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35-45>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37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 시작하는 말
어느 교수가 제자의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 내서 수백만 원의 연구비를 받고,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통과시켜 주었다가 해임됐습니다. 일부 스님들이 가짜 연말 정산 서류를 팔아 많은 돈을 번 적이 있었고, 모 스님은 불자의 어린 딸을 성폭행했다가 구속됐습니다. 수행에 매진해야 할 일부 스님들이 주지가 되려고 돈 봉투를 돌렸다가 들통나기도 했습니다. 일부 목사님들도 돈 선거나 헌금 유용이나 음행 등이 들통나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일부 천주교 사제들도 탈선하고, 환속하기도 했습니다. 가야 할 길에서 탈선하는 것은 지식층이나 성직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자녀가 진실하고 성실한 부모를 만나는 것이 매우 큰 복인 것처럼,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은 복입니다. 그러한 복보다 더 큰 복은 현세와 내세를 망라하여 가르치며 인도하는 성직자들을 잘 만나는 것입니다.
2.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야심
모든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고 최대의 복인 주 예수님을 만났으면서도, 길과 진리와 생명의 복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성령을 체험하기 전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몸만 따른 것이었습니다. 마음은 주님을 따른 게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일한 주로 믿지도 않으면서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돈도 벌고 이름도 내는 교수들처럼 이기적인 야심을 가지고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어느 날,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주 예수님께 청탁을 했습니다. 주님이 영광스런 보좌에 앉아 세상 만국을 다스릴 때에 서열 1위와 2위의 감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토록 주님 곁에 있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청탁이 아니라, 영원토록 막강한 권력을 쥐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야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20:20에는, 동료 제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어처구니없고 뻔뻔한 청탁에 그 둘의 어머니까지 가세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칼빈(J. Calvin)은 “이 기사는 인간의 허영심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야심 또는 육적인 잘못이 흔히 올바르고 경건한 열심 속에 뒤섞여져서 주님의 추종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목표와는 다른 목표를 갖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라고 주석했습니다.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가 그토록 세속적인 야심을 갖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영적 무지와 이기적 욕심입니다. 둘째, 아직도 영성이 아니라 세상성에 지배받는 것입니다. 셋째, 베드로와 더불어 핵심 요원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넷째, 다른 제자들과 달리, 아버지 세베대는 일꾼들을 고용할 정도의 유복한 계층입니다. 다섯째, 그들의 어머니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자매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주님과 사촌간이 됩니다.
아무튼, 이유야 어떻든지 그런 세속적 야심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그들의 청탁을 들으신 주님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청탁의 배경이 된 예수님의 메시아성과 메시아 왕국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전적으로 그릇된 것임을 확실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따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되든지 불리하게 작용되든지 상관없이 항상 분명한 태도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둘은 감투욕과 물욕과 명예욕에 눈이 어두워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영적 무지요 영적 우둔입니다.
이 용감한 대답이 영적 무지에서 나온 허세였다는 것은, 막상 십자가를 목전에 두신 주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깨어 있지 못했다는 사실과 체포당하시는 것을 보고는 도망쳐 버렸다는 사실로 뒷받침됩니다.
아무튼, 그들은 성령을 체험한 뒤에 자기들이 뭐가 뭔지도 모르고 장담한바 주님이 예언하신 대로 주님을 위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영예로운 자리는 주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복이나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나머지 열 제자들도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분노한 것을 보면, 그들의 야심 역시 야고보와 요한의 야심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남을 비난할 때, 오히려 자기의 추악한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여당의 돈 봉투 비리를 비난하던 야당 역시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전 정권 때나 그 전 정권 때나 그 전 정권 때나 뭐가 달랐습니까? 초등학생들도 피자 조각을 돌리던데요 뭘? 뒷돈은 엄마가 대고.
열두 제자가 하나같이 그 모양임을 아신 주님이 얼마나 기막히시고, 얼마나 서글프셨겠습니까? 주님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모든 일, 특히 교회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바랍니다.
3. 주님의 제자의 길
제자들의 영적 무지와 몰지각 때문에 몹시 서글프셨음에도 불구하시고, 오히려 주님은 제자의 길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야심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아주 먼바 세상의 권력자들이 국민들 위에 군림하면서 권력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죄와 별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자의 길에 대해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믿음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가치 평가가 전도되는 것입니다. 으뜸 인물이나 위대한 인물이란 남보다 많이 가졌거나, 남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아닙니다. 남들을 많이 섬기는 사랑의 종노릇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해 오셨고, 또한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주님의 주된 관심은 세상에 살 때에 얼마나 놀라운 성공을 했는가, 얼마나 놀라운 출세를 했는가, 얼마나 많이 소유했었는가가 아닙니다. 죽어 심판대에 섰을 때, 주님의 주된 관심은 얼마나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품고, 얼마나 많이 섬기며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 버몬트 주 브리스톨교회에 킹스런드라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80세인데도 매일 교회 건물을 돌아보다가 고칠 곳이 있으면 고쳐 놓곤 했고, 또 옆에 있는 목사관의 난간이나 흔들거리는 문과 문고리 등을 손보아 놓곤 했습니다.
그런 그 노인을 볼 때마다 작은 예수님을 대하는 느낌을 가졌던 담임목사인 박 모 목사님이, “킹스드런 씨, 매일 오셔서 교회와 목사관을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이런 일을 하시면 피곤하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은 “아닙니다. 주님이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보답할 것을 생각해 봤지요. 저는 가난하고, 아무 능력도 없지만, 못질과 톱질은 할 수 있거든요. 저는 기력이 있을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교인들, 특히 목사는 거짓이나 비리나 뇌물 수수로 출세한 사람들을 지지하거나 존경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교회 안팎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웨슬리(J. Wesley)는 이런 준칙을 정해 놓고 살았습니다. ‘네게 가능한 모든 자력으로, 네게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네게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네게 가능한 기간까지, 네게 가능한 모든 선을 다하라.’
감리교도인 우리 모두 주님의 충성된 종이었던 웨슬리의 후예답게 이런 믿음의 정신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의 정신으로 가정 일을, 이런 믿음의 정신으로 직장 일을, 이런 믿음의 정신으로 사업을, 이런 믿음의 정신으로 교회 일을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힘으로,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에게 가능한 기간까지,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선을 다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인생에 성공과 승리의 열매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4. 맺음말
끝으로, 악명 높은 히틀러를 당수로 했던 파시스트 당에 저항하다가 처형된 신학자인 본회퍼 목사가 남긴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성경 말씀은 언제나 당신의 가슴에 울려 있어야 하고, 당신의 생활 속에 날마다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당신이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말을 잊을 수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따지고 분석해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당신도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말씀을 일상생활 속에 받아들이십시오.
<2012. 2. 5.>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절기 설교집 외 20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T. 426-30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