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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1-13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의 삶으로 말하다
7: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7: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7: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7: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7: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7: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7: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7: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7:11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7:12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7: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7: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7: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7: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7: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7: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7: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한국의 3대 명절은 설날 단오 추석으로 이 때가 되면 민족의 대이동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도 3대 절기가 있었는데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로 유대인들도 절기가 되어지면 성전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때야말로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최고의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에게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와 여동생 둘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에게 당신이 행하는 일을 다른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나타내도록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가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드러내 보이기를 구하면서 이 곳 갈릴리에 묻혀 살지 말고 좀더 큰 유대에 가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시골에 있지 말고 서울로 가서 자신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유튜브를 이용해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유명해 지기 위하여 사셨습니까?
예수님의 발자취를 보면 결고 그것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사람들이 왕으로 삼고자 할 때도 그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음을 보듯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유명해지고 싶어서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좀 더 큰 물, 큰 세상으로 가서 자신을 드러내라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형제들까지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형제들도 당시 다른 유대인들과 같이 별다를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에 차이점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무엇을 추구하는지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중심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에 따라 믿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여섯이나 되었지만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하신 후에야 예수를 믿고 사역을 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야고보와 유다가 신약성경을 기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의 가정을 보면 가족이 믿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로 인하여 고심하며 애통함으로 기도하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로 보건데 가족 중에서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자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속한 것으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말씀이지만 하나님이 예수를 믿도록 은혜와 믿음으로 이끌지 아니하시면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택한 자녀라면 은혜와 믿음을 주셔서 예수를 믿도록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처럼 예수를 믿지 않으면 자신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려고 자신이 잘되려고 정욕과 탐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목적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만이 드러나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내 삶 속에 오직 예수님만이 드러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내 자신의 비전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비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께 명절에 올라가서 자신을 알리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가리키는 말씀으로써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때에 십자가에 못박혀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섣불이 자신의 생각이 앞서 일을 그르치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가 주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때가 중요하지도 않으며 고난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지만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다는 말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늘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세상과 자신들의 일을 악하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신을 악하다고 한다면 좋아할 일이 있겠습니까?
늘 회개하라고 하면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니 이 시대에 강단에서 회개하라는 말을 들어보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자신의 죄를 애통하며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형제들을 향해 세상 사람이 너희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여기서 세상 사람들이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형제들이 같은 동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유유상종).
다시말해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형제들의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족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될 수 있으며, 예수를 믿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내 부모요 형제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가족 즉 혈육을 갈라놓고자 하신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형제일지라도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었고 형제이지만 예수를 미워한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형제들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즉 예수의 형제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죄인된 존재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형제라고 하지만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지난시간 말씀드린 것처럼 영은 영이고 육은 육입니다, 즉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영의 세계는 철저하게 육신의 것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롬8:5-8절까지의 말씀처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따라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형제들도 육신을 입은 자로서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네가 거듭나야겠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거듭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제들에게 명절에 올라가라고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다가 예수님 자신도 올라가시되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올라 가셨습니다.
처음에는 형제들에게 나는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시다가 다시 올라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려는 인간적인 의도가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명절에 찾아 온 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니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며 온통 예수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어떤 사람은 무리를 미혹한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말은 하지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드러내고 말하지는 못했다는 것은 참된 신앙의 모습은 아닌 것이며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입니다.
과연 예수 믿는 자로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두려워 해서 혹은 부당히 대우받을까봐 예수 믿는 것을 숨기고 생활하지는 않습니까?
과연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지만 어떠한 예수를 찾고 있을까요?
과연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당시 유대인들이 말하는 예수님과 믿는 자들이 말하는 예수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유대인들)이 말하는 예수님은
예수는 선한 선생이요 철학자로서 인생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종교 사기꾼(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간의 칭찬과 명성을 얻고자 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사탄의 앞잡이로서 그 당시 유대인의 종교를 파괴할 목적으로 활동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주로 받아들인 우리로서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복음 20:31에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 좀더 생각해 봅시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명절 중간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가르치셨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든 어떻게 글을 아느냐(15절) 하며 의문을 갖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세상 지식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믿고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예수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들마다 수 많은 성경공부가 있지만 과연 하나님과 예수님을 얼마나 알까요?
성경공부를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좋겠지만 성경공부를 통하여 자신의 지식을 좀더 쌓아 믿음이 있는 척 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오히려 자신에게 독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 입니다. 제자훈련을 받았는데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는 없고 목사의 제자만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배운 지식이 없어도,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믿고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상당수가 어부 출신이었고, 당시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할 자들이며 유대인들은 제자들을 무식한 자들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당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운 자로서 지식이 뛰어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예수님을 알지 못해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며 죽이는 일에 앞장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사도로서 사역할 때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을 알기를 간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따라서 많이 배우고 못배우고, 많이 소유하고 소유하지 못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고전1:26-30절까지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가 어떠한 자였을 때 부르심을 받게 하셨습니까?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으며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믿고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말씀을 읽지만 예수는 지식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믿음과 성령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베드로도 무식한 자로 여겼던 유대 지도자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배우지도 아니하고 어떻게 성경을 아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가르치시면서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16절)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묵상하고 깨달아 하나님의 교훈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교훈 즉 깨닫게 하실 때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17절).
자신이 배우고 깨달았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영광만을 구하지만 하나님부터 주어진 바를 아는 자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18절).
자기 영광만을 구하는 자는 자기를 자랑하는 자요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교훈이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우리도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심을 믿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고전1:30).@
유대인들은 늘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미워하고 대적했습니다.
그 대적함이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까지 못박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은 모세가 율법을 주었다고 믿고 있으면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21절에 표현을 보면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나를 이상히 여긴다고 하시는 것을 봅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율법을 범하지 않기 위하여 할례를 안식일에 행하는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사람을 온전케 하셨다는 것으로 노여워 하고 대적하고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당신이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께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삶 속에서 무엇을 행하고 있습니까?
내 자신조차도 모르게 죄악을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기에 알고 짓고 모르고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면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에 대해 대적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되고 예수님은 안된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행태에 대하여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24절).
이에 대해 약2:1-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잘못을 지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유대인들은 늘 예수님을 대적하고 판단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그 누구를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셨다면 살아남을 자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용납하시고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정리
1.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전향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주 뜻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하며, 육신이 잘되는 것에 목적을 두면 육신의 일을 따를 수 밖에 없고, 생명에 목적을 두면 생명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예수를 어떠한 분으로 아는가에 따라 생존과 생명의 길로 나누이게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이를 위해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이신 예수님이 목적되는 삶을 사는 것이 예수님을 아는 자입니다.
4. 예수님을 믿고 아는 것은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와 믿음을 주시고 성령을 주실 때 가능합니다.
5.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영광을 받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깨달을 때 자기 영광이 아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6. 자신이 행하는 일들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죄인된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알고 짓고 모르고 짓는 모든 죄를 위해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들만이 예수님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고 믿도록 은혜와 믿음을 주셔서 예수를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17:3).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목적 삼고 살아가는 것이 영생의 예수님을 아는 자의 삶인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주신 것을 평생 감사하며 찬송과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묵상
생명이신 예수님을 아십니까?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은 우리의 삶이 말해 줍니다. 이를 위해 우리 주님이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