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 있어서의 양악은 서양 찬송가로부터 시작되어, 이상준,김인식,백우용 등이 작곡한 '창가'에 이어진 다음에 박태준,윤극영,홍난파 등이 작곡한 '동요'에 이어졌고, 드디어 '가곡'의 작곡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느니 이는 매우 바람직스런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홍난파의 '봉선화'를 우리 가곡의 효시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 정설(正說) 아닌 정설(定說)이 수정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봉선화'는 1920년에 피아노 곡으로 작곡되어 그의 제1창작집인 「처녀혼」의 서곡(?) 모양으로 첫면에 실려져 있었다. 그런데 1925년에 발행된 〈세계명작 합창가집〉(홍난파 편집)에 〈김형준 작시 홍난파 작곡〉으로 ------버젓한 가곡으로 발표된 것이다. 따라서 가곡의 탄생이 아닌 가곡으로서의 還生(환생)은 1925년이나 그 이전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문제 삼아야 할 일은 작곡연대를 1920년으로 보느냐, 1925년으로 보느냐, 혹은 1920년과 1925년 사이로 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과연 「봉선화」가 창가냐, 가곡이냐, 그렇지 않으면 --창가와 가곡의 중간형태인 --소위 서정소곡(抒情小曲)이냐에 일단 매듭을 지어야겠다. 홍난파(洪蘭坡1989∼1941)는 1933년 5월에 〈조선가요작곡집 제1집 -노산시조편〉을 출판했는데, 15곡 중에서 피아노 반주의 전주,간주,후주를 뺀 멜로디 자체의 길이가 12마디의 곡이 7곡 8,11,13,14마디의 곡이 각각 1곡이니 대체로 〈작은 세도막형식〉과 이의 확대 또는 축소에 의한 변형으로 된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길이로만 판단한다면 창가나 동요에 가깝고, 가곡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봉선화'를 서정소곡의 부류에 넣고 싶다.
안기영(安基永, 1900∼1980)
안기영은 충남 청양태생으로서 연희전문학교와 중국 금릉대학을 거쳐 1926년에 미국 일리슨-화이트 음악원(Ellison-White Conservatory) 에 입학하여 1928년에 졸업하고 귀국한 당대 최고의 성악가(테너)로서 이 해에 귀국독창회를 개최했고, 1929년 11월에 〈안기영 작곡집 제1집〉을 출판했으니 가곡집으로서는 우리 나라 최초의 역사적 유산임에 틀림없다. 〈작곡집 제1집〉에는 독창곡인 '산고개' '오늘도 조약돌을' '진달래꽃' '추억'과 혼성4부합창곡인 '물새' '남산에 올라' '한강의 노래' '우리아기 날' '그리운 강남' '춘사'(春詞)와 동요곡인 '해당화' '살구꽃' '조선의 꽃' '뜻'--14곡이 들어있다. 그는 1931년 6월에 〈작곡집 제2집〉을, 1936년 11월에 〈작곡집 제3집〉을 출판했다. 그는 이밖에도 1940년 이후 향토가극 '콩쥐팥쥐' '견우직녀' '에멜레종'을 작곡 상연했다. 그는 자작곡인 '마의태자' '추억' '어머니와 아들' '새나라로' 등과 외국곡인 '뚜나' '여자의마음' '아라비의 노래' '마루타'등과 찬송가 '만세반석' '거룩한 성'등의 독창을 비롯하여 '그리운 강남' '춘사' '양산도' '농부가'등의 합창 지휘로 레코드 20여장을 취입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나라 가곡의 효시는 '봉선화'가 아니라 안기영 작곡의 '오늘도 조약돌을' '산고개' '진달래꽃'이라는 것을 극력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최초의 오페라가 현제명 작곡의 '춘향전'(1950년작)이 아니고 안기영 작곡의 '콩쥐팥쥐'라는 것도 아울러 주장한다. 그의 작품은 1988년 10월27일에 해금되었으나 민속적 색채가 진한데도 별로 연주되지 않으니 기현상이다.
현제명(玄濟明, 1902∼1960)
현제명은 경북 대구 태생으로서 평양 숭실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에 미국 시카고 건음악학교(Gunn School of Music)에 입학하여 1928년에 졸업하고 귀국한 당대 최고의 성악가(테너)로서 안기영과 쌍벽을 이루었다. 1929년 9월에 귀국독창회를 개최했고, 1931년에 〈현제명 작곡집 제1집〉을 출판했다. 〈작곡집 제1집〉에는 독창곡인 '적막한 가을' '니나' '여름저녁' '오라' '성탄노래' '우리의 봄노래' '나물캐는 처녀'와 서정소곡인 '가을' '전원의 노래' '황혼의 해변' '고향생각' '성소의 밤'과 애국가인 '조선의 노래' --14곡이 들어있다. 그는 1933년6월에〈작곡집 제2집〉을 출판했다. 이밖에도 가극 '춘향전' '왕자호동'을 작곡 상연했다. 그는 자작곡인 '니나' '나물캐는 처녀' '희망의 나라로' '멕시코 세레나데' 외국곡인 '아이 아이 아이' '바다로 오라' '산슈스트의 종' '후니꾸리 후니꾸라' '니나의 죽음' '오 솔레미오' '스패니쉬 세레나데' 독창과 찬송가 앨범의 4중창을 김자경,김수정,김연준과 함께 레코드를 취입하기도 했다.
이흥렬(李興烈, 1909∼1980) 이흥렬은 함남 원산 태생으로서 일본동경 동양음악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는 한편 독창곡으로 '꽃구름 속에' '코스모스를 노래함' 등을 남겼다. 그의 〈작곡집 제1집〉은 1937년 11월에 녹양음악사에서 출판되었다. 〈작곡집 제1집〉에는 독창곡인 '행복' '자장가' '내고향' '부끄러움' '비오는 밤' '봄이 오면' '바우고개' '가신 누님' '창백한 마을' '가을 뫼' '고향 그리워' '코스모스를 노래함' '아리랑 고개' --12곡이 들어있다. 또한 〈작곡집 제1집〉에 앞서 1934년 8월에 일본 상문사(桑文社)에서 출판된 〈이흥렬 작곡집〉에는 위의 12곡에 합창곡인 2곡('배우에서' '백로곡')이 더 들어있다. 〈작곡집 제1집〉과 1955년 3월에 국민음악연구회에서 출판된 〈작곡집〉은 내용이 같다. 그는 1965년 9월에 〈가곡집[Ⅱ]너를 위하여〉와 1971년 9월에 〈가곡집[Ⅲ]가서 내 살고싶은 곳〉을 출판했다.
1934년 6월에 〈박태철(朴泰喆) 가요작곡집 제1집〉이 출판되었는데 독창곡인 '즐거운 물레방아' '행복' '그 백합' '산촌 물레방아' '어머님' '유랑의 노래' ------6곡이 들어 있으며, 시를 모두 영자로 표기한 것이 특색이며 '행복' '유랑의 노래'는 외국인 작사이고, 특히 '즐거운 물레방아'만은 피아노 3중주로 반주를 하게되어 있느니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놀라운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박태철의 가곡은 전혀 불려지지 않고 있다.
김세형(金世炯, 1904∼ )
김세형은 평남 평양 태생으로서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에 미국유학을 떠나 1934년에 졸업하고 귀국했으며 독창곡으로 '밤' '물긷는 처녀' '뱃노래' '옥저' '찢어진 피리'등을 작곡하였다. 1937년 3월에 출판된 〈먼길〉(The Long Way)는 그의 작곡집 제1집에 해당되는데 모일(G.G.Moyle) 의 영시에 작곡한 연가곡이며, '그대에게 매운 나의 마음' '모든 행복이 내것이라면' '굳 나잇' '오! 복된 잠이여' --4곡이 들어 있는데, 모두 영시와 번역시가 실려있고 특히 변화화음을 구사(驅使)한 점으로 보아 그야말로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적인 가곡이라고 말해도 좋을 줄로 생각된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에서는 전혀 연주되지 않고 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일까..... 가곡집「옥저」는 1974년 5월에 출판되었는데 '우물길' '뱃노래' '밤' '추천' '반딧불' '옥저' '야상' '추억' '염주' '임의 생각' '흰달' '찢어진 피리' '방랑의 마음' '물긷는 처녀' 연가곡 '먼길' ' 주는 부르신다' ------19곡이 들어있다.
채동선(蔡東鮮, 1901∼1953) 채동선은 전남 벌교 태생으로서 1924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즉시 독일에 유학하여 바이올린과 작곡을 전공하고 1929년에 귀국했다. 4회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개최한 후 1937년에 독창곡 '향수' '압천' '고향' '산엣색씨 들녘사내' '다른하늘' '또 하나 다른 태양' '바다' '내마음' 등을 출판했다. 1937년에 출판된 그의 가곡은 모두 2곡씩 호화판 피스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며 정지용 시로 되어있어 바뀐 시로 연주되어 왔었기 때문에 진가가 발휘되지 못한 느낌이 없지 않다. 이어 1964년 2월에 〈가곡집〉, 1980년 5월에 〈작품집 '그리워'〉, 1988년 3월에 〈정지용 시 채동선 작곡 독창곡집〉이 출판되었다. 나는 그의 작품 중에서 '고향'(망향.그리워) '풍랑몽'(동해)을 가장 높이 평가한다.
1939년에 출판된 〈박태준 가요곡집 '물새 발자옥' '그이 생각' '요-호-' '아-가을인가' 와 독창곡인 '갓모를 잊고' '마님과 머슴' 과 동요곡인 '나는야 알고 말고' '낙엽' '금박댕기' ' 우리아기빨래' '탁씨는 꾀보' '깜박 깜박' ------13곡이 들어있다. 그런데 모두가 윤복진 시로 되어있어 바뀐 시로 연주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별로 불리어지지 않는 편이다.
1946년 3월에 출판된〈임동혁작곡 '시조육수'(時調六首)에는 '매화 옛등걸에' '이 몸이 죽어가서' '강호에 기약을두고' '우는 것이 벅국이냐' ------6곡이 들어 있는데, C장조나 a단조가 아닌 조성음악인데도 조표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임시표를 붙인 까닭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김순남(金順男, 1917∼1986)
김순남은 서울 태생으로서 일본 동경고등음악학원 작곡과를 거쳐 제국고등음악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1947년 10월에 가곡집〈산유화〉를 출판했다. 가곡집〈산유화〉는 모두 김소월 시로 되어 있으며 독창곡인 '바다' '그를 꿈꾼 밤' '산유화' '잊었든 마음' '초혼' --5곡이 들어있다. 이중에서 '산유화'와 '초혼'은 명작이다. 1948년 4월에 가곡집〈자장가〉를 출판했다. 그의 작품도 1988년 10월27일에 해금되어 1988년 12월에〈가곡전집〉이 출판되었다. 그러나 현대적 수법으로 되어있어 연주하기 힘든 탓으로 아직 불려지지 않고 있다.
이건우(李建雨, 1919∼)
이건우는 강원도 삼척 태생으로서 일본 고등음악학교 바이올린과를 졸업하는 한편 본격적인 작곡활동을 일본에서 했으며 귀국 후 1948년 5월에〈가곡집 '금잔디'〉를 출판했다. 가곡집〈금잔디〉는 모두 김소월 시로 되어 있으며 독창곡인 '붉은 호수' '금잔디' '가는 길' '엄마야 누나야' '산'--5곡이 들어있다. 1948년 11월에 가곡집 〈산길〉을 출판했다. 그의 작품도 1988년 10월 27일에 해금되었으나 김순남의 작품보다도 더욱 불려지지 않는다.
조두남(趙斗南, 1912∼1984)
조두남은 평남 평양 태생으로서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했으며 1949년 6월에〈가곡집 '옛이야기'〉를 출판했다. 〈가곡집 '옛이야기'〉는 '산' '뱃노래' '추도의 노래' '옛 이야기' '백마강' '선구자' '새타령' '제비' --8곡이 들어있는데 '뱃노래'와 '새타령'은 민요풍이어서 애창되는 편이다. 그는 1962년 9월에 가곡집〈분수〉, 1970년 6월에〈산도화〉를 출판했다.
1949년 8월에 윤이상 가곡집〈달무리〉가 출판되었는데, 여기에는 '고풍의상' '달무리' '추천' '충무가' '편지' '나그네'--6곡이 들어 있으며 한동안 '고풍의상'이 불리어졌었다.
김동진(金東振, 1913∼)
김동진은 평남 안주 태생으로서 평양숭실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고등학교 바이올린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바이올린.지휘.작곡활동을 해왔으며 이미 1931년에 '봄이 오면'을, 1933년에 '가곺아'를 작곡했으며 한국의 슈베르트이다. 가곡집〈내마음〉은 1973년 3월에 출판되었는데 '가고파' '내마음' '뱃노래' '수선화' '봄이 오면' '농부가' '진달래 꽃' 오페라「심청전」 중에서 '사랑가' 등 64곡이 작곡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가곡집〈목련화〉는 1978년 11월에 출판되었다.
김성태(金聖泰, 1910∼)
김성태는 서울 태생으로서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고등음악학원 작곡과를 졸업했다. 귀국하여 '꿈' '동심초' '사친' '산유화' '진달래꽃' '한송이 흰 백합화'등 많은 가곡을 발표했다. 1970년에 회갑기념으로 출판된〈가곡집〉에는 '나그네' '자장가' '산유화' '말아 착한 말아' '산속에 사노라면' '또 한송이 나의 모란' '내마음 아실이' '사슴' '해수' '진달래' '사자수' '못잊어' ------12곡이 들어있다. 이중에서 '말아 착한 말아' '산속에 사노라면'은 본래 정지용 시의 '말' '산넘어 저쪽'으로서 모두 1937년 작인데 앞으로는 원시로 불리어졌으면 한다.
이상 첫작곡집의 출판연도에 따라 10명의 가곡을 재조명해 보았다. 이에 계속해서 〈나운영 가곡집 : 아흔아홉양〉(1952년), 〈김순애 가곡집〉(1954년), 〈한상기 가곡집 '박꽃'〉(1956년), 〈김달성 가곡집〉(1958년), 〈금수현 가곡집 '그네'〉(1962년), 〈정세문 가곡집〉(1962년), 〈하대웅 가곡집(1)〉(1963년), 〈이수인 가곡집 제1집〉(1965년), 〈백병동 가곡집〉(1966년), 〈이상근 연가곡집 '아가'〉(1969년), 〈한성석 가곡집 '달과 꽃의 이야기'〉(1969년), 〈유신 가곡집 '보리피리'〉(1969년), 〈김진균 가곡집〉(1970년), 〈조념 가곡집 '황톳길'〉(1971년), 〈윤용하 작곡집 '보리밭'〉(1972년), 김연준 가곡 백곡집 제1집〉(1972년), 〈박찬석 가곡집 '환춘'〉(1973년), 〈김태현 작곡집〉(1973년), 〈박은희 가곡집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1974년), 〈최병철 가곡집 '숲'〉(1976년), 〈변훈 가곡 가곡선집 '갈매기'〉(1981년), 〈사우월(思友月)〉(1986년) 등등 수많은 가곡을 다루어야 마땅하나 지면관계로 후일로 미루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가곡은 1929년에 안기영에 의해 처음으로 작곡되었음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