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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6일은 벌초와 태풍 산바로 산행을 할 수 없었는데 정기 산행을 거르면 안 된다는 제주흥사단의 약속을 깰 수 없어 한 주 뒤인 23일 실행하게 되었다. 하늘은 맑게 개었고 비교적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지난 한 달간의 대지를 온통 삶아 버릴 것 같던 더위를 잊게 하는 상쾌한 날이었다. 집결지인 봉개초등학교 교정에 도착한 시각은 집을 나선지 1시간만인 5분전 아홉시였다. 모인 사람은 때를 넘어서인지 겨우 네 사람. 매 산행마다 구운 독새기를 가져오는 단우는 오늘 20개를 가져왔는데 남겠다고 한탄 아닌 한탄이었다. 오름대장님 말씀은 비교적 오르기 수월한 오름이라고 먼저 안새미를 오르고 섭섭하면 거친오름까지 가자고 했다. 일행은 하나같이 ' 대장을 따르겠다'하고 출발했다. 안새미(봉개동 소재, 해발 396.4m, 둘레 1718m, 비고 91m) 등반로 입구에서 차를 내렸다. 입구에는 이름 유래가 되는 샘(조리새미)이 있었고 삼나무 판자로 울타릴를 두르고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샘에서 흘러나온 물을 저수한 연못가 난간에 둘러앉아 구운 달걀을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을 넘기는 그 풍치는 이태백이 호수에 배 띄워 달을 보고 술 마시는 기분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한 잔을 넘기고 등반길을 오르는데 계단 양 옆의 나무들과 그 밑에 꽃을 피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기화요초들, 특히 물봉선의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머리 숙인 꽃태는 무언가를 생각해 보게하였다. 그런가 하면 40년은 살았음직한 나무가 태풍 볼라벤과 산바의 후려침에 대항하다 쓰러져서 자신의 은밀한 곳까지 드러낸 모습을 보는 것은 아타까웠다.
예상했던 대로 수월하게 정상을 돌아 내려와 샘을 살폈다. 샘은 바위굴에서 나오고 있었다. 콸콸하지는 않지만 밤낮없이 솟는 샘이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굴 입구를 사람이 굽어서 드나들어야 할 만큼 낮은 철문을 달아 놓았다. 그 굴 속으로 들어가서 바위 틈으로 끈질기게 흘러나오는모습을 보고, '많은 샘들이 지금은 말라 버렸는데! 너는 참 제주 샘이구나' 하며 나오는데 그만 머리로 굴 입구 윗지방을 받아 버렸다. 울지도 못하고 참았지만 정말 아팠다,ㅠㅠ
거친오름(荒岳, 해발 618m, 비고 154m, 둘레 3km)은 제주시 봉개동 소재인데 여기를 노루생태공원으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 정상은 가는 길이 없다고 하고 끝이 뾰족한 지팡이는 휴대를 금하고 있었다. 둘레길이 삼중으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정상과 가까운 길을 택했다. 노루생태공원을 둘러보는 셈이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노루가 보였고 아이들이 사철나무 잎을 사서 노루들에게 먹이고 있었다. 겁이 많은 동물로 사람이 가까이 가면 화들짝 도망간다고 26세기 전에 장자가 말했던 그 노루가 사람이 주는먹이를 먹고 사람이 쓰다듬을 수 있게 된 모습에 자연을 이용하는 인간의 지혜가 놀라웠다.
거친오름은 이름이 주는 느낌대로 잡목이 우거지고 골이 많은 오름이었다. 그 험난한 숲을 인공에 의해 헐고 베어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 길을 따라 걸으니 양 옆으로 우거진 숲, 가끔씩 트이는 전망, 산길을 걷는데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간 곳이 없었다. 걷다가 한 곳에 이르러 터를 잡았다. 파인 골짜기를 내리고 오르는 불편(?)을 덜어 주기 위해 나무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 일행은 이 공중난간에 자리를 잡아 가지고 온 간식을 먹었다. 막걸리 한 보시, 싱싱한 과일, 그리고 구운 독새기. 한껏 멋을 내고 행복을 느끼면서 먹는 즐거움! 다시 걸으면서 한 마디. " 이렇게 거친오름까지 걷는 데 장애없이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주니 참 좋다. 좋은 세상이 되었다." 하는가 하면 "이것이 모두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순수한 자연을 파괴한 일이 아니냐, 이래서 이 아름다운 자연이 보존될까?" 하는 푸념. 이렇게 거친오름 아니 노루생태공원을 나와 명도암으로 오르는 길목에 새로 생긴 생이소리라는 아름다운 상호를 갖은 식당에서 푸짐안 쌈정식으로 점심을 먹는 즐거움은 말로다 할 수 없다... 임창효 단우/ 평의회 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