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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1:17
세상의 모든 구조나 집단은 자기 유익을 위해 움직이지만, 교회는 자기가 아닌 타자와 세상을 위해 존재할 때만 의미 있는 곳입니다. 타자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유연하게 이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진리를 전하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신앙의 외형만을 강조하다보면 종교적 형식주의로 이탈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All structures and groups in the world move for their own benefit, but the church is only meaningful if it exists for the other and the world, not for themselves. You must be able to put down yourself and continue flexibly for the benefit of others. You must put down the eternal things in order to convey the eternal truth. If you miss the essence of faith and emphasize only the appearance of it, you are likely to deviate from religious form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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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문화라는 옷을 모두 벗어버리면 본질이 접촉점을 못 찾아 문화 깊숙이 파고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는 위기일수록 원칙을 붙잡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형제들이 기꺼이 바울을 환대해 주었고 첫날은 숙소에서 그냥 잔 것 같습니다(17). 이튿날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보고합니다(18).
Also, if you take off all the clothes of culture, your essence may not be able to find a point of contact and penetrate deeply into the culture. It is a difficult problem. I think that the more we are in a crisis, the more we should hold onto our principles. When Paul arrived in Jerusalem, his brothers welcomed him willingly, and on the first day, he seems to have slept in his quarters (17). The next day, Paul reports on his ministry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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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이방인 선교에서 돌아온 바울을 환영하였고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을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낱낱이 말하자 교회의 대표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20a). 특이한 점은 누가는 이방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언급하지 않는 것과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방인들 가운데 행하신 것들이라고(19)합니다.
The church welcomed Paul back from the missionary work of the Gentiles, and when Paul visited and told him how God performed his ministry in detail, the representatives of the church praised God (20a). What is unusual is that someone does not mention the donations collected by the Gentiles Church, and that Paul did not say that God helped his ministry, but that God did it among the Gentiles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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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주역은 하나님이고 자신은 조연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열정적인 유대기독교인들이 이방지역에서 바울이 율법을 무시했다는 내용으로 또 발끈합니다. 진즉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구원을 위해 이방인들에게 아무 것도 부여하지 말라 고 결정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바울의 전도 방식이 모세의 율법을 배반한다며 못마땅해 한 것 같습니다(20-23).
It means that the missionary is God and he is a supporting actor. However, Jewish Christians, who are passionate about the law, get angry again with Paul's disregard for the law in the Gentile. This is despite the fact that the Jerusalem meeting decided not to grant anything to the Gentiles for salvation. The Jews still seem to have disapproved that Paul's way of preaching betrays the law of Mose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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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의 이방인 사역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온전히 인정했으나 열성적인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 바울에게 성전으로 들어가 서원한 이들의 결례의식을 행하고 삭발 비용을 대신 지불하도록 권했습니다. 목격자로서 현장 음을 대변 한다면 1차 예루살렘 공의회 때 바울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The leaders of the Jerusalem Church fully recognized Paul's Gentile ministry as God's work, but in order to correct the misunderstanding of the ardent Jewish Christians, they encouraged Paul to enter the temple, perform the discourtesy of those who swore, and pay for his shaved head instead. If you represent the sound of the scene as a witness, it means that Paul taught you not to have to obey the law during the first Jerusalem Counc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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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울은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는’ 주장을 반대했지,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니질 않습니까? 바울은 전에 유대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 듯 이번에도 바울은 장로들의 권면을 따랐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과 원칙적으로 충돌하거나 대립하는 것이 아니면 비 본질에 유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 묵상과 하나님 나라 복음을 붙잡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개인과 공동체의 이야기로 써내려갈 필요가 있습니다.
But Paul opposed the claim that "we are justified through the law," right? As if to circumvent Dimode, who was raised under the Jewish mother before, Paul followed the recommendations of the elders this time as well. Unless it conflicts or confronts the gospel of God's kingdom in principle, it must be flexible to non-nature. It is necessary to meditate on the word and hold on to the gospel of God's kingdom and write the story of God as a story of individuals and comm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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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게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하더라도, 타인의 믿음을 고려하여 자신의 행위를 절제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복음의 정신일 것입니다. 선교사의 임무는 현지인을 남기는 것입니다. 건물과 공적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선교의 열매는 결국 얼마나 사람을 키워서 세웠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교회는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되며 본질을 놓쳐 사람 얻는 일을 실패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ven if I have the freedom to do something, if I abstain from my actions in consideration of the beliefs of others, that would be the right spirit of the gospel. The missionary's mission is to leave locals behind. You should not boast of your buildings and achievements. In the end, the fruit of missionary work depends on how many people you raised and built. The church should not lose people because of their non-essential things, and should not lose sight of their essence and fail to gain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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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적 이스라엘은 열방과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깡그리 잊어버렸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기관인데(본회퍼),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의 게토 화 된 집단으로, 스스로 박쥐같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예수를 거부하였고 2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시온이즘’ 가운데 똥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The pedigree Israel completely forgot God's heart for the Nirvana and the nation. The church is the only institution in the world that exists for the other (the main hopper), but the Jews are their own ghettoized group, who went into the cave like bats and rejected Jesus, and 21 centuries later, they are still struggling among Zi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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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성전에서 서원을 끝마치지만 상황은 어째 더 꼬여 가는 것 같습니다(27). 바울을 공격하는 자들은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로 이들은 성전에 있는 바울 일행을 발견하고 무리를 충동 해서 그를 붙잡았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고 합니다(28a). 이방인들은 들어올 수 없는 성전 뜰까지 들어왔다는 말 같습니다. 바울은 무고했고, 유대인들은 순수했고 열정적이었습니다. 모두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으나 오해가 생겼고 피해자가 나왔으며, 복음은 방해를 받았습니다.
Paul ends his vows in the temple, but the situation seems to get more twisted (27). The attackers of Paul were Jews from Asia, who found Paul's group in the temple and caught him on impulse. They say that Paul dirtyed the temple (28a). It seems that the Gentiles came into the courtyard of the temple, where they were not allowed in. Paul was innocent, the Jews were pure and passionate. Everyone did their best, but misunderstandings arose, victims emerged, and the gospel was distur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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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청 한계와 가청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죽을 만큼 맞고 있는데 군중은 그것을 말리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수비를 책임지고 있던 로마 군대의 천부 장은 성전 서북쪽에 있는 안토시아
요새에 있었는데, 성전 바깥뜰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부 장은 백부장들과 군인들을 대동하고 요새에서 계단을 이용해 성전 바깥뜰로 신속히 내려갔습니다(32).
There are so many things that we don't know. So it is important that we acknowledge the limits of city hall and audible. Paul is being beaten to death, and the crowd does not stop him. The head of the Roman army in charge of defending Jerusalem was at Fort Anthosia, northwest of the temple, and you must have heard the sound from the outside courtyard of the temple. So the head of the temple quickly descended from the fortress using stairs (32), accompanied by a hundred commanders and sold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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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때리던 유대인들은 로마 군대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일단 행동을 멈췄습니다. 천부 장은 바울을 체포하고 나서 쇠사슬로 결박하라고 명령합니다(33). 그러자 군중들이 목소리를 높여 저마다 자기들의 주장을 떠들었고, 바깥뜰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바울은 이후 자신이 결코 소동의 원인을 제공한 일이 없다고 변호합니다(24:18). 천부장은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도록 명령했습니다(34). 바울이 계단을 오르자 군중이 폭력을 행사하려고 덤벼들었습니다(35).
When the Jews saw the Roman army approaching, they stopped acting. The Heavenly Father orders Paul to be arrested and then bound with chains (33). The crowd then raised their voices and made their arguments, and the outside garden was plunged into chaos. Paul then defends that he never provided the cause of the disturbance (24:18). The Heavenly Father ordered Paul to be taken into the compound (34). As Paul climbed the stairs, the crowd rushed to use violence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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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은 로마 군인들의 뒤를 졸졸 쫓아가면서 바울을 죽이라고 외쳤습니다.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못 박으라!” 체포되어 수갑을 차는 일은 수치와 두려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 것입니다. 이번 바울의 체포는 군대의 개입으로 바울이 신변을 보호받게 된 셈입니다. 아, 역사와 현실에 맹목적으로 눈감는 지도자에 대한 맹종으로 희생하는 이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을 어찌하오리까? 나는 다른 사람의 목회 적 성공을 언제까지 시기할 것인가? 틀린 것인지 다른 것인지 구분하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The crowd chased after the Roman soldiers and shouted to kill Paul. "Let go of Barabah and nail Jesus!" Anyone who knows that being arrested and handcuffed is shame and fear. Paul's arrest this time means that he is protected by the military intervention. Oh, what should I do that those who sacrifice blindly by blind obedience to history and reality continue? How long will I be jealous of someone else's pastoral success? What kind of attitude is needed to distinguish between wrong and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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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예루살렘 방문(17-26)
a.야고보의 환대와 바울의 사역 보고:17-19
b.율법에 열심인 유대 성도들:20-21
c.야고보의 제안과 바울의 수용22-26
예루살렘 소동과 바울의 체포(27-26)
a.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의 충동:27-29
b.유대인들의 폭력과 로마 군인들의 체포: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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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이르니(17a)
형제들이(17b)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1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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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18a)
바울이 우리와 함께(18b)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18c)
장로들도 다 있더라(1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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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문안하고(19a)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19b)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19c)
낱낱이 말하니(1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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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듣고(20a)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20b)
바울더러 이르되(20c)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20d)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20e)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2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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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21a)
모세를 배반하고(21b)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21c)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21d)
그들이 들었도다(2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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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찌할꼬(22a)
그들이 필연(22b)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2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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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23a)
서원한 네 사람이(23b)
우리에게 있으니(2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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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24a)
그들을 위하여(24b)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24c)
그러면 모든 사람이(24d)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24e)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2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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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25a)
우리가(25b)
우상의 제물과(25c)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25d)
음행을 피할 것을(25e)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2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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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26a)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26b)
성전에 들어가서(26c)
각 사람을 위하여(26d)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26e)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2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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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레가 거의 차매(27a)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27b)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27c)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27d)
그를 붙들고(2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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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28a)
이 사람은(28b)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28c)
이 곳을 비방하여(28d)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28e)
또 헬라인을 데리고(28f)
성전에 들어가서(28g)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2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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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들이(29a)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29b)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29c)
바울이 그를(29d)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2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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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성이 소동하여(30a)
백성이 달려와 모여(30b)
바울을 잡아(30c)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30d)
문들이 곧 닫히더라(3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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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31a)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31b)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3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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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32a)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32b)
달려 내려가니(32c)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32d)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3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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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천부장이(33a)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33b)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33c)
그가 누구이며(33d)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3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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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가운데서(34a)
어떤 이는 이런 말로(34b)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34c)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34d)
진상을 알 수 없어(34e)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3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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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35a)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35b)
군사들에게 들려가니(3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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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36a)
백성의 무리가(36b)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36c)
따라 감이러라(3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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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단단하게_ The essence is hard
비본질은 유연하게_ Non-essential flexible
사랑에 매이다_ be bound b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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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땅 끝을 점령하신 바울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제가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은근히 시기한 자 임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관대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제 고집이 복음전도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나도 사랑하다 죽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천국을 주시겠다고 하였으니 애매히 고난 받고 오해 받을 때 그냥 오해받게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나도 바울처럼 주님의 나라와 새 창조를 경험할 수 있게 하옵소서.
I praise the God of Paul, who occupied Jerusalem, Judea, Samaria, and the edge of the earth. Lord, I confess that I am secretly jealous of the success of others. Now treat people with a generous heart and do not let my stubbornness be a hindrance to the evangelism. Lord, let me also love and die. Because love is stronger than death. He who is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id he would give heaven, so help me to be misunderstood when I am vaguely troubled and misunderstood. So let me experience the kingdom of the Lord and the creation of new things like Paul.
2024.6.17.mon.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