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날을 맞이하여
이태호
오늘은 아내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창문을 여니 어슴푸레하다. 잠시 후 아내의 자명종이 박명(薄明)을 깬다. 으레 새벽 4시 20분이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로 아내의 이동 전화가 운다.
“웬일로 일찍 일어나셨어요?”새벽기도에 따라 가려나? 기대에 찬 눈길이다. 나는, 고양이 세수를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자연이 주는 빛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요.”
아내가 교회에서 돌아오는 시각은 아침 6시 경이다. 아내와 나의 틈새는 한 시간 남짓이다. 배낭을 챙겼다. 카메라와 선글라스, 챙 넓은 모자, 라탄으로 엮은 소풍 바구니도 챙겼다. 바구니 안에 들어갈 것은 어제 챙겨놓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빵과 과일, 내가 즐겨 찾는 맛 동산 등이다. 샴페인도 한 병 넣을까? 구매에서 제외했다. 얼음이 금방 녹을 것 같고, 그냥 마시면 미적지근해서 오히려 입맛을 빼앗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이 먹기에 알맞은 케이크는 빼놓을 수 없었다.
멀리 가지 않았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변이 줄을 잇는다. 태안군에서 그 길을 단장하여 둘레길이라 명명했다. 나는, 자연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었다. 하지만 완공한 다음 둘러보니, 자연을 배려한 흔적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도 관광을 목적으로 한 그 길은 마음에 차지 않았다. 바닷길, 솔 모랫길, 노을 길, 샛별 바람길 등 많은 둘레길이 있다. 이번에는 ‘솔향기 길’을 택했다. 중막 골 근처에 한적한 해변이 하현달처럼 펼쳐있다. 되도록 바닷물 가까이에 누워 있는 너럭바위 위에 자리를 깔았다. 늘 푸른 솔숲은 엊그제 내린 비바람으로 송홧가루를 다 보낸 것 같다. 그런 소나무들이 솔 순 우듬지에서 아이의 설익은 젖꼭지 같은, 연분홍 솔방울을 키우고 있었다. 간간히 불어오는 갯바람과 솔 향기가 머리를 맑게 했다. 연애 시절처럼 가슴 설레는 대화는 없었었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부부답게 삶에 얽힌 형이상하학을 넘나들었다.
아내와 이야기하다 갑자기 곁길로 빠졌다. 해변으로 밀려든 각종 쓰레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과자봉지, 술병, 폐그물, 플라스틱 용기, 심지어는 멀쩡한 옷과 구두도 있었다. 이외에도 각종 쓰레기들이 바다의 목구멍을 찔러대고 있었다. 밀려든 해양쓰레기를 보면서 언뜻 이런 생각을 했다. 요즘 사람들은 사치와 쾌락을 생의 전부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연의 고귀함을 모르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처럼 자연에 치명타를 입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부부의 날’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들이다. 아내는 나의 불만에 빙그레 웃으며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건너편 소나무 그늘 밑으로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자리를 편다. 차림을 보니, 낚시꾼은 아닌 것 같다. 오자마자 큼직한 갯돌을 양쪽으로 세우고, 마른 솔잎을 모아 번개탄에 불을 붙인다. 매캐한 연기가 신선한 공기를 몰아낸다. 보나 마나 삼겹살을 구워 먹을 요량이다. 나는 그 모습이 마땅치 않았다. 가서 자연보호를 내세워 불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면, 보나마나 시비가 일어날 것 같다.
그래도 가야 할 것만 같다. 아내는 만류했지만, 굳이 그쪽을 향했다.
“여긴 자연보호 구역이니 불을 피우면 안 됩니다. 만약 불을 안 끄면 자연이 죽는 것은 물론, 벌금도 낼 수 있습니다.” 생각나는 수식어를 총동원하여 계속 부당함을 주장했다. 나의 말에 긍정하는 사람과 부정하는 사람으로 갈렸다. 결국, 그들은 불을 끄지 않고, 석쇠에 삼겹살을 얹었다. 기름 타는 냄새가 역겨웠지만, 곁에 있는 소주병을 바라보니 고기 익는 냄새가 친근하고 슬그머니 침이 고였다. 자연을 해치는 행동은 안 되지만 술병과 삼겹살을 보며 군침이 도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나의 이율배반적인 생각에 스스로 질책했다.
대강 구워 드시고 어서 불을 끄라고 말한 다음, 아내가 앉아 있는 너럭바위로 향했다. 곁을 떠나자마자 그들은 삭정이를 꺾어다가 화력을 높였다. 낄낄대는 웃음과 함께 자연을 화형 시키고 있었다. 마치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세대라도 되는 듯이 제멋대로 자연을 훼손하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비단 이곳, 저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타성에 젖은 이기심이 존재하는 이상,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이런 행위는 지금은 멈춰야한다. 계속 된다면, 미래의 우리아이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의 행동은 그 아이들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채무증서에 서명하는 셈이 될 것이다.
조용한 바닷가에서 오붓하게‘부부의 날’을 즐기겠다는 애초 마음은 시나브로 사그라졌다. 행복을 빼앗아가는 유형도 다양하다. 불편한 심기는 이내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럴 때는 톡! 쏘는 소주 한잔이 약이련만, 서두르다보니 빼먹었다. “여보, 저녁은 지난번 당신이 맛있다고 하시던 ‘오리 통구이’집에서 하시죠.” 속내를 모두 읽고 있는 아내가 고맙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오늘만큼은 아내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여보, 오늘 같은 날 통구이 말고 신선한 초밥으로 합시다. 내가 직접 요리할 것이니 당신은 보고 즐기기만 하시구려.”
오후 여섯시가 되었지만, 봄날은 밝게 빛났다. “어, 성만이냐? 난데 워디냐. 바다라고? 오늘은 물때가 좋아서 제법 잡았지? 입항이 몇 시냐.”초등학교 동창생인 선진 호 선장이다. 녀석은 늘 같은 말이다. 많이 잡았느냐고 하면, 그저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부두에 나가보면 다른 배보다 적게 잡지는 않은 것 같다.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아내와 둘이서 통발이나 그물을 치며 바다에서 삶을 낚는다. 고생한 만큼 월 소득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만 봐도 내 차의 다섯 배나 되는 고급승용차다. 하지만 녀석은 오늘이 ‘부부의 날’이란 것은 모를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때와 날씨다. 바다의 속내를 잘 알지 못하면 뱃사람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앎과 숙지는 곧바로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배 사업은 물론 우리보다 엄청 더 잘하는 것이 또 있다. 일 년에 두 번, 동창생 모임에서 나들이 갈 때다. 얌전하게 생긴 친구의 아내는 춤꾼으로 변한다. 막춤의 대가 중 하나가 그의 부인이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였던지 신들린 무속인의 춤과 같다. 버스가 출렁거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단 한 번도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진실하게 느껴졌다. 반면. 우리 부부는 언제나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와 같다. 남들이 보면, 본능을 숨기려는 정직하지 못한 인간으로 볼 수 있다. 그때가 나는, 그들이 가장 부럽고 부끄럽다.
친구의 정직한 손끝에서 우럭과 놀래기가 마지막 앙탈을 부린다. 다섯 마리를 담았다. 우럭은 보리가 팰 때쯤 가장 맛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이 제철이다. 나는 날이 선 회칼로 능숙하게 비늘을 벗겨내고, 살점을 뜬다. 뼈에서 벗어난 살점은 마른행주로 감싸 냉장실에 넣는다. 싱싱하다고 다 맛있는 것은 아니다. 약 1시간 이상은 냉장고에서 숙성시킬 필요가 있다. 대가리와 뼈는 적당하게 칼질을 하여 냄비에 담는다. 매운탕용이다. 그다음으로 밥을 짓는다. 무엇보다 초밥에 사용하는 밥은 잘 지어야 한다. 질어도 안 되고, 고두밥도 안 된다. 고실고실 기름이 잘잘 흐르고 윤기가 나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밥물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뜸을 잘 들여야 한다. 밥이 제대로 됐으면 식초, 소금, 설탕을 녹여서 밥에 섞는다. 그런 다음, 밥알을 떼어 맛을 본다. 아내의 취향인 새큼, 달콤하면 성공이다.
밥알들을 그대로두면, 뻣뻣하게 자존심을 세운다. 초밥을 다 만들 동안 깨끗한 면포에 촉촉하게 물에 적셔 애초의 부드러움을 유지시킨다. 초밥을 만드는 것 또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왼손 손바닥에 아내의 입에 맞춰 적당한 크기로 올린다. 그런 다음, 살짝 쥐어서 그 위에 고추냉이와 생선 조각을 올린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나란히 하여 생선이 떨어지지 않게 살짝 누른다. 모양이 자연스럽게 잡히면 대나무 무늬가 싱그러운 대접에 일렬종대로 세우고 사열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다. 쉬운 것 같지만, 이 또한 기술을 요한다.
오후 8시에 초밥과 회, 찌개를 포함한 만찬이 밥상 위에 올랐다. 물론 정종을 빼놓으면 초밥과 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날에는 소주보다 품격을 조금 더 높여야한다. 정종은 기다란 유리컵에 적당량을 채운 다음, 파이렉스 용기에 넣고 간접적으로 데운다. 너무 뜨겁거나 미지근해도 고유의 향과 맛은 절감한다. 약지를 담가보면 적정 온도를 알 수 있다. 처음 한 모금 마실 때 조심해야한다. 숨을 멈추고 술을 입안에 모았다 넘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숨이 막히면서 재채기가 먼저 튀여 나온다. 목구멍에서 탁! 쏘는 맛과 향이라니 애주가만이 안다. 초밥 서른 개를 만들었다. 누가 몇 개를 먹었는지, 정확하게 세지는 않았다. 생각건대, 아내가 나보다 더 많이 먹은 것 같다. 많이 먹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기쁨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바이올린을 타고 온 방 안을 감싸는 시각이다. 나는 아내의 두 손을 잡고 이렇게 다짐을 했다. “여보, 혹여 우리에게 야망이거나 욕망의 잔재가 남아 있다면 어서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것에 사로잡혔던 시절을 떠올려봅시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갈증에 시달리며 헤매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만약 더 이상 욕심을 부린다면, 그것은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한잔의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 있고, 보이며, 만질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하며 삽시다.”
* 회원여러분, 부부의 날을 맞이하여 바닷가와 집을 오가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사실은 오늘이 ‘부부의 날’이란 것을 몰랐습니다. 다행히 육상구 회장님의 댓글 덕으로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은 사소한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었다면, 저는 통장을 비웠을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일상입니다. 회원님들, 오늘도 많이 웃으시고 행복하십시오.
첫댓글 멋진 부부의 날, 참으로 부럽습니다. 저는 그런 날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멋 없는 구식남자인데..."정종을 빼놓으면 초밥과 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대목이 저의 눈에는 유독 크게 들어 옵니다.
네, 정종은 따뜻해야 제맛이 납니다. 복어 꼬리 말린 것을 구워서 넣으면 색깔도 더 좋고 맛 또한 특이합니다. 젊은 시절 일본 도시바 연수 중 그쪽 동료에게 얻어 먹은 기억도 삼삼합니다. 어제는 빗방울이 떨어지드니 오늘은 햇빛이 참 맑은 아침을 맞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몽산포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한적하던, 해변에 알밤 같은 조개가 흔하던 곳에 캠핑장이 생기고, 캠핑하는 이들이 요새 얼마나 많은지 바닷가 하늘이 숯불에 고기 굽는 매캐한 연기로 뒤덮여 숨도 쉴 수 없었어요. 지구와 닮은 별로 이주해야 할 것 같아요. 호킹 박사의 말처럼. 역시 근사한 부부의 날을 보내셨네요. 멋지십니다.^^
요즘은 펜션이나 모텔보다 텐트 촌를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이곳 만리포도 솔밭 숲에도 오후가 되면 기름 타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솔숲 텐트촌 소나무엔 솔방울이 많이 달립니다. 그 이유는 죽음을 의식한 나무들이 어서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이랍니다. 다음에 이쪽으로 오실 때 꼭 전화하세요. 토줏대감에게 신고도 안하시고...^&^
멋진 부부세요. 요즘 요섹남이 뜨는데 유행을 선도하시는군요
두 분 건강하시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는 이들에게도 더 많이 행복을 나눠주세요~^^*.
ㅎㅎㅎ 더 늘기 전에 폼한 번 잡아 보았습니다. 아내에게 잘 하면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부부의 날을 멋지게 보내시는 모습이 매우 부럽습니다. 아내를 생각하고 식사를 준비하시는 손길이 어쩌면 그리도 능숙하신지 부럽습니다. 역시 금슬이 좋은 부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식사준비는 가끔 합니다. 퇴직하기 전에 요리 강습소에서 배웠습니다. 나이 들면 손수 만들어서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지요. 근데요. 아무리 노력해도 아내의 손맛에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부부의 금슬은 만들기 탓인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자리가 그저 든든하고 고맙기만 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선생님.
ㅎ ㅎ ㅎ 만리포는 해헌님과 사모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해안을 산책하시는 두 분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젤 멋지십니다.
부부의 날에 저는 '오늘이 부부의 날'이라고 말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