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강신주
출판사 : EBS BOOK
[여름숲]
상처받지 않을 권리, 감정 수업 등의 작가 강신주씨의 작품이다.
10여년 전부터 좋아하던 분으로 ‘상처를 들여다봐야 그래야 상처받지 않는다.’, ‘나서서 상처를 치유하자.’ 등을 이야기해 왔던 분이다.
개인주의 병폐, 소비주의와 존재의 가치 등을 고민하며,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이런 사회 속에서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나 등을 이야기하며 세상으로부터 꾸준히 욕먹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왔다.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인터뷰어는 지승호씨 입니다. 원래 지승호씨는 인터뷰에 자신의 색이 들어 나는 분이지만, 이 책에서는 강신주씨가 더 색이 강한 분이어서 인지 지승호씨의 색보단 강신주 스타일이 온전히 들어나는 인터뷰 이었다.
책을 보면 우리는 자발적 노예들이다. 중세로 따지면 외거노비 정도 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스스로 목에 나무 팬말을 걸고 거기에 스팩을 써 놓고 있는 모습이 오늘의 우리들이다. 이러니 이런 모습에서 벗어 날수 없다.
때문에 강신주 자신이 나서서 이 것을 벗어 날수 있도록 주장하고 있고 그런 게 앞으로도 주장하겠다고 한다.
글을 써서 이것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길을 가야 하는데, 자신이 이 길을 가야 하고 누군가를 외쳐야 하는 걸 자신이 하겠다고 한다. 당장은 누구도 들여다 보지 않아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하다.
그렇게 인문학적 패밀리를 넓혀 가겠다고 한다.
[뜬돌]
잘 읽혔고 좋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인터뷰 형식이었는지 체계적이지 않았다.
약간 비파적으로 이야기 하지면, 인터뷰가 너무 많은 사회 현상 등을 다루고 있는데, 이 하나 하나가 다 깊이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를 너무 쉽고 간결하게 많은 주제를 논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득세인 지금 이렇게 강력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게 맞다.
마트, 쇼핑몰에 가보면 이건 자본주의 승리이고 인간 욕망을 성취이다.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견제와 비판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이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본다.
대안이라면 북유럽식 수정자본주의 정도라고 보는데, 강신주는 이도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강신주씨 역시 마땅한 대안은 없는 듯 싶다.
더군다나 마르크스가 등장할 때와는 틀리게 지금 자본주의는 자본가들 조차 욕망을 위해 끝임없이 일하게 하고 심리적으로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엄청난 부를 가지고 얼마든지 편해 질 수 있는 그들조차 편해 질 수 없는 게 지금의 자본주의가 아닐까 한다.
그렇게 모두를 쥐어 짜는 이 시스템에선 자본가들조차 압박 받고 있다.
이에대한 대안이 절신한 지금이다.
[가을 햇볕]
강신주씨를 보고 있으면 같은 세대 사람으로써 질투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은 수박이었다. 책 표지는 파란데, 책 내용은 빨갰다. 그간의 생각을 잘 정리한 듯 싶었고 쉽게 읽히기 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두번째 장, 사람의 문맥을 읽는 다는 것’이 좋았다.
자본주의 대해선 비슷한 견해를 지닌다. 물론 과거 사회의주의 즉, 국가사회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것도 같다.
사실 사회주의는 방향성을 잃었고 때문에 이제 자본주의를 견제할 방법은 없다.
혁명을 통해 억압적인 체제를 종결해야 하지만, 그 전제조건으로 연대와 공동체, 자유에 대한 성찰과 함께 지역과 세상으로 스며들어 퍼져 나가는 게 필요 하다.
하지만 지금 이런 것은 쉽지가 않다.
끝으로 이 책 MZ세대의 보수성을 이야기한 ‘p122~p123’의 내용을 추천하다. 한번 다시 읽어 보길 바란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디지털세대, 즉 MZ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의 보수성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스마트폰을 응시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그들은 ‘고독한 개인’일 가능성이 크죠. 게임이 지향하는 공정한 경쟁에 익숙하니, 그들은 경쟁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공정만을 추구해요. …..”
[아름두리]
비판적으로 보자면, 우선 대부분의 이야기는 고전과 이전 세계의 것을 예를 들어 이야기한다.
하지만, 철학의 위기를 논할 때 등장하는 과학적 소재의 부제가 여기서도 등장한다. 과학적 예제, 진화론이나 현대, 사회를 들여다보는 수많은 리서치에 대해서 책은 부제 한듯싶었다. 때문에 피상적이고 단편적으로 다가왔다.
역으로 이런 소제를 ‘조던 피턴스’ 같은 보수적인 사회심리학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과거 진보적 학자들이 논했던 소제를 보수적인 학자들이 더 잘 활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좋은 주제를 가지고 생각 할거리를 던지는 강신주씨에게 아쉬운 점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첫댓글 오랫만에 써도 능숙하십니다^^
오타가 장렬하는 글을 잘 봐주셔서 갑사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