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간역
召我 박정열
세상은 변한다는 말. 세상이 변했다는 말은 황간역에 가면 쉽게 알 수 있다. 변화는 어떻든 시도되고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어차피 변할 거라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옳고 맞는지. 판단과 결정에 따라 차별되고 수용하는 변화를 기대하게 된다. 더욱이 변화는 공유를 지향하는 변화가 그 또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황간(黃澗)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면 소재지이다. 황간 하면 역사가 아주 깊은 고장이다. 황간은 신라 때 소라현(召羅縣)이었다가 경덕왕 때 황간으로 고쳐져 영동군 영현(榮顯)이 되었다. 여러 차례 행정구역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황간이라는 고유지명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물산이나 인구가 계속 유지되고 번성해 왔다는 데 있다.
황간역은 추풍령역과 영동역 사이에 있는 간이역이다. 한때 황간역은 물산이 풍부하여 읍으로 승격한 적도 있다. 황간역이 지금처럼 간이역이 된 까닭은 우리나라가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농촌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농업이 주업인데 젊은이들마저 떠나고 없으니 퇴락하는 촌락이 되었다. 황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농촌에 불어온 거부할 변화의 바람이라 하겠다.
기차를 타고 황간역을 지난 적이 몇 번 있다. 처음은 고향에서 떠나던 때다. 벌써 한 50년이 훨씬 넘었나 보다. 그 후 징집통지서를 들고 상주공설운동장을 가던 때였다. 이제 성령(省齡 70세 古稀의 새말)이 넘어 내 발로 황간 땅을 디뎌 보고 있다. 황간역 풍경은 이채롭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장성과 솟대다. 나무로 울퉁불퉁 투박하게 깎은 장성이 눈을 부라리고 있다. 장성 옆에 막대처럼 기둥을 세우고 가로지른 나무 위에 솟대 둘이 금세 날아갈 듯 자세를 하고 있다. 장성이나 솟대는 나무색이 짙은 흑갈색으로 노구를 이끌고 있다. 역광장에 서 있는 간판이 황간역 근대사를 대변해 준다. [자료출처 황간역 안내간판]
「역(驛) 이야기. 옛 고향 역, 향기 나는 명품역사 황간역은 1905년 경부선 개통 당시 영업을 개시하였고, 몇 차례 확장개량과 신축을 거쳐 1988년에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0년대 황간역은 무연탄, 목재. 흑연 등 화물과 소화물을 취급하여 지역경제 중심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고속도로 개통과 지역 인구 감소로 존폐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던 2013년, 철도고-공사직원들과과 지역주민이 주축이 되어 역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역을 아름다운 시(詩)가 있는 고향 역으로 가꾸었다. 역사 리모델링을 통해 이색적인 맞이방과 갤러리, 무인카페가 생겨났고, 역 광장에 상설 공연 무대도 설치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전국에서 주말마다 많은 관광객이 역을 방문할 뿐만 아니라 일본 철도동호인들이 방문하는 명품 관광역사로 발돋움하였다.」
「지역 이야기. 시와 음악이 흐르는 문화 플랫폼 황간역은 수많은 항아리와 기왓장에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詩)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시(詩)가 있는 역사(驛舍)’로 다채로운 소리와 운율이 가득하다. 2012년 부임한 역장과 지역주민의 부단한 노력으로 쇠락해가던 철도 역사를 지금의 문화 플랫폼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역장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항아리 작품과 1950년대 황간역사 모형이 인상 깊다. 옛 황간역은 삼각 지붕 건물의 출입구를 정면 중앙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치우쳐 배치했다. 외부에서 보면 2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천장이 높은 1층 구조였던 점이 이채롭다.
역사 곳곳에 각종 볼거리를 전시하고 마을 주민 함께 전문음악인과 관광객이 출연하는 소박 하고 따뜻한 음악회가 수시로 열리고 있으며 지역과 사람 그리고 문화가 만나는 테마가 있는 역으로 계속해서 거듭나기를 하고 있다.」
『시와 그림, 음악이 있는 내 마음의 고향 역』 역사 나들문 문틀 위에 걸린 현수막도 한 편의 시다. 이 고장 출신 최정란 시인의 ‘간이역에서’가 납작한 돌 위에 쓰여있다. 달리는 기차와 신호기가 그려진 삽화에 눈이 아리다.
떠나고 보낸 마음이 멀어져간 모퉁이에 / 이렇게 손 흔들며. 머물고 있음은 / 정지된 시간의 늪을 건너지 못함인가 // 뒤돌아서는 길섶 수를 세는 발자국 / 어차피 떠나야 할 주어진 길이라면 / 그림자 밟히지 않는 이 길은 어디인가 // 고요도 끊긴 어둠 두 줄기 평행선에 / 지향도 끝도 없는 불 켜진 시그널이 // 오가는 세월을 맞아 문지기로 서 있는가
–간이역에서- 전문
크고 작은 항아리에 하얗게 적은 수십 편의 시가 시월 한가운데 반짝거린다. 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에 큰 방만한 장방형 공간은 독서실 겸 그림, 농가에서 쓰던 자질구레한 소품들을 앙증맞게 전시한 갤러리가 있다. 이곳에서 합평도 하고 낭송도 하고 작은 문화행사를 하는 공간인가 보다. 여유와 공감이 흐르는 멋진 공간이다.
맞은 편에는 하루 왕복 여덟 번 서는 무궁화 열차시간표가 걸려있다. 플랫폼으로 나가는 문밖에는 조롱박 넝쿨이 올라간 아치는 조롱박 하나를 대롱대롱 매달고 있다. 나무로 깎아 세운 원두막이 머루 넝쿨과 잎에 파묻혀 연륜을 더해가고 있다. 한문수 시인의 ‘황간역’처럼 황간역은 시적 분위기가 여기저기서 뭉글거린다. 김천시인 白水 정완영 동시 ‘외갓집 가는 길’이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기차는
앞으로 가는데
산은 뒤로만 가고
생각은
달려가는데
강물은 누워서 가고
마음은
날아가는데
기차는 자꾸 기어가고.
-외갓집 가는 날- 전문
누가 어떤 마음으로 변화를 시도하느냐에 따라 소통은 달라진다. 또한 공감이 공유되기도 한다. 황간역이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데는 시인 강병규 역장 뜻에 동조하는 분위기는 참으로 큰 힘이 되었을 터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공감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황간역의 변화는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공유의 폭이 넓다는 데서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다.
소통이 가능한 변화. 공감하는 변화는 황간역에서 그 열쇠를 찾아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