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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지리산종주를 처음했을 때의 감격을 이번 가족 지리종주산행을 한 가족들이 느꼈을 감격과 비교를 해보라고 한번 올려본다.
** 나를 포근히 감싸 안은 지리산!
(2002. 1. 16 수 - 18 금)
# 출발전에
“참 세상 좋아졌어, 고어텍스 등산화가 4만 5천원 밖에 안 하네!”
등산교실 1월 산행 후 자산사모의 아지트 통나무식당에서 뒤풀이 중에 산자락님이 하신 말씀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이동 근처에 등장한 등산장비점을 둘러보고 하신 말씀이신 것 같다.
그때는 무심코 들었다가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고 습기에 약한 가죽 등산화밖에 없는 나는 수락산 하산길에 일 삼아 우이동을 찾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종로5가 장비점 가격 이하의 고어텍스 등산화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잘 들어둘 걸하고 후회하며 산자락님에게 전화를 드려보았지만 꺼 놓으셔서 알아볼 방법이 없다.
내가 몸집이 빈약하다고 내 마누라도 배싹 말랐을 것으로 얕보지 말라!
나보다 체중도 더 나가고 꽤 몸집이 있다.
기본으로 얼굴도 상당히 미인이다.
여러 회원들에게 인사와 자랑을 겸하여 시키려고 자산사모 산행에 동참을 권유해 보았지만 극구 사양이다.
그렇다고 산을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근교산은 자주 다니지만 워낙 워킹이 슬로우 템포인데다 자주 쉬어서 같이 다니면 나는 땀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서로 산을 좋아하면서도 동행하는 일이 별로 없고 소속산행단체가 따로 국밥이다.
내가 혼자서 지리산 종주를 하겠다고 했더니 ‘나이 생각을 해라’ ‘혼자서 겨울산은 위험하지 않느냐’하는 말 뿐으로 강력히 반대는 않는다.
나는 이런 마누라가 참 좋다.
다행으로 생각하고 온산에 눈이 하얗게 덮인 광활한 지리산 자락 능선을 홀로 끊임없이 걸어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여 보았다.
꽤 괜찮은 그림이다.
곧이어 초행임을 감안하여 코스를 성삼재 --> 노고단 --> 벽소령 대피소 1박 --> 세석 대피소 --> 장터목 대피소 1박 --> 천왕봉 -->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가벼운 코스로 잡아놓았다.
열차표와 산장대피소 예약을 하고 자료수집 및 장비점검에 들어갔다.
방한복장, 운행장비, 식품, 취사장비, 세면도구, 약품, 기타 등으로 분류하여 일단 기록을 해 보았는데 그 품목이 엄청나다.
추위에도 약하지만 무게에 더욱 약한 나는 아무래도 다시 선별하여 무게를 줄여야겠다.
우선 다시 사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고어텍스 등산화, 귀덮는 모자, 스톡, 기능성 내의, 호스버너 등이다.
장비점에 가서 알아보니 등산화 10만원, 모자 3만원, 스프링 내장된 스톡 6만원, 내의 4만원, 버너 3만원 정도는 줘야할 것 같다.
기타 소품까지 합치면 30만원 이상이 들겠다.
돈 많이 들어가는 것 싫어하는 마누라, 말은 않지만 다음에 또 장거리 등산을 가려면 가능한 한 별 큰돈이 안 들어간다는 인상을 심어주어야겠기에 고어텍스 방수등산화 대신 신던 가죽등산화에 뿌릴 방수 스프레이를 7천원에 사고 모자, 스톡은 전에 쓰던 저급품으로, 버너는 자동점화장치와 손잡이에 조금 고장이 있는 십년 이상 쓰던 버너로, 내의는 타이즈 6천원짜리로 대체를 했다.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에 신경을 쓰면서 들어보았다.
15, 16일은 비가오고 17일부터는 추워지겠단다.
한겨울에 무슨 비는, 얼어죽을!
히말라야님 말씀에 의하면 성삼재에 눈이 많이 쌓이면 택시 통행이 안 된단다.
거기까지는 비가 눈으로 바뀌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성삼재가 불통일 경우는 화엄사 코스로 가야하는데 거긴 엄두가 나지 않는다.
13일 월출산을 다녀와서 14일에는 출근을 하고 15일은 아침에 예방차원에서 안과병원에 들려 치료를 하고 시장을 들려 부식 등을 사고 오후에는 짐을 꾸렸다.
배낭 꼭대기까지 넘치도록 집어넣고 무게를 달아보니 16Kg이 넘는다.
딸애가 들어보더니
“아빠, 이거 지고 걸을 수 있으세요?”
하고 묻는다.
“구러~엄, 그까짓 것쯤이야.”
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론 나도 걱정이다.
걷는 건 문제가 없지만 정말 짊어지는데는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이 없다.
<2002년 1월 16일 -수요일->
# 구례구행 열차에서(01:01 - 05:01)
밤 01:01시에 천안역을 출발하는 열차이므로 24:30시에 걸어나가도 충분히 타련만 가족들이 잠을 안자고 불편해 하는 것 같아서 24시 정각을 넘기고 집을 나섰다.
이슬비가 부슬부슬 날려서 오버자켓을 입고 터벅터벅 걸어서 역으로 나갔다.
전화로 예매한 열차표를 찾고 한참을 기다려 정시에 도착한 열차에 올랐다.
좌석에 앉아 ‘이제 가기는 가는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눈을 좀 붙이려고 해도 영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떴다하면서 창을 보니 아래로 내려 갈수록 빗줄기가 점점 세차게 창문을 때린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지리산 속을 헤매는 나의 모습이 자꾸만 뇌리를 스친다.
잠깐 눈을 붙였다 뜨니 남원이다.
어느새 창문에는 묻어있는 빗방울이 하나도 없이 깨끗하다.
그 반가움이라니!
캄캄한 5시경에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구례역이 아니고 왜 구례구역인지 모르겠다. 나는 처음에 그래서 조금 헷갈렸다.
한번 누구에게 물어본다는 것이 그만 잊어버렸다.
배낭을 내리는데 뒷좌석에 앉아있던 고등학교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학생이
“아이쿠!”
하고 비명을 지른다.
웬일인가하고 살폈더니, 이런! 내 배낭 옆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물이 가득 담긴 pet병이 빠져 잠을 자고 있던 학생 머리위로 떨어진 것이다.
이걸 어째! 나는 체면 불구하고 정중한 사과를 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거 어떻게 하지요? 미안합니다.”
정도 이상의 사과에 학생이 어이가 없었던지 찌푸렸던 얼굴을 쫘악 펴면서 씨익 웃는다.
“괜찮아요.”
야, 정말 그 남학생 이쁘다. 내 딸은 좀 곤란하고 조카딸이나 하나 있으면 조카사위 삼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사전 예고조의 사고가 있었으면 다음에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그것이 또 소홀했다.
구례구역에서 내리면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이 몇 십명 이상일 것으로 기대를 했건만 거의 눈에 띄지를 않는다.
겨우 배낭을 맨 사람이 나까지 달랑 셋 뿐이다.
혹시 하고 접근하여 성삼재 가느냐 물었더니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지리산은 나홀로?’
참담한 심정으로 역구내를 빠져나가니 멎었던 비가 또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한다.
금방 또 침울해 진다.
오락가락하는 비에 따라 희비가 순간순간 바뀐다.
# 구례구 역전(05:01-06:10)
역앞에 나가니 몇대 서있던 택시의 기사들이 ‘성삼재, 성삼재’를 외친다.
“성삼재 합승됩니까?”
“아직은 안 되는데 아마 될 겁니다.”
“기차 손님 중에는 없는데도요?”
“그렇다면 잘 해 드릴 테니까 그냥 가시지요?”
“잘 해서 얼마요?”
“2만 5천원이요.”
“- - - - -”
아무소리 안하고 우선 아침식사나 하고 보자 생각하고 근처 문을 연 집이 하나밖에 없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중간손님 몇과 합승을 하고 2만원에 가기로 하고 다짐을 받았다.
가다가 중간에 미끄러워 못 가느니 어쩌니 하기 없기로 하고.........
# 성삼재(06:10-07:40)
구례구역에서 성삼재까지 30분 정도 거리라고 하는데 쏟아지는 비의 양도 많고 안개가 심할 뿐 아니라 길은 넓지만 구불구불 험한 편이라 40분도 넘게 걸려 도착을 했다.
기사가 친절하기도 하려니와 오다보니 2만원은 훨씬 더 줘도 아깝지 않을 곳이다.
비가 오는데도 차에서 내려 화장실 입구까지 데려다 주면서 노고단까지는 큰길이므로 이길을 따라 죽 가면 된다고 알려주기까지 하고 간다.
“여기는 비가와도 지리산 능선길에는 눈이나 얼음에 덮여있겠지요?”
“웬걸요? 계속 날도 따뜻한데다 요 며칠은 비까지 와서 산위에 눈 다 녹았다하데요.”
성삼재 화장실에만 불이 하나 켜져 있을 뿐 칠흑같은 어둠속에 비는 쏟아지는데 택시가 떠나고 나니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有我獨存)이다.
세상에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 성삼재를 오늘 찾은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나하나 뿐이란 말인가?
아니 우리나라에서 나 하나 뿐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나 하나 뿐이다!
시계를 보니 6시 10분 경, 잠시 후면 날이 밝겠다 싶어 화장실 안에서 오버자켓을 입고 배낭 커버를 씌운 후, 허리 높이 정도의 스톡에 의지하고 길을 나섰다.
몇 발자국 걷는데 돌을 깔아놓은 길에 녹다 만 얼음이 있었던지 주루룩 미끌어진다.
헤드램프도 있긴 하건만 아무래도 처음 가는 길에 위로 가면 갈수록 미끄러운 곳이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거라 미리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리 부러지기 싫어서 다시 화장실로 돌아왔다.
배낭을 내려놓고 화장실을 들어가 봤다.
참으로 깨끗하다. 무슨 거품식이라던가 하여 변기안에 거품이 가득한데 깨끗하고 냄새도 전혀 없다.
별달리 할 일도 없고 하여 세수하고 이를 닦을 요령으로 수도를 틀으니 물이 안나온다.
밤에 사람이 없으니 혹시 동파를 염려하여 물을 빼어 놓은 것 같다.
할 수 없이 내가 가져온 문제의 pet병 물을 이용하려고 배낭을 찾으니 pet병이 없다.
아까 열차에서 빠져 나왔을 때부터 신경을 썼어야 하는 건데 택시 트렁크 안에서 또 빠져 나간 모양이다.
나 미치겠다. 이물로 중간에 추우면 차도 끓여먹고 라면도 끓여먹고 해야할 텐데........
별 수없이 할 일도 없고 혼자 서성서성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데 일각이 여삼추다.
정말 일분이 이렇게 길 수가 없다.
한가하니 별 생각이 다 든다.
혹시 반달곰이 불빛을 보고 찾아 들어오면 나는 어디로 피해야 할까?
경험도 없는 내가 과연 무사히 이번 지리산 종주를 끝낼 수 있을까?
비가 오는 탓인지 7시가 다 되었는데도 어둡기는 별 차이가 없다.
결국 바로 밝아올 것이므로 답답함을 못 참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 디뎠다.
중간중간 얼은 곳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갈 길에 별 지장은 없었다.
차츰 날이 밝아오면서 40분 정도 걸어서 노고단 대피소가 보인다.
이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모든 걱정이 일시에 사라졌다.
# 노고단 대피소(07:40-08:10)
안개 속의 대피소 건물 앞에까지 왔건만 죽은 듯이 적막하다.
영화에서 무슨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생명체는 다 죽고 건물만 남아 을씨년스러운 그런 모습처럼 보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매점 안에 직원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혼자 앉아 졸고 있다.
길을 물은 다음 지름길인 돌계단 길을 택하여 다시 길을 천천히 걸었다.
# 노고단(08:30)
조금 올라가니 노고단 돌탑에 도착을 하였다.
나는 돌탑에 두손을 짚고 정성을 다하여 빌었다.
‘노고단 신령이시여, 이번 종주를 무사히 끝내게 하여 주옵시고, 하늘을 열어 장엄한 지리산자락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며,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는 비와 짙은 안개로 시계 10m 이내이다.
한겨울에 맨땅은 왜 이렇게도 질은지 발이 푹푹 빠진다.
표지판을 따라 천왕봉 방향으로 길을 잡아들었다.
“?”
나는 처음에 지리산 능선길은 비교적 넓은 개활지에 완만한 능선길로 길게 이어지기만 한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런데 노고단을 내려서기가 무섭게 숲속 소로길인 데다 돌길에 경사가 심한 곳도 꽤 많다.
이래 가지고선 폭설이 내리거나 눈이 많이 쌓인 길은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산자락에 눈은 전혀 발견을 할 수가 없는데 사람이 많이 다닌 길은 눈이 다져져서 미쳐 녹지를 않아 길에만 눈이나 빙판이 진 곳이 많다.
산자락 여기저기서 빗물과 눈 녹은 물 내려가는 소리가 여름 장마 때처럼 소란하다.
어떤 곳은 눈이 얼어 굳은 곳 밑이 녹아 공간이 생겨 발을 디디면 푹 꺼지는 곳도 있다.
잘못하다간 발목을 부러뜨리겠다.
진창길은 왜 이리도 많은지........
# 돼지평전(09:10)
그칠 사이는 없는 비이지만 안개비 정도로 아직 옷은 젖지 않았고 등산화도 방수스프레이를 잔뜩 뿌려둔 탓인지 물이 배지를 않았다.
다만 진흙이 등산화에 붙은 것이 꺼림칙하다.
정신없이 오다보니 철쭉이 수없이 깔린 넓은 장소가 나타나고 멧돼지가 많이 나타나서 돼지 평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지금 오고가는 사람이 전혀 없으니 혹시 멧돼지란 놈이 방심한 끝에 내 앞에 불쑥 나타나면 ‘나는 어쩌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설 때리면 성이 나서 나를 받아버리면 종주고 뭐고 끝장이다. 또 꽤 아플거다.
그렇다면 스톡으로 눈을 콱 찔러버려?
그것도 안되겠다. 내가 눈을 아파 보니 눈을 찌르면 돼지가 너무 아프겠다.
어쨌건 돌로 패든 스톡을 뒤로 잡고 패든 놓아주지 말고 잡자라고 결론은 내렸다.
좀 무겁긴 하겠지만 이걸 들쳐 메고 종주를 끝낸 다음 서울로 짊어지고 올라가서 자산사모 회원들을 소집하여 파티를 여는 거다.
인수봉 밑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산내음님 보고 인수봉에 올라가 ‘자산사모 멧돼지 파티’라고 크게 쓴 현수막을 걸어달라고 하고, 1002를 시켜 물을 끓이고, 일진보고는 털을 뜯고, 산자락님 보고는 배가르라고 하고, 히말라야님에겐 소주나 몇병 들고오시게 하고 지랑보고는 빨리 뛰어가서 팔계님이하 전 회원을 불러 모으라고 하고, 하얀미소보고는 회비를 얼마씩 걷으라고 해야하나......? 하면서 막 계획을 짜고 있는데 ‘바스락’소리가 났다.
나는 아연 긴장하고 파티고 뭐고 도망갈 길을 먼저 봐뒀다.
곧이어 새 한 마리가 철쭉 숲에서 날아간다.
‘에고, 다행이네!’
한참을 기다려도 멧돼지 아니라 팔계 닮은 귀여운 새끼돼지 한 마리 안 나타난다.
여긴 ‘돼지평전’이 아니라 ‘철쭉평전’이 더 알맞다.
# 임걸령-반야봉(10:10)
돼지평전을 지나니 다시 숲속 길이 이어진다.
이어서 피아골 대피소 갈림길을 지나 임걸령은 모르는 채 지나가고 반야봉을 가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지리산을 대표하는 세 봉우리가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이라는데 마음이야 있지만 짊어진 배낭 무게와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여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그냥 지나쳤다.
잠시 쉬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일원 6명이 뒤에서 따라왔다.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아마 노고단 대피소에서 출발을 했나보다.
한사람은 체격도 큰 편이고 빙벽에 신는 큰 연두색 등산화를 신고 배낭의 크기도 엄청나다.
아무래도 30Kg은 넘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작고 간단한 배낭 하나씩만 달랑 메었다.
리더인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물어보지 못하다가 다른 사람들은 바로 출발을 하고 연두색 등산화 혼자만 더 남아서 쉰다.
왜 같이 출발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그 사람들과 같은 숙소에서 잤지만 일행은 아니라고 한다.
어딘지 전문가다운 냄새가 나서 몇 마디 물어보니 해외원정 경험까지 있는 베테랑이다.
장비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그 사람이 먼저 출발을 했다.
# 토끼봉(12:30)
화개재에서 뱀사골 대피소가 왼쪽으로 200m 거리에 있다고 표시되어있어서 구경이나 하고 갈까하다가 왕복이면 0.4Km라 생각하니 그것도 만만치 않은 거리라 포기했다.
토끼봉에 도착했다.
아까 못 잡은 멧돼지 대신 토끼라도 잡아서 자산사모 파티를 다시 한번 열어볼까 하고 살폈더니 그 길다란 토끼 귀 끄트머리도 못 찾아보겠다.
작은 새 한 마리 날아가는 기색이 없다.
여기도 철쭉밭만 넓게 펼쳐져 있다.
가만히 보니 큰 나무가 없이 넓은 장소만 나타나면 돼지, 노루, 토끼 등 짐승으로 위치 이름을 정하는 가 보다.
내 생각에는 여기 이름도 ‘토끼봉’이 아니라 ‘철쭉봉’이 더 알맞다.
철쭉 수 만 그루가 만개하면 사진이 꽤 될 것 같다.
철쭉 철에는 여기로 사진 한번 찍으러 왔으면 좋겠다.
가도가도 오고가는 사람이 없다.
무주공산 적막강산에 나 홀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능선길의 평균 고도가 1500m 쯤은 될 것이다.
그러나 계속 오락가락 하는 비와 짙은 안개로 시계가 10여m 밖에 안되니 장엄한 풍광은 전혀 느낄 수 없이 질퍽질퍽 빠지는 동네 뒷산 길을 걷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거기다 날씨는 왜 그리 더운지 땀이 나는 것이 반팔, 반바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비 때문에 오버자켓을 벗을 수도 없고.......!
드디어 우려하던 등산화가 새기 시작한다.
어쩌다 눈길을 만날 뿐, 진창길 물길이 전반인데다 비까지 오니 아무리 방수 스프레이를 여러 차례 뿌렸지만 가죽 등산화로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
갈 길은 멀고 힘은 드는데 신발까지 새니 앞날의 험난함이 예상된다.
젖은 양말로 발바닥이 부르틀까 제일 큰 걱정이다.
토끼봉을 거의 다 올랐는데 도저히 힘이 빠지고 배가고파서 못 움직이겠다.
먹히지 않는 아침을 다섯시에 조금 먹었더니 도저히 안되겠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먹으려던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중간 중간에 전화기를 열어보았지만 신호가 뜨는 데가 없다.
지리산에선 거의 휴대전화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넓은 지리산 자락에 기지국이 가까워 봤자 얼마나 가까울 것인가?
누가 면밀히 조사를 하여 전화 통화 가능지역을 표시 좀 해 놓았으면 좋겠다.
# 삼도봉(13:10)
옛날에는 날라리봉이라고 했다는 삼도봉에 도착했다.
정상부분에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방향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삼각형 모양으로 된 금속 조형물을 만들어 부착을 해 놓았다.
방향을 알아보는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어두울 때나 방심하다간 사람이 걸려 넘어지기 꼭 알맞은 것이 조금 위험해 보인다.
삼도봉을 지나 하산 길에는 경사가 심해서인지 등산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육교모양의 나무 계단을 상당한 길이로 시설을 해 놓았다.
역코스로 올라오면 꽤 애를 먹을 것 같다.
명선봉을 또 하나 넘었다.
# 연하천 대피소(14:20)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니 일련의 젊은이들이 왁자하니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다.
여긴 사설 대피소인 모양으로 건물이나 주변 관리가 허술하다.
관리인 인 듯한 사람이 나보고 혹시 담배를 피우느냐고 묻는다.
국립공원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벌금을 50만원인가 문다고 하던데 이 사람이 나한테 유도심문하나?
나는 금하는 4가지가 있다. 커피, 담배, 껌, 라면이다.
당연히 안 피운다고 했다.
내 뒤를 따라 온 30대쯤 되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물어본다.
이 사람이 그렇다고 하자, 담배 떨어진지가 꽤 됐다고 하면서 미안하지만 몇 개피 얻자고 하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이 젊은이가 몇 개 안 남은 담배를 갑 채로 건네었다.
대피소 관리인은 이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수염이 덥수룩한데다 담배연기를 깊숙히 빨아들였다 내뿜는 것이 참으로 맛있고 멋있게도 피운다.
식사를 하던 젊은이 중 좀 뚱뚱하고 안경을 쓴 아가씨가 내게 말을 건넨다.
“아저씨, 컵 있으세요?”
“왜요?”
“컵 있으시면 허브 차 한잔 드리려고요.”
“아, 있지만 배낭 깊숙히 있어서 귀찮아 그만 두렵니다. 하지만 고맙습니다.”
하고 말을 받았다.
조금 있더니 자기들의 컵으로 차를 한잔 준다.
솔직히 맛은 별 것 아니었는데 향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아마 허브차는 입으로 마시는 게 아니고 코로 맡는 차인가 보다.
점심은 이미 먹었으므로 흘린 땀으로 인한 체액을 보충한다 생각하고 음료수를 사려고 하니 콜라와 2%밖에 없단다.
2%를 하나 달라고 하니 2,000원이라고 한다.
비싸긴 하지만 당연하다 싶어 단숨에 하나 마시고 이내 출발을 했다.
삼각봉, 형제봉을 지났다.
나중에 벽소령 대피소 직원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삼각봉은 삼각고지라고 하며 빨치산 토벌작전 때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라고 한다.
형제봉 아래쪽에는 형제바위라는 큰 바위가 멋있게 서있는데 가운데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고 바위면에 크랙이 많다.
보는 사람은 없지만 한번 붙어 올라가면 올라갈 수도 있겠다.
그 동안 산야님께 배운 실력을 측정할 겸 시도를 해보고는 싶은데 비가 오는 것이 거슬리고 현재 지친 상태라 마음으로만 이리저리 올라가 봤다.
# 벽소령 대피소(16:40)
지리산 대피소의 특징은 멀리서부터 보이지를 않고 도착하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난 이것이 참 마음에 든다.
지치고 피곤한데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니 반갑기 짝이 없다.
만약에 저 멀리서부터 대피소가 보이기 시작해 보라.
처음 발견했을 때는 반가울지 모르지만 몸은 피곤한데 가도가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참 신경질이 날 것이다.
17시안에 도착을 해야 예약된 자리를 배정해 준다고 했는데 이제나저제나 시간 안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산자락을 돌아서니 눈앞에 바로 대피소가 보인다.
그때의 그 반가움이란!!!
도착시간은 16시 40분 정도, 07시에 캄캄한 성삼재 매표소를 불안한 마음으로 출발하여 약 10시간만에 첫째 날의 숙소에 도착을 한 것이다.
사무소에 신고를 한 후 사용료 5,000원을 내고 숙소로 들어가니 아까 중간에서 만났던 대학생들과 연두색 등산화가 미리 와서 쉬고 있고, 다른 사람도 몇이 더 있다.
평일인 탓인지, 비가 온 탓인지 대피소 정원 150명에 투숙자는 20여명 정도밖에 안 된다.
한 사람 앞에 자리를 2인분씩 넓게 배정을 해 준다.
내 옆자리는 예의 그 전문산악인 연두색 등산화이어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
긴 밤을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겠다.
무척 친절한 직원이 와서 주의사항 지킬 일 등을 이야기하고 어둡기 전에 저녁식사 준비를 하라고 한다.
식수를 찾으니 현관 옆에 조그만 창문에 써 붙여 놨다.
창문을 두드리니 문이 열리며 그 안에 씽크대의 수도에서 물을 담아 내 준다.
그럼 설거지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물어보았더니 화장지나 눈을 이용하여 하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한다나?
내 뒤에 서 있던 사람은 아예 등산을 오면 설거지를 안하고 그 코펠 그대로 그냥 사용하고 씻는 것은 집에 가서나 한다고 한다.
각자 그럭저럭 저녁을 다 해먹었다.
직원에게 헌 신문지를 빌려서 등산화 안에 구겨 넣고 보기는 싫지만 등산화를 여자 숙소인 2층 올라가는 계단에 매달아 놓았다. 제발 내일 아침에는 등산화가 말라있기를......!
산에는 악인이 없다던가?
정말 처음 만나는 사람들임에도 어쩌면 그렇게 몇 십년 지기나 되듯이 대화가 자연스럽고 서로가 친절하며 어려울 때 도와주는지 알 수가 없다.
세상이 모두 이렇게만 돌아가면 골치 아픈 법도 모두 필요가 없으련만........!
나는 옆자리의 연두색 등산화에게 주로 말을 건넸다.
“소속된 산악회가 있습니까, 아니면 혼자서 자유로운 등산을 합니까?”
여차하면 자산사모 회원으로 끌어들일 생각으로 물어봤다.
“대학 다닐 땐 산악부 활동을 했는데 지금은 OB로만 활동을 하고 사회의 산악회에는 가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대학 다닐 때는 등산에 해외 원정에 공부는 젖혀놨었겠군?”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졸업하던 해에 바로 임용고시에 1차로 합격을 했습니다.”
뭐? 임용고시? 그럼 이 사람도 교사인가?
“현재 대학생인줄 알았더니...... 어디 무슨 대학을 다녔어요? 졸업은 언제 했고?”
“예, 부산교육대학입니다. 졸업한지는 3년 되었어요.”
“아, 나도 초등교사인데, 이거 반갑습니다.”
이후에는 대화가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싸우는 교사들만의 이야기, 암벽 빙벽 등 등산 이야기 할 것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학 4년 동안 산악부 활동을 하고서도 용케 임용고시에 합격을 했다고 머리가 좋은가 보다고 했더니 그 사람 말이 그게 부산교대의 몇 대 불가사의에 해당된다고 교수가 그랬다나........!
지금 자기가 근무하는 부산의 초등학교에 자기가 설계한 인공암장을 시설하여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람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여기는 조금 실내가 선선한 편이다. 담요를 한 장에 1,000원씩 3장을 빌렸다.
9시경 소등을 하러 들어온 직원의 말이 지금 비가 눈으로 바뀌었으니 만약에 내일 아침 눈이 많이 쌓이면 허락 없이 개인 출발을 자제해 달라고 한다.
경험 있는 길을 잘 아는 사람을 중심으로 팀을 짜 주던지 대피소에서 러셀을 해주던지 해야지 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 가다가 엉뚱한 길로 가면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은 발자국만 보고 가다가 큰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말이다.
바닥에 얇은 야외용 깔자리와 담요 한 장을 깔고 위에는 담요 두장을 덮고 팬티와 런닝셔츠 바람에 잠자리에 들었다.
뻥 뚫린 위층이 여성 숙소이긴 하지만 뭐 자는데 누가 볼 것도 아니고......!
약간 추운 느낌이었지만 자는데 별 지장은 없겠다.
불을 끄니 깜깜하니 완전 암흑 속이다.
제발 내일은 비 대신 눈이 오던지, 날이 개이던지, 하다못해 날씨라도 추워서 진창길이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무거운 카메라까지 가지고 왔건만 오늘은 한번도 써 먹어보지를 못했는데 내일은 다만 몇 커트라도 찍을 수 있기를........!
몸은 피곤하나 나의 그 신경과민증 때문에 잠이 영 안 온다.
남의 코고는 소리를 음의 높낮이, 박자 등 분석을 해 보며 거의 밤을 지샜다.
길어야 두 시간도 못 잤다.
<1월 17일 -목요일->
# 아침(07:00 기상)
오늘 걸어야 할 길은 6시간 이내의 거리이기 때문에 마음이 느긋하기 한량없다.
눈을 감은 채 누워만 있다가 남들보다 늦게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눈이 5cm정도 하얗게 쌓여 있고, 지금도 조금씩 내리고 있다.
하늘은 구름이 뒤덮여 있건만 어제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기사 어제 우중 산행에 하루 온종일 기분이 우울했었지만, 만약에 요 며칠 동안 내린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면 1m도 넘는 엄청난 눈이 쌓여 아마 산행이 불가능했었을 지도 모르겠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고 불행이 다행이 될 수도 있고, 다행이 불행이 될 수도 있는 건데 비 맞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다.
삼십대로 보이는 부부가 비닐 우의를 입고 대피소를 찾아 들어오고 있다.
어디서 이렇게 일찍 오느냐고 물었더니 밤에 산 속에서 비박을 했다면서 추위에 얼굴이 새파랗고 행색이 초췌하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더 이상 산행을 포기하고 아침을 해먹으면 하산을 해야겠다고 한다.
의욕은 있었지만 사전준비는 소홀했던 사람들인 것 같다.
밥을 해 먹고 눈으로 설거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사람들은 이미 떠나고 몇 사람 안 남았다.
세수나 하려고 식수 내주는 창을 두드리고 세수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세수요? 우리는 15일에 한번 집에 내려가면 그때나 한번하고 와요.”
와, 뻥도 세다.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숙소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사실 자기들도 종주 중에는 거의 세수와 이닦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어제 비 때문에 모자도 썼지요, 오버자켓도 입었지요, 땀을 많이 흘려 머리에선 소금냄새가 나는데 날보고 어쩌라고?
구름 사이로 잠깐 햇빛이 든다.
산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보는 반가운 햇빛이다.
대피소 주변에 쌓인 눈하며 햇빛이 드니 피어오르는 안개하며 꽤 괜찮은 풍경이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몇 번 셔터를 눌렀다.
내가 짐을 꾸리는 사이에 모두 출발을 하고 마지막으로 연두색 등산화가 연세도 많으신데 종주 잘 하시라고 하면서 떠났다.
직원이 청소를 하러 들어왔다.
“밤에도 산행하는 사람이 있나요?”
“요즘에는 거의 없고 대피소에서 막고는 있으나 여름에는 많습니다.”
“위험해서 막지요?”
“물론 위험하기도 하지만 환경법에 의해서입니다. 밤에는 동물들도 먹이를 먹거나 번식을 위해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움직이면 2Km 이내의 겁 많은 동물들이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이 ‘야호’라고 고함을 지르거나 하면 임신한 동물들은 유산을 하기도 하지요. 우리는 야간 산행자나 소란행위자에게는 스티커를 끊게 되어있습니다.”
나도 미처 생각 못한 얘기를 들었다.
사람이 움직이면 사방 2Km이내의 동물들이 숨을 죽이고 겁에 질려 밤새 움직이지를 못한다니.......!
양말은 다 말랐는데 등산화는 다 마르지를 않았다. 오늘 걸을 일이 걱정이다.
제발 발이 부르트지 말아야 할텐데........!
# 출발(09:50)
날리던 눈발도 멎고 구름이 엷은 것이 이따금 햇빛이 들기도 하는 것이 상쾌하다.
인사를 하고 10시가 다 되어서 내가 마지막으로 대피소를 나섰다.
중간중간 녹은 곳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깨끗한 하얀 눈 덮인 길 걷기가 어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에 아예 카메라를 꺼내 목에 걸고 겉옷은 모두 배낭에 넣고 폴라티 하나만 입고 길을 나섰다.
산에 올라오기 전 천안에서의 날씨 그대로 따뜻하기만 할 뿐 추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
오늘의 시계는 몇백m는 되겠다.
이따금 바람에 안개가 걷히면 꽤 아래까지 시야가 트이는 수도 있다.
오늘은 어차피 여유로운 산행인 고로 속도를 완만히 하고 이곳 저곳을 살피며 괜찮다 싶으면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 샘터에서
기분 좋게 한참을 오니 넓은 공터가 있고 울타리처럼 줄이 쳐져있고 팻말이 있다.
묻은 눈을 떨어내고 읽어보니 샘터이다.
돌로 쌓아놓은 중간에 pvc파이프를 박아놓았는데 며칠 내린 겨울비 탓인지 물이 콸콸 잘도 나온다.
물을 실컷 마신 다음 작은 생수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마침 햇빛이 좋아서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어제처럼 오늘도 산행은 나 혼자다.
한참을 시간을 보내도 오고가는 사람이 없다.
원래 조용히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적성에 딱 알맞은 산행이다.
충분히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스치는 아이디어 하나!
난 왜 이렇게 머리가 좋은 거야?
이 그냥 내버리는 아까운 물을 이용을 하는 거다.
그 물의 높이도 딱 알맞다. 머리 감기에.........! ㅎㅎㅎㅎ ^^;
머리감고 세수하고 목도 닦고, 또 머리감고 아무리 싫도록 머리를 감아도 전혀 냉기를 못 느끼겠다.
엄청 좋은 겨울 날씨!
기왕지사 목욕까지 해버려?
그것만은 참았다.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빨아서 양지쪽에 잠시나마 널어 말렸다.
# 세석 대피소(13:15)
눈은 쌓였지만 날씨가 워낙 따뜻하니 축축한 등산화에 자꾸 눈이 묻어 녹아 이미 발에선 찌걱거리기 시작한다.
다 좋은데 그놈의 물 새는 등산화가....... -.-+;
한참을 걸어서 세석 대피소에 도착을 하였다.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취사장에 들어가보니 세상에!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
또 나 하나다. 전 세계에서.......! ㅎㅎㅎㅎ ^^;
조금 지저분한 넓은 취사장 이곳 저곳 그중 깨끗한 곳을 찾아서 배낭을 내려놓고 점심 준비를 하였다.
식수를 떠 가지고 와서 밥을 앉히는데 말소리가 들려 밖에 나가보니 아래에서 올라오는 샛길에서 스님 5명이 올라오고 있다.
스님들은 밥을 어떻게 지어먹나 구경을 하려고 했더니 잠시 쉬었다가 그냥 장터목 방향으로 가 버린다.
다시 또 혼자가 되었다.
밖에 나와있던 직원도 들어가 버리고......!
또다시 번득이는 나의 기지!
이번엔 이닦기다.
아까 샘터에선 머리만 감고 배낭 속에 든 칫솔을 꺼내기가 귀찮아 이를 못 닦아서 찜찜했는데 배낭을 풀렀으므로 이젠 별 문제 없다.
물을 뜨러 갔더니 ‘식수외 사용금지’ ‘설거지 금지’ ‘세수 금지’라고 여기저기 써놓았다.
나는 물과 칫솔을 가지고 화장실 뒤쪽으로 가서 이를 닦았다.
물론 아무도 못 보았다. 까마귀 몇 마리 빼고는......!
설마 까마귀가 고발을 하랴?
머리 감았지요, 이도 닦았지요, 이제 정말 살 것만 같다.
이젠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어제 잡으려다 만 멧돼지라도 이제 나타나기만 해 봐라, 이젠 안 봐준다.
그런데 제길 물에 불어터진 발은 누가 좀 어떻게 안 해주나?
밥을 해 먹는데 요령이 없어서 그런가 자꾸만 코펠 밑에 눌어붙어 그것 해결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매번 한시간 이상이다.
밥을 다 먹고 복숭아홍차까지 느긋하게 끓여 마신 후 설거지를 했다.
사진을 몇장 더 찍고 출발하려고 생수병에 물을 받는데 뭔가 가라 앉는게 있다.
눈을 대고 가까이 드려다 보니 초등학교 자연 교과서에 나오는 하루살이 애벌레 같이 생긴 놈이 한 마리 꼬물꼬물 움직인다.
아니? 한겨울에 여름에나 볼 수 있는 하루살이 애벌레가 이 높은 산중에? 그것도 식수통 속에서?
식수 탱크를 열어보면 보나마나 수 백마리는 수영을 즐기고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없어서 생략하고 물을 쏟고 다시 물을 받았다.
원, 세상에! 그놈이 아직 안나가고 또 들어있어요!
이놈이 꼭 내 뱃속 구경을 하고 싶단 말인가?
이번에 한번만 더 내버리고 그래도 안 나가면 나도 모른다.
누가 알아? 그놈 한 마리 먹으면 몇 십년은 더 장수할지?
물에 젖은 발이 좀 문제이긴 하지만 배도 부르고 식수도 보충했고 기분 좋게 15시경 세석 대피소를 출발했다.
이젠 등산객은 단 한 사람도 대피소에 남아있지 않다.
# 삼신봉(16:20)
완만히 걸어 촛대봉을 거쳐 삼신봉에 도착하니 하늘이 꽤 많이 열려있다.
비로소 멀리 운해도 보이고 고사목도 있으며 건너다 보이는 바위도 보기가 좋다.
구름 위로 지나온 서쪽 끝 부분에도 봉우리가 하나 보이고 동쪽 앞 방향에도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아무래도 동쪽의 저 장엄한 봉우리가 천왕봉일 것 같다.
배낭을 벗어놓고 전화기를 열어보니 신기하게도 신호가 뜬다.
어렵사리 집에 통화가 되었는데 춘추 90이 다 되신 장인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입원하셨다고 당장 내려오라는 마누라의 얘기다.
큰일이다. 지금 여기서 어떻게 내려가란 말인가?
동네 뒷산도 아니고......!
끊겼다 이어졌다 얘기를 종합해 보면 어제 쓰러지셨는데 상태가 심각하여 돌아가시는 줄 알았는데 하루가 지나 고비는 넘기고 거동만 못하실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
하필 이런 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래도 다행이다. 내일이면 어차피 산행은 끝이니까!
장터목 방향에서 한 사람이 온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 번갈아 사진 한 장씩 찍어주며 물어보니 내 예감대로 동쪽의 봉우리는 천왕봉이며 서쪽의 봉우리는 반야봉이란다.
나는 하늘을 열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어제 같아서는 산행 내내 빗속을 헤매게 될 줄 알았는데, 하늘을 열어주시어 감격스럽게 운해도 보았고 일부이긴 하나 천왕봉도 보았으며 설경에 고사목, 첩첩 산중에 피어오르는 안개도 보았으니.......!
다시 한번 내일 새벽의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다시 출발을 하여 연하봉을 거쳐 17시가 넘어서, 좀 지체를 했다 싶어 걸음을 재촉했더니 바로 발 아래로 장터목 대피소의 지붕 끝이 보여 기분을 좋게 하였다.
# 장터목 대피소(17:15)
사무소에 신고를 한 후 사용료 5,000원을 내고 숙소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더운 기운이 기분 좋게 나를 포근히 감싼다.
어제 자던 벽소령 대피소보다는 난방상태가 훨씬 좋은 것 같다.
여긴 천왕봉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 때문인지 벽소령 대피소와 달리 사람이 꽤 많다.
170명이 정원인데 사람이 많지 않아서 위층은 사용을 안 하는 모양으로 난방을 약하게 하는 것 같고 난방이 잘 된 아래층의 남자 숙소는 거의 자리가 다 찾다.
저녁을 지어먹는데 식수가 중산리 쪽 계단 저 아래에 있는 것이 좀 불편하다.
대충 해 먹고 치우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아가씨가 말을 건넨다.
“아저씨, 둥굴레차 한잔 드세요.”
바라다보니 조금 뚱뚱하고 안경을 쓴 아가씨다.
혹시 어제 낮에 연하천 산장에서 허브차를 준 그 아가씨인가 하고 살폈더니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같은 사람은 아니다.
난, 왜 이렇게 인기가 좋은 거야?
가는 곳마다 아가씨들이 차라도 한잔 주지 못해서 안달을 하니!
잘 생긴 것도 죄는 큰 죄이라니까!
천재적인 나는 이 시점에서 또 하나의 위대한 이론을 정립해 내었다.
‘어제 뚱뚱하고 안경 쓴 아가씨가 나에게 차를 한잔 주었다. 오늘도 뚱뚱하고 안경 쓴 아가씨가 나에게 차를 한잔 주었다. 고로 안경 쓰고 뚱뚱한 아가씨는 모두다 마음씨가 착하다.’
아, 이 얼마나 훌륭한 이론인 것이냐?
이 세상의 모든 뚱뚱하고 안경 쓴 아가씨에게 만복이 있을 진저!
여러분, 뚱뚱하고 안경 쓴 아가씨를 예쁘게 눈 여겨 보아주세요!
이곳 대피소는 난방 상태가 좋아서 담요를 두 장만 빌렸다.
벽소령에서는 직원이 와서 소등을 하고 소등을 하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깜깜했는데 여기는 자율이다.
또 불을 꺼도 조그만 소등 전구가 항상 켜져 있고 비상구 불빛이 밝아서 좀 거슬린다.
다시금 여기 저기서 코고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건만 나는 이틀간에 걸친 산행에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밖에 나가 신발장에 벗어놓은 흠뻑 젖은 등산화를 가져다 속에 화장지를 뭉쳐 넣고 어제처럼 또 매달아 놓았다.
내 옆에 누운 사람은 겨울 침낭을 가져왔는데 방안이 덥다고 꺼내지도 않고 그냥 베개만 베고 잔다.
나도 팬티 바람에 담요 한 장만 덮고 누웠건만 훈훈하기만 하다.
나중에는 어떤 사람이 더워서 잠이 안 왔던지 출입문을 한 뼘쯤 열어놓고 와서 잤다.
자정쯤 되어서 화장실도 들릴 겸 내일의 천왕봉일출을 알아보려고 밖에 나와 하늘을 보았다.
바로 머리 위에 북두칠성 별 일곱 개가 주먹덩이 만하게 보이고 하늘이 맑다.
다시 한번 삼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우리 가문에서는 오대 이상에 걸쳐 덕을 쌓았으니 꼭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들어왔다.
<1월 18일 -금요일->
# 천왕봉 일출(05:20)
어제처럼 1-2시간 정도 눈을 붙였는데 5시쯤 되니 사람들이 일어나서 부산하게 움직인다.
아마 천왕봉 일출을 보려고 서두르나 보다.
나도 조금 더 누워 있다가 5시 20분쯤 일어나서 갈 채비를 했다.
다시 돌아올 것임으로 배낭과 짐은 그대로 두었다.
날씨가 별로 춥지 않으니 폴라티 하나에 바람막이로 오버자켓만 걸치고 장갑, 아이젠, 헤드램프, 스톡, 사진기를 챙겼다.
참 이번 산행은 한 겨울 산행임에도 아직 장갑과 아이젠을 한번도 써먹지를 안았다.
비만 안 왔으면 모자도 써먹을 일이 없을 뻔했다.
등산화를 신으려고 매달아놓았던 것을 내리니 아직 축축한 채였다.
오늘도 아침부터 발이 젖을 것 같다.
천왕봉 방향으로 벌써 불빛이 여러개 보인다.
내가 늦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새벽이라 얼어있는 곳이 있을 것 같아 아이젠을 아예 착용하고 출발을 하였다.
한참을 올라가니 전에 만난 적이 있는 스님들이 길 옆에 누구를 기다리는지 서 있다.
나는 계속 걸었다.
고사목이 즐비한 제석봉에 올랐다.
불빛으로 안내판의 글을 읽어보니 50년전만 해도 숲이 울창하여 낮에도 어두웠었다고 하는데 도벌꾼들이 나무를 자르고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불을 질러 태워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일로 인하여 돈을 얼마나 벌어들였는지 몰라도 그 작은 일이 이렇게 오래도록 피해를 입힐 줄을 알고나 했겠는가?
참으로 자연보호는 어려서부터 가르쳐 뼛속 깊이 새겨 훼손을 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제석봉 정상 부근에 도착하였다.
한쪽 발의 느낌이 이상하여 손으로 더듬어 보았더니 아이젠 한 쪽이 벗겨져 도망갔다!
이런, 제길! 갈길은 멀고 시간은 급한데, 또 오늘 하산 길에는 꼭 아이젠이 필요할 텐데 걱정이다.
별수 없이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면서 불빛을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백여m 쯤 내려가서 어렵사리 찾아내었다. 참 다행이다.
다시 제석봉 정상에 도착하니 숨이 찬다.
잠시 쉬면서 맹수의 방법으로 영역 표시를 해 두었다.
천왕봉 정상에서 하고는 싶었으나 거기 가면 사람도 많을 것 같고 그 경외스러운 곳에 가서 불경스러운 행위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미리 해 두었다.
바로 뒤에 스님들이 오는 불빛이 보이고 말소리가 들린다.
날마다 산에서 생활하는 스님들의 체력을 내가 당할 수 있으랴!
나는 뒤쳐질까봐 걸음을 재촉했다.
어두운 길 2Km도 꽤 먼 거리인 것 같다.
아래에서 볼 때는 제석봉 하나만 넘으면 바로 거기 같은데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하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어둠 사이로 전에 한번 와서 사진을 찍고 간 적이 있는 천왕봉이라 써있는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힘있게 올라서니 아니, 세상에!
또 내가 세계 최초다.
이미 올라온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 알았더니 아무도 없다.
오늘 아침에 지리산 천왕봉에 제일 먼저 오른 사람은 감격스럽게도 내가 세계에서 최초인 것이다.
시계를 보니 6시 20분, 한바퀴를 돌아보았다.
멀리로 어딘지 모를 도시의 불빛이 몇 군데 보이고 드문드문 있는 산골 마을의 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곧이어 스님들이 올라왔다.
바람도 거의 없고 별로 춥지는 않으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조금 춥다.
오버자켓의 모자를 썼다.
무려 한시간 가량을 기다리니 사람들이 많이 올라오고 날이 완전히 밝았다.
다른 사람들은 5시경에 일어나서 아침을 해먹고 짐을 꾸려 천왕봉에 올라와 일출을 보고 이내 하산을 하는가 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남들이 밥을 하는 동안에 올라와 버리는 바람에 한시간 이상을 미리 올라온 것이다.
날씨가 춥지 않았기 망정이지 춥고 바람이 불었더라면 동태가 될 뻔하였다.
구름은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낮게 깔렸다.
일출 사진을 찍어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구름이 전혀 없이 아주 맑은 날씨는 찍어 봤자다.
영 분위기가 별 것 아니다.
해가 뜨는 위치만 적당하다면 오늘 정도의 구름이 있는 것이 가장 좋다.
드디어 7시 30분경 해의 위치 일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붉게 빛난다.
점점 붉은 기운이 강해지는데 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더 남쪽으로 구름이 두터운 사이 조금 터진 공간으로 둥근해의 일부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아 아,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결국 우리에게 지리산 제1경인 그 장엄한 천왕봉 일출을 허락하지 않으신 거다.
나는 그나마 태양이 사라지기 전에 사진을 몇장 찍어 두었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우리 가문이 쌓은 5대에 걸친 덕이 너무 많았나?
5대의 덕 중 혹시 악덕이 섞여있지는 않았나?
그렇다, 맞아! 거기 천왕봉에 올랐던 다른 사람들이 덕을 못 쌓은 탓일 거야!
‘착각은 절대적 자유를 수반하며 이를 근거로 처벌할 수 없다’고 Mushikan 하버드 법대 교수가 말했다는 설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아쉽기는 하지만 운해 사진을 몇장 더 찍고 하산을 했다.
지리산 능선을 기준으로 운해는 남쪽으로만 퍼져있고 북쪽에는 전혀 없는 것이 신기하다.
남쪽이 바다와 가까운 것이 관계가 있는 것일까 생각을 해 봤다.
# 하산(10:10-13:00)
다시 장터목에 도착하니 9시가 넘었다.
천천히 아침을 지어먹고 10시가 넘어서 옛 중국 진나라의 도연명이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벼슬을 집어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갔듯이 천안의 달빛은 ‘잘있거라, 지리산!’을 읊으며 고향을 향하여 백무동으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내려오는 길은 아이젠이 없으면 곤란하겠다.
너덜길이 눈이 있어서 미끄러지면 다치기 쉽겠다.
한참을 내려와 참샘을 지나니 눈이 많이 녹아서 아이젠을 벗었다.
좀더 내려가 작지만 아담하고 멋진 현수교 너머 하동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여기서부터는 전혀 눈이 언제 왔냐싶게 하나도 없다.
이젠 경사도 별로 없는 길이다.
봄날인 듯 푸른 대나무 숲이 싱그럽다.
바로 백무동인 것이다.
# 맺는말
나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몇 가지 콤플렉스가 있다.
남에게 산에 대하여 많이 말하면서도 우리나라 산을 대표하는 설악산, 지리산에 대하여 화제가 바뀌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아하면 그뿐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잘 알지만 마음 같지 않은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래서 늘 지리산 종주를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체력도 의심스럽고, 특히 짊어지면 맥을 못쓰는 약점 때문에 선 듯 나서지를 못했었다.
지난해 등산교실을 마치고 나서 나도 남만큼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실행이 어려워진다는 생각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초행인 나로서 첫째 날 깜깜한 어둠 속에 나 혼자 만 성삼재 화장실에 내팽개쳐졌을 때, 또 오락가락하는 빗속을 하루종일 혼자 걸을 때는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고, 깨끗한 눈이 덮인 길을 혼자 걸을 때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 듯한 착각도 있었다.
다음에 또 장거리 산행을 한다면 등산화와 스톡을 좋은 걸로 새로 준비하여야겠다.
이제 후련하게 종주를 마치매 신에 대한 감사함과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역시 산행은 단독 산행이 좋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단독 산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였다.
다만 부족했던 것은 남에 비하여 내가 남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적었다는 것이다.
혹한기의 산행인 만큼 강한 추위와 수북히 쌓인 눈을 경험하지 못한 것, 지리산 전체의 장엄한 풍광, 천왕봉 일출 등 아쉬움도 많았지만 이 또한 신의 배려가 아닐까?
<끝>
첫댓글 너무 길어서 내가 바쁜 관계로 오늘은 벽소령대피소에서 하산하겠
갔다와서 읽어보니 지나왔던 풍경들이 보이는것 같아 한결 읽기가 부드럽네...
오늘 벽소령부터 천왕봉을 거쳐서 백무동으로 하산했주의 추억이 평생 잊혀지지 않겠군
첫지리산
감회가새롭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