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건설의 희망
이제는 40대 중반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된 안면도 아이들을 며칠 전 만났습니다. 30년만의 만남이었습니다. 평택에서, 인천에서, 강화에서 수지와 용인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중장비 운전을 하는 광일이, 과일 가게를 하는 중안이, 방앗간을 하는 상남이, 전기 설비하는 현호, 간판 가게를 하는 상복이, 작은 식당 하는 진환이, 인테리어 한다는 혁산이, 건설 현장 소장인 용숙이, 작은 회사 경리 일을 하는 종미, 남편과 함께 식당 하는 금희, 일찍 남편 여의고 공공근로하며 힘들게 사는 광희, 인쇄소하는 희창이, 작은 생맥주집 하는 인순이, 컴퓨터 부품가게 하는 용광이, 우유 보급소하는 성연이까지 열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30년 전 추억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웃고, 반가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상에서 일컫는 출세한 친구나 부자가 된 친구는 한 명도 없지만, 하나같이 건강하고 성실하게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일한 만큼의 결실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건강했습니다. 결코 남을 속이거나 옳지 않은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는 일 따위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해 보지도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당연하면서도 어찌 그리 고맙던지요.
1978년 안면도 누동학원에서 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중학교 다닐 학비가 없어 진학을 포기한 아이들을 모아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던 누동학원이라는 일종의 재건학교에서였습니다. 대학 선배가 76년에 세운 이 학교에 군대를 제대하고 가서, 1학년 담임으로 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해 11월에 큰 딸이 태어나 1년 만에 안면도를 떠나야 해서 함께 생활한 것은 비록 일 년밖에 안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였습니다.
정식으로 학력 인정을 받지 않은 일종의 야학 같은 재건학교라서 학교 운영이나 교과 운영이 비교적 자유로웠고 아무 통제 없이 마음껏 교육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문집을 내고 연극도 하고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노래도 배웠습니다. 경쟁보다는 함께 어울어져 살아가야 하는 법을 익히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에만 관심 갖지 않고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곁에 있는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기를 익히려고 했습니다. 친구와 나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그런 가운데 친구들 모두의 좋은 점을 찾는 노력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적게 요구하고 더 많이 포용하려고 애썼습니다. 아이들과 덜 다투고 더 많이 껴안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려고 애썼습니다.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인정하고 사랑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저는 1978년 몹시 가난하지만 많이 행복했습니다.
30년 만에 만난 아이들, 국졸 학력을 가지고 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 온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아이들 표정은 맑고 밝았으며 건강한 심성을 가지고 바르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장관같이 높은 자리에 나가기로 한 사람들이 온갖 옳지 않은 방법으로 부귀와 명예를 쌓아 온 사실이 알려져 국민 모두를 실망시키고 마음 아프게 하고 있는 때, 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교육과 희망을 생각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제대로 할 때에만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오늘의 주인으로 대접할 때 그들이 이 나라, 이 사회를 이끌어 갈 내일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매우 힘들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준비하는 교회와 빈들 아동센터 같은 교육기관이 소중합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일이라도 책임져야 합니다. 아이들을 지켜주는 노력이라도 하는 어른을 만났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남을 딛고 잘못된 이익을 얻으려 하거나, 옳지 않은 방법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빈들 아동센타를 지켜보고, 위해서 기도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까닭은 오직 우리의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의 희망 말입니다.
첫댓글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우리의 희망인 아이들,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안면도 바람아래 해수욕장과 언덕 위에 서 있던 누동 학원이 생각납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군요.
큰 감동이 밀려옵니다. 이 땅의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자라 그들이 더 푸근한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겟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