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입춘굿 현장에 가다.
2일 제주시청 현관에서는 제주 섬 무술년 한해 풍년들게 해주십사 하는 자청비 농경 신에게 제를 올리고 낭쉐를 이끌고 관덕정에 안착시켰다. 2일부터 제주시청, 제주목관아, 원도심일원에서 4일까지 3일간 행하는 무술년 탐라국 입춘굿 놀이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나들이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한해 가정에 무사안녕을 위하여 현장으로 나와 보면 희망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날씨가 곤두박질하여 매서운 바람이 분다. 손발이 꽁! 꽁! 꽁! 얼어붙을 지경이다. 춥다 춥다하면서 온 몸을 핫팩에 의지하여 옛 탐라국 때부터 성주청이 있던 목관아에 도착했다. 일찍 나온 동료(제주시 서포터즈 6기)들이 모여 따끈한 차를 마시고 있었고 나도 합류한다. 커피 한잔 받으러 갔는데 ‘보리돌래떡’ 또는 ‘개떡’(보리 가루로 손바닥만큼 만든 둥그런 떡)을 보았다. 역시 입춘 굿 날은 심방들이 던져주는 돌래 떡 하나 받으면 그 날은 횡재하는 날이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말이 있었을까. 요즘은 시절이 좋아서 보릿가루로 만들면 아무도 안 먹을 것이다. 메밀가루도 만들어 퍽퍽하긴 하지만 오래 씹으면 은근히 먹고 싶어지는 떡이다. 동료들에게 꼭 이 돌래떡을 먹어야 올 한해 무병장수 한다고 하며 권했더니 젊은 동료들도 제법 잘 먹는다. 맛이 있다는 것보다 의미부여가 중요했다. 부시장님도 하나 먹고는 “먹을만 허우다” 하며 손에 들고 부스를 둘러본다.
11시 반이 되려면 30분 정도 남았으니 행사장을 둘러보러 관아로 들어섰다. 춘등이 찬바람에 흔들거리고 곳곳에 입춘굿 관련한 시설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마다 입춘굿 준비가 다양해지는 모습이고 옛 모습에 조금씩 업그레이드 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참여를 유도하는 공직자들께 칭찬을 해야 한다. 하늘이 주는 날씨야 어찌 하리만은 그래도 관심 많은 분들은 춘첩을 써가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선 부모님은 본인들 보다 아이들 눈높이 코너를 돌면서 체험을 한다.
판화 찍는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부스 주인은 열심히들 준비하고 곁에서는 이미 판화를 찍는 이도 있었고 부스주인장(김만 제주판화협회 회원)이 반기면서 한번 해보시라며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준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사실 이 추위에 몸에 배여 있지 않으면 그런 친절미소가 행동으로 옮기기 힘들다. 훈훈한 판화 지도 선생님 미소가 아름다웠다. 어떤 이는 스몰사이즈 낭쉐를 만들어 손에 잡고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했으며 그래도 어린이에게 인기 코너는 가장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비누망울 체험부스였다. 전통음식 코너에 들어섰다. 이른 시간이라 덜 준비되었지만 추위도 아랑곳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웃음 잃지 않고 인사를 나눠준다. 정말 고맙다. 올해 탐라굿 현장에 부스에서 일하는 분들이 이구동성 친절하다고 입을 맞춘다. 제 느낌도 그랬다. 좋은 현상이다. 앞으로도 쭈~~~욱 그랬으면 좋겠다.
서포터즈 단원들은 자유스럽게 취재를 하다가 점심시간 12시 반에 천냥국수 코너에 다 모였다. 요즘 세상에 천냥국수라 어떤 맛일까? 한마디로 엄지척이다. 따끈한 육수국물에 쫄깃한 국수와 돼지고기 숭숭 썰고 계란 고명 얹히고 파 송송 썰어서 고춧가루와 함께 간장에 목욕을 시켜 국수위에 얹힌 모습만 봐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런 때 떠오르는 말이 봉사는 아무나 하나이다. 참가자들 추울까 봐서 열심히 국수를 삶는 부녀회 회원들에게 제주시민들 대표하여 고마움을 전한다.
낭쉐가 있는 곳에서 작은 굿이 진행되고 있었다. 강정효(제주민예총 이사장), 고길림(제주시 부시장), 문경국(제주시문화관광체육국장)께서 풍년을 기원하는 복채를 올리고 분향을 한다. 제주큰굿보존회 분은 열심히 구송을 하면서 탐라국 농사 잘 돼서 고팡마다 항아리가 가득하기를 바라며 북을 덩덩 두들긴다.
굿이 끝나자 관덕정 앞에서는 중학생 3명을 무대 위로 앉혀서 사회자가 요즘 학생들 세태에 관련하여 가장 이슈 되는 성희롱문제를 질문하고 답변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사회자가 학생에게 학교에서 성희롱 문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니 학생 曰 “심각하지요.” “그래도 근래에는 언론에 많이 보도 되면서 좋아지고 있습니다.” 사회자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학생도 그런 경험 있나요?” “아뇨 저는 없습니다. 친구들에게 들었습니다.” 어린 학생들 대상으로 공공장소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 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심각하면 ~~~
1900년대 후 새로운 천년(2000년)이 되면 더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는데 문화의 흐름이 너무 빨라 도저히 따라갈 수 없고 이상한 방향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는 모습에 조금은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은 많고 연말이면 불운한 이웃을 돕는다고 이름도 밝히지 않고 큰 성금을 내놓는 분들이 계셔서 살맛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