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칼럼] 영호남 지역주의? 수도권이 ‘지역’이 됐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다음날인 16일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였던 지역주의가 극단적으로 되살아났다”고 썼다. 호남에선 더불어민주당이 28석 중 27석을 휩쓸고 반대로 영남에선 미래통합당이 90% 이상을 가져갔다는 게 ‘지역주의 부활’의 근거였다. 다음날 <한겨레신문>은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의 정당 득표율 분석을 토대로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영남지역 득표율은 과거보다 올랐다”며 지역주의 회귀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19대 총선 이후 영남 지역, 특히 부산·경남의 민주당 득표율 추이를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빠뜨린 4·15 총선의 정말 중요한 ‘지역주의’ 함의는 다른 데 있다. 바로 수도권이 하나의 ‘지역’으로 분명한 색깔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과거 선거에서 ‘지역’이란 영남 호남 충청을 의미했을 뿐, 수도권은 ‘지역’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영호남과 충청은 주요 정당의 정치적 기반으로 간주됐다. 반면에 수도권은 이들 지역 표심의 영향을 받아 여야가 엇비슷하거나, 정치 상황에 따라 진보·보수를 넘나드는 ‘스윙 보터’(swing voter)로서 역할을 한다고 평가받았다. 지금까지 대선 레이스에서 ‘영남 후보’ 또는 ‘호남 후보’ ‘충청 후보’는 있어도 유력한 ‘수도권 후보’가 존재하지 못했던 건 이런 데 기인한 바가 컸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선거, 특히 4·15 총선 결과는 수도권이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를 넘어서 민주당의 ‘지역 기반’으로 자리잡았다는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수도권 유권자 수는 서울(847만명), 경기(1106만명), 인천(250만명)을 합쳐서 2,200여만명에 이른다. 전체 유권자(4천397만명)의 절반이다. 2012년 19대 총선 이래 7차례의 전국 선거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서 모두 승리했다. 박근혜 후보가 비교적 큰 표차(108만표)로 승리한 2012년 18대 대선에서도, 수도권에선 문재인 후보가 간발의 차로 앞섰다. 그 이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지면서 수도권은 ‘지역색 없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수치로 확인해보자. 2012년 4월의 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서 총 493만여표(46.6%, 지역구 기준)를 얻어 478만여표(45.3%)를 얻은 새누리당을 14만여표 차로 이겼다. 지지율 격차는 1.3%포인트에 불과했다. 의석 수는 민주당 65석, 새누리당 43석으로 20여석 정도 차이가 났다. 그해 12월의 18대 대선에선, 앞서 얘기한대로 박근혜 후보가 승리했지만 수도권에서만은 문재인 후보(7,463,936표, 49.8%)가 박근혜 후보(7,406,087표, 49.4%)를 약 5만7800표 앞섰다.
박빙이던 표차는 2014년 지방선거 때부터 좀더 벌어진다.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연합은 서울 ·경기·인천에서 580여만표(51.1%)를 얻어 523만여표(46.1%)에 그친 새누리당을 눌렀다. 지지율로는 5%포인트, 표수로는 56만5천여표 차이였다. 2016년 20대 총선에선 민주당은 수도권서 42%를 득표해 37.7%에 그친 새누리당을 4.3%포인트(50만5천여표) 차로 이겼다. 의석은 민주당 82석, 새누리당 35석으로 4년 전에 비해 격차가 더 벌어졌다. 2017년 5월의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수도권에서만 3백만표 이상 차이로 이겼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대선이라, 여야 격차가 평상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서 675만여표(54.2%, 광역단체장 기준)를 얻어 야당인 자유한국당(3백75만표, 30.1%)을 크게 앞섰다. 다만 또다른 보수 야당인 바른미래당이 131만여표(10.5%)를 얻었기에, 민주당과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수도권 표차는 169만여표 정도가 됐다. 이 수치는 4·15 총선에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얻은 수도권 득표의 격차와 거의 비슷하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서 770여만표(44.9%)를 얻었다. 592만여표(34.5%)를 받은 미래통합당을 178만여표 차로 이겼다. 의석 격차는 민주당 103석, 통합당 16석으로 더욱 커졌다. 2012년부터 살펴보면, 19대 대선을 제외하더라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수도권 득표 격차는 10만여표에서 50만표, 그리고 170만표 안팎으로 점점 벌어진 걸 알 수 있다.
수도권의 이런 흐름은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좀더 근본적인 선거구도 변화로 보인다. 1980~90년대 민주화의 세례를 받은 세대가 한국 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은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또 과거엔 영호남 표심이 수도권의 영호남 출신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선거에서 지역감정이 태동한 건 1960년대 말~70년대 초의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이제 두 세대 가까이 흐르면서 지역 표심이 더이상 수도권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점도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견제론’이 먹히지 않은 건 그런 사례라 할 수 있다. 통합당도 인정했듯이 선거 막판 영남의 보수 표는 강하게 결집했지만 이것이 서울 강남 일부를 제외하곤 수도권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유권자 절반이 몰려 있는 수도권의 ‘지역화’는 미래통합당엔 매우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미래통합당을 6%포인트만 앞서도 105만표(투표율 80% 기준)를 더 얻는다. 통합당이 아무리 영남을 석권해도 이 격차를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구도에서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승리하는 길은 하나 뿐이다. 1997년이나 2002년 대선 때의 민주당처럼,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하고 집권세력이 분열하기를 기대해야 한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거의 모든 보수 정치세력(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미래통합당 지지 의사를 밝혔다)을 결집했는데도 역대급 참패를 당한 건, 더이상 ‘보수의 통합’만으론 승리하기 힘든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1997년 대선에서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의 꿈은 ‘호남을 뛰어넘는 전국정당’이었다. 첫 비서실장에 대구경북 출신의 김중권씨를 임명하고, 다음 총선에서 그를 고향인 경북 울진에 출마시켰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전국정당이 되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영남 기반 확대를 염원했다. 두 전직 대통령 예상과는 조금 다를지 모르나, 이제 민주당은 ‘전국정당’이 됐다. 영남에서의 도약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지 모르나, 유권자 절반이 사는 수도권을 확실한 ‘지역 기반’으로 두게 된 건 분명해 보인다. 반대로 미래통합당은 영남, 좀더 정확히는 대구경북에 갇힌 ‘지역 정당’으로 전락했다. 아직도 ‘영남 보수’가 한국 사회 주류인 것처럼 착각하고 4·15 총선을 ‘영호남 지역주의 부활’로 보는 철 지난 시각으론 미래통합당의 미래는 없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2493.html#csidx34d9f721e38af4b94569ab0ca0979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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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래 세 가지 이유로 이 글을 좋은 평론으로 선정했다.
1. 기존에 논의됐던 주제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다
이 평론은 선거철마다 논의되는 ‘지역주의’라는 현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역주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타지역에 비해 정치색이 명확히 드러나는 영·호남 지역을 떠올린다. 따라서 지금까지 지역주의에 대한 평론은 대개 영·호남 지역을 주제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 평론은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163석 중 103석을 가져간 ‘수도권’도 하나의 ‘지역’으로 정치적 색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기존 지역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배제돼왔던 수도권이라는 지역에 초점을 맞춰 선거 결과를 분석한 것이 참신했다.
2. 글의 전개가 신선하다
이 글은 단순히 수도권도 하나의 ‘지역’이 됐다는 주장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변화에 맞춰 제1야당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제시했다. 글쓴이는 글의 초·중반부에서는 수도권이 지역화됐다고 볼 수 이유에 대해 설명한 반면, 마지막 문단에서는 미래통합당이 ‘영·호남 지역주의’ 주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수도권의 지역화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마지막에는 보수세력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제시했다는 점에서 글의 전개가 신선하다고 느껴져 좋은 평론으로 선정하게 됐다.
3.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론이다
필자는 지난 두 번째 과제에서, 좋은 평론가의 덕성으로 ‘쉬운 언어’를 꼽았다. 따라서 이 칼럼 또한 읽기 쉬운 글로 느껴져 좋은 평론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이 글은 어려운 한자 용어가 없고 문장이 A4 용지 기준, 두 줄 내지 단문으로 구성돼 있어 가독성이 높다. 또한 일반 대중들이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스윙 보터(swing voter)’,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와 같은 용어들의 정의를 밝혀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만일 용어의 정의가 없더라도 문장의 앞뒤 맥락을 통해서 누구나 쉽게 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글이기에 우수한 평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