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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장
하나님의 축복 속에 형의 위협을 피해서
하란으로 도망가는 야곱
(찬송 354장)
2024-2-1, 목
맥락과 의미
야곱은 형 에서를 속였고 에서는 야곱을 죽일 마음을 품었습니다. 야곱은 형을 피하여 외갓집이 있는 하란으로 도망합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면서 집을 떠났습니다. 여행 중에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복을 선언해 주십니다.
1. 야곱의 피신과 그를 향한 부모의 기대와 축복, 에서의 이방결혼(1-9절)
2. 아버지 이삭의 축복과 하나님의 약속(10-22절)
1. 야곱의 피신과 그를 향한 부모의 기대와 축복, 에서의 이방결혼(1-9절)
야곱이 집을 떠난 것은 야곱의 선택이 아니라 이삭과 리브가의 결정이었습니다(27:46-28:2). 그들은 에서의 불신앙을 보면서 야곱이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고 그런 며느리를 얻기를 바랐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며 보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기 원한다”(3절).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어 신체적으로는 자녀를 둘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시면서 나타나셨습니다. 자손이 번성할 것과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같은 내용을 축복합니다(3,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쫓겨가는 야곱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룰 것이라 약속합니다.
야곱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외갓집에서 아내를 구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아내를 얻었던 곳입니다. 믿음과 순종의 길이었습니다.
반면 에서는 부모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합니다. 둘이 하나가 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또 다른 아내를 맞이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듭 회개의 기회를 주셨는데 에서는 그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자꾸 죄인된 자리에 앉으려 했습니다. 자신이 머리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항상 나 자신이 중심이 되고 머리가 되어야만 한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머리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과 은혜가 중요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복을 바라봅시다.
사회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이웃이나 성도나 가족을 비교 대상이나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맙시다. 함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나눠 가질 사람들입니다.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높아 보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 낮아지며 먼저 섬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섬김을 받았고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갑시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렘 9:23-24, 고전 1:31).
2. 아버지 이삭의 축복과 하나님의 약속(10-22절)
야곱은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고향 브엘세바를 떠났습니다. 외갓집은 북쪽으로 780Km나 됩니다. 한 달 정도는 걸어가야 하는 먼 거리입니다.
며칠 걸려서 벧엘에 도착했습니다. 고향에서 93Km 되는 길을 걸어서 왔습니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오래 전입니다. 저녁이 되고 밤이 깊어 갑니다. 아픈 다리를 하고 누웠습니다. 멀리서 짐승 소리도 들립니다. 사나운 짐승이 와서 공격하면 그냥 찢겨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자야 하니 누웠습니다. 돌들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꿈을 꾸었습니다(12절). 사다리가 땅 위에 서 있다는 표현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길이 고가도로처럼 서 있습니다. 고가도로는 그냥 땅을 향하여 서 있습니다. 땅에 닿아있지 않습니다. 길의 머리가 하늘에 닿아 있습니다. 하늘에 매달려서 땅으로 내려오는 도로입니다.
와,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 길에서 올라가고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길의 위에 하나님께서 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보좌 위에 앉아 계신 분입니다(시 2:4).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천사를 내려 보내셔서 지키십니다. 천사들의 보고를 받고 야곱을 위해 지시하십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 은밀히 하나님께서 야곱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 소개하십니다(13절). 그가 누워 있는 땅을 주시고,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그토록 원했던 이 언약의 복을 아버지에게 받고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선언한 언약의 복을 하나님 자신이 다시 확인해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5절). 야곱이 벌였던 사기와 속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임마누엘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야곱은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했습니다(17절). 그가 저질렀던 죄가 생각나지 않았겠습니까(27:20)?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벌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야곱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은혜롭게 말씀하시며 다가오신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을 즐겁게 하시면서도, 그들을 두렵게 하여 겸손히 자기를 부인하며 그 분의 자비를 끌어안게 하십니다. 경건한 복종을 일으키는 두려움입니다. 은혜에 대한 놀라움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그곳을 “하늘의 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돌베개로 하늘을 향해 기둥을 세웠습니다. 기름을 부으며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지키시고… 내가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십분의 일을 내가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20-22절).
“하나님 지금은 가진 것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약속대로 안전하게 고향 집으로 돌아와서는 더 풍성히 경배하겠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 당신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경배하겠습니다.”
감사와 서원을 담아서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베트(집)-엘(하나님). “하나님의 집”이라 불렀습니다. 앞으로 후손들이 계속 하나님을 배우고 경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야곱을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라반과 에서로부터 지켜 주셨습니다(31:24, 42; 33:11). 가난한 자에서 부자로, 혼자에서 많은 가족을 거느린 자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는 벧엘로 다시 돌아왔다가 나중에 이집트로 갔고 그의 유골이 다시 가나안 헤브론으로 돌아오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50:13). 무엇보다도 거짓말하고 가치없는 야곱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춥고 외로운 그 땅은 하늘의 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천사를 내려 보내 주시는 천국의 문입니다. 고통의 장소는 하나님께서 내려 보내 주신 길을 통해서 하늘의 은혜로 올라가는 하늘의 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고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에게 열렸던 이 고가도로가 바로 예수님 당신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 1:51).
예수님의 세례 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하늘이 열렸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막고 있는 죄의 구름을 없애셨습니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게 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라고 말씀하십니다.
중보자요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와 생명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옵니다. 천사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사들이 내려와 그리스도의 땅의 지체들을 보호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올 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의 본성을 옷 입으심으로 우리가 그분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새로운 성품을 옷처럼 입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은 예배의 모임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될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십니다. 성찬의 빵과 포도주도 하늘의 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로 빵과 포도주로 성찬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문을 여시고 죄용서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내려 보내주십니다.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십니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의 순간 순간이 요셉의 외로운 여행길처럼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지금 나의 교회, 우리 가족, 내게 주신 직분의 땅이 별로 복되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로움과 문제가 있는 우리의 일터, 가정, 우리가 다니는 학교, 바로 그곳이 벧엘입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늘을 여시고 하늘로 향한 길을 내려 보내시는 곳입니다. 바로 그곳이 천국의 문임을 믿읍시다. 바로 그곳에서 일상의 직분을 다합시다. 하늘에서 내려 보내신 고가도로를 통해 저 높은 곳을 향해 날마다 나갑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한 지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이 세상을 겨우 생존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런 다스림을 나타내는 종들입니다.
오늘의 불안정하고 고통스런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 그 땅을 주시고, 이 땅에서 우리 가정과 성도들이 함께 번성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야곱과 야곱의 후손인 온 세계 백성들이 다스릴 것입니다.
야곱이 돌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으며 경배했듯이 우리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경배합시다. 말씀과 성례로 오시는 삼위 일체 하나님을 환영하고 받읍시다.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다.” 말씀하시며 나타나기 소원합시다.
“과연 여호와께서 이 장소에 안에 계신데 나는 몰랐다.” 이 초라한 예배당, 뜻 밖의 장소에서 만난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더 나은 감사와 찬송을 드리도록 서원합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물질로 십일조와 헌금을 드려, 우리의 형제 자매를 돕고 교회를 함께 세워 가겠다고 서원합시다. 우리의 신앙을 자녀들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쳐서 자녀들도 기쁨으로 예배하도록 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그리스도의 승천과 성령님이 하늘과 땅을 오르락 내리락 하심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오셨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계시록 5:6은 승천하신 어린 양 그리스도는 일곱 눈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일곱 눈은 일곱 영이요 성령님을 말합니다. 성령님이 “땅에 두루 보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야곱은 천사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지만, 우리는 더 풍성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온 세상 교회 안에 성령님이 내려와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시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우리를 연합시키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7-10은 말합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과 성령님의 은사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 은사를 주시고 여러 직분을 주셔서, 목사는 말씀을 전하고, 성도 각 사람은 자기에게 주신 시간과 재정과 은사로 봉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네 후손이 동서남북으로 뻗어가리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교회를 통해 온 세계에 뻗어갑니다. 야곱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 세계 민족이 복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는 약속의 기업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우리는 새 하늘에서 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그(예수)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엡 1:13,14).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께서 바로, 우리의 기업, 우리의 땅에 대한 보증입니다. 하나님의 땅을 할부로 먼저 누리는 것이 성령님 안에서 삶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사랑, 평화, 기쁨, 인내 이 새로운 즐거움의 나라, 새 땅을 살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의 가정에 야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땅, 하나님 나라가 왔습니다.
우리의 사업체와 직장에는 과로와 갈등과 오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밟는 곳마다 그 땅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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