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연가
술 좋아...
친구 좋아...
밖으로만 돌던 남편이
육십이 넘어가던 날
홀연히 먼저 떠나버린 아내를 보내고
“니 엄마가 없는 그 집에
혼자 있을 용기가 나질 않는구나“
“아버지
그 집 정리하시고 저희랑 살아요“
아내를 보내고 난 뒤
차마 혼자 그 집에 갈 수 없어
귀농한 아들 집에서 농사일 도와주며
두어 달을 보내던 중
"여보..
이 다음에 내가 늙어 못 걸으면
저렇게 휠체어에 태워서 당신이 밀어줘요"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를
뒤에서 밀고 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아내의 말이 떠오른 남편은
우리도 오래 오래 살아서
망초 꽃들이
하얀 손을 흔들며 반겨주는 길을
함께 걸어가리라 약속했던 시간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황혼이 든 이때부턴
세상살이 하기좋은 바람을 안고서
걱정도 줄이고...
바램도 즐이고 ..
살자던 아내를
눈물 깊은 얼굴로 떠올려 보던 남편은
등진 짐을 마음으로 안으며 보내다
그리움으로 깬 아침을 맞고 있었다
어느 가슴 하나 내밀어도
이 아픔을 지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쉬움 그 위에 한가한 겨울이 와 있던 날
집도 팔 겸
입을 꼭 문 하늘을 따라 찾아온 집
-딸깍..-
언제나 그랬듯
머리 위로 이고 온 달빛을
내려놓은 자리에
아내의 모습이 있었던 지난날이 지워질까
불을 켤 용기가 나질 않아
사들고 온 비닐봉지 안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나발을 분다
가슴에 부는 바람이 너무 시려와
연거푸 속을 다 비워낸 소주병의 긴 그림자가
달빛이 갈라진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자리를 보며
“여보....
......
진숙아...흑흑흑“
사선으로 가로질러 누운 남편은
소리쳐 아내를 부르다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눈물방울에
비친 별을 바라보고 있다
"여보..저 별들 좀 봐
저 별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데
당신은 ......."
함께하자며
온몸으로 다가왔던 아내를
안아주지않은 채
뒷걸음질만 친 지난날이 미안해서인지
널브러진 달빛을 모인 자리에
몸을 일으켜 세운 남편은
“여보..
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 아래
아내라는 나뭇가지에 앉아 쉬던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마음을 줬던
아내가 있는 그 곳을
별 징검다리를 밟고 자유로이 흘러다니는
바람이 되고 싶었는지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
“여보..물 좀 줘?”
아내에게 가는 길을 잃을까 봐
술로 새벽을 버티다
하얗게 밝아 온 아침을 따라
술이 들깬 채 일어난 남편은
목이 타오르는 갈증에 아내를 찾다
냉장고 문을 연다
“내 남편
정우씨 잘보세요“
우유는 3일 이상 두지 않기...
야채는 너무 많이 넣어두지 않기...
달걀은......
당신 좋아하는 된밥은...
당신 좋아하는 북어국은....
....
....
“아픈 사람이 언제 이걸 다....”
타는 목을 축인 남편이
화장실로 걸어가 거울 앞에 섰을때
거울 닦는 법
수건 게는 법
샤워기..
칫솔...
치약...
비누...
“안 올 사람처럼 이 사람이 별걸 다...”
화장실을 나온 남편은
거실 한편에 널브러져 있던
옷가지 몇 벌을 들고 세탁기 앞에 멈춰 섰을때
겨울옷 세탁법
여름옷...
세제 사용....
“ 여보...여보
이 사람이 어딜 간 거야“
이별한 줄 까맣게 잊은 채
습관적으로 아내를 부르다
곧 남편은 체내의 눈물을 쏟고 만다
죽어가는 자신보다
남아있을 사람을 더 걱정했던 흔적들을
바라보면서...
이별로
허리 꺾인 하루를 보내고
문득 바라본 하늘을 깨우듯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여기 팔팔 부동산입니다...“
“아네...
죄송하지만.........“
......
.. 파실 마음이 없다는 말씀으로
알고 이만 끝겠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흔적이 있는
이곳 마저 지울수 없었기에
마침표보다
쉼표를 그려넣은 사랑으로 지켜가겠다며
반짝이는 별 하나와 약속을 하고 있었다
사랑했던 사람이
사랑하기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계속되는 거라며...
펴냄/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카페 게시글
실화 ♤ 감동글
황혼 연가
황제 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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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24 07:1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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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