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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3.11:51 木. 흐림
뉴욕, 뉴욕.
햄버거 안에 너 있다, 김밥의 발견.
한식 상차림과 서양식 상차림은 음식의 종류와 맛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서양식 상차림은 시간대별로 호칭이 다르고, 커트러리(식사용 기구)Cutlery나 글라스웨어Glass Ware도 다양한데다가 또 상차림의 격식에 맞춰 드레스 코드(복장규정)Dress cord라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 식사예절로 친다면 교자상을 받게 되면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대님까지 친 채 식사에 참석하는 형국인데, 우리들 눈으로는 많이 불편해보이지만 당사자들은 불편함보다는 그런 격식을 갖춘 모임들을 즐거워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문화의 차이란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하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유럽의 왕실에서 황태자나 왕자들이 결혼식을 할 때 입는 예복을 보면 군복을 입고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결혼 예복이란 가장 성스럽고 가장 인간애人間愛를 품은 옷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예복이든 전투복이든 군복을 결혼예복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들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은 까닭이다. 군복이란 애국을 명분으로 삼는다하더라도 애당초 폭력과 전쟁을 의미하고 있고, 그 바탕에는 철저한 위계질서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계급의식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서 성스럽다거나 인간애적人間愛的이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상실감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에 커다랗고 화려한 훈장을 찬 채 군복을 입고 하는 결혼식에서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별로 상상을 하고 싶지가 않다. 그건 그렇고 서양식 상차림과 한식 상차림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면 한식은 한 상에 모든 음식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는데 반해 서양식은 사이드디시부터 메인디시까지 순서대로 한 품목씩 나온다는 점이다.
상차림이란 식사를 할 때 음식을 놓는 위치나 순서, 종류 등을 말한다. 한식 상차림은 5첩 반상의 외상 차림을 기본으로 반찬의 수에 따라 조절하는데, 밥과 국은 앞줄에 놓고 그 뒤에 장류와 반찬을 놓는다. 오른쪽에 육류와 더운 음식을 놓고 왼쪽에 채소와 찬 음식을 놓으며 뒷줄 가운데 김치를 놓는다. 수저를 오른쪽에 놓되 숟가락을 앞에 젓가락을 뒤쪽에 놓으며 국물이 있는 음식과 장류는 가운데 놓는다. 이렇게 한식 상차림을 복잡하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실제 이와 비슷하게라도 상차림을 해서 먹는 날은 고작해야 일 년에 서너 번 가량이나 될까 말까, 구태여 말한다면 차례상을 차리는 설날과 추석 그리고 제삿날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서양식은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저, 위를 풀어주는 수프, 다음으로 전채요리, 그리고 메인요리와 디저트 등이 차례로 나온다. 위의 상차림 설명을 보더라도 한식 상차림은 서양식 상차림처럼 순서대로 한 품목씩 나올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서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한 상위에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올려놓고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항상 음식을 이렇게 격식을 따져가면서 차분하게 먹을 수만은 없다. 생활양식이 바뀌고 사회구조가 변하면서 빠르고 단순하게 손에 들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만들어졌는데, 서양음식으로는 샌드위치나 햄버거, 피자, 닭튀김, 도넛 그리고 핫도그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져있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햄버거는 넓게는 샌드위치의 한 종류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햄버거만의 독특한 발달사發達史가 있다.
독일의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상인들이 몽골에서 가져온 타타르 스테이크를 모방하여 그 지역 요리사가 다진 육회를 재료로 반죽하여 뭉친 것을 불에 구운 것으로 함박 스테이크 또는 ‘함부르크 스테이크’라고 했다. 이때 ‘Hamburg’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함부르크에서 만든 불에 구운 스테이크 요리’라는 뜻이었다. 18세기 초 미국으로 이민 온 독일 출신 이민자들로부터 이 스테이크가 미국에 널리 알려지면서 함부르크에서 온 스테이크라는 음식인 햄버그 스테이크Hamburg Steak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 때 한 요리사가 샌드위치를 만들던 중 너무 바쁜 나머지 햄버그를 둥근 빵 사이에 끼워 넣어 핫 샌드위치Hot Sandwich를 만들어 판매한 것이 오늘날 햄버거Hamburger의 시초라고 일려져 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손에 들고 있었던 쉑쉑버거는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국 동부지방을 대표하는 햄버거인데, 햄버거 번Hamburger Bun이라고 부르는 둥글납작한 빵 사이에 패티Patty라고 부르는 다져서 구운 고기가 들어있고, 그 위에는 노란 치즈가 엉겨 붙어있는데다 그 위로는 얇게 썰어놓은 토마토와 양상추가 올려져있었다. 사이드디시로는 프렌치프라이와 콜라, 그리고 바닐라 세이크가 함께 식탁 위에 놓여있었다.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햄버거 식단인 셈이다. 그렇게 복잡한 상차림과 식사예절을 갖춘 서양에서도 손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자연스럽게 발달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음식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음식이란 그저 배를 채우고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섭식을 위한 영양물의 단계를 뛰어 넘어 그 시대의 문화코드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생각이나 사조思潮까지 읽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있었다. 비빔밥, 주먹밥, 김밥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비빔밥은 밥상위의 음식들을 한데 모아 섞어서 먹는 음식이었다면 주먹밥은 소금물에 담갔던 손으로 밥을 쥐어 만들었던 음식이었으며, 김밥은 밥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 김으로 싸서 만들었던 음식이었다. 비빔밥은 원래 ‘골동반骨董飯’ 혹은 ‘화반花飯’이라고 불리었는데, 골동이라는 말은 ‘어지럽게 섞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비빔밥은 생각보다 그리 역사가 오래된 음식은 아닐지도 모른다. 비빔밥이 처음으로 등장한 문헌은 그 원본이 1800년대 말엽으로 추정되는 <시의전서是議全書>라는 조리서로 알려져 있어서이다. <시의전서>에는 비빔밥이 한자로는 골동반骨董飯, 한글로는 ‘부븸밥’이라고 표기되어있다. 그런데 비빔밥의 일천日淺한 역사와 더불어 그릇에 담아 먹어야하는 격식의 한계성이나 주먹밥의 단순성에 비해서 김밥은 어디에서나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미국의 햄버거와 능히 어깨를 견주어 비교해볼만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우리가 언제고 언제라도 어디서나 아무 때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김밥의 역사에 대해서 당신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그럼 이제부터 맨해튼 86 St역 부근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 쉑쉑버거 매장 창고형 홀에 앉아 반달의 크기로 한 입만큼 귀퉁이가 베어져 나간 쉑쉑버거를 쳐다보면서 생각을 가라앉혀 김밥의 역사를 상기想起해보도록 한다.
나는 진도에서 1963년도에, 그러니까 초등학교3학년 겨울 방학을 앞뒤로 해서 그 고장 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김은 겨울철에만 먹을 수 있는 상당히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처럼 구운 김이 규격화 된 비닐봉지에 담겨져 있을 리 만무萬無했기 때문에 큰 김에다 붓으로 일일이 기름소금을 발라 숯불에 올려 구운 뒤에 명함만한 크기로 잘라서 접시에 쌓아 상위에 올려놓았다. 바삭하고 고소한 김에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하얀 쌀밥을 한 숟갈 얹고 참기름이 둥둥 떠 있는 왜간장을 한 방울 똑 떨어뜨려 입안에 쏙 넣으면 겨울 밥상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일품의 향기가 입안 가득히 번져났다. 입김을 후후거리면서 서너 번 씹은 후에 사이드디시로 소고기 장조림이나 잘게 찢어놓은 굴비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입안의 풍경이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구워낸 검고 윤기 흐르는 김은 음식이 가지고 있는 본연本然의 품격品格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먹는 마음가짐도 곧고 바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은 관사였는데, 그 집 구조가 참 독특했다. 진도 의원醫院과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던 우리 집은 길에서 짙은 밤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없이 바로 마루가 보이고, 정면에는 큰방 여닫이문과 좌우에는 작은 방 여닫이문이 보였다. 마루에 올라 문을 열어젖히고 큰방으로 들어서면 맞은편에 안쪽에는 미닫이문, 그리고 바깥쪽에는 여닫이문의 이중문이 보였다. 그 문들을 열면 넓은 마루가 나왔고, 마루 아래에는 디딤돌이 놓여있는 토방이 길게 있었는데, 토방 가장자리에는 줄기가 실한 채송화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토방 아래로는 돌계단이 있었고, 그 아래쪽으로 넓은 마당 겸 채소밭과 화단이 있었다. 그러니까 큰길 높이에 맞춰 축대를 쌓아 집을 지었기 때문에 돌계단을 사이에 둔 채 집은 위쪽에 마당은 축대 아래쪽에 있는 독특한 구조의 한옥이었던 것이다. 마당의 오른쪽 절반은 채마밭, 왼편 절반은 화단이었는데, 화단 가운데는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고, 그 주변에는 달맞이꽃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루에 앉아 마당 쪽을 내려다보면 화단과 채마밭을 둘러싼 흙담 너머로 동네의 누른 초가지붕들이 밝고 둥근 보름달처럼 보였다.
그런데 진도에서는 김을 ‘해우’라고 불렀다. 그래서 나중에 지방 사투리처럼 부르는 해우라는 명칭이 궁금해졌는데, 기록을 살펴보니까 김을 해태海苔나 해의海衣라고도 칭했다는데, 바로 해의海衣에서 말소리가 변화된 해우라는 명칭으로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서 생각을 해보았다. 김은 음식으로 완성된 모양이나 형태가 쌈으로 해서 먹는 음식이어서 김을 주재료로 하는 김밥이 우리가 만들어낸 고유음식인지 혹은 일본 유래설이 무게가 있는 것인지는 한 번 조근조근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을 한다.
김밥의 유래에 대해서는 ‘한국고유음식설’과 일본유래설이 있다. 한국고유음식설에서의 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정월 대보름 풍습 가운데 김에 밥을 싸서 먹는 ‘복쌈’이라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밥을 김이나 취나물, 배춧잎 등에 싸서 먹는 풍속에서 유래되었다.’라는 설이 있다. ‘복쌈’이란 정월 대보름날 복福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로 김이나 취에 밥을 싸서 먹는다는 뜻이다. 밥을 김이나 취에 싸서 먹는데, 이것은 복을 기원하는 기복행위와 풍농豐農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의 한 형태로서 의미가 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東國世時記>에 의하면 배춧잎과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다고 전하고 있고 이것을 복과福裹라고 한다. 또 <렬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해의海衣에다 마제채馬蹄菜 등속을 싸서 먹되 많이 먹어야 좋다고 이것을 박점搏占 또는 복쌈이라고 부르니 이것도 기풍의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현대처럼 각종 재료를 넣고 만든 김밥의 형태는 195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복쌈이 정확하게 어떤 형태의 음식인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복쌈과 김밥이 역사적으로 이어지는 음식인지는 확인이 되고 있지 않다. 김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이후 조선시대의 서적인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토산품으로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전라남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으로 기록되어있다. 이러한 자료들로 미루어보아 조선 중기에는 이미 김양식을 시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모습의 김밥은 근대 이후에 많이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본유래설은 일제강점기 때 김에 싸먹는 일본음식인 후토마키太卷き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어 교육을 받은 고연령층에서는 김밥을 노리마키海苔き라고 흔히 불렀다. 본래 일본에서는 김밥에 식초를 섞은 밥을 사용했는데, 한국에서는 참기름과 소금으로 대신하여 정착하였다. 원래는 밥을 간단히 김에 싸먹는 쌈의 형태에서 시작된 것으로 현재의 충무김밥처럼 김치나 젓갈, 국과 함께 먹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일본 김으로 만든 음식인 후토마키의 영향을 받아 속재료를 안에 넣고 먹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일본 마키의 밥은 항상 식초를 섞은 초밥으로 만들지만 한국의 김밥은 김의 한 장을 크게 말아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먹거나 통째로 먹는 통김밥 형태로 먹었다.
인접해 있는 나라끼리 가지고 있는 무형문화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후사쓰요이 박사의 <바다채소>라는 책에서도 일본은 에도시대(도꾸가와시대) 교호 초기부터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초중반 이후부터 김을 취급한 것으로 보여 우리나라보다 훨씬 나중에 김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은 겨우 1700년대부터 김을 취급했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나라는 훨씬 이전부터인 신라시대 또는 최소한 조선전기인 1400년경부터 김을 취급해 왔으니 우리가 일본에 비해 ‘김’이라는 식단문화는 훨씬 앞서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김밥은 김의 특성상 밥을 김에 싸먹는 쌈의 형태로 취급될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김밥의 역사도 또한 우리가 일본보다 더 앞선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먹는 김밥이나 어릴 적 소풍갈 때 싸서 가지고 다니던 김밥을 보아도 우리 김밥은 일본 김밥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김밥은 식초가 들어있지 않은 형태로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고소한 맛을 강조하였고, 썰었을 때의 미적 외형보다는 푸짐하고 탐스러운 맛을 강조한 실용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지금 먹고 있는 우리 김밥이 일본 음식 김초밥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우리 김밥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선호도나 식생활에 맞게 김초밥으로 변형되어 그들에 의해서 다시 전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선명한 증거로 김밥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로 전해져왔다고 주장을 하는데 대해서 우리는 이미 훨씬 이전부터 김을 우리 식탁에 올렸었고, 정월 대보름에는 비록 단순한 형태지만 김밥이 쌈의 형태로 우리 민족이 즐겼던 풍속음식이라는 것을 보면 그 주장은 근거가 희박한 터무니없는 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역사와 전통이 있는 우리 김밥이 유럽사를 꿰뚫고 있는 서양의 햄버거에 견주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 세계 구석구석까지 널리 퍼져있으며 세계인들의 사랑을 오로지 하고 있는 햄버거의 위력에 비해서 김밥의 현재 위상은 왠지 국내용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왜 그럴까? 까만 김밥이 노란 햄버거만 못나서일까? 아니, 결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결정적인 이유란 오직 한 가지, 햄버거가 미국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김밥의 세계화는 손에 잡힐 듯이 눈에 보인다. 자신만만한 한국이 김밥을 만들어낸다면 어느 날 까만 김밥은 미국의 노란 햄버거만큼 힘이 있고 강한 음식이 되어 줄 터이지...
(- 햄버거 안에 너 있다, 김밥의 발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