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학산-고대산 종주 산행기
일 자 : 2013. 5. 4(토)
산행지 : 금학산[947m : 강원도 철원군] – 고대산[832m: 경기도 연천군]
산행코스 : 철원여중고(동송) – 매바위 – 정승바위 - 금학산 정상 – 대소라치- 보개분맥 분기점- 고대산 정상 –
고대산 제2등산로 – 대광봉 - 칼바위 능선 – 말등바위 능선 – 신탄리역
산행거리 : 약 12 km
산행시간 : 11:20 – 20:20 (9 시간, 점심시간 40분 포함)
산행대장 : 27송기훈
참석자 : 24우명길, 24이기후, 27송기훈, 27조동식, 29박성재, 29이승환 (이상 6 명)
출발 및 귀경 :
출발 : 08:25 동서울 터미널 출발 11:15 동송터미널 도착 (2시간 50분 소요)
귀경 : 신탄리역 – 동두천역(39-2버스, 50분 소요), 동두천역 – 서울(22:24 지하철 1호선 구로행)
[금학산 – 947m]
금학산(金鶴山)은 고대산에서 바라보이는 산으로서 학이 앉아 있는 형상이다. 정상에서는 그 유명한 ‘철의 삼각지(평강을 중심으로 철원, 김화)’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철원평야와 DMZ 및 북녘의 산들을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6.25 전쟁 때 열흘 동안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는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산이다.
[고대산 -832m]
고대산(高臺山)은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의 경계에 있는 높이 832m의 산이다.
고대산의 유래는 "큰고래" 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것은 신탄(薪炭)지명에서 연루된 것으로 보이며 "방고래"(땔나무를 사용하는 온돌방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고랑을 고래하고 함)를 이르는 것으로 고대산은 골이 깊고 높아 고대산 이라고 한다.
궁금한 건 못 참아서 (동서울터미널 – 동송터미널)
지난 2월, 고대산에 올랐을 때에 멀리 보이는 꽤나 높은 봉이 무슨 산일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나뿐만 아니라 몇몇이 그랬었던 같다. 배고픈 건 참아도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며칠 후 지도를 찾아 보니 그 산의 이름이 바로 금학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묘사된 금학산은 해발 1,000미터에 육박하는 산의 높이도 높이려니와 그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철원평야의 풍광이 일품이라 했다. 더구나 험한 능선길도 매우 아름답다 했으니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할 산이라는 유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동서울 터미널을 떠난 3001번 버스는 이곳 저곳에서 정차를 하는 소위 완행버스. 도착지인 동송까지 우리를 태운 버스는 포천을 지나 문암리, 그리고 운천 또 관인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장장 3시간 가까이 달리고 또 달린다. 그렇게나 기나긴 여행이 그리 지루하지 않았던 까닭은 처음 접하는 소박한 지방 소읍의 모습도 흥미롭거니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주변의 투박한 풍경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 새로웠기 때문이다.
여유가 주는 선물 (철원여고 – 금학산)
터미널 바로 뒤의 철원여고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11시 20분. 금학산 정상을 바라보자니 그 높이에 자연스레 고개가 뒤로 한껏 젖혀진다. 그만큼 산이 높으니 가파른 된비알길을 정상까지 계속 치고 올라야 할 터이다. 여느 때보다 산행 시작 시간이 많이도 늦었지만 모두는 별로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갈 길은 먼데 우리는 마치 봄나들이 나온 소풍객처럼 그저 느긋하기만 하다. 그래, 오늘은 여유롭게 걷자. 쉬엄쉬엄 가면서 좋은 경치 마음껏 구경하고 활짝 핀 진달래 희롱도 하고 산들거리는 봄바람에 샤워도 해보자.
동송읍의 해발은 200미터, 중도에 내리막 한곳 없이 950미터 정상까지 곧게 올라 뻗은 능선길이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연 고도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겨우 30여 분을 걸었음에도 이미 동송 읍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일찌감치 시작되는 그 아름다운 경치에 우리는 차마 발걸음을 재촉할 수가 없었다. 쉬어 가자. 기후 형님이 건네주는 달콤한 쵸콜릿으로 시장기를 달래며 봄볕에 몸을 맡겨본다.
그렇게 10여 분을 쉬고 난 후 다시 발을 떼어 본다. 길은 다시 가파른 오르막 능선길로 이어지고 여기저기 피어난 연분홍 진달래며 물오른 나무의 연녹색 푸른 잎들이 좌우로 정렬한 길을 걷는 기분이 그렇게도 따사롭고 포근할 수가 없다.
12시 40분, 매바위 조금 못미처 바위턱 위에서 점심을 들기로 했다. 철원평야를 내려다 보며 먹는 늦은 점심. 고급스러운 어느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도 이만큼 멋지지는 않으리라. 동식의 아내가 정성스레 싸준 홈메이드 김밥이 꿀맛이다. 여럿이 나누어 먹으라고 엄청 싸준 덕에 모두는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햇볕 따사하고 배도 부른데 사위의 경치까지 멋들어지니 나른한 봄기운에 스르르 몸이 풀리며 그만 자리 깔고 누웠으면 좋으련만 아쉬운 자리를 툴툴 털며 다시 일어선다.
오후 1시 20분, 매바위에 도착한다. 능선길 위에 오뚝하니 서있는 매바위를 가만 들여다 보면 매 같기도 하고 재롱둥이 강아지 같기도 한데, 그 모양새보다는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가파른 능선길은 계속 이어지고 위험한 암벽 구간에는 나무계단이 설치가 되어 있어 쉬이 오를 수가 있다. 길은 가파르지만 땀이 그리 흐르지 않음은, 우리의 걸음이 재지 않기도 하거니와 주변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만 땀흘림을 잊었나 보다. 접근 교통이 불편해서인지 오가는 산행객이 매우 드물어 호젓하게 길을 갈 수 있으니 멋진 산길이 더욱 즐겁기만 하다.
철원군에서는 명문학교인 '철여고'에서 - 교정이 너무도 아름답다.
들머리로 이어지는 길이 조용하다. 금학정은 국궁장.
마침내 금학산 들머리에 - 오늘 갈 길을 가늠해 본다.
임도가 지나는 첫 번째 쉼터에서 시작되는 산행길 - 29이승환
봄볕 따사로운 쉼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철원평야에 감탄을 금할 수 없고
매바위 조금 못미처서 늦은 점심을 - 아래로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매바위를 배경으로, 아니 철원평야를 배경으로
정상까지는 가파른 경사길의 연속이다.
바위절벽이 가로막은 길에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얼굴바위 직전의 넓다란 쉼터 - 주변 경치가 절로 걸음을 멎게 한다.
정말 사람 얼굴처럼 생겼네~ 일명 정승바위라고도 부른다.
다시 보는 궁예 (금학산 정상)
오후 2시 20분에 얼굴바위를 지나 금학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50분. 모두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온다. 철원평야가 이리도 넓고 평탄하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멀리로 김화가 보이고 아스라이 보이는 DMZ 넘어 평강 일대까지 그저 평평한 땅이 드넓게 펼쳐지고 마치 거대한 이불보를 다리미로 다려 놓은 듯 반듯하기만 하다. 그 넓고도 너른 평야의 바다에 조그만 동산들이 작은 섬처럼 간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사이를 한탄강이 실뱀처럼 고불고불 휘돌아 흐르니 가히 천하의 장관이다. 천년 전 궁예가 이곳을 도읍으로 정한 까닭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 옛날 궁예는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되었을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감동이 클수록 말수는 적어진다던데 모두는 서로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말없이 대철원평야를 가슴에 담는다.
누군가 말한다.
“통일이 되면 여기다 제3행정수도를 만들면 좋을 게야.”
동식의 맞장구.
“2020년엔 통일이 된데~!”
이런, 가뜩이나 세종시 때문에 온 나라가 논란이 분분하고 시끄러웠음에도 또 행정수도라니 웃음이 나온다. 하기야 또 다른 행정수도를 만들던 말던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저 너른 평야를 가로 질러 기차가 달리고 그 길로 금강산으로 또 개마고원으로 갈 수만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아직도 남북은 서로가 으르렁대고만 있으니 과연 통일은 언제나 이루어질까?
정상에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지만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곳을 피해서 철조망이 쳐져 있다. 산악인을 위한 군부대의 배려가 사뭇 돋보인다. 정상에서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다. 계획대로 용정산 능선길로 하산을 하느냐 아니면 고대산으로 뻗은 능선길을 택해 고대산을 찍고 신탄리로 하산을 할까라는 갈등. 그러나 고민도 잠시, 아직 고대산을 밟아보지 못했다는 기후 형님과 승환의 작은 소망을 모두는 흔쾌히 따르기로 했다. 오후 3시, 해는 이미 정남을 지나 서쪽으로 제법 기울어져 있고 앞으로 하산까지 네 시간은 족히 걸릴 터인데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그만 갈 길이 바빠졌다.
헬기장 끄트머리에 서니 마치 헬기를 탄 기분~
음, 금학산이 맞네~ - 모두가 금학산은 초행길
기분이 상쾌 유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금학산-대소라치-고대산-신탄리)
금학산 정상에서 고대산 정상을 보니 능선길이 바로 눈 앞에 뚜렷이 보인다. 그러나 금학산과 고대산을 가르는 담터계곡까지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하니 힘 꽤나 써야 할 것 같다.
성재가 혼잣말을 한다.
“일일산행이 아니라 종주산행이군…ㅎㅎ”
맞다. 일일산행에 커다란 산 두 개를 가로질러 넘어야 하는 기나긴 산행길이다.
그러나 언제 이 길을 다시 와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모두가 같은 생각이다. 모두 의기가 투합하니 자칫 힘들고 지루할
수 있는 산행길이 즐거울 수 밖에 없다.
제법 가파른 하산길을 가볍게 내려서니 어느새 고대산 들머리인 대소라치에 닿았다. 3시 50분. 불과 50분 만에 하산하여 금학산과 고대산 두 산을 가르는 고개에 닿은 것이다. 뒤돌아 보니 높은 금학산의 정상이 우리를 도도히 내려다 보고 있다.
고대산 들머리의 너른 공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다시 오르막 능선길을 오른다. 50여분을 오르니 보개산으로 갈라지는 보개분맥 갈림길. 이제부터는 큰 기복이 없는 능선길이다. 평소 다니는 산행객들이 많지 않은 때문인지 자연스러운 길이 무척이나 정겹다. 간간이 나타나는 암릉길은 산행재미를 더해준다. 이미 다섯 시를 넘긴 시각에 햇살은 그 찬란했던 광채가 사위어가고 눈앞 지척에 보이는 고대산까지의 거리는 좀체 줄어 들지 않는다. 이런 속도라면 어두워질 때까지 무사히 하산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다행히 낮 시간이 길어졌음에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그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고 이렇게 가보기 쉽지 않은 종주길을 걷는다는 행복감에 젖어있는 듯하다.
드디어 고대산 정상. 시간은 여섯 시 정각. 해는 서쪽 산마루 위에 붉게 취한 얼굴로 잠자리에 들 듯 비틀거리고 있다. 정상석에 모여든 우리 모두는 마냥 행복한 얼굴들이다. 어둠이 깔리던 말던, 오늘 집에 갈 수 있던 없던 아무런 근심도 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다.
정상의 헬기장은 야영객들에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야영장소. 정상에서 야영할 수 있는 산이 매우 드물기도 하겠지만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분명 일품일 터, 그러니 한겨울에도 야영객들이 고대산 정상을 찾아 오고는 하는데 이미
야영객의 텐트가 서너 동이나 설치되어 있다. 아, 나도 오늘 밤은 이 곳에서 보내고 싶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걸음을 뗀다. 고대산의 세가지 등산로 중 제일 짧은 제2등산로를 택해 하산을 하기로 했다.
지난 2월 올랐던 길을 되짚어 가는 길이 무척이나 새롭다. 정상을 떠난 지 30분 만에 대광봉의 고대정에 들러 잠시 휴식 을 취하고 다시 하산길을 서두른다. 해는 이미 서산 뒤로 넘어 갔지만 황혼 빛이 주위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니 걸음은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다. 다만 두 가지 걱정이 길을 재촉하는데, 하나는 일찍 문을 닫는 신탄리의 식당이고 다른 하나는 막차 시간이다.
매우 가파른 하산길이지만 산행의 끝을 향해 걷는 길이라 그런지 모두의 걸음이 경쾌하기만 하다. 땅거미가 짙게 드리워진 신탄리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20분, 9시간에 걸친 장정의 끝이다. 모두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가득하다. 행복한 산행~!
금학산 하산길 - 내려가는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잖아?? (승환이 중얼 거렸음 ..ㅎㅎ)
대소라치 - 금학산과 고대산을 가로는 계곡의 정상부.
다정하게 걸어오는 승재와 승환 뒤로 보이는 산이 금학산이다.
다시 고대산으로 - 남들 하산 시간에 우리는 등산을 한다.
거참 묘하네?? - 고대산가는 능선길에서
이렇게 줄 잡고 하강해야 하기도 하고
다시 줄 잡고 오르기도 하며
산객 뜸한 능선길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이 되어있다.
오래 전 사용하던 헬기장에서 잠시 쉬어 간다. 이때가 오후 5시 46분 ^^
드디어~! -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든 대원들
대광봉에 설치된 고대정에서
칼바위 - 하산길은 매우 가파르다. 지난 겨울 어떻게 여기를 올라 왔는지 신기하다.
시간은 늦었지만 그래도 쉬자~ - 칼바위와 말등바위 중간에 있는 전망대에서
19:32 여기가 말등바위 - 이미 해는 졌고 사위는 어둑한데
후기
동두천행 기차는 10분 전에 떠났고 다음 열차까지는 50분을 기다려야 하니 그 사이 저녁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그러나 걱정했던 대로 신탄리의 몇 안 되는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기차 대신 버스로 동두천까지 가기로 했다. 신탄리와 동두천을 오가는 39-2번 버스는 한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를 동두천 역에 풀어 놓았다. 동두천역 주위는 식당은커녕 가게 하나 없는 삭막한 곳. 역무원에게 물으니 역사 뒤편에 식당이 하나 있다고 일러준다. 제일 집이 먼 명길 형님이 지하철로 가기 위해서는 10시 24분 발 지하철을 타야 했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30분. 밥을 굶을 수는 없으니 군대 졸병들처럼 식당까지 뛰어가서 게눈 감추듯 갈비탕 한 그릇씩 마시고 다시 뛰어와 겨우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내가 강동역에서 환승한 시각은 오후 11시 58분, 이게 막차란다.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운 시간이 새벽 1시. 몸은 무척이나 피곤하지만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오늘의 산행 필름이 재방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 끝-
첫댓글 철원평야~!
한국전쟁 끝무렵 휴전이 되면서 철원 쇠굴레땅이 남으로 편입되었지요.
김일성이 이 사실을 보고받은 뒤 사흘밤낮으로 식음 전폐한 채 끙끙 앓았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철원 땅은 대단한 가치를 지닌 곳이지요.
큰 아들이 이곳 동송에서 군생활 하다가 10개월 만에 제대한 곳이라 알싸름한 느낌입니다.
결산 :
회비 : 20,000 x 6 = 120,000
버스 : 11,300 x 6 = - 67,800
아이스크림 : 2,000 x 6 = -12,000
저녁식대 : - 50,000
당일 결산 : - 9,800
현잔고 : (전기이월 - 49,000) + (당일잔고 -9,800) = - 58,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