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솔로인 친구(누가 이 녀석 좀 데려가라고 쓰는 겁니다)가 오늘 논다기에
딱히 일도 없고 해서 영화 보러 가는데 쫓아갔습니다.
'스타워즈' 보려나 했더니 이미 두 번(!) 봤다고 하고,
'히말라야' 보려나 했더니 지루할 것 같아 안 본다 하고(저도 동의)
결국 고른 게 '바닷마을 다이어리'더군요.
남자 둘이서 이 영화를 본 케이스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그 상영관에는 우리 둘뿐이었던 것 같은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전 ‘리뷰’들처럼 요소별로 나누어 논하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키지 않네요.
그래서 그냥 대충 소개만 하고 말렵니다.
스토리 자체는 별 것 없어요. 살고 죽고 또 살아가고 사랑하다 헤어지고 또...
그럼에도 볼 만했던 것은 아마도 각 인물의 캐릭터를 잘 잡았기 때문일 겁니다.
일단 딸이 셋 나옵니다. 그 딸들의 아버지는 예전에 이혼해 다른 여자와 살면서 딸을 낳고
그 여자가 죽자 또 재혼한 뒤 죽습니다.
세 딸의 친엄마는 이혼한 뒤 홋카이도로 재가했고요. 후반부에 나옵니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가족관계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쉽다면 쉬운데 잘 이해되지 않아서)
그 아버지의 장례식에 세 딸이 가는 데서 얘기가 시작됩니다.
거기서 자기네 배다른 여동생인 ‘스즈’를 만나게 되지요.
왠지 그 아이가 걸린 맏딸은 스즈를 자기네 고향인 가마쿠라로 데려옵니다.
(네, 최초의 바쿠후가 자리 잡은 바로 그 고도입니다. 지금은 한적한 어촌이지만)
나머지는 뭐,,, 각자가 자신의 삶과 연애, 다른 가족과의 관계 등으로 갈등하고 화해하는 얘기죠.
자세히 다루기도 애매하고, 더 써봤자 스포일러일 테고.
캐릭터는 어떤 면에서는 좀 전형적인데 -
맏딸(아야세 하루카) : 책임감과 엄격함으로 뭉쳐진... 듯하지만 아버지의 불륜을 싫어했으면서도
정작 자신도 유부남을 사랑하는 자기모순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직업은 간호사
둘째(나가사와 마사미) : 제멋대로이고 술꾼에다 툭하면 차이는, 하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인물.
은행 직원인데 나중에 착실해집니다.
셋째(카호) : 좀 띨빵하지만 착하고 가장 순탄(?)한 연애를 하는 인물. 직업은 없는 듯.
넷째(히로세 스즈) : 중학생인데 나쁘게 말하면 애늙은이. 너무 예의바르고 좀 딱딱하게 행동하다가
차츰 언니들에게 마음을 열고 새 환경에 적응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거의 주인공 포스를 풍기는데 나중에는 맏딸의 비중이 더 커지죠. 아무렴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려고
뭐, 굳이 말하자면 배다른 동생을 선뜻 들인다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애가 얌전하다 해도 그렇게 합심해서 잘 돌봐준다는 것도 그렇고 선뜻 와 닿지가 않는데
(난 아침드라마를 한 번도 안 봤단 말이야아아아아아)
설정이 약간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은 들어도 그렇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군요.
아마 일본영화치고는 그다지 ‘척’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싶습니다.
일부러 미화한 장면이 하나 있긴 한데(벚꽃터널 장면), 그것은 나중에 다른 일과 맞물리기 위한 일종의 연출로 여겨지고요.
물론 이외에도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보자면 그렇게 볼 만도 한 (일본적인) 요소들이 더러 있지만 역시 그만두겠습니다.
그나저나 히로세 스즈... 솔직히 말해 상당히 호감 가는 마스크더군요(철컹철컹...?).
앞머리를 뒤로 넘길 때는 아오이 유우 같기도 하던데, 내 친구는 부정했지만.
평소에는 그 정도는 아닌 것도 같지만, 아이 치고는(1998년생) 상당히 눈이 깊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깊은 눈’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아마 그 때문이지 싶지만 여기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결론 : 자신이 감성적이라고 생각하거나 감성적인 것을 원하는 분이라면 추천.
나 같은 감성의 소유자도 마음에 들었으니 이만하면 말 다했죠? ㅎ
첫댓글 올려주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특히 캐릭터 분석이 재미있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믿고 보는 작품입니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영웅이 아니라서 더욱 정감이 가지요. 이번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전 영화들보다 훨씬 밝고 산뜻해진 느낌입니다. 가슴 뭉클한 장면도 많구요. 글구 저는 히로세 스즈 보면서 강혜정 옛날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렇죠. 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스토리는 일본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일종의 클리셰인데 그런 요소가 없어서 저 역시 좋았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걸작이라는데 관심이 가구요. 아야세 하루카는 연기력으로 정평있는 배우라던데 정말 그렇더군요. 히로세 스즈는... 제가 너무 좋아하면 안 될 것 같구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너무 좋은 작품입니다. 특히 이번<바닷마을 다이어리>와는 비슷한 주제이면서도 시선방향이 반대여서 두 작품 한번 비교해서 보시면 더욱 좋아하실 것 같네요~
아야세 하루카는 <해피 플라이트>에서 인상적이었죠. 히로세 스즈는 알고보니 제가 좋아하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괴물의 아이>에도 나와서 깜놀했죠 ㅋㅋ 참 매력적인 배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