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마후라
최용현(수필가)
‘빨간 마후라’ 하면 90년대 후반에 빨간색 스카프를 두른 10대 남학생 두 명이 한 여학생과 벌인 섹스 장면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일본의 포르노 비디오를 모방한 이 불법복제 테이프는 한때 학원가에서 날개 돋친 듯 유통되었고, 훗날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년)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원조 ‘빨간 마후라’는 1964년에 나온 공군 조종사들의 우정과 사랑을 다룬 영화로, 15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그해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공군사에서 유일한 203회 출격기록을 세우고, 6·25전쟁 때는 승호리철교 폭파작전 등 많은 전투에서 명성을 떨친 공군 조종사 출신 유치곤 장군을 모델로 하여 원로작가 한운사가 극본을 쓰고 신상옥 감독이 연출하였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배 중위(최무룡 扮)를 포함한 9명의 신임 보라매들은 강릉에 있는 공군전투기지로 향한다. 기지에 도착한 이들은 전대장으로부터 공군 조종사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머플러가 표준어)를 지급받고, 편대장이며 직속상관인 나 소령(신영균 扮)의 실전지도를 받는다.
나 소령은 100회 출격 때 장렬하게 전사한 절친 노 대위(남궁원 扮)의 미망인 지선(최은희 扮)이 공군장교들의 단골 바(bar)에 출근하는 것을 보고 가슴아파한다. 나 소령은 지선을 돌봐주겠다고 한 노 대위와의 약속을 상기하며 부하인 배 중위를 지선에게 소개하는데 두 사람은 사귀다가 이내 결혼에 골인한다.
한편, 나 소령의 편대는 적진 깊숙이에 위치한 협곡 사이의 다리 폭파 임무를 맡게 된다. 편대는 1차 출격에서 다리 폭파에 실패하고 적기와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던 중 배 중위의 전투기가 적탄에 맞아 추락한다. 부상당한 배 중위는 낙하산으로 탈출하지만 적진의 산중턱에 떨어진다.
나 소령은 지선을 다시 미망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기(救助機)를 급파하여 가까스로 배 중위를 구조한다. 다시 2차 출격에 나선 편대는 목표물 가까이로 초저공비행을 하다가 나 소령의 전투기가 적탄에 맞고 만다. 나 소령은 불붙은 전투기와 함께 다리에 돌진하면서 폭파 임무를 완수하고 장렬히 산화한다.
이 마지막 장면은 1952년 1월에 실제로 있었던 승호리철교 폭파작전을 화면에 시현한 것이다. 이 철교는 대동강의 상류에 위치한 전략요충지로 북한군과 중공군의 보급물자가 전선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데, 미국 공군 전폭기들이 여러 차례 폭격을 했으나 북한군의 방공망을 뚫지 못하고 다리 폭파에 실패하였다.
우리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가 나섰다. 제1편대의 엄호 속에 제2편대의 6대 F-51 무스탕 전폭기가 극도로 위험한 초저공비행으로 폭격을 감행하여 마침내 승호리철교를 폭파한다. 미국 공군이 실패한 작전을 우리 공군이 성공시킨 이 쾌거는 찬란한 금자탑으로 추앙을 받으며 전설로 남아있는데, 이를 극화하여 ‘빨간 마후라’의 클라이막스로 장식하였다.
이 영화의 주제가인 ‘빨간 마후라’는 극중에 여러 번 나오는데, 극본을 쓴 한운사가 작사했고, 황문평이 작곡했다. 남성 4중창단 쟈니 브라더스가 불러서 크게 히트하면서 자연스레 공군의 군가가 되어버렸다. 이 장쾌하면서도 낭만 가득한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우리 국민은 아마 없으리라. 옛날 노래라서 가사가 3절까지 있다. 1절 가사를 보자.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 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장지량 장군의 회고담을 보면, 극작가 한운사가 신상옥 감독과 함께 찾아와 공군 조종사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며 공군의 지원을 요청했고, 공군에서는 파일럿의 세계를 널리 알리고 우리 공군의 위상을 제고하는 기회로 삼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결정했다. 촬영 세트장으로는 수원비행장을 제공하고, F-51 무스탕 편대도 함께 지원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 영화는 국내의 흥행대박과 아울러 일본과 대만, 홍콩, 태국 등지에까지 수출하여 국위선양에도 크게 기여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단체행사로 20리가 넘는 신작로를 걸어 읍내 극장에서 ‘빨간 마후라’를 처음 보았다. 그때는 ’64동경올림픽경기나 김일의 레슬링경기, 혹은 유명한 반공영화들이 오면 일 년에 한두 번 단체로 극장에 갔었다. 가는 길이나 오는 길에 다른 학교 학생들과 마주치면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나중에 읍내 중학교에 진학하면 그 학생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친구가 되기도 했다.
‘빨간 마후라’를 57년 만에 유튜브에서 봤는데, 다시 봐도 재미있고 박진감이 넘친다. 미망인 지선의 러브스토리도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창공을 비행하는 조종사 뒤의 배경 하늘이 움직이지 않아 세트장에 앉아서 촬영한 티가 나고, 불타는 탱크나 불붙은 전투기도 모형(模型) 티가 난다. 우리나라 영화사상 처음으로 전투기들의 공중전 장면을 보여준 60년대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여 이해를 해야 할 것 같다.
2012년 8월, 영화 ‘빨간 마후라’를 리메이크한 ‘R2B:리턴투베이스’가 개봉되었다. 정지훈 유준상 신세경 등이 출연하여 의욕을 보였고 제작비로 130억 원이 들었으나 흥행에 참패했다. 영화 제목을 ‘레드 머플러’ ‘비상:태양 가까이’ ‘하늘에 산다’ 등으로 바꾸었다가 ‘R2B:리턴투베이스’로 최종 낙점했다고 한다. 참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제목에서부터 최악의 선택을 한 것 같다.
첫댓글 아주 어렸을때 본 기억이 납니다.
네,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을 위로해준 영화였죠.
언젠가 오래전에 티비에서 방영 한
기억이 있는데...
전 이 영화는 못 봤어요
영화소개 책에선 읽어서 내용은 알고는 있지만..
근데 리 메이크 한 영화 를 원 제목 그대로 빨간 마후라.. 라고 했다면?...
그래도 참패했을것 같지요? ㅎㅎ 요즘 시대상 하고 맞지 않는듯 해서요
제목도 문제지만 영화의 리얼리티 라던가 배우들의 캐스팅 도 한 몫 했을듯...
역시 형만 한 아우가 없음인지....
요즘 시대상과는 안맞는 영화죠.
리메이크한다는 기획 자체가 잘못된 거죠,
그때는 전쟁이 끝난지 10년 정도밖에 안된 때라서
공산주의를 쳐부수자고 소리높이 외치던 시대이고,
정부에서도 반공영화를 학생들에게 단체관람 하게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