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한사영사진여행 — 주전골과 백담사 기행
전국 단풍지도를 펼쳐 놓고 단풍이 물드는 시기를 하나하나 짚어봅니다.
어느 날, 어느 곳을 찾아야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만날 수 있을까.
해마다 되풀이하는 고민이지만 자연의 시간을 맞추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고심 끝에 선택한 10월 24일
한사영사진여행은 설악산 주전골과 백담사로 향합니다.
강원도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기사님이 한마디 건넵니다.
“이번 주말에는 수도권에 관광버스 씨가 말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차창밖엔 가을 찾아 나선 버스들이 모두 강원도 고속도로 길 위에 있습니다.
단풍이 사람을 부르는 계절입니다.
설악산 주전골은 일반적으로 오색약수터에서 출발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나 한사영 회원들의 연령대를 고려해
이번에는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오색약수터로 내려오는 길을 택합니다.
오르막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생각이지만 내리막이라고 마냥 쉬운 것은 아닙니다.
촬영하며 걷다 보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갈 것입니다.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모두 하차하여 설악의 가을 속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주전골의 단풍은 이제 절정 직전의 길목입니다.
이미 새빨간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
또 어떤 나무는 연두에서 노랑으로 물들어갑니다.
그 와중에도 독야청청 녹색을 고집하는 나무들은
주변의 화려한 변신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초록이 지쳐 단풍 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설악의 나뭇잎들은 지쳐서 물드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시사철 푸르름을 고집하는 나무들이 지겨워 스스로 화려한 화장을 시작한 듯합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지만
단풍잎 역시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온몸을 불태우듯 화려하게 물들어갑니다.
어차피 맞이해야 할 차가운 겨울이라면
마지막만큼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장식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주전골의 계곡은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과
기암봉우리가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 놓습니다.
산을 잘 아는 등산 전문가였다면
봉우리마다 붙여진 이름을 부르며 그 내력까지 떠올리며 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만 산길을 걷는 범부인지라
봉우리 이름보다는 프레임 속에서 봉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지에 더 마음을 씁니다.
어느 봉우리를 주제로 삼고
어느 능선을 전경이나 배경으로 물러서게 할 것인가.
물길은 어떻게 시작하여 어디로 흘러가게 할 것인가.
가을 산을 즐기는 사람과 촬영하는 사람의 시선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계곡에는 가을을 찾아온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오르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 단풍 아래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앉을 만한 너럭 바위나 평평한 터를 만나면 삼삼오오 둘러앉아 준비해 온 음식을 꺼냅니다.
그들에게 가을은 특별한 작품이 아니어도 좋은가 봅니다.
단풍 아래서 나누는 한 끼 식사와 웃음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어느 멋진 날입니다.
사진이 뭐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단풍을 찾고, 계곡을 내려다보며 구성을 합니다.
그러다가 넘어질까 다시 발밑을 살피며 걷습니다.
남들은 낭만을 즐기는데 어설픈 사진가는 나름 가을을 담는다고 바쁩니다.
이처럼 좋은 가을 속을 걸으면서도 정작 가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삶
10월의 어느 좋은 날, 설악의 가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데
유독 나만이 작은 파인더 속에 세상을 가두고
더 좋은 한 점을 얻으려 스스로 피로를 쌓아갑니다.
사진 한 장의 기쁨을 얻기 위해 놓쳐버린 풍경과 순간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사진을 찍는 것이 자연을 더 깊이 바라보는 일인지
아니면 자연을 누리는 시간을 조금씩 빼앗는 일인지 헷갈립니다.
이런저런 상념과 함께 계곡을 내려오니 어느새 오색약수터입니다.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릅니다.
일찍 내려온 분들은 식당가에서 맛난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여유롭게 즐겼겠지만
걸음이 늦은 분들은 식사할 겨를도 없이 버스로 향할 것 같습니다.
다음 목적지인 백담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후의 백담사 역시 가을을 찾아온 사람들로 붐빕니다.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대기 줄이 제법 깁니다.
먼 길을 달려왔으니 돌아설 수도 없는 일입니다.
기다림도 여행의 일부라 여기며 한참을 기다린 끝에 백담사로 향합니다.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와 인연이 깊은 백담사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경내의 은행나무가 조금 낯섭니다.
부처님 지엄한 말씀이 있었던 것일까요.
노란 은행나무가 이발을 했습니다.
스님처럼 빡빡 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백담사 앞 넓은 계곡에는 올해도 수많은 소원 돌탑이 자리합니다.
해마다 찾을 때마다 돌탑이 더 많아지는 듯합니다.
작은 돌탑도 있지만 제법 높고 당당하게 솟은 탑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의 건강을 빌었을 것이고
못다 핀 꿈도 빌고
또 누군가는 말 못 할 간절한 소망을 돌 하나에 담았을 것입니다.
저 많은 소원은 모두 이루어졌을까요.
우리네 삶도 저마다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돌탑 하나쯤 쌓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돌탑만큼은 아니지만 촬영한 사진 속에도 크고 작은 인물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기행문에 올릴 사진을 두고 ai에게 묻습니다.
“이사진에서 가장 산만한 것이 무엇이냐?”
명쾌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사람들”
“그럼 좀 정리해 줄 수 있겠느냐?”
순식간에 사진 속 사람들이 사라집니다.
복잡하던 길이 텅 비고 나니 오히려 쓸쓸합니다.
결국 화면 좌우에 있는 작은 인물은 그대로 남겨둡니다.
산만했던 풍경이 사람이 사라지면서 생기를 잃어버리자
새삼 깨닫습니다.
풍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자연만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풍경의 일부입니다.
오늘, 백담사가 또 하나의 사진 공부를 일깨워줍니다.
이번 사진여행은 주전골과 백담사, 단 두 곳뿐입니다.
그러나 단풍이 절정으로 향하는 주말이라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붐볐고
촬영과 이동에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결국 예정했던 귀경 시간이 늦어져 어둠이 내린 뒤에야 서울로 돌아옵니다.
해 짧아진 날의 긴 하루
아름다운 단풍을 만났고, 굽이치는 계곡을 걸었으며
백담사 돌탑 앞에서 이름 모를 사람들의 소망도 헤아려 보았습니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것은 산길에서 넘어지거나 다친 분 없이
모두 무탈하게 돌아온 사실입니다.
사진여행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찾는 일이 아닙니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서로 다른 풍경을 바라보고
각자의 마음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아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같은 길을 함께 걸어준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었던 하루의 시간
단풍은 낙엽되어 떠나지만, 함께 걸었던 가을의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10월의 설악에서 아름다운 하루를 함께해 준 참여 회원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남은 가을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삶 속에 아름다운 단풍빛이 오래 머물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함께 한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좋은 곳 구경 잘하고 갑니다
가람 영구님
고맙습니다.
늘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