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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물금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
경남대학교 백남오 수필교실 수강 중
진등재문학회 회원
mycho339@naver.com
<수상 소감>
김양숙
저의 큰애가 퇴직을 앞둔 저에게 권한 것이 몇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글쓰기였습니다. 글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에 길들어져 있던 저는 글을 직접 쓰시는 분께 배우리라 마음먹었지만 막막했습니다.지역의 수필 문학협회에 문을 두드려 보기도 했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심 끝에 지금 사는 곳인 거제에서 가까운 경상권의 지방자치 교육기관과 대학의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다행히 몇 군데의 교육기관에서 수필강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강좌들의 교육과정을 비교해 보니 경남대학교에서 가르치시는 분은 확실히 작가이실 것 같았습니다.
등록 후 뜻밖에 담당 교수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습니다. 구수하면서도 따스한 음성에 긴장했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배움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교수님께서는 스승이 될만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수필 쓰기에 열정을 다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37년 동안 마음을 다했던 ‘학교’를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잔뜩 웅크리고 앉아서 새롭게 적응해야 할 세상을 건너다보기만 했습니다. 이 침잠의 시기에 금잔화를 만났습니다. 그는 저에게 자신의 생(生)을 지켜보게 하더니 너는 네 삶을 어찌 완성할 것이냐며 물어왔습니다. 머뭇거리기만 하던 저는 그의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가 등단을 준비할 무렵, 교수님께 등단 작가의 세계에 대해 말씀해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 말씀을 들은 날 집으로 돌아와 옛 서브 노트를 꺼내어 워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비로소 평소에 흘려들었던 말씀이 간곡한 당부로 가슴에 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스승의 당부를 등불 삼아 걸어가리라 다짐해봅니다.
귀한 기회를 주신 에세이스트 관계자님, 수필가로서의 길을 열어주신 백남오 교수님, 응원해주신 진등재문학회 회원님, 소중한 나의 벗님께 감사드립니다.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을 수필에 담으라고 권해준 나의 아이들, 항상 응원해주는 우리 사위, 첫 번째 독자인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당선작 > 금잔화
김양숙
그를 화분에 둔 채 며칠을 보냈다. 나는 맥없이 쭈그려 앉아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라질 것 같은 그를 보고 있다. 바싹 마른 줄기는 온기의 흔적이라고는 없다. 노르스름하면서 투명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깡마른 줄기 어디에고 그를 일으킬 세포는 남아있지 않아 보인다.
그가 내 집 베란다에 살다 간 것은 내 눈 때문이었다. 오십을 넘기면서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불편하였다. 그 무렵 업무도 많아지면서 눈에 실핏줄이 자주 터졌다. 안경도 바꾸고 대학병원까지 가 보았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걱정하는 나에게 여섯째 동서가 금잔화 말린 것을 선물로 주었다. 그 시절만 해도 귀한 것이라서 교무실로 가져다 나누어 마셨다. 약이 되도록은 마시지 못한 셈이다. 더 마셔보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많았다. 금잔화가 핀 교정의 화단에 나가보기도 했지만, 내 눈 밝히자고 학교의 꽃을 취할 수는 없었다.
퇴직하고 집으로 돌아온 3월, 금잔화 씨앗 한 봉지를 사서 화분에 심었다. 쌀눈처럼 작은 떡잎을 보는 데는 열흘이 넘게 걸렸다. 그것도 잘 자라지 못해 하나씩 죽더니 일곱 남았다. 남은 일곱도 명주실처럼 가는 뿌리에 의지한 채 드러누워 자라기 시작했다.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그마저도 4월에 접어들면서 하나 남았다. 그 하나도 화분 가운데 떡하니 누운 채였다. 곧게 자랄 의지는 도통 없어 보였다. 금잔화이기는 한 것일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지만 두고 보기로 했다. 여름 한 철 내내 화분 턱을 기다시피 넘었다. 그러고서 잎을 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화분 턱에 의지한 채였다. 손톱만 한 이파리를 달고 가을을 나고 겨울의 가운데로 들어섰다.
쌀쌀한 1월의 아침이었다. 창문을 열려고 베란다로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화분 밖으로 내민 가지 끝에 낯선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제 몸 모두를 합친 부피보다 송이가 더 큰 것 같았다. 도무지 믿을 수 없어 검지로 꽃대를 툭툭 건드려 보았다. 실지렁이처럼 가느다란, 그 몸에서 피워낸 것이 확실했다. 게다가 고혹적인 진주홍이었다. 겨울 베란다에 저 혼자만 꽃이었다. 그 순간 화분 하나를 떡하니 차지하고 드러누운 것에 못내 마뜩잖았던 그간의 마음은 대견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살아 있으니 물이나 주어야지 하며 홀대했던 일이 부끄러웠다. 햇살이 잘 드는 쪽으로 화분을 옮기고는 그를 보려고 베란다를 들락거렸다.
사진으로도 담기 시작했다. 당연히 납작 드러누운 그를 내려보며 찍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다가 옆모습을 남기려고 머리를 한껏 낮춘 적이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온몸이 창을 향해 곧게 뻗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그의 몸뚱이 가까이 내 눈을 내려놓고야 그가 드러누울 수밖에 없음을 알아낸 것이다.
꽃은 보름을 넘기더니 꽃술을 제 머리맡에 가지런히 내려놓으면서 졌다. 꽃이 진 자리 바로 아래에는 이내 작은 봉오리가 맺혔다. 이게 시작이었다. 마디라고 하기에는 어쭙잖은 작은 가지마다 릴레이하듯 피워냈다. 줄기도 더 자라고 굵어지기 시작했다. 쉼이 없었다. 봄이 오자 내 베란다에는 봄꽃이 가득했다. 그들이 반갑고 고마웠지만 나는 온통 그에게만 홀려있었다.
칠월이 되자 날씨는 후텁지근했다. 비까지 잦아서 만물이 다 물기를 머금은 듯한데 이번에는 저 홀로 야위어 갔다. 어느샌가 곁가지 하나는 말라 있었다. 원줄기도 수분을 끌어올리는 데에 큰 욕심이 없는 듯했다. 그러자니 노인의 등뼈처럼 골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루가 다르게 가늘어졌다.
꽃송이도 이게 금잔화였나 싶도록 달라졌다. 소국(小菊)처럼 작아지나 싶더니 이내 쑥부쟁이꽃처럼 작아졌다. 가지 아래 품은 송이는 더 이상 없었다. 노르스름한 것 몇 송이 해를 향할 뿐이었다. 이파리들도 천천히 묽은 연두로, 연노랑으로, 상아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새로 내는 잎마저 그가 화분 턱을 넘을 때처럼 자잘했다.
다시금 앙상하게 벗은 몸만 남긴 그를 내려다본다. 턱없이 작은 화분에 담겼다며 투덜대지 않았다. 실외기 옆에는 빛도 들지 않더라고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씨앗 속에서 가져온 줄기며 잎이며 꽃을 모두 키워냈다. 오로지 온몸으로 빛을 향했다. 소명을 다했을 때 맑게 떠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다고 남은 숙제와 서원(誓願)을 잊지 말라며 그가 마른 몸을 남기면서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서로 언어가 달랐기에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당신 때문에 나답게 살지 못했노라 원망했을는지 모른다. 어찌 되었든 1년 반 동안 살다 간 그를 지켜보면서 내 삶을 반추하게 되었다. 내게는 흔들리고 홀렸던 시절이 많고도 많았다. 어려움이 있을 때 핑계를 앞세웠고 퍼질러 앉은 적도 있었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한눈팔았던 적은 또 얼마였던가. 나는 나를 내 삶의 화분에 어떤 모습으로 담아 왔는가 싶다.
<심사평> 김양숙의 「금잔화」
세계는 두 개의 질서로 늘 신생한다. 하나는 생물학적인 소멸과 탄생으로 신생하고 또 다른 하나는 사물과 관계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재인식의 깨달음으로 신생한다. 김양숙의 작품 ‘금잔화’가 그렇다고 한다. 김양숙의 ‘금잔화’를 읽으며 김춘수의 ‘꽃’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김춘수의 ‘꽃’은 무어랄까 인간 본위의 인식 질서를 드러내고 있다. 꽃이 사물 본성으로서보다 꽃이라는 사물로 호명됨으로써 인식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인간과 무관한 꽃 스스로의 몸짓이기보다 이름으로 성장(盛裝)된 꽃의 모습이다. 물론 김춘수의 꽃은 은유일 터이다.
사진으로도 담기 시작했다. 당연히 납작 드러누운 그를 내려보며 찍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다가 옆모습을 남기려고 머리를 한껏 낮춘 적이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온몸이 창을 향해 곧게 뻗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그의 몸뚱이 가까이 내 눈을 내려놓고야 그가 드러누울 수밖에 없음을 알아낸 것이다.
꽃은 보름을 넘기더니 꽃술을 제 머리맡에 가지런히 내려놓으면서 졌다. 꽃이 진 자리 바로 아래에는 이내 작은 봉오리가 맺혔다. 이게 시작이었다. 마디라고 하기에는 어쭙잖은 작은 가지마다 릴레이 하듯 피워냈다. 줄기도 더 자라고 굵어지기 시작했다. 쉼이 없었다. (…)
우리 서로 언어가 달랐기에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당신 때문에 나답게 살지 못했노라 원망했을는지 모른다.(「금잔화」 중에서)
김춘수의 「꽃」을 빌린다. ‘그를 금잔화라고 부르자 내게로 와서 금잔화가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가진 인간 본위 인식 방식과 질서를 구조화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금잔화를 특별히 다른 이름으로 호명한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물의 사물성과 무관한 이 당연한 관념적인 호명 인식이 이름을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인식과는 무관한 금잔화를 불러내어 현현시키는 것이 문학인지 모른다. 김양숙의 ‘금잔화’는 당연한 관념 속의 금잔화와 새로운 발견으로 재인식한 금잔화의 틈새에서 신음하고 배회한다.
성철 큰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고 했다. 이보다 구체성을 띤 표현도, 당연성도 없을 것이다. 평생을 깨달음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참선하신 큰 스님의 임종게여서가 아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누구도 의문에 빠질 이유가 없는 자명성 때문도 아니다. 장삼이사도 남녀노소도 한가지로 아는 빤한 사실이 한 생이 거두어지는 순간 벼락이듯 내려쳤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계가 한결같은 하나의 도리로 왔고, 있다는 것. 만물의 본성이 하나의 도리로 급습했을 것이다. 열반조차도 하나의 산이고 물과 같은 도리임을, 소멸이 탄생과 같은 신생이라는 것을 이윽고 알았다는 의미다. 그것을 작가 김양숙은 이렇게 적는다. ‘꽃이 진 자리 바로 아래에는 이내 작은 봉오리가 맺혔다. 이게 시작이었다.’
작품 「금잔화」는 세계가 늘 새롭다는 것. 모든 사물과 생명이 신생하고 있다는 것을 붙잡고 있다. 우연이듯 살아남은 금잔화 한 줄기가 필생의 생명으로 귀환하고 있음을 금잔화의 식생을 빌려 그려낸다. 한편으로 이제 초로에 들어선 작가가 금잔화 꽃이 지는 것과 씨앗 맺음이 매양 같은 질서임을 깨달음으로 신생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에어컨 환풍기 소음과 그늘, 그 틈새에서 금잔화가 토했을 외침, 신음, 기도, 누워서 기어서라도 환희작약 했을 생명을 보았다는 말이다. 생명의 환희를 감각하는 것을 함께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소리고 느꺼웠다는 것이다. 하루 또 하루가 고통 소망으로 공명하고. 하나가 하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이 하나로 이어지며 순간이 순간으로 연결되는 것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세계를 새로운 신생으로 직조할 수밖에 없었다는 선언이다.
대부분의 신인 작가는 기억으로부터 돌아봄이라는 공간에 오늘을 삼투시켜 글을 연다. 단순한 하나의 사물을 빌려 글을 여는 경우는 상당히 귀하다. 김양숙은 금잔화라는 하나의 사물을 빌려 글을 열고 닫는다. 인간의 호명으로 탄생하는 꽃보다, 그 인식 질서보다, 꽃의 사물성, 본성을 사유 속에 확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글은 그렇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이 무언지 모를 어떤 것이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가만히 바라보고 생각해 보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한 기억이 오늘에 겹쳐지며 꼬물거리며 오늘이 약간 슬퍼지거나 외로워지거나 분노하게 하는 것을 느끼는 일이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약간 예민해야 할 터다. 세상의 문학은 그곳에서 출발한다. 그의 열정을 기대한다.
―심사평 박춘 qkrcns7595@daum.net ㅡ
첫댓글 김양숙선생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자주 뵙겠습니다. 건필하십시요.
김양숙 선생님, 등단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