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찌부등하던 날씨가 오늘은 활짝 개었다. 일요일이다.
아침 7시 볼 일로 시내로 나가다가 알리앙스 예식장 쪽 네거리쪽에서
시외로 빠지는 대형 관광버스들이 줄을 이었다. 무슨 무슨 등산회 버스가
대부분이다. 모두들 맑은 휴일이라 산으로 관광지로 많이들 나간다.
혼자서 아침을 먹고 9시 앞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전처럼 안지랑 역까지 지하철로 가서 바로 보이는 앞산으로 향해 오른다.
늘 버릇처럼 천천히 오르리라 생각하고 가지만 습관처럼 급한 성질은
버리지 못해 시간을 의식하게 된다. 집에서 나서서 안지랑 역까지 30분
걸리고 거기서 앞산 660m 정상까지 2시간이 걸렸다. 11시 30분경
정상에 도달하고 다시 거기서 상인동 방면으로 내려와 집까지 걸어서
1시 15분에 도착했다.
산에 가면 정상까지 가는 동안에 힘이 들지만 올라 갈 때 머리 속에는
오만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를 추월 해 가는 젊은이가 라디오를 켜고 들으며 오른다.
라디오에서 홧병에 관한 방송을 하는 것 같다.
산에 오르는 이 시간만은 속세를 벗어나 맑은 정신이 되고자 하면서
쉼 없이 방송을 들어야 하는가 그러면서도 나 자신은 금년 8번째 오른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정상까지의 시간을 머리 속에서 굴려보기도 하고
정상에서 손자에게 전화를 하는 緣을 놓지 않는다.
지나치는 아주머니 두 분의 가정사 이야기도 심각하게 들린다.
은은히 들리는 안일사의 목탁소리와 산새들의 지저김에서 시간의
멈춤을 느끼면서도 나뭇잎이 이렿게 벌써 성큼 봄을 한아름 안고 왔다.
대구시 달성공원 쪽
성서 방면
정상에 올라 내려다 보는 대구시 전경은 뿌연 아지랑이에 가려 흐릿하다.
반대편 앞산너머 청룡산 쪽은 푸른 시야가 속내를 들어내어 가슴이
탁 트인다. 자주 오르는 앞산이지만 정상은 360도 삥둘러 시야가 넓어 가슴
속을 비우고 한 아름 채울 수 있는 여유를 부려본다.
저 산 밑 복잡한 세상에서도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괜챦을 텐데.....
하산하는 길은 고단한 몸에 돌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느라 별 생각이
없다. 그러나 내려오는 도중에 만나는 들꽃에 마음이 온통 솔깃해 진다.
들꽃 이름이 정확치는 않지만 집에 와서 그림으로 대충 이름을 맟추어
본다. 조용필의 들꽃 노랫말처럼 가냘픈 소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되고
외롭지 않기 위해 무리지어 피는 작은 꽃들이 이 봄의 앞산을 더욱
향기롭게 한다.
첫댓글 허허, 小湖 형이 이렇게 詩心이 깊은줄 모랐소. 과묵한 사람이 느낌은 많이 품지요. 이름 모를 작은 꽃을 언제 찾을 시간이나 있었겠소. 이제 넉넉한 시간을 느끼며 삽시다. 노래 선율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월의 만남을 기다리며 서울서.
혼자서도 산길을 걷는 마음, 들꽃을 담아두는 마음- 그런 것 이상으로 우리를 넉넉하게 잡아주는 남모르는 즐거움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요. 글과 사진, 음악이 우리를 함께 흐뭇하게 합니다.
小湖兄,대단합니다,훌륭한 수필문학가인줄 몰랏지요,배경음악과 글이 너무 가
슴에 와 닿는군요,70대 노인이 혼자서 앞산정상을 오르고 내려도 하루가 아닌
반 나잘이라!! 젊었을때나 가능한 이야기,,건강 비결이 궁금하군요?,흔히 말하
는 산수유나 능이버섯 아니면 무슨 고기 잡수었는지?,가르켜주십시요,수고 했
습니다,좋은 하루되세요.
토끼잡으러 갔던 옛추억이 나네요. 그보다 산을 오르내릴수 있는 게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네요. 작년 이후 다리때문에 산행을 어쩔수 없이 중지하였는데 마음은 늘 산에 있답니다. 앞산 모습 잘 보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혼자 지내는 시간이 자주 생기는가 보죠? 자연과 대화하는 시간도 늘어나시고...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小湖형, 산을 오르고 내릴때의 여유로움이 있어서 좋습니다. 아주머니들의 전화 속삭임 속에서 세상을 읽고, 들에 사랑을 줄줄 아는 형이 진정한 멋쟁이시군요. 이수인의 '고향의 노래' 원래 가을의 정취를 담은 가곡인데 바이올린의 연주곡으로 들으니 선율이 너무 아름답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