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하는 순간, 왼손 약지가 뜨끔했다. 얼른 장갑을 벗었다. 약지엔 선혈이 낭자하다. 아리기 시작하였다. 무작정 피 솟는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었다. 멍하니 서서, 낫질하던 순간 벌어진 일을 잠시 되돌아보았다. 상처가 쓰라렸다.
어디선가, ‘상처가 더러우면 잘 안 낫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위 밑에 물이 흐르는 옆 도랑으로 갔다. 여름 늦은 오후, 산골짜기 도랑의 바위틈으로 내려오는 물은 차고 맑았다. 감아쥔 오른손을 풀고, 왼손을 물속에 넣으며 상처를 보았다. 첫째 마디에서 둘째 마디까지 베었다. 낫 날이 얇은 약지 피부를 파고들어, 뼈가 허옇게 드러나 보였다. 덜컥 겁이 났다. 상처 부위를 대강 씻었다.
멈추던 피가, 씻는 바람에 다시 솟아났다. 물이 차가워 선지 상처가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뼈 드러난 손가락에서 나온 피가, 흐르는 도랑물에 처음 보는 야릇한 붉은 그림을 그리며 흘렀다. 피와 물이 그려내는 그림은 살아 움직였다. 내 몸의 피가, 석간수에 섞이며 피어나는 살아있는 그림을 오도카니 바라보았다. 꿈속에서나 보았던 그림일까. 다가올 날들의 환영(幻影)일까.
저 건너 푸른 논에 서산 그늘이 길게 다리를 펴기 시작했다. 반쯤 찬 꼴망태를 메고, 씻은 상처를 거머쥔 채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가는 오솔길 위 하늘은 어느새 핏빛이다. 엄마께 얼마나 걱정을 끼쳤는지, 어떻게 치료했는지 등의 기억은 잊었다. 아마도 옥시풀로 소독하고, 머큐로크롬액을 발라 붕대를 감았을 터다. 그 옛날 농촌 아이들은 다쳤을 때, 웬만한 상처는 다들 그렇게 치료했으니까.
피는 왜 붉을까. 어릴 때는 피가 그냥 붉은 줄 알았다. 왜, 무엇 때문에 붉은지 하는 따위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훗날, 학교에서 붉은피톨과 흰피톨을 배우며 피가 붉은 이유를 알았다. 바로, 붉은피톨 안 헤모글로빈의 철 성분이 붉은색을 띠게 한다는 것이다. 더 알고 싶어 포털사이트를 검색했다. 내용을 줄이면 이렇다.
헤모글로빈은 복합단백질로서, 한 분자(分子)에 네 개의 철 원자(原子)를 가지고 있다. 이 철 원자가 산소분압이 높은 폐에서 산소와 결합하는 일을 한다. 헤모글로빈 한 분자는 네 분자의 산소와 결합한다. 산소분압이 낮은 체내 조직에서는 산소를 내어주고, 버려야 할 탄산가스와 결합한다. 산소와 결합한 피는 선홍색이고, 탄산가스와 결합한 피는 검붉은 색이다. 헤모글로빈의 이 정밀한 가역적(可逆的) 생체 화학작용은, 화학실험실 출신인 내게는 참으로 놀랍고 신비롭다.
사람은 살기 위해 숨을 쉰다. 들숨으로 공기 중의 산소를 붉은피톨에 주고, 날숨으로 붉은피톨이 가져온 폐기물 탄산가스를 밖으로 내보낸다. 세포가 사는데 필요한 산소를 가스교환소 폐포로부터 받아, 몸 조직의 곳곳에 나르다 주어 세포를 살리는 붉은피톨…. 그는 헤모글로빈이란 배달 차에다 철 원자란 가스통에 넣은 산소를 싣고, 몸 구석구석 세포에 바지런히 배달하러 다닌다. 때문에, 붉은피톨은 생명의 수호천사이자 생명소다.
셋방살이하던 결혼 삼 년 차, 자력으로 첫 우리 집을 지을 때다. 어린이날 새집에 쓸 목재를 사러 갔다. 데리고 간 첫 돌 박이 맏이가, 목재상에서 놀다 넘어지며 콧잔등이 받침 각목에 부딪혀 찢어졌다. 유혈이 낭자하게 벌어진 작은 코의 아랫부분이 덜렁덜렁하였다. 급히 달려간 병원에서 부분마취도 덜 된 상태로 네 바늘을 꿰맸다. 겁에 질린 아이는 굵은 바늘이 생살을 파고드는 고통에 자지러지듯 울며, 땀을 뻘뻘 흘렸다. 그 와중에, “됐다! 가자! 집에 가자!…”라고 계속 절규했다. 가슴 철렁하던 아픔이었다. 우리 첫 집은, 이렇게 맏이의 어린 붉은피톨이 스민 집이 되었다.
인간사회는 철과 어떤 사이일까. 사람이 살려면 우선,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한다. 철기시대 이후, 의식주 해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원재료가 바로 철이라는 것은 기지의 사실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철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재가 되어갔다. 생활 용구와 도구, 집과 건축물, 생산 및 운송시설과 장비, 사회간접자본, 무기 등 삶의 온 분야에 빠짐없이 쓰였다. 철은 현대문명이 사용하는 금속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현대과학 문명사회는 철을 빼고는 생각도, 성립도, 지속도 할 수 없다. 철이 있기에 현대사회란 유기체는 살아 움직인다. 그러니 철은 현대사회의 생명소 붉은피톨이다.
붉은피톨 하나에 2억 8천만 개의 헤모글로빈이 있단다. 이것은 그 안에 철 원자 11억 2천만 개가 있다는 뜻이다. 현대사회의 철 사용처를 일일이 찾아본다면, 마치 붉은피톨 안에 철 원자가 많듯 그렇게 많을 것이다. 만일 인체에 철분이 부족하면 빈혈 같은 병증세가 오듯, 현대사회도 철이 부족한 곳은 사고와 재난으로 오는 게 아닐까. 우리 사회만 하더라도 철 자재를 제대로 쓰지 않아,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고 같은 큰 불행을 겪었다.
왼손을 펴고 약지의 상처를 쳐다본다. 반세기도 넘는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제법 선명하다. 꼴 뜯으러 가서 놀다가 해가 서산을 베개 삼아 누울 때야 정신이 들어, 허겁지겁 낫질하던 그 여름 그 오후. 마음은 엄마의 칼국수 꼬리에 가 있어, 그만 손가락을 베었던 치기 어린 소년이 아직도 가슴속에 살아있음은 웬일일까.
자기 손가락에서 솟아나는 붉은피톨이, 흐르는 맑은 도랑물에 그려내던 몽환적 그림을 응시하던 날…. 그림은 훗날 현대사회의 붉은피톨, 철을 만드는 제철소에서 일할 예지몽이 아니었을까.
- <에세이 21> 2022. 봄호 발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