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내가 신데렐라가 아닌데 유리구두를 신고 싶다고 발을 자를 순 없다.’ 어릴
때부터 내 삶의 가치관이었다. 하기 싫은 억지로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고자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성적도 잘 나오고 상도
받고 목표로 하던 것들을 이루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때쯤 있었던 선거에서 뉴스와 기사마다 나오는 선관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상상했을 때 스스로가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의 목표를 선거관리위원회로 정했다. 그러나 단순히 하고싶다는 의지만으로는 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선관위에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를 어필하고자 한다.
지도계에서는
감시와 조사하는 일을 한다. 제대로 된 감시와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청렴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토론 동아리의 부장역할을 했다. 부장이 주로 하는 일은 토론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평가하는 역할이었다. 이
활동을 통해서 중립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길렀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차별하면 토론의 진행이 불가하기에
더욱더 철저하고 납득할 만한 기준을 통해 평가하였다. 그 덕에 지금까지도 단순히 감정에 휘둘려서 일을
그르치거나 망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한 어릴 때부터 가족의 영향으로 자원봉사와 기부를 생활화 하면서
남을 돕는 삶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이런 영향으로 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추구하기 보다는 남을 돕고 베푸는
삶을 지금도 지향하고 있다. 나의 이런 이성적인 판단력과 욕심이 없는 삶은 감시와 조사에 있어서 매우
용이하게 작용할 것이다.
관리계에서는
개표와 전반적인 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선거가 있을 때는 매우 많은 업무가 존재한다.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대학교 시절 아르바이트의 경험은
이 부서에서 매우 적합하다. 새벽 2시까지 알바를 하고 7시에 일어나 학교를 가는 생활을 약 2년간 하면서 많은 업무에도
견딜 수 없는 체력이 생겼다. 물론 단순히 부지런한 생활만 한 것이 아니라 결과도 좋았다. 학교에서는 성적 장학금을 받았고 알바에서도 가장 많은 시급을 받으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수년간의 도서관 자원봉사 경력으로 일처리에 있어서 꼼꼼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홍보계에서는
말 그대로 선거에 관한 홍보를 하고 매니페스토(구체적인 예산과 추진 일정을 갖춘 선거 공약)에 대한 업무를 담당한다. 홍보에 대한 감각과 정치에 대한 안목이
필요한 덕목이다. 나는 정치외교학과 전공으로 학문적인 지식은 물론이고 정치적 안목이나 관심 역시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자부할 수 있다. 또한 홍보에 있어서도 고등학교 때부터 홍보ucc대회에 여러 번 참가했고 입상도 몇 번 한 경험이 있다. 홍보에
대한 실무적인 경험과 센스는 선거를 홍보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스티븐
잡스는 애플이라는 회사를 혁명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한 명의 사람이 하나의 회사를 변화시키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그게 내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은 선관위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열정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열정 이외에도 나라는 사람이 선관위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말하고 싶었다. 뛰어나 열정과 모든 부서에 적합한 업무 능력은 선관위를 지금보다 더욱 발전되게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의 푸른(淸)사나이
‘세상에는
너무 나쁜놈들이 많아’그가 항상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세상에는 나쁜놈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는 한 평생 대한민국에 청렴이라는 푸른 기운을 뿌리내리고자
했지만, 나쁜놈들은 그런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그가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25세에
그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부르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에 그는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계는 그가 상상했던 세계가 아니었다.
그가 알지 못했던 뒷세계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영화에서나 일어날 것 같던 일이 실제로도
일어난다며 나에게 넋두리를 뱉으며 다짐했다. 자기가 상상했던 세계를 직접 만들어 보이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때부터 부패정치인 잡는 공무원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가
유명해지게 된 사건은 2022년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한 후보자의 부패를 찾아내면서 부터이다. 이 정치인은 지방의 유력 기업과 결탁하여 기업의 돈을 이용해 선거에 당선되고 당선 이후에 그 기업에 혜택을
주는 행위를 하였다. 당시 이 사건의 규모가 꽤나 컸던 관계로 그는 한 순간에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제가 칭찬을
받는지 모르겠네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그의 이
한마디는 한순간에 그를 청렴공무원의 대표자로 만들었다.
실제
그가 근무했던 대구 지역의 선거 부정부패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는 자기가
소망했던 것을 조금은 이루었다고 기뻐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이러한 소망은 그를 서울로 이끌었다. 서울에서도 그의 열정은
꺼지지 않았다. 그는 항상 만화 속 인물처럼 분신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럼 더 많은 부패정치인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의
이런 열정은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지하는 사람만큼 그를 음해하는 세력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정확히
말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죽음에 미련이 없다고 말했다. 한
번뿐인 인생 어차피 언젠간 끝날 인생인데 그 끝에 매달리기 보다는 현재의 내 삶의 목표를 이루는 게 더 중요하다고 그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는
단순히 부패정치인을 잡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늘 말했다. 그래서 조금 더 명확하고 장기지속 가능한
부패척결 방법이 필요하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김영란법에서 영감을 얻어 차경준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김영란법이 공직자 전반에 관한 부정을 방지하는 법이었다면,
차경준법은 정치인의 부정에 초점을 맞추어 구상했다. 이 법안은 부정을 감시하는 선관위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 기간에는 검찰에서 특별 부서를 설치하여 선관위와 결탁하여
선거기간 중 부패정치인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또한 제보자들에 대한 포상을 대폭 늘리고
혐의가 인정된 정치인에 대한 3회동안 선거출마를 금지하면서 처벌을 강화하여서 부정을 예방하고자 하는
구상을 했다. 물론 이 법안이 통과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법안을
발의하는 정치인들이 반발하면서 나섰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이 법안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여전히 부패정치인에 맞서고 있었다. 예전보다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열정만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청렴에 대한 강연을 했다.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부패정치인을 비판하고 정치인이 될 대학생들에게 청렴에 대한 중요성을 전파했다. 그리고 어느
때와 다름없는 어느 여름 날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강연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강연이 그의 마지막 발걸음이었다. 그는 이름 모를 괴한의
습격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남긴 차경준법 발의를 추진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의 염원을 국민들은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망 1년 후 그가 그토록 바라던 차경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비록 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꿈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저 높은 곳에서 행복한 미소를
띄우며 편안히 잠 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