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답사보고서
20055485 사학과 3학년 이 승훈
한국 불교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특히 탑과 불상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이다. 갓 편입하여 사학과에서의 첫 번째로 맞이했던 춘계답사에 비해서 이번 답사에서는 어느 정도 숙달된 자세에서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었다. 춘계답사에서는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불교문화에서부터 동학농민운동까지 폭 넓은 시대의 유적을 답사한 데 비해 이번 추계답사에서는 신라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전반적인 불교문화에 대한 유적답사가 중심이 되었다.
답사 첫날 오전부터 비가 내려서 답사에 지장을 줄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남쪽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날씨가 맑아지는 것이었고, 아직 가을이 오지 않은 듯한 주변의 울창한 자연풍경과 경주에 도착해서는 더없이 맑은 풍경이 우리들의 답사를 반기는 듯하였다.
첫 번째로는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종합적으로 신라의 문화유적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마치 답사에 있어서 마인드맵으로서 설명을 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불상, 토기, 각 유적지의 출토유물들과 국가지정문화재들 등 너무나 많은 보물들이 있었지만 일정에 쫓겨서 자세하게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다음에 분황사에 가서 분황사 모전석탑을 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큰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재 3층 규모인 저 모습이 실제 크기인 7층이나 9층의 규모일 것이라는 생각에 허공에 탑의 실제 모형을 그려보면 더 대단할 것 같았다. 왜 전탑형식을 모방하면서까지 어렵게 석탑을 제작하였던 것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황룡사지다. 황룡사지는 진흥왕 때에 지어진 신라 최대의 절터로 백제의 미륵사지와 라이벌구도를 이루었던 절이다.
안압지는 신라의 왕의 유원지였던 연못인데, 나는 “이렇게 멋진 연못이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구나!”하고 감탄하였다.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을 비롯한 신라 왕릉들이 모여 있는 대릉원은 글자 그대로 큰 무덤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도굴을 막기 위한 무덤의 형태 등 어렸을 때 알지 못했던 것을 지금에서라도 알 수 있어서 큰 보람을 느꼈다.
이튿날 장항사지를 들렸다가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을 보기 위해 험준한 길을 올라갔다. 그 위에서 본 절경은 잊을 수가 없다. “아직 경주에는 가을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사방에서 외쳐대는 듯한 울창한 숲이 산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었다.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365일 매일같이 수행을 하기위해 석굴을 조성하였다고 하니 그야말로 지극한 정성이었다.
기림사는 대적광전, 약사전, 명부전, 관음전 등을 두루 갖추고 있는 큰 절이었다. 고려시대의 절로서 당시에는 불국사보다도 더 큰 절로써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에 와서는 불국사복원과 광복이후 교통의 불편성으로 불국사의 말사가 되었다고 했다.
셋째 날, 포석정을 들러서 이번 답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경주 남산에 올랐다. 궁궐의 남쪽에 위치했다하여 이름 붙여진 남산은 신라시대 서민불교의 근원을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기도 하였다. 처음 우리를 맞이한 것은 경주배리석불 입상이었다. 이 삼존불의 가운데의 본존불이 취하고 있는 수인의 형태는 석가모니불이 취하는 통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좌 ․ 우의 협시보살이 각각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인 것으로 미루어 아미타불이라고 봐야 한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이처럼 신라불상은 불교의 정형에서 벗어난 예외성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남산을 오래 오르다보니 삼릉계곡 선각육존불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내세를 주관하는 아미타3불과 현세를 주관하는 석가3불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이 신라시대 서민들의 불교신앙심의 어떤 측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측면이란 아미타신앙과 석가신앙의 융합성이다.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에도 극락왕생하기위해 이 선각 육존불을 조각하고 그들만의 불교신앙을 키워나간 것이 아니었을까?
뜨거운 태양아래 땀을 흘리며 더 올라갔다. 이어 만난 것은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이었다. 시선의 방향이 서쪽(서방정토)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아미타불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조각수법이 세련되지 못하고 미완성 작품인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이렇듯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지 못했기에 세련된 작품을 구현해 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추측도 해본다.
그러나 다음에 보게 된 용장사지는 통일신라 초기에 창건된 법상종 사찰로 남산에서 유일하게 정치사상이 들어가 국가의 지원을 받은 곳이다. 이곳에서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남산 꼭대기에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있었는데 불상에 맞는 탑을 세울 공간이 없어서 남산을 수미산이라고 생각하고 산위에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용장사 터로 내려왔는데 이곳에서 절벽위쪽으로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고개를 내밀고 서있는 듯하였다. 정말 멋진 진풍경이었다. 당시 용장사가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었음을 김시습의 시에서 알 수 있었다.
남산의 마지막 코스인 용장사곡 석불좌상은 목이 없기 때문에 어떤 불상인지 알지 못하지만, 북 모양의 3개의 원형대좌석과 받침을 쌓아 그 위에 좌상이 위치한 모습이 화순의 운주사의 와불과 형식이 같지만, 형식이 같다고 미륵불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삼국통일 때 신라에서 교리를 토대로 정치하였던 촉망받던 교리가 화엄종과 법상종이었으므로 아마도 그와 관련된 불상형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산을 내려왔다.
경덕왕 대 나라가 안정되어 본존불을 세워 신라의 불교를 종합화한 극락이 구현되는 세계인 불국정토 사찰 불국사가 답사의 마지막 코스였다. 화엄종, 법상종 등 5개의 불교사상을 통합한 종합사찰이기도 한 불국사는 어렸을 때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통일신라시대 신하들을 모아놓고 화엄종을 강의했던 무설전부터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비로전, 없는 줄로만 알았던 나한전까지, 그리고 불국사를 굳건히 지키는 듯한 석가탑과 다보탑까지 모두 자랑스런 우리의 불교유산이었다.
경주의 불국사나 석굴암 같은 잘 알려져 있는 유적들뿐만 아니라 남산의 불교신앙과 같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유적을 탐방하고 느낀 것은 첫째로, 아미타신앙과 석가신앙의 융합성. 둘째로, 일반화를 시킬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정형적 협시보살 형태를 뛰어넘음(기림사)). 셋째로 이런 유적들을 보면서 깊이 탐구하는 자세의 필요성 등이었다.
답사코스가 신라의 전반적인 불교문화 즉, 서민적, 귀족적인 문화와 화엄종, 법상종, 등의 교리불교의 종합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특히 불국사가 신라불교의 통합적 성격을 가진 사찰로 앞의 3일간의 불교유적지를 종합한 것 같아서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참 관심이 많은 부분에 대한 답사여서 그런지 더욱 유익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와, 설명을 듣고도 까먹은게 많았는데 여기 자세히 써주셨네요.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남산에서의 기억 하나하나를 다시 새겨보개 해준 글이네요 ㅇ>-< 제가 글을 쓸때는 답사지를 봐도 그렇게 생각이 잘 안떠올랐었는데, 남산에서 느꼈던 산바람과 햇살이 다시 느껴지는 기분이 나게 해주는 글입니다. 정말 잘 봤어요. 저도 선배님처럼 불교에 관해서 좀 더 좋은 안목을 보고 다음 답사를 다녀왔으면 좋겠습니다
잘 봤습니다.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데 큰 도움이 된거 같아요^^
남산에 있는 세밀한 선각이나 투박한 선각이나 다 복을 비는 바램으로 만들었고, 바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을거라 봅니다. 남산에는 의외로 서민적인 면들도 많은데, 그런 것들도 보셨네요~잘봤습니다.
설명을 자세하게 써놓으신거 같네요..전 이번에 경주에 정말 가고 싶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상 못갔어요.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