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분실
양 한 석
해마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단풍 꽃이 필 때면 우리 곁으로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이 고마운 손님은 산란기가 되어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헤치고 목적지인 모천까지 무사히 회귀하는 연어들이다. 알을 낳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찾아 먼 바다에서부터 거센 강줄기를 거슬러 하천 상류 얕은 물가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연어에게 주어진 태생적 생존 본능이라 하더라도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갸륵하고 사랑스런 일인지 감탄이 저절로 일어난다. 그들의 필사적인 여정 앞에 숙연해지는 것은 산란과 수정 작업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기력이 쇠하여 생을 마친다는 점이다. 이윽고 죽은 연어는 주변 생태계에 있는 동물의 먹이와 식물의 거름이 되어준다. 심지어 어미 연어의 임무를 마친 사체들은 물속에서 자잘한 조각으로 분해되어 부화된 새끼 연어들의 먹이까지 되어준다. 연어들의 산란기에는 철두철미한 희생적 투신이 따른다. 여기 친환경 도시임을 자랑하는 광역 밴쿠버에 이런 자연의 착실한 순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하천이 여러 곳이 있다.
가을 나무가 단풍으로 물든 오색 꽃잎을 허공 속에 흩날리고 있을 때,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듯 산란하려는 어미 연어들의 마라톤 경주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주의를 바짝 기울이게 된다. 가을비에 젖은 낙엽이 쌓여가면 가까운 하천을 찾아 환영식이라도 하듯 마라톤 경기장을 찾아 나선다. 밀레니엄 라인 스카이 트레인 종착지인 Lafarge Lake- Douglas 역이 있다. 승강장 바로 앞에 넓다란 호수가 훤히 펼쳐지는 광경은 마치 호수 가운데 전철역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전망이 빼어나다. 여기서 십 분 정도 걸어가면 가까운 더글라스 대학 쪽에 인접한 Hoy Creek Trail을 만나게 된다. 첫 순간 원시림에 들어와 있는 듯이 도심 속 가까운 곳에 이런 아름들이 고목이 즐비한 숲길을 걸어가는 경이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숲길은 남과 북 코스로 나뉘어 이어져 있지만 그리 긴 길은 아니다. 흐르는 하천을 끼고 돌다 보면 바로 옆에 주택가 담장이 연결되어 있으며 다른 한 곳엔 연어 인공 부화장과 치어를 방류하는 Hatchury 시설물도 갖추고 있다. 기상 예보가 늘 적중 하는 것은 아니라서 흐린 날 먹구름으로 덮혔던 하늘이 한차례 가을비로 활짝 개인다. 비 온 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니 나뭇잎에 매달린 은 구슬 방울들이 일제히 반짝거리며 순식간 호젓한 숲길을 빛나는 보석의 방으로 변화시킨다. 가다가 어느 나무 앞에 발길이 멈추어 진다. 커다란 나무 밑둥에서 길다란 뿌리 두 줄기가 돌출되어 보인다. 마치 사람의 양팔이 검은 곰 머리를 움켜잡고 쓰러뜨리면서 포획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직 숲에는 야생 곰이 출현하고 있다는 현장감이 실감나게 엄습한다. 숲 속에는 온갖 생물들이 집결된 듯, 숨쉬고 있는 자신도 자연의 일부분라는 영혼의 울림이 일어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유기적 생명체이다. 숲으로 가면 자연과 교감하는 생명력에 감싸여 모두가 신선한 행복감을 누리게 된다. 어느 기계화된 도시 문명 안에서 느낄 수 없는, 생명체와 접촉함으로 얻어지는 상쾌하고도 자유로운 기쁨이 있다. 더구나 야트막하게 흐르는 하천에 돌아와 팔딱거리는 연어들을 목격하게 되면 나의 심장은 넘치는 생명력으로 더욱 힘차게 약동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Hoy Creek으로 돌아오는 연어는 보통 첨(chum)과 코호(coho) 두 종류가 있다.험한 물살을 거슬러 오느라 온몸이 찢기고 뜯겨진 상쳐투성이 연어들은 크기가 거의 팔뚝만하다. 마침내 본향에 돌아와 산란을 마치고 어미 연어들은 최후의 순간을 맞이 한다. 나는 이 자연의 순환 속에 내포된 어떤 법칙 같은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어떠한 곤경을 마주해도 또한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기필코 자기 종족을 보존시키겠다는 목적이 담겨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전쟁을 치루어 가면서 인류 역사는 이어져 오고 있으며 지금도 지구촌 한구석에서는 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다. 지불하지 않고 저절로 생겨나는 성취는 없는 법이다. 끊임없는 투쟁 가운데 설령 손실이 생기더라도 희생과 대가를 엄중히 요구하는 질서가 세상속에서 지켜져 오고 있다. 부화된 치어가 성체 연어로 되돌아오는 확률은 매우 극소수이지만 그 상실의 과정에 상관하지 않고 지금도 이 고귀한 분실은 어김없이 진행되고 있다. 나는 거센 물살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연어의 힘찬 도약과 비상을 보면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와 짜릿한 희열을 느끼곤 한다. 저 거침없는 질주와 점프력은 도대체 어디서, 누구에게로부터 배운 것일까?
또한 연어는 소처럼 자신의 전부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아낌없이 제공해준다. 부위별로 회,구이,탕, 튀김과 절임 등 다양한 요리로 즐겨왔다. 초밥집이 유난히 많은 이 도시에서 연어는 사랑 받아 온 국민 생선이다. 오래전부터 원주민의 중요한 양식이 되어 왔고 오늘날에는 여러모로 가공되어 영양제와 화장품으로 그 용도가
다양하다. 일찍이 이런 연어의 유익함을 알아차린 인간들은 서둘러 연어의 회귀를 돕는 시설을 확충하며 더 많은 연어가 돌아오도록 숲과 하천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쳐가고 있다. 연어는 무턱대고 흘러가는 물길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역행하는 저항적 버릇이 있다. 그것은 바로 번식하고 보존하려는 천성적 모성애 때문일것이다. 상처와 고통을 이겨내는 사랑이 마치 크리스천을 닮았다고 할까? 연어들의 산란 행렬은 고귀한 분실처럼 희생과 헌신이 드려지는 자연의 순환이자 제례와도 같다.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들을 바라보며 나도 어느 덧 본향으로 돌아갈 귀향의 계절에 다가와 있다는 내면의 깨달음이 흐르는 물소리를 타고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