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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모(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부산․경남 모임) |
회의자료 |
일 시 : 2012.10.8 (월) 19:00 장 소 : 사무실 회의실 카페명 : 다음(Daum) → 박정모 | |
전화 : 051) 302-8801 팩스 : 051) 302-8803 | |||
∙ 박정희대통령 기념도서관 건립기금모금 - 부산은행 031-01-032121-0 박정모 |
∙ 회비∙찬조금 계좌번호 - 부산은행 031-12-065269-9 정분옥 | ||
박정희는 독재자이다~ 그러나 그 독재는 국가와 국민과 민족을 위한 독재였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독재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꿈은 '복지사회 실현'이었다. |
1. 경과보고
가. 9월 월례회의 (2012. 9. 3 (월) 19:00)
◦ 주요내용
- 강 연 : 김덕훈 거제중앙신문사 회장의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생존전략'에 대한 강연
- 새로오신 회원 : 강명훈∙강재기∙김기화∙김상오∙김진건∙문정화∙문헌순∙박성도∙박용덕
박준일∙배순옥∙송인복∙오경석∙윤금조∙이강호∙이승권∙이재순∙최명래 이사
◦ 고액회비 및 찬조금 내신 분 (9월분)
금 액 |
내신 분 | |
1,000,000 |
1 |
정분옥 회장 |
310,000 |
1 |
정병호 상임고문 |
300,000 |
1 |
도봉큰스님 |
100,000 |
2 |
최치호 청년위원장, 박선이 사업부장 |
50,000 |
1 |
김해경 이사 |
30,000 |
3 |
배일부 자문위원, 이장호 부회장, 진혜정 이사 |
20,000 |
1 |
강영천 이사 |
◦ 물품 주신 분 - 정분옥 회장 : 과일 (바나나 3box, 수박2)
- 김점수 중앙위원 : 책2권 (일류국가기행, 대한민국의 블랙리스트)
- 금상철 부회장 : 책1권 (문제는 안보야! 이 바보들아)
◦ 회의자료 설명 및 자료제공
- 화제가 되었던 역대 대통령 비유글 - '뭉친 좌파'가 세상을 흔든다
- '희망버스'와 '크레인농성' 후 거덜난 한진重
나. 여성위원회 9월 월례회의 - 2012. 9. 10 (월) 12:00, 다이아몬드 호텔 1층 연회실
다. 양산시지부 9월 월례회의 - 2012. 9. 10 (월) 18:30, 우리농원 (양산시 북정동)
라. 양산시지부 여성위원회 결성식 - 2012. 9. 13 (목) 19:00, 연화정 (양산시 북정동)
마. 청년위원회 결성식 - 2012. 9. 14 (금) 19:00, 다이아몬드 호텔 연회실
바. 거제시지부 9월 월례회의 - 2012. 9. 16 (일) 18:30, 용궁해물탕 (거제시 상동동)
사. 연제구지부 9월 월례회의 - 2012. 9. 21 (금) 19:00, 궁포 숯불갈비
아. 양산시지부 임원회의 - 2012. 9. 24 (월) 19:00, 보성복국 (양산시 북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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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정희 대통령 숭모전당 (기념∙도서관) 건립기금 모금현황
- 관리계좌 : 부산은행 031-01-032121-0 박정모 2012. 9. 30 현재
수 입 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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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출 부 | |||||||||||||||||||||||||||||||||||||||||||||||||||||||||||||||||||||||||||||
과 목 |
금 액 |
과 목 |
금 액 | ||||||||||||||||||||||||||||||||||||||||||||||||||||||||||||||||||||||||||||
기 금 |
32,070,000 |
- |
- | ||||||||||||||||||||||||||||||||||||||||||||||||||||||||||||||||||||||||||||
이 자 |
1,908,315 | ||||||||||||||||||||||||||||||||||||||||||||||||||||||||||||||||||||||||||||||
계 |
33,978,315 |
계 |
- | ||||||||||||||||||||||||||||||||||||||||||||||||||||||||||||||||||||||||||||
※ 31,697,019원 정기예금 - 만기 : 2013. 3. 6 (1년정기예금이자 : 933,276원 발생) 기금 내신 분 (순서 - 금액별, 직위별, 가나다순) : 7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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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전 모으기에 동참하신 분 : 32명
- 관리계좌 : 부산은행 140-12-023999-9 이현주 재무국장 2012. 9. 30 현재
계 : 모금액 549,790 + 이자 615 = 550,405 참여 : 32명 | |||||||
내신 분 |
금 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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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분 |
금 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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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분 |
금 액 |
정분옥 회장 정병호 상임고문 김상훈 고문 박영수 고문 김점수 중앙위원 강순자 부회장 노명숙 부회장 박외숙 부회장 손찬이 부회장 구맹회 이사 권희동 이사 김상섭 이사 문필선 이사 박영수 이사 박한수 이사 변종길 이사 손연자 이사 윤상수 이사 이차희 이사 장복녀 이사 진혜정 이사 남기영 양산회장 천숙희 해운대회장 정기환 거창회장 신천팔 거창국장 성남태 진해회장 김재곤 사무처장 우옥자 여성위원장 박옥희 여성위감사 이현주 재무국장 김도원 여성부장 이찬일 청년위원 전용기 홍보부장 |
93,200 1,460 2,120 8,580 77,590 2,140 75,410 27,810 12,380 31,440 160 760 9,000 4,300 15,040 5,440 19,490 1,600 990 1,250 10,730 8,370 8,770 22,400 19,800 4,150 2,000 27,980 19,000 7,050 4,240 17,750 7,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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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승부를 건 한 초인(超人)의 비장한 생애
◉ 박정희는
- 45세에 임신한 어머니가 끈질기게 지우려 하였던 생명으로 태어나 집권 18년
동안 나라의 운명과 국민들의 삶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몰고 왔다. 兄은 우익
손에 죽고, 부인은 좌익 손에 죽고, 본인은 부하 손에 죽었다. 가슴과
머리를 관통 당하고 남긴 마지막 말은 "난 괜찮아"
- 질풍노도의 시대에 청탁(淸濁)을 다들어 마시면서도 끝까지 순수한 영혼을 유지해 간 그는 더러운 강물을 삼켜 바다와 같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호쾌한 영웅도 아니고 나폴레옹과 같은 전광석화(電光石火)
의 천재도 아니었다. 부끄럼 타는 영웅이고, 눈물이 많은 超人, 그리고 한 소박
한 서민이었다.
- 그는 한국인의 애환을 느낄줄 알고 서민의 숨결을 읽을 줄 안 토종 한국인이었
다. 민족의 한(恨)을 자신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근대화로써 그 한을 푼 혁명가
였다. 누가 그의 무덤에 침을 뱉을 것인가?
박정희와 미국육사(美國陸士)
◉ 1965년 미육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의 일화
- 1965년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 포인트 방문시 일화로 미육사는 외국원수가 방
문하면 특권 하나를 주는 전통이 있다. 주로 즉석에서 생도들의 퍼레이드를 요청하
거나 기념품 등을 받아 가거나 생도들을 상대로 연설을 했던 많은 사람과는 달리,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지금 받은 특권으로, 지금 교정에서 벌을 받고 있는 생도
들을 사면(赦免)하겠다고 요청했다. 이에 교장은 점심을 먹고 있는 생도들에게 학
칙위반으로 벌을 받고 있는 260명의 특사령(特赦令)을 발표했다. 이에 생도들이 기
립박수로 사례하자 박정희 대통령도 식당 2층에서 손을 흔들어 화답을 했다. 당시
기립박수를 쳤던 다수의 생도들이 임관 후 1970~1980년대 모두가 기피했
던 한국근무를 자원했다고 하니 참으로 멋진 대통령이고 멋진 장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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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임금 선덕여왕
- 처참한 전쟁(고구려와 백제와의 전쟁)에 지친 백성들을 구휼사업으로 위로하고 첨성대, 분황사, 황룡사 등을 세워 문화적 자존심을 살리는가 하면 시장을 활성화시켜 나라의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 놓았고 뛰어난 외교력으로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한 실질적인 인물로 여왕은 지혜로웠고, 독신으로서 오직 나라를 사랑했고 백성을 사랑한 한반도 최초의 여왕
1. 어렵게 획득한 왕권
7세기 초엽 신라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었다. 원래 신라의 왕위는 부모 양쪽이 모두 성골이어야만 하는 극소수의 성골들에게만 허락된 자리였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으로 성골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7세기에 들어 왕위계승 자격을 가진 성골은 진평왕의 딸 덕만(후일 선덕여왕)과 조카딸 승만(후일 진덕여왕)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성골남자가 없다는 것은 성골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 성골 다음 계급인 진골 남성 중 유력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그러나 화백회의는 당시 유력한 왕위계승 후보이던 진골의 김용춘을 왕으로 추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평왕의 딸 덕만을 선덕여왕으로 추대하였다. 남성 지배 중심의 고대 사회에 여성이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일이었다. 특히 남성 귀족들만으로 이루어진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덕만공주를 왕위계승자로 지명한 것은 파격 그 이상이었다. 화백회의는 김용춘과 덕만공주를 두고 군왕의 자질을 여러 차례 저울질 하였지만 결국 덕만공주의 능력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다. 나라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왕의 자질, 즉 통치자의 카리스마를 덕만 공주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계급은 성골이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접근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왕위를 덕만 공주는 자신의 능력으로 당당히 획득했다.
2. 탁월한 인재등용
왕위에 오른 후 선덕여왕이 보여준 군왕의 능력은 바로 인재등용에 있었다. 그녀는 남성중심사회의 여성통치자라는 취약점을 자신을 둘러싼 남성들을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해결했다. 선덕여왕 옆에는 그녀의 카리스마 날개 아래 유순하게 그녀를 모시는 두 마리의 맹수가 있었다. 김춘추와 김유신이 그들이다. 선덕여왕은 먼저 김춘추를 적극적으로 발탁하여 옆에 두었다. 왕위를 두고 경쟁했던 김용춘의 아들이었던 김춘추는 선덕여왕에게 가장 큰 정적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김춘추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지 않고 그를 최고의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였다. 김춘추에게 외교전반에 대해 전폭적인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한 것이다. 정적을 곁에 두면서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게 하여 자신에게 이롭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선덕여왕의 탁월한 카리스마요, 용병술이었던 것이다. 선덕여왕 재위 시 김춘추는 단 한번도 왕권에 도전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가장 충실한신하로 성실히 복무하였다. 또 한 명 선덕여왕의 탁월한 인재등용을 보여주는 사람은 김유신이다. 김유신은 원래 신라에게 멸망당한 금관가야의 왕족이었다. 김유신 가문은 가야 멸망 당시 신라의 진골로 편입되기는 하였으나 계급체계에 충실하고 배타적이던 신라의 귀족들에게 멸망된 가야의 왕족은 쉽게 받아 들여 지지 않았다. 김유신은 명목상 진골일 뿐 차별받는 이방인이었다. 선덕여왕은 그런 김유신을 발탁하여 그에게 군사권 전체를 맡긴다.
신라의 순수 귀족이 아닌 김유신에게 군사권을 맡기는 것은 어쩌면 국가 전체를 위협하는 파격적인 인사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김유신을 능력만으로 평가하고 합당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멸망시킨 왕국의 왕족을 가장 충직한 신하로 삼을 수 있었다. 자신의 카리스마로 그를 충분히 견제하고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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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뛰어난 외교 전략으로 나라를 지키다.
선덕여왕 재위 때 신라는 문화적 전성기를 맞이한다. 웅대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조각들이 이 시기에 속출한다. 정치적 안정이 문화적으로 꽃핀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신라의 국외 사정은 매우 어려웠다. 원래 삼국 중 영토가 가장 작고 국력이 약했던 신라는 고구려의 남하 정책과 백제의 중흥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국가의 존립이 문제되던 시기였다. 이때 선덕여왕은 과감하게 견제와 긴장 속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외교술을 펼친다. 김춘추를 일본과 당나라로 파견하여 고구려와 백제 배후에 동맹관계를 결성해 쉽사리 신라를 침범할 수 없는 외교적 방어선을 형성한 것이다. 이러한 적절한 외교를 통해 국외적으로도 안정을 되찾은 신라는 부지런히 국력을 키워 마침내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4. 그러나 고독했던 여왕
선덕여왕의 정치적 성공은 그녀의 개인적 삶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여왕의 자리에 있으면서 결혼을 하지 않았고 후사를 남기지도 않았다. 결혼을 통해 새로운 정치권력을 만들지 않는 것이 국가 안정에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택한 독신의 길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택한 사랑법이고 통치자로서의 카리스마였다. 그녀는 불리한 입장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절대 놓아 버리지 않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강인하고 총명한 여인이었고 고독을 감수하면서 국가의 안정을 도모한 타고난 정치가였다. 선덕여왕은 새로운 시대로 향해가기 전 징검다리로서 여왕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진 여성이었다.
5. 신라의 문화전성기를 이루어 농업에 접목하다.
첨성대(국보 제31호, 천문관측대), 분황사, 분황사 모전석탑, 황룡사 9층목탑 등 신라 문화전성기를 만들었으며, 특히 첨성대에서 천문을 살피는 것은 계절과 기후를 살피는 것, 이것은 바로 농사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왕이 정확한 농사정보를 제공하고 이로 인해 풍년을 이룬다면 정권 차원에서도 단단히 한몫 하게 될 터였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 고유의 월력을 갖는 것은 바로 자주성의 발현이기도 했다. 실제 조선시대까지도 중국의 역법에 의존하지 않았던가?
6. 중국 황제 태종 이세민을 지혜로움으로 복수하다.
623년 중국의 장안에서 당나라 제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이 신라에서 온 사신에게 이세민이 물었다. "신라의 새 왕이 누구인가?" 신라의 사신이 대답했다. "우리 신라에서는 진평왕의 딸인 덕만공주를 새 왕으로 옹립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세민이 껄껄 웃으며 비웃듯이 말했다. "공주가 왕이 되었다고? 여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다니 신라에는 남자 가운데 인재가 없는 모양이지? 하하하!" 그 뒤로도 이세민은 신라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여자를 왕으로 삼은 신라를 조롱하는 말을 했고 이에 여왕께서 뿔이나 즉각 반월성 동쪽에 절을 지으라 하였고 그 절의 이름을 '분황사' 즉 향기 나는 절이라고 이름 지었다. 여왕이 등극하자 당 태종이 나비가 없는 모란꽃 그림을 보내왔다. 여왕은 금방 알아차렸다. 당 태종이 나를 희롱하는구나. 나비 없는 꽃그림을 보낸 것은 '너는 짝도 없는 일개 아녀자가 아니냐?'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에 여왕은 분황사를 지어 '나는 향기로운 여인이다'고 통쾌하게 반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의 왕을 여자라고 깔보고 비웃었던 이세민의 나라 중국에서는 여자 통치자가 없었을까? 이세민이 키운 당나라에, 그것도 자신의 후궁이었던 여인이 자기 아들 고종의 황후가 되어 측천무후가 되더니 690년 중국 최초의 여황제 무측천이 되었다. 그리고 나라 이름도 당나라에서 주나라로 바꾸고 15년 동안 중국을 다스렸고 이세민이 죽은지 불과 40년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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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역대 여왕 3인
① 선덕여왕(善德女王, ? ~ 647, 재위 : 632년 ~ 647년 = 16년)
◦ 신라 제27대왕
◦ 이름 : 김덕만(金德曼)
◦ 가족관계 :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장녀이며 태종 무열왕과 백제 의자왕의 큰이모
② 진덕여왕(眞德女王, ? ~ 654, 재위 : 647년 ~ 654년 = 8년)
◦ 신라 제28대왕
◦ 이름 : 김승만(金勝曼)
◦ 가족관계 :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 갈문왕과 월명부인의 딸
◦ 즉위배경 : 647년 사촌언니인 선덕여왕이 비담의 난을 토벌하던 도중에 서거
하자 왕위에 오름
③ 진성여왕(眞聖女王), ? ~ 897년, 재위 : 887년 ~ 897년 = 11년)
◦ 신라 제51대왕
◦ 이름 : 김만(金曼) 또는 김원(金垣)
◦ 가족관계 : 경문왕과 문의왕후의 딸이며 헌강왕과 정강왕의 여동생
◦ 즉위배경 : 정강왕이 후사없이 서거하자 정강왕의 유언에 따라 왕위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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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주자들, 노무현의 무엇을 계승하고 극복한다는 건가
민주통합당 손학규 상임고문은 지난 7월 15일 전남대에서 가진 북콘서트에서 "'반성과 성찰없이 돌아온 참여정부'로는 국민의 거덜난 살림살이를 일으키고 상처 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상임고문을 두고 한 발언이다. 손 고문은 "정권을 빼앗긴 데 책임 있는 세력이 반성도 성찰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 핵심에 있던 사람이 박근혜를 꺾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문 고문은 하루 뒤 "참여정부가 실패한 정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규정하는 것은 민주당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되받았다.
열린우리당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532만표라는 역대 최대 득표 차이로 패배하자 친노(親盧) 인사들은 "우리는 폐족(廢族)"이라며 사실상 정치를 접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민심(民心)을 잃어가자 친노 그룹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경남∙충남∙강원지사를 차지하고 수십 명의 수도권 기초자치단체장을 당선시킨 데 이어 올 4∙11 총선을 전후해선 노무현 정부 총리를 지낸 한명숙, 이해찬 의원이 연이어 당 대표 자리에 들어섰다. 폐족이 4년 만에 민주당 최대주주로 되돌아온 것이다.
친노 그룹이 민주당의 명실상부한 대주주로 올라서면서 민주당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 정권은 비판이 금지된 성역(聖域)으로 자리 잡았다. 노 정권의 실정이 민심 이반(離反)을 불러와 어떻게 사상 최대의 참패로 정권을 상실하게 됐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아예 사라졌다. 민주당이 '노사모'의 아류(亞流)인 '나꼼수'와 한 몸이 돼 총선을 치렀다가 새누리당에 과반 의석을 내주고 만 것 역시 이런 무반성의 결과다.
국민은 친노 그룹이 한미FTA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같은 정책을 노무현 정권의 과오(過誤)라고 인정하고 사과까지 했으면서도 이제 와서 노무현을 계승한다는 걸 보고 어리둥절해 왔다.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고자 한다면 노 정권의 무엇을 계승하고 단절하고 극복할 것인지 국민에게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 2012. 7. 17 조선일보 사설
노무현 前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 모음
•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 (2002. 5. 28)
• 한총련을 언제까지 이적단체로 규정해 수배할 것인지 답답하다. (2003. 1. 7)
•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2003. 6. 10)
• 간섭과 침략과 의존의 상징이던 용산 미군 기지가 우리 국민들의 손에 돌아온다. (2004. 3. 1)
•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은 폐기하고 (2004. 9. 5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 북한은 테러를 자행하거나 그 밖의 테러를 지원한 일이 없다. (2004. 11. 12)
• 대포동 미사일이 미국에 가기에는 너무 초라한 것 (2006. 7. 5)
• 북한 미사일 발사는 무력 위협이 아니다. 핵실험도 징후나 단서도 없다. (2006. 9. 13)
-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도 "인공위성일지 모른다"고, 핵실험을 해도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 핵실험임이 판명난 후에도 "성공여부를 알 수 없다"
• 한국의 보수 세력은 주한미군을 인계철선으로 이용하고 싶어 했다. (2006. 10. 17)
• 6.25 전쟁은 내전이다. (2006. 11. 20)
• 北, 공격받지 않으면 전쟁 안 일으켜 (2006. 12. 11)
• "북한이 달라는 대로 줘도 남는 장사" (2007. 2. 16)
• "정말 이 좋은 배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냐" (2007. 5. 25) 세종대왕 함 진수식에서
• NLL에 대해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 (2007.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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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드기처럼 국회에 들러붙는 從北派를 퇴치하려면
통합진보당 구(舊) 당권파가 지난 5월 20일 오병윤 당선자(광주 서을)를 위원장으로 한 당원 비대위를 발족시켰다. 당원 비대위란 구 당권파가 지난 13일 당 중앙위 결의로 공식 출범한 혁신비대위(위원장 강기갑)의 정통성을 사실상 부정하며 자기들끼리 모여 만든 것이다. 오병윤 당원 비대위원장은 "혁신비대위는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면서 "다음 당 지도부가 뽑힐 때까지 당을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반드시 진보 정당의 본령을 되찾아 올 12월 국민이 원하는 정권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은 부정 경선으로 선출된 비례대표 전원을 19대 국회가 시작되는 6월 1일 이전까지 반드시 사퇴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사퇴를 거부해온 구 당권파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에겐 21일 오전 10시까지 사퇴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강 위원장은 지난 18일 이석기 당선자를 따로 만나 세 시간 동안 설득했으나 원하던 답을 듣지 못했다. 구 당권파가 바로 자기들만의 비대위를 띄운 건 사퇴 거부를 행동으로 표시한 것이다. 강 위원장이 약속을 지키는 건 이미 물 건너가 버렸다.
구 당권파가 자기들이 선거 부정으로 당을 망가뜨려 놓고 자기들이 나서서 당을 정상화하겠다는 건 국민∙당∙좌파 내 여론이 어찌 되든 간에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탈당은 생각도 않는다. 어떻게든 당 안에서 버텨 내달 말 전당대회에서 정권을 되찾아 민주당을 계속 끌고 다니겠다는 뜻이다. 만일 집권하면 정부 안에, 집권에 실패하더라도 국회 안에 김씨 세습 왕조를 대변하는 합법적 정치 거점을 마련하겠다는 계산이다.
이석기∙김재연 당선자는 자기들을 당에서 쫓아낼까봐 서울에 있던 당적을 몰래 경기도로 옮겼다. 경기도당은 구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이 여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다. 중앙위는 지난 13일 옛 당규를 바꿔 당원 징계 판정 주체를 그 당원이 소속한 시∙도 당기위로 변경했다. 구 당권파는 그동안 당 운영위가 의결한 비례대표 경선부정 진상 보고서나 당중앙위가 의결한 혁신비대위는 모조리 부정해왔으면서도 징계에 관한 새 당규는 자기들에게 유리하니 이용해먹겠다는 것이다.
구 당권파는 민혁당∙일심회∙왕재산 사건에서 드러난 북한 연계 의혹에 계속 입을 다물고 북한 김씨 정권의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인권 탄압 등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입장 표명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종북파(從北派)들의 구 당권파가 이렇게 억지를 써가며 진드기처럼 국회에 들러붙겠다면 우리 사회도 이들을 퇴치할 살충제를 구하려고 나설 수 밖에 없다.
- 2012. 5. 21자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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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자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