력장치를 이용해 천체운영을 운행을 재현하는 기구였다. 또한 자격루는 중국과 아라비아의 자동물시계를 비교, 연구하여 새로운 형태의 물시계를 만든 것이다. 시간에 따라 종과 징, 북이 저절로 울리게 만들었고, 인형이 시간을 알려주는 표를 들고 나타나게 되어있는 정교한 자동 물시계였다. 그 결과 물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시각 확인을 해야 하는 관원들의 노고를 덜어 줄 수 있었다.
장영실 위인초소 앞 낮은 언덕에 경기평상이 조성되어 있으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경기평상이란 경기도와 시흥시가 도민 모두에게 보편적 '쉼'이 가능한 도시공간을 조성하여 삶의 여유를 제공코자 마련한 장소입니다."
경기평상 앞쪽에 배곧 위인초소 종합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배곧 위인초소 안내판을 아래에 옮긴다.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환경과 전통이 그 사람 안에 잠재되어 있는 기질을 자극하여 개발하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던펌린의 아이들 역시 스코틀랜드의 웨스트민스터라 할 수 있는 장엄한 대수도원의 모습에 영향을 받고 자랐다...... 내 생의 마지막 날까지도 어린시절 강하게 들어와 박힌 던펌린 대수도원의 인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 앤드류 카네기의 자서전에서 -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사업을 하면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고향 아일랜드의 던펌린 대수도원을 떠올리며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 주거환경은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며, 마음의 의지처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의 주거환경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배곧신도시에, 아이들이 평생 마음에 의지처로 삼을만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마음껏 뛰어 놀면서 좋은 성품을 배울 수 있는 장소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 바로 <배곧 위인초소>입니다. 배곧에는 한때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해 군인들이 밤을 세워 보초를 서던 39개의 해안초소 가 있습니다. 1차로 이 버려진 해안초소 6개를 여섯 위인의 초소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초소마다 위인의 정신을 드러내는 상징 조형물 작품도 설치했습니다. 이들 위인들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꿈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들입니다. 아이들은 <배곧 위인초소>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이들 위인들의 훌륭한 품성을 닮아갈 것입니다. <배곧 위인초소>가 배곧 아이들에게 마음의 의지처가 되고, 장차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그런 장소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배곧'의 유래, '배곧' 이라는 용어는 '배움곳'이라는 순우리말입니다. 1914년 주시경 선생님이 조선어학당의 이름을 바꾸면서 유래 하였습니다. 배곧 신도시 는 학문과 지성이 겸비된 글로벌 교육도시를 지향하는 네이밍입니다.
왼쪽에 장영실 위인초소, 오른쪽에 배곧 위인초소 종합안내판, 그 뒤쪽에 시흥시 배곧동 배곧신도시, 바다 건너편은 인천시 남동구 논현신도시가 자리하고, 군자대교가 바다를 가른다.
왼쪽 앞에 배곧 위인초소 종합안내판, 정면 중앙에 해송십리로 육교, 그 뒤에 배곧신도시 고층아파트 빌딩들이 솟아 있다.
배곧 위인공원 3 라이트형제 초소가 앞쪽에 있고, 배곧신도시 고층아파트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왼쪽 맨 끝에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바다 건너 오른쪽은 송도국제도시, 중앙 뒤는 인천신항 컨테이너터미널이다.
오른쪽은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 왼쪽은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신도시, 오른쪽 뒤는 미추홀구 문학산, 중앙 뒤는 청량산인 듯.
오른쪽은 시흥시 배곧동 배곧신도시, 군자대교 건너편은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논현신도시이다.
왼쪽 앞에 배곧 위인초소 종합안내판, 그 오른쪽 뒤에 해송십리로 육교, 그 뒤에 배곧신도시 고층아파트 빌딩들, 맨 오른쪽에 배곧생명공원의 정상 배곧마루가 있다.
배곧신도시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일대 군자매립지에 조성되는 새로운 주거 단지로, 서울대학교 시흥스마트캠퍼스와 교육·의료 클러스터를 부각시키는 측면에서 '배곧 신도시'라는 명칭을 선정하였다. 이 명칭은 1914년 주시경(周時經) 선생이 조선어강습원의 명칭을 ‘한글 배곧’이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군자(君子)라는 한문 이름과 어울리는 이름으로 학문과 지성이 겸비된 글로벌 교육 도시를 지향한다는 의미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배곧생명공원의 정상인 배곧마루는 높이 29m의 평평한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배곧생명공원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해송(海松)[흑송(黑松)]을 비롯한 35만 종의 수목이 식재되어 있고, 억새·꽃댕강나무 등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배곧생명공원은 자연 환경을 보존하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하는 공원으로 ‘생명-참여-문화’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취지에 어울리게 인간만을 위한 공원이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이 함께 사는 생명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공원 곳곳의 길 이름은 공모를 통해 시민이 직접 지은 이름을 사용하였다. 또한 2015년 개장 이후 배곧마루 생명 콘서트, 대한민국 도시농업박람회, 해넘이 행사, 마라톤 대회 등 각종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문화의 장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원래의 군자매립지를 1985년부터 1996년까지 (주)한화에서 화약 성능 시험장으로 매립하여 사용하였다. 2006년 시흥시에서 토지를 매입하여 군자지구 개발을 통해 신도시로 개발하기로 하여 2012년 10월부터 배곧신도시를 개발했다고 한다.
정왕4동에서 배곧동으로 분동되면서 2018년 10월 17일 주민센터 개청식을 가졌고, 2018년 11월 10일에는 배곧 생명공원에서 ‘배곧, 빛이 있는 야간 산책 –점등 축제’를 개최하였다. 이 행사는 2018 주민 참여 예산 선정 사업으로서 배곧동의 분동을 대외에 알리고 주민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행사다. 배곧동에는 교육기관으로 배곧초등학교, 배곧라온초등학교, 배곧한울초등학교. 배곧해솔초등학교, 배곧중학교, 배곧고등학교 배곧누리초등학교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불가능에 도전한 라이트 형제를 소개하는 배곧 위인공원 3초소가 앞에 있다.
꿈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꿈만 좇는 바보처럼 보여도 좋을 것이다. If believe a dream has value as itself, it would be fine to be looked like a pool pursuing it only.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 : 오빌(1871~1948), 윌버(1867~1912). 미국의 항공 발명가. 하늘을 날고 싶었던 인류의 꿈을 실현시킨 형제. 1903년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제작하여 비행에 성공하다. "인간도 날 수 있다."...불가능에 도전한 용감한 형제. 오빌과 윌버 형제는 자전거 가게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날,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이 글라이더로 하늘을 날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릴리엔탈은 글라이더 시험 비행 중 돌풍에 휘말려 추락사했다. 라이트 형제는 글라이더와는 다른 방식으로 비행기 연구를 시작했다. 형제는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작은 어촌 마을 키티호크(Kitty Hawk)로 찾아갔다. 그곳 모래언덕에서 첫 비행에 성공하기까지 3년 간 무려 805번의 실패를 겪었다. 마침내 1903년 12월 17일 오전 10시 35분, 최초의 동력 비행기 플라이어 1호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12초 동안 35m를 날아갔을 뿐이지만, 자체 동력의 힘으로 이루어 낸 인류 최초의 비행이었다. 마침내 인류는 새처럼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이루어 냈다. 그리고 그로부터 110년 후인 2014년에만, 33억 명의 승객이 6조 Km가 넘게 비행기로 여행했다. - 설명안내판
오른쪽은 남동구 고잔동, 왼쪽은 연수구 송도동이다. 뒤쪽 지역은 서해랑길 95코스에서 탐방하게 된다. 오른쪽 뒤에 미추홀구 문학동 문학산, 중앙 뒤에 연수구 청학동 청량산이 가늠된다.
서해랑길은 해안의 배곧한울공원 공원길을 계속 따라간다. 오른쪽에 등간이 서 있다. 왼쪽 끝에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배다리선착장, 바다 건너 중앙에 인천시 송도동 송도 인천신항 컨테이너터미널이 가늠된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건축부지가 배곧한울공원까지 미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2010년 국제교류의 확대를 위한 개방형 글로벌 교육기구, 글로벌 협동연구·창업단지, 국제협력기구의 연합체 실현을 목적으로 국제캠퍼스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경기도 시흥시와 체결하였고, 2010년 5월 평생교육원을 개원하였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는 경기도 시흥시 배곧신도시에 들어선 서울대학교의 신 캠퍼스이다. 여러 논란으로 인해 학부생의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일부 대학원이 설립될 예정이다. 서울대학교 멀티캠퍼스 중 한 캠퍼스로 AI와 모빌리티 교육에 중점을 둔 캠퍼스이다. - 위키백과
' I ♡ BAEGOT since 2012.' 옛 초소를 해넘이공원 조형물로 앙증스럽게 꾸민 것 같다. 설치연도는 2021년이다.
'뿌리 깊은 나무 늠내, 샘이 기픈 물 배곧' 용비어천가 2장을 응용하여 시흥과 배곧을 찬양하며 세종대왕을 안내한다. 뿌리 깊은 나무 '늠내'는 옛 시흥 지역의 고구려시대 지명인 '잉벌노(仍伐奴)'를 우리말로 풀이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뻗어 나가는 땅’, ‘넓은 땅’의 의미로 해석된다고 한다.
시흥의 첫이름은 잉벌노(仍伐奴)이고 나중에 곡양(穀壤)이 되었는데, 이 둘은 사실상 같은 표기이다. 잉벌(仍伐)과 곡(穀)은 고대에는 다 같이 "늠"으로 읽히고, 노(奴)와 양(壤)은 고대에는 "나"나 "내"로 읽혔기 때문에 순우리말로는 "늠내"가 된다. 이 늠내는 "뻗어나가는 땅"이라는 의미도 있어서 현재의 "시흥"이라는 이름과도 상통한다. - 위키백과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기 때문에 꽃이 좋고 열매가 많습니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기 때문에 내를 이루어 바다에 이릅니다. (용비어천가 현대어 풀이)
세종대왕(世宗大王, 李祹, 1397~1450) 조선의 임금. 지금 우리가 쓰는 글자인 훈민정음(한글)을 만들어 백성을 깨우치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은 조선의 4대 국왕으로, 태조 이성계의 손자이다. 대왕은 백성을 사랑하고 신하를 존중하며, 학문을 장려하고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성군이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대왕은 오직 백성들이 잘 살게 하기 위해 힘썼다. 대왕은 측우기와 자격루, 혼천의 등을 발명하게 하고, 정책연구 기관인 집현전을 설치했으며, 새로운 악기를 만들고 각종 화약무기를 개량했다. 이렇듯 많은 업적이 있지만, 대표적인 업적은 학사들을 불러 모아 백성을 위한 민족의 언어 한글의 발명이었다. 세종대왕의 즉위 기간 동안 사람들은 힘을 모아 태평성대라 칭했으니, 조선이 왕조의 기반을 확실히 다지고 법을 지킬 수 있도록 기틀이 닦였던 시대였다. "백성이 하려고 하는 일을 원만하게 하는 세상이 태평성대일 것이오." - 설명안내판
공원길을 계속 따라간다. 앞에 배곧 위인공원 1초소가 있다.
배곧 위인공원 헬렌 켈러 초소는 점자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낙관주의는 성공으로 인도하는 믿음이다. 희망과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Optimism is the faith that leads to achievement. Nothing can be done without hope and confidence.
우리가 놓치는 세상의 비밀을 알려준 여성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 미국의 문필가, 사회사업가. 태어난 지 열아홉 달 만에 시각과 청각을 잃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말하기조차 불편한 천형을 딛고 장애인의 빛이 되었다. 헬렌 켈러는 태어난 지 19개월 되었을 때 심한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하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그 후유증으로 청각과 시각을 잃었다. 그녀의 부모는 퍼킨스 맹아학교에서 앤 설리번을 가정교사로 모셔온다. 설리번 선생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헬렌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어둠과 고요의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사람들의 손과 입술을 더듬고 점자로 책을 읽으며, 그녀는 장애를 극복해 나갔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지성과 재치를 발휘하는 여성으로 성장해 갔다. 여성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명예 학위를 받았고, 일생을 장애인들을 위해 바쳤다. 헬렌 켈러는 자신이 어둠을 뚫고 세상으로 나오게 해 준 희망과 열정의 원천이 낙관주의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 즐거운 모험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찬란한 스승이다. - 설명안내판
'배곧을 달리는 새로운 방법' 시작 조형물이 배곧공원 공원길에 세워져 있다. 오이도 빨강등대 2.8km, 도보 41분, 거북섬 웨이브파크 5.1km 1시간 15분임을 알린다. 이 지역이 옛 옥구도로서 이곳은 옥구도 매립지인 것 같다.
왼쪽에 엠플러스테크노빌딩이 솟아 있다. 이곳이 옥구도 매립지로서, 서해랑길은 오른쪽 해안의 공원길을 계속 따라간다.
쉼터&전망대 앞 한울공원길을 따라 끝에 보이는 해수체험장 앞으로 이어간다. 중앙 뒤에 시흥시 오이도의배다리 선착장, 오른쪽에 시흥시 정왕동 옥귀도의 황새바위, 그 뒤에 인천신항의 컨테이너터미널이 확인된다.
바다 건너편 맨 오른쪽은 남동구 고잔동, 중앙 뒤는 미추홀구 문학동의 문학산, 왼쪽 흰색 V 조형물 뒤는 연수구 청학동의 청량산, 맨 왼쪽은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도시이다.
서해랑길 안내도는 건물 왼쪽에 있으며, 중앙 뒤에 덕섬, 그 오른쪽 뒤에 오이도가 보인다. 뜰에 여러 조형물이 있다.
야자수와 그늘막이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배곧한울공원 해수체험장은 한울공원 내에 인기 포토존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지역 명소이다. 해수체험장 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바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도심 속 휴식처로 많은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곳으로 매년 여름에만 운영된다. 성인풀도 수심이 0.7m라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3,082㎡의 규모로 성인풀과 유아풀로 구성된 해수체험장은 지하 150m 암반해수 70%, 상수도 30% 비율로 운영하고 있으며, 매주 수질 관리를 위해 해수 교체 및 청소를 진행하고 있어 이용객들이 쾌적하고 안전한 해수 체험을 할 수 있다. 취사 및 텐트 설치는 금지이며 배달 음식을 수영장에서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정해진 배달존에서만 음식을 받을 수 있다. 시흥시민은 입장료에 30%를 할인받을 수 있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해수체험장 뜰에 조형물 '천국의 계단'이 조성되어 있으며, 바다 건너는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송도국제도시이다.
배곧한울공원 해수체험장 북쪽에 서해랑길 92·93코스 안내도와 경기둘레길 53코스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서해랑길 93코스 탐방을 역방향으로 마쳤다. 탐방거리 12.3km, 3시간 20분이 걸렸다. 93코스 안내도를 살피니, 탐방거리 14.5km다. 월곶포구를 거쳐 소래철교를 건너는 게 원래의 93코스 탐방이다.
서해랑길 93코스 역방향 탐방을 마치며, 서해랑길 92·93코스 안내도와 함께 기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