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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그 이후
결과적으로 그래 연말은 인야가 어머니와 함께 보낸 마지막 시간이 되었다. 편히 모시기는커녕 그 임종의 순간까지 무력하게 두 눈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던 그는, 이제 세상이라는 망망대해 위에 완전히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로 전락한 꼴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허망하게 어머니를 여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인야는 다시 삶의 중대한 기로 위에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떠났으나 결과적으로 흐지부지 돌아왔던 독일로 되돌아 갈 수도 있었다. 여태까지는 모친의 존재가 자신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지만, 이제 거기에서도 자유로워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러기는 싫었다.
설사 다시 이 땅을 떠나 어딘가로 향한다 해도 그 목적지는 미국이 될 것이었다.
물론 당장은 비자를 발급받을 형편조차 되지 않아, 가고 싶다고 선뜻 떠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일단, '기회를 엿보자'는 생각까지는 해두었다.
I. 본격적인 더부 살이
인야가 화가로서 다시 활동 무대로 삼을 곳은 어차피 서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묵고 있던 누님의 집, '산본'의 아파트로 가야 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벼운 행차였던 이전과는 처지와 입장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여태까지는 그저 잠시 머무는 임시 거처라 여겼으나, 이제는 돌아갈 고향 집도 없는 신세가 되어... 본격적인 더부 살이를 시작해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목적지는 산본이었기에, 기차를 타고 가려고 '장항'으로 향했다.
늘 이용하던 고속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이번엔 어쩐지 기차를 타고 가고 싶었다.
그런데 군산 형님의 차를 얻어 타고 장항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기차표는 매진된 뒤였다. 하는 수 없이, 일반 좌석 대신 입석 표를 끊어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4호차 1번 좌석이었는데, 가는 중간에 주인이 오면 언제든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불안한 자리였다.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따금 차창에 부딪혀 부서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인야는 걷잡을 수 없는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아, 이제 내가 다시 고향에 오게 된다면... 그때는 '어머니가 안 계신 고향'이 되겠구나. 고향은 '어머니'라는 단어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일 텐데, 어머니 없는 고향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 인생이란 이토록 허망한 것인가......'
인야는 내내 창밖을 주시했는데, 오늘따라 잔뜩 흐린 날씨에 간간이 비까지 내리다 보니... 마음도 날씨 따라 우중충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평일임에도 기차 안은 의외로 승객들로 붐볐다. 게다가 기차가 역에 멈춰 설 때마다 인야는, 진짜 좌석 주인이 나타나 자리를 내달라고 할까 봐 가슴을 졸였으나, 무슨 일인지... 그가 내릴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값싼 입석표 한 장으로 목적지까지 무사히 편안하게 도착한 셈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돈 절약까지 한 셈이었다.
산본에서의 일과는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한의사인 친구 O를 만나 조카가 준 돈(한약 값)을 건넸고, 어머니 문상을 와주었던 친구들에게 감사의 보답으로 지난 연말에 작업했던 판화 한 점씩을 정성스레 포장해 우편으로 보냈다. 그러고는 곧장 신촌에 가서 지난 주에 해두었던 흙 작업의 상태를 점검하고, 남대문 시장을 갔고......
매서운 겨울 추위에 진이 빠진 인야는 달리는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지난 연말, 꽤 많은 사람들에게 연하장 겸 판화를 보냈었다.
그런데 수많은 발신에 비해 돌아온 답장은 단 세 개뿐이었다.
미국의 H, 그리고 스페인의 라울과 루이스.
물론 인야가 답장을 기다리면서 그것들을 보내지는 않았었다. 그렇지만 그 중 몇 개는, 내심 간절하게 소식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화가로서 자신의 앞날과 조심스럽게 연결된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다리던 소식은 끝내 오지 않았다. 올 기약이 있었다면, 이미 한참 전에 당도했을 터였다.
인야의 인생은 늘 이런 식으로,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궤도와는 어긋나게 흘러가고 있었다.
기대를 걸고 임용 지원서를 냈던 또 다른 대학 역시 여태까지 감감 무소식인 것을 보면, 그것 또한... 이미 물 건너간 일이 분명했다.
이번 겨울 들어 가장 강력한 한파가 몰아닥쳤다.
옷을 몇 겹이나 두껍게 껴입었음에도 뼛속까지 시린 바람을 막을 길은 없었다.
신촌 작업실에 들러 제자 녀석과 잠깐 얘기한 것을 제외하곤 종일 제대로 한 일도 없는데,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인야는 또다시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지난 밤 분명히 숙면을 취했음에도 몸이 이토록 무거운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게 이토록 피곤하게 만든 것일까? 그나저나, 이 잔인하도록 추운 겨울날 땅속의 어머니는 얼마나 추우실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누님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거대한 무기력이 인야를 덮쳤다. 무언가 붓을 잡거나 글을 쓰려 해도, 이내 파도처럼 밀려오는 피로감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드러눕게 되었다.
누님의 집에서도 조만간 나가야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제는 온전히 혼자만의 공간에서 숨 쉬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인야에겐 차가운 몸뚱이 하나 뉘일 곳이 없었다. 아니, 그럴 능력조차 없다는 현실이 더 정확했다.
인생을 결코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지만,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가난은 이제 인야를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날 밤도 수많은 꿈을 꾸었다. 그 중에는 돌아가신 어머니 꿈도 있었는데, 돌아가신 뒤 처음 일이었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밭에 계셨고, 인야는 누군가와 함께 어머니를 향해 걸어갔다. 어머니는 이마의 땀을 닦으시며 막둥이 아늘이 오는 곳으로 다가오셨고, 그 짧은 순간에 인야는 밭에 열린 조그만 토마토 하나를 따서 먹었는데, 넝쿨 이파리에 꽁꽁 숨겨져 어머니께서 미처 보지 못하혔던 호박 두 개를 따 드렸다. 검푸른 빛이 감돌도록 짙은 녹색에, 생김새는 울퉁불퉁했지만 축구공만큼이나 큼직하고 탐스러웠던... 지독하리만치 생생한 꿈이었다.
신촌 작업실로 가기 위해 문을 나서려는데 전화를 받았다. 군산의 후배한테서 온 것이었다.
지인인 백 씨가 다리를 놓아주겠다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는 소식이었다. 출판사 측에서 인야의 개인 프로필과 집필 중인 원고의 시놉시스를 적어 보내주면 출간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인야에겐 모처럼 접한 긍정적인 신호였다.
'혹시 지난밤 꿈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하는 생각은, 어머니와 연결이 되었고...
신촌에 내려 걷다가 공중전화 박스 옆을 지나는데, 사무치게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떤 때는 의무감으로, 그러면서도 그리움으로 일도 없이 매일 같이, 아니면 하루걸러거나 간혹 사흘에 한 번은... 어머니께 전화를 걸곤 했었는데,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어저께 해놓고 또 했어?"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냐?" "우리 막둥이, 점심은 먹었냐?" 하는 식으로 물으시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인야는 전화기 옆을 지나면서도, 일도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던 단 한 사람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소멸했다는 사실에... 콧등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이토록 추운 날이라면, 전화에 대고,
"어머니, 오늘은 엄청 날이 춥네요!" 하고 어리광 비슷하게 말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께선,
"추워도, 나는 방에만 있는디, 벼랑 추워야지. 다만 니가 추운디, 다니느라 고생 아니긌냐?"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인야는 문득 문득, 이 세상에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살을 저미는 감각으로 느끼고도 있었다.
얼굴이 에일 듯한 추위를 뚫고 신촌 작업실에서 밤늦게 돌아오는 길, 인야는 매번 가슴 한구석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다.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세상으로부터 어떤 반가운 소식이나 긍정적인 연락이 와 있지 않을까 하는 유치한 환상으로.
그러나 누님 집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차가운 침묵과 실망뿐이었다.
그날 역시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거실에 있던 누님이,
"저녁은?" 하고 물었고,
"예, 한 친구를 만나 먹고 왔어요." 하고,
내일 이른 새벽 출근을 위해 일찍 잠든 조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속삭이고는, 어두운 제 방으로 몸을 숨겼다.
하루는 신촌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예술회관에서 근무하는 대학 동기 김 씨를 만났다.
그는 나이 40대 중반에 여전히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인야의 처지를 진심으로 딱하게 여긴 듯, 이런저런 걱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자신을 염려해주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은연중에 묻어나는 동정 어린 시선까지 흔쾌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비록 내가 지금은 이렇게 초라하게 살고 있을지언정, 내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잖은가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안정된 직장을 잡고 안락하게 산다고 해서... 그걸 성공한 삶이라 단정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마음이 복잡해지면서 인야는,
'그나저나, 이제 신촌 작업실에서도 나와야 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굳히고도 있었다.
어차피 인야는 그곳에서도 객이었기 때문에, 남들 눈치보고 사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다음 날 오전, 인야는 무작정 정동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찾았다.
미국 비자를 받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고, 또 무슨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과거 인야가 멕시코에 거주할 당시 미 대사관으로부터 한 차례 비자 거부를 당한 이래, 한동안 잊고 지냈던 미국행이었다. 제3국에서는 거절당했으니, 차라리 고국에서 서류를 철저히 보완해...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었는데......
그러나 대사관 문을 나서는 인야의 손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냉정하게 따져보니, 지금의 인야에겐 대사관이 요구하는 그 어떤 기본적인 서류조차 갖출 만한 사회적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산도, 안정된 직장도 없는 떠돌이에게 세상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그럼에도 인야는 발걸음을 돌려 종로에 있는 외국어 학원가로 향했다. 어차피 미국 땅을 밟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기에, 영어회화부터 차근차근 시작할 요량이었다.
직장인들을 피해 들을 수 있는 아침 9시 수업이 그나마 인야에겐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그러자면 새벽에 일어나 종로까지 가야만 할 상황이었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를 한답시고, 더구나 새벽반이라......'
스스로도 실소가 터져나왔지만, 그게 자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선택지였던 것이다.
학원 등록을 마치고 다시 신촌 작업실에 갔다.
인야는 밀려오는 한심함에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J 선생님이 오셨고,
"비록 늦었지만, 그래도 받으세요." 하면서 부의 봉투를 내미는 것이었다.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으셨던 마음을 그렇게나마 표현한 것이었는데,
그 분의 따뜻한 눈빛에 인야는 울컥 솟구치는 고마움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 회화 수업이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교실 안은 젊은 애들이 가득했고, 인야는 그들 중 가장 연장자였다.
'주머니를 털어 없는 돈에 시작된 공부이니, 그만한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인야는 서둘러 출판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곳에서 들은 소식은 인야의 맥을 풀리게 했다.
2월 중순, 늦어도 3월 초에는 반드시 출간될 걸로 믿었던 '멕시코 벽화 운동'의 발행 예정일이 또다시 밀려 4월에나 나온다는 것이었다.
또 한 번 계약 조항에 차질이 생긴 순간이었다.
'아, 어쩌자는 건가. 세상은 날더러 어떻게 살아내라는 건가.'
눈앞이 캄캄해지고 사방이 거대한 벽으로 둘러쌓이는 것 같은 막막함이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출판사를 나와 멍한 정신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산본역에 내려 그가 향한 곳은, 거기 중심상가 건물 지하 깊숙이 자리한 어느 어두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거기 관리인을 만나, 입주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정식 임대차 계약은 아니고, 그저 기본적인 전기세 수도세 명목으로 한 달에 7만 원을 지불하는 조건의 열악한 임시 작업실이었다.
비록 숨이 턱 막히는 지하 2층의 폐쇄된 골방이었지만, 예술가로서 호흡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디든 작업을 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절실했던 것으로...
친구 O의 처가 조언했던,
"산본 지하에라도 공간을 마련하세요." 했던 말이 결국 현실이 된 셈이었다.
스트레스 탓인지 요즘 들어 다시 속이 쓰려왔다. 가난과 함께 평생 인야의 육체를 따라다니는 고질적인 암적 고통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위장병을 평생 업보처럼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인야는 신촌 작업실에서의 마지막 흙 작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난번에 정성스레 해놓았던 것이,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형편없이 메말라버려, 도저히 석고를 뜰 수 없는 상태가 된 탓이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흙을 주물러 형상을 빚어내야만 했다. 이번에 새로 빚은 작업들을 무사히 석고 틀로 떠서 산본의 지한 골방으로 옮겨가고 나면, 인야는 마침내 이 신촌 작업실의 눈칫밥 생활을 접을 수 있을 터였다.
영어 회화 시간에, 미국인 강사는 인야에게 대수롭지 않게 질문을 던졌다.
"Are you married? (결혼하셨나요?)"
인야는 아주 덤덤하게 거짓을 고했다.
"Yes, I am."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거짓말을 했던 것인데,
만약 이곳에서 솔직하게 미혼이라고 답했다면, 강사는 물론이고 주변의 젊은 학생들까지... 이 나이 먹도록 장가도 들지 못한 자신을 기이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 뻔했다.
더구나 뒤이어 쏟아질 구차한 질문과 원치 않는 관심들을 차단하기 위해선 차라리 유부남 행세를 하는 편이 훨씬 속 편한 일이었다.
그깟 새파란 이방인들에게 거짓말 몇 마디를 보탠다고 해서 이 지난한 삶의 궤적이 달라질 리는 만무할 테니까.
사람들은 인야를 보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뭐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고들 했다.
그 충격으로 슬퍼하거나 식음을 전폐하기라도 하란 말인가.
마치 그러기를 기대라도 했던 것처럼,
"참,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시네요!" 하거나, "그렇게 담담한 모습을 보게 되어 다행이에요." 하기도 했다.
'그런가 보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내 언행이 담담한가 보다.'
그렇다면 정작 인야 자신의 내면은 어떠했던가.
가슴 한 복판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표류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얽매던 유일한 혈육의 끝이 사라졌다는 묘한 해방감과 자유가 공존하고 있었다.
인야는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위태롭게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주제에, 일만 벌여놓은 꼴이었다. 영어회화 한다고 10만 원,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억지로 가입한 핸드폰 구입비로 또 10여만 원, 새로 입주할 산본 작업실에 7만 원, 게다가 신촌에서 석고 틀을 뜨는 데 들어갈 자재비까지 계산해 넣으니...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돈은 끊임없이 모래톱의 물처럼 빠져나어가는데, 정작 밑 빠진 독에 돈이 들어올 구멍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삶을 지탱해 나갈 것인가.
밤늦게 피로에 찌든 몸을 싣고 사당역을 지나 산본으로 향하는 좌석버스 안이었다.
인야는 우두커니 어두운 차창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사당역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고... 바로 그 옆 길가에 가래떡을 구워파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멍하니 약간 흐릿한 그런 풍경을 보고 있었는데, 웬 취기가 오른 사내 하나가 비틀거리며 버스 통로로 걸어 들어왔다.
그가 통로를 지나가나 싶었는데, 한 2-3초 뒤에... 인야가 앉아 있던 두 번째 줄의 빈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술 냄새가 훅 끼쳐왔으나 인야는 거부감을 드러내는 대신, 그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창가 쪽으로 제 몸을 바짝 밀착해 자리를 조금 넓혀주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은 사내가 갑자기 품 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손으로 뚝 떼어내 인야의 코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길쭉한 가래떡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인야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떨결에 그것을 손에 받아 쥘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거기 정류소 옆에서 파는 '구운 가래떡' 두개를 샀던가 보았다. 그 중 하나를 자신에게 건넨 것이고.
그러면서 그를 바라보니, 이미 그는 떡을 한 입 물고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져나오려 했지만, 버스 안에서 차마 소리를 낼 수는 없어 인야는 그저 떡을 쥔 채 사내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빙그레 웃으며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어쨌거나 고맙다는 표시는 해야 했으니까.
손에 쥔 가래떡은 한 손에 쏙 들어올 크기였는데, 밤바람에 노출되었던 탓인지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의 인야는 겸연쩍기도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겸연쩍고 멋쩍은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인야 역시 그를 따라 가래떡을 한 입 베어 물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그도 인야와 비슷한 연배의 40대 중후반의 얼굴이었다.
깊어가는 겨울 밤, 달리는 경기 좌석버스 안에서 마흔 줄의 사내 둘이 나란히 앉아 하얀 가래떡을 질겅질겅 씹어 먹고 있었다.
구운 떡이라 고소했다.
머릿속으로 그 기괴하고도 정겨운 흑백 영화 같은 한 장면이 그려지자, 인야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몸을 들썩일 수밖에 없었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가 인야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야는 머쓱한 기분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목례로 멋쩍은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두 사내는 한동안 아무런 대화도 없이 오직 우물우물 가래떡을 씹어 먹었고, 다 먹은 뒤에도... 인야는 창밖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뭔가를 주섬주섬 찾는 눈치여서 인야가 돌아보니, 막 자신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었다.
지갑이었는데, 그 두툼한 지갑에서 그는 또 뭔가를 열심히 찾더니...
불쑥, 인야의 얼굴 앞에 뭔가를 들이밀었다.
지갑 플라스틱 속에 있는 것은 그의 신분증 같았다.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인야는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불빛이 흐리고 플라스틱 안에 들어있어서 글씨는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으나... 상단에 박힌 '공무원증'이라는 네 글자만큼은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자기는 신분이 공무원이니 안심하라는 뜻인가 보았다.
허긴 그가 고위 공무원이든 아니든, 길거리를 전전하는 부랑자이든... 인야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저 이 척박한 시대를 함께 버텨내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가련한 대한민국의 사나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질감은 차고 넘쳤으니까.
인야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그가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더니, 갑자기 인야의 왼손을 덥석 움켜잡는 것이었다.
악수를 하자는 서투른 몸짓이 분명했다.
그래서 인야는 순순히 그 악수를 받아주었다.
조금은 거칠은 감촉이었다. 그런데 그는 반대로 인야의 너무 부드러운 것에 놀란 듯(평소에 사람들은 인야의 손을 너무 부드럽다고들 놀란다.)... 신기한 눈으로 인야를 다시 한 번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인야는 웃기만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이번에는 자신의 양 손으로 인야의 손을 잡더니, 어루만진 뒤... 이젠 인야의 어깨를 툭툭 쳐주기까지 했다. 마치 인자한 어른이 아이를 쓰다듬듯이.
인야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어주기만 했다.
이윽고 버스가 '평촌'역이라는 안내 방송을 내보내자, 그는 내릴 차비를 하며 인야를 돌아보았다.
그제서야 인야는,
"조심히 가세요!" 라고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인사를 해주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그는 버스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는 곧장 가버리지 않고, 인야가 앉아 있는 창문 바깥쪽까지 다가와... 손을 흔드는 것이었다.
버스는 둔중한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여전히 인야는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멀어지는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인야의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슬픔이 차오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