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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겨울은 |
연출 글 이정수
● 무채색의 겨울, 그러나 생명이 살아 꿈틀대는 겨울 바다
은둔의 시기, 겨울. 육지 생태계의 동식물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이 힘든 계절을 견딘다. 그러나 이 시기, 바다는 한 해를 시작하는 왕성한 생명 활동을 한다. 바다의 계절은 육지와는 확연히 다른 순환구조를 가져 수온이 10도까지 떨어지기 시작하는 1월부터는 해초가 가장 왕성하게 생장하는 바다의 봄이다. 거대한 바다 숲이 조성되기 시작하는 이 시기는 또한 다양한 어류들의 산란기이기도 하다. 산란을 위해 동해로 들어온 문어를 비롯한 말미잘, 쥐노래미, 각종 갑각류의 산란 장면과 일 년에 단 한번 산란을 하는 우렁쉥이의 진기한 산란 장면을 카메라에 생생히 담았다.
오는 봄, 산란을 해야 하는 갈매기는 힘을 비축하기 위한 먹이 사냥에 한창이다. 제주 바다의 겨울, 멸치가 들어와 물 반 멸치반인 이 공간은 갈매기의 사냥본능을 일깨우기 충분. 수천마리 갈매기 떼가 수직 낙하하며 먹이 활동에 한창이다. 장관을 이루며 제주 바다를 뒤덮은 갈매기의 놀라운 사냥 모습과 능숙하게 멸치를 집어 삼키는 흰오징어의 사냥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생명의 바다 숲, 모자반
모자반의 생장과정을 담기 위해 제주 문섬 앞바다를 찾은 제작진.
문섬 앞바다에서 관찰한 모자반은 1월부터 본격적으로 생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굉장해서 1월에는 50cm에 불과하던 길이가 2월에는 150cm, 2월말이 되자 4m까지 자랐다. 제작진은 5시간에 걸쳐 모자반이 생장하는 모습을 미속 촬영하는데 성공, 한 시간에 1cm 가 넘는 길이 생장을 하는 모자반의 놀라운 생장력을 확인했다.
▶ 바다 숲에 기대어 생명을 이어가는 바다 생물들
깊은 바다 속, 푸른 숲을 조성하며 생장하는 모자반은 각종 바다생물의 은신처와 짝짓기 터, 먹이 터로 기능하고 있었다. 모자반의 생장과 함께 느껴지는 생태의 변화는 확연했다. 모자반의 생장 변화에 따라 어종의 변화가 생겼고, 이는 곧 모자반이 단순해지는 연안생태계를 건강하게 복원시킨다는 것을 확인한 셈. 생물종을 관찰하기 위해 모자반 줄기를 뜯은 제작진.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내품는 모자반 줄기에서 다양한 생물체들이 발견되었다. 우거진 모자반 숲은 고기들의 좋은 은신처가 되며 모자반에 있는 물벼룩이나 동물성 플랑크톤이 고기들의 훌륭한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모자반 잎을 떼어내 위장하고 다니는 게의 진기한 모습과 겨울 바다의 밤, 모자반 숲 속에 숨어 잠을 청하는 쥐치의 평화로운 모습을 HD 고화질 화면으로 담아냈다.
● 바다의 사막화, 백화현상(갯녹음)
바다에도 사막이 있다.
바다의 석회 산호는 백화 현상(갯녹음)을 일으킨다. 석회 산호가 자리 잡으면 해조류는 유생단계에서 착상을 못하므로 포자까지 떨어져나가 결국 없어지는 단계에 이른다. 바다의 생명들이 사라지고 다행히 살아남은 불가사리와 성게. 불가사리의 생존 본능이 애처롭다. 마침내 불가사리와 백화 현상의 주범 석회 산호까지 사라져 버린 바다는 황량하기 그지없다.
해조류가 살 수 없으면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바다가 되는 것이다.
현재 제주공동어장의 38%가 이렇게 망가진 상태이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2005년부터 모자반 숲 조성 실험을 진행 중이다. 모자반을 인공 배양해서 사막이 된 바다에 인공적으로 숲을 조성하는 1년간의 과정과 진행결과를 살펴보며 바다 사막화 현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해본다.
● 죽음, 또 다른 탄생
모자반으로 이루어진 바다 숲은 바다 속의 생태공간을 14배까지 늘리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모자반을 비롯한 대형 해조류가 대양의 보석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자반은 길이가 16m~17m에 이를 때까지 생장을 계속한다. 4월말이 되면 모자반은 밑둥을 스스로 끊고 바다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바다 숲의 소멸이 곧 모자반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자반은 바다에 떠올라 뜬반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모자반은 다양한 어류들의 안전한 은신처이자 산란처가 된다. 수면 위로 떠올라서도 생태계의 뚜렷한 역할을 하고 생을 마감하는 모자반, 과연 바다 생명의 탯줄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