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말씀을 읽으며 계속 마음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47장 4~13절 중에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방탕한 여인아,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가져라!"
‘여인'은 젠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공동체 문화 속에서 가장 타락한 존재를 상징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철저히 죄에 빠진 인간을 향해서도 하나님은
"이제부터라도..."라고 말씀하신다.
이 짧은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전에
죄인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분이시다.
어떻게든 설득하시고, 어떻게든 붙드시고,
어떻게든 구원하시려는 분이시다.
이사야를 읽을수록 심판보다
하나님의 설득이 먼저 보인다.
2.
48장에서는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너희는 마음이 완고하고 얼굴에 철판을 깐 고집불통들이다."
죄는 행동만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다.
사람 자체를 변질시킨다.
성품을 바꾸고 마음을 굳게 만든다.
나는 이것을 현실에서도 자주 발견한다.
진리와 사랑은 사람을 더욱 자유롭게 하고,
더욱 수용적으로 만들며,
마음만은 평안과 여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상 사람들은 차치하더라도
신앙인들 가운데도 마음이 완고하고
고집불통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잘못 가르쳤기 때문일까.
잘못 배웠기 때문일까.
잘못 묵상했기 때문일까.
물론 제대로 배웠다고 해도
삶의 선택으로 이어지지 못한 책임도 크다.
나는 오히려
말씀을 오래 들었다는 사실보다
말씀이 사람을 얼마나 부드럽게 만들었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3.
같은 장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구절을 만난다.
"내 신, 우상이 한 일이다.
조각 신상이 명령한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모든 증거를 보았다.
너희 눈과 귀로 직접 확인했다."
이 말씀은 인간의 변명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설령 예수님과 복음을 직접 전하는
메시지를 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끝까지 변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손길을 가리키고 있다.
생명도 그렇고,
자연도 그렇고,
양심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다.
인간은 증거가 없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하기 때문이다.
4.
49장에서는 여호와의 종의 고백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나는 평생 애썼지만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다.
헛수고만 한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최종 판단만은 하나님께 맡긴다.
그분의 판결을 기다린다.
기가 막힌다.
실존에서 이보다 더 균형 잡힌 모습이
또 있을까.
겸손도 있다.
진솔함도 있다.
열심과 노력도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의지하며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
나는 신앙의 최선이
현실에서 이런 모습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한다.
결과는 정직하게 인정한다.
평가는 하나님께 맡긴다.
5.
50장 1~3절은 마음이 아프다.
"너희는 당연히 하지 못한다.
너희가 이 지경에 처한 것은
너희 죄 때문이다."
계속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인간과 죄를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되는 것 아닐까.
표현은 어렵지만,
존재적 인간과 죄로 왜곡된 인간은
분리해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인간을
이런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죄가 인간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죄는 인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왜곡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은 남아 있는데
삶은 뒤틀린다.
번뇌가 생기고,
욕망이 생기고,
관계가 무너지고,
평안을 잃는다.
구원은 죄를 용서하는 사건만이 아니다.
왜곡된 인간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본래의 인간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6.
마지막은 소망으로 끝난다.
51장 4~6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의 구원은 다함이 없으며
세상을 바로잡는 나의 일은
결코 쇠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의 앞부분은
희망 없는 세상을 묘사한다.
하늘도 사라지고,
땅도 낡아지고,
사람도 스러져 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그렇다.
액면 그대로라면
희망은 없다.
이 세상만 바라본다면
살아갈 이유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한가운데서 말씀하신다.
"나의 구원은 다함이 없으며
세상을 바로잡는 나의 일은
결코 쇠하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 능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은 변하며,
나 역시 흔들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구원은 다함이 없고,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일은
결코 쇠하지 않는다.
이 사실 하나를 붙들기에
험난한 삶도,
무너진 세상도,
끝장난 것처럼 보이는 인생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세상이 우리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