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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하나님께 나아감 * 초대 * 송영 2,9
고백과 사죄 * 신앙고백 구약말씀 신명기 15:1-11 고백의 기도 사죄의 선언 감사의 찬양 115
말씀으로 오심 성경 마태 5:40-42 말씀:사랑으로 악을이기기 2 헌신의 기도
감사로 응답 감사의 찬양 447 감사의 예물 감사의 기도
파 송 * 파송의 찬송 222 * 축도 |
38 너희들은 다음과 같이 말해 졌다고 들었다. “눈에 대항하여 눈으로, 이에 대항하여 이로”
39 그러나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악한 자를 대항하지 말라. 오히려, 누구든지 너의 오른쪽 뺨을 때리는 자가 있으면, 그에게 다른 쪽도 돌려 대어라.
40 너에 대해 재판을 받게 하여 너의 속옷을 가지고자 소원하는 자, 그에게 겉옷까지도 내어주라.
41 또 누구든지 너를 1마일을 강제로 가게 만드는 자, 그와 함께 2마일을 가라.
42 너에게 구하는 자에게 주라, 그리고 너에게 빌리려고 소원하는 자를 돌려 보내지 말라. |
I. 국가. 직장의 의무 하나님 나라 백성 사랑 나타냄 1) 억지로 일 시키는 나라 (41절) 2) 예수님의 가르침: 국가에 대해 기꺼이 (41절) 3) 사도들의 가르침: 국가와 직장에서 로마서 13:5 에배소서 6:7-8 고전 7:13
II. 재산을 지킬 때도 하나님 나라의 사랑나타냄 1) 하나님의 사랑의 구약법 어기는 악한 자 (40절) 신명기 24:13
2) 예수님과 사도 가르침: 겉옷까지 주라 ( 40절) 히 11:34 i) 고전 6:7 ii) iii)
III. 나눔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 사랑 나타냄 (42). 1) 구약의 하나님 나라: 주기, 꾸어 주기 신명기 15:7-11
2)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회의 실천 (42) 고린도후서 8:9 고린도후서 9:7
3) 하나님 나라 위대한 비전: 나눔의 명령과 보호 신명기 15:10,11, 5 마태복음5:45 에배소서 5:1-2 마태복음 7:7 마태복음 6:30-33 |
말씀 492 마태 29회
사랑으로 악을 이기라 (2) (마 5:40-42)
2010년 12월 12일 (일)
1. 국가나 직장의 의무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랑을 나타낸다
1) 억지로 5리를 가게 하는 정부, 그리고 직장 (41절)
2) 예수님의 가르침: 국가에 대해 기꺼이 (41절)
3) 사도들의 가르침: 국가와 직장애서
로마서 13:5
에배소서 6:7-8
고전 7:13
2. 우리의 재산을 지킬 때도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낸다.
1) 하나님의 사랑의 구약법을 어기는 악한 자 (40절)
신명기 24:13
2) 예수님과 사도의 가르침: 겉옷까지 주어라 (40절)
히 11:34
i) 고전 6:7
ii)
iii)
3. 나눔을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낸다 (42).
1) 구약의 하나님 나라: 주기, 꾸어 주기
신명기 15:7-11
2)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회의 실천
고린도후서 8:9
고린도후서 9:7
3)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비전: 나눔을 위한 명령과 보호
신명기 15:10,11, 5
마태복음5:45
에배소서 5:1-2
마태복음 7:7
마태복음 6:30-33
사랑으로 악을 이깁시다. 우리는 사랑 많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나라로 들여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상 가운데서도 천국백성으로 사랑으로 나누어 줍시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구약 성도는 잘못 이해하여,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반드시 보복하고 복수해도 된다, 나에게 피해를 준 것을 다시 다 뺏아 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원래 뜻은 “남에게 피해를 보면, 개인적으로 보복하려 하지 말고 법을 통해서 정의롭게 처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의 원래 뜻을 회복하셨습니다. 좀 빼앗기고 빰을 맞는다고 해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손해를 보라고 말하셨습니다.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말라” 즉 복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른 쪽 뺨을 돌려 대거든 다른 쪽도 돌려 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살아가다가 뺨을 한 대 맞고 모욕을 당한다면, 빰 한대 더 맞을 각오하고 계속 하나님 나라의 나라와 의, 사랑을 위한 삶을 계속 살아갑니다. 악한 행동을 하고 또 보복하는 세상에 감염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성품, 소금의 맛과 그 빛을 계속 내보내라고 하는 말씀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40-42절에서 사랑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을 듣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남의 것을 뺏아가는 사회는 불의한 사회입니다. 광고를 통해 우리에게 돈을 버는 것 처럼 해 놓고 사실은 우리에게 돈을 뺏아갑니다. 남의 것을 뺏아가도 내 버려 두는 것은 불의한 사회입니다. 다행히 우리 대한밈국은, 남의 것을 원래 주인에게 잘 찾아 주는 정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불의한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너머서, 자기 것도 남에게 주는 사랑의 사회입니다. 불의한 사회는 남의 것을 뺏아가는 사회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것을 자발적으로 나누어 주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하여 갚지 않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여 그 몸을 십자가에서 제사로 드리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희도 나처럼 나누어 주라”고 말합니다. 이 새로운 사랑의 나라를 이루도록 교회를 세워 주셧습니다. 우리는 악한 세상 가운데서, 사랑으로 소금의 짠 맛을 내고 빛을 비춥니다.
사랑으로 악을 이깁시다. 악한 자에게도 나누어 줍시다.
첫째, 우리는 국가가 억지로 시키는 일, 직장에서 해야 할 의무를 할 때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둘째, 우리는 재산을 지킬 때도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셋째, 우리는 나눔을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이 아침에도 성령님께서 은혜 주셔서, 어떻게 해서든 손해 보지 않고 우리를 내 것을 찾아오려는 마음을 없애시고,풍성히 나누어 주는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 나라의 마음으로 가득채워 주시기 소원합니다.
I. 우리는 국가나 직장에서 해야 할 의무를 할 때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41절).
첫째, 우리는 국가나 직장에서 해야 할 의무를 할 때 기쁨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1) 억지로 일을 시키는 국가 (41절)
국가는 억지로 백성에게 시킬 권한이 있습니다. 41절,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4리가 1km 니까, 1.2 km 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로마에서 쓰던 마일인데, 한 1.5 km 정도 됩니다. 억지로 가게 한다”는 원래 페르샤의 정부 우편제도에 쓴 말입니다. 정부의 소식을 먼 곳에 알릴 때, 지역사람을 뽑아서 릴레이로 소식을 알리게 합니다. “너는 여기서 저기까지 달려가서 다름 사람에 이 정부 문서를 전해 주어라” 하고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에서도 국민들에게 여러 일을 강제로 시키는 일에 이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여기서는 국가가 강제로 국민에게 일을 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국가에 대해 기꺼이 (41절)
정부에거 너에게 5리를 강제로 가게하면 5리를 더 가라. 이 말은, 실제로 더 가라는 말일까요? 다음에 달릴 사람이 있습니까, 더 달려갈 필요는 없습니다. 이 뜻은 더 갈 각오를 하고 기쁘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새 나라에 살고 있어서, 영적으로는 세상 나라와 관계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새 나라에 속해 있기 때문에, 국가가 국민에게 의무로 시키는 일, 세금 내는 것, 세상의 법을 지키는 것을 기쁨으로 합니다.
3) 사도들의 가르침: 국가와 직장에서 .
사도들도 이 말을 받아서 권고합니다. 로마서 13:5는 국가에 대해,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니라” 국가에서 시키는 일을 양심을 인해서 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한다는 뜻입니다. 기쁨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국가를 세워 주셨기 때무에 국가에 대한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합니다.
또 강제로 일을 해야 하는 노예에 대해서 같은 말을 합니다. 에배소서 6:7-8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든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 앎이니라” 단 마음이란 꿀을 먹듯이 달콤한 마음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주인이 시키는 일, 억지로 일을 시키지만, 단 마음으로 하라고 합니다. 왜냐고요? 주께 상을 받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복하듯이, 자기가 할 것만 하고 끝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노예는 일을 열심히 하여 주인의 재산을 늘려 줌으로써 주인에게 이익을 줍니다. 기쁜 마음으로 일하여 그들을 사랑합니다. 노예 주인은 노예를 짐승취급하지만, 그는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 (고전 7:13) 입니다. 자유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자유시민으로 행동합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대한 민국, 지금 내가 속한 직장과 학교에서 하나님의 자유자로서 삽니다. 세상의 깍쟁이 정신, 억지로 하는 것에 감염되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할 일을 기쁜 마음으로, 의무 이상으로 행동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껏 일합니다. 직장에서도 자기 책임 이상으로 일하고 궂은 일을 합니다. 우리의 직장 상사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마지막 날에 갚아 주십니다. 제발 노예근성으로 노예처럼 살지말고 자유인으로 살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 학생들도 공부할 때 , 시험만 잘 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5리를 더 가는 심정으로 하는 것은, “언어는 무엇인가? 논리는 무엇인가?” 호기심을 가지고,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공부하는 자유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앞으로 제자가 될 노예들도 읽어라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국가에 대해서든, 직장에서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유자로서, 직장에서 시민사회에서 국가에서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소금의 짠맛을 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는 재산을 지킬 때도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둘째, 우리는 재산을 지킬 때도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1)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어기는 악한 자 (40절)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 송사 뭐지요? 법원에 고발하는 것, sue 하는 것을 말합니다. 돈을 빌려 주고 갚지 못하니까, 어떤 사람이 고소를 합니다. 속옷이 요즘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비쌌습니다. 그러나, 속옷을 빼앗아 가지려 한 것을 보니, 빌려 준 돈이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지독하게 악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거짓말로 소송을 해서 옷을 빼앗아 가려 하는 지 모릅니다.
원래 구약의 언약 율법에서 돈을 빌려 준 사람이, 빌려간 사람의 물건을 가지고 보관하는 것을 전집물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24:13은 말합니다. “해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며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고, 돈 대신에 전집물로 가져고 왔다면, 저녁이 되기 전에 가져다 주어라. 왜냐하면 옛날 이스라엘서는 따로 이불이 없었으므로, 옷이 이불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돈을 빌리는 가난한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 의롭게 사랑있고 축복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살아갈 이 세상은 속옥이라고 빼앗으려 하는 악한 사회, 하나님의 자비의 법을 모르는 악한 세상입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겉옷까지 주어라 (20절)
이 악한 세상에서, 그 악한 자에게 예수님은 겉옷까지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개인적으로 보복하여 하지 않고, 정당하게 법을 통해 우리의 재산을 지킬 수 있다면 지킵니다. 그러나 국가의 법도 우리의 재산을 지켜 주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속옷 뿐 아니라, 겉옷까지 빼앗길 각오를 하고 의롭게 바르게 살아갑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난해 져 있어서, 또 다시 옷을 빼앗긴다 해도 하나님 나라와 의를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재산을 빼앗기는 일도 기쁘게 당했습니다 (히 11:34)
겉옷까지 준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의와 사랑을 위해 필요하면 나의 재산을 포기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그리스도인들끼리 돈을 빌려 주고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때, 일반 법정에 고소하지 않습니다. 먼저, 교회에서 당회가 그 문제를 재판하라고 하나님은 명령합니다. 교회에서 조정이 되지 않는다고, 세상 법정에 가기 보다는,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고전 6:7) 돈을 잃고 말아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재산 문제로 법원에 가면, 세상 사람들이 “아 기독교인되어도 우리와 똑 같이 탐욕이 있고, 서로 싸우구나. 별일 없다” 하면서 전도도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받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손해보고 천국가라고 했습니다.
둘째,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너무 낭비해야 한다면,차라리 재산을 포기합니다. 우리 시간은 너무 소중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의롭게 살고 사랑을 실천할 시간을 너무 뺏아간다면, 그냥 재산을 포기합니다.
셋째, 재산을 지키는 것이 나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너무 큰 피해를 준다면 차라리 재산을 포기합니다. 법원에서 싸울 때, 다른 사람이 내 재산을 뺏아가려 하는데, 중요한 증거를 대면 내가 돈을 지킬 수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증거가 상대방에게 너무 큰 피해를 준다면 이것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이미 천국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 재산을 지킬 때도 하나님의 사랑받은 사랑을 품위있게 지킵니다. 우리 재산을 잃을 각오를 하고, 우리를 해하려는 악한 자에게도 사랑을 나타냅시다.
3. 우리는 나눔을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42절)
셋째, 우리는 나눔을 실천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1) 구약의 하나님 나라: 주기, 꾸어 주기
42절에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 말씀은 원래, 구약의 하나님 나라에서 주고, 꾸어 주라는 명령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5:7-11을 읽어 봅시다.
“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줄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악한)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 고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신명기 15장 8절에 “꾸어 주라”를 예수님은 “꾸고자 하는” 이라고 인용합니다.9절에 준다, 10절에 구제한다 (준다)는 원래 “준다”는 것이고 예수님도 “구하는 자에게 주며”라고 말하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돈을 꾸어 주지 않고 주지 않는자를, 신명기 15: 8에서는 “악념” “악하다” 고 했는데, 마태복음 5:3에서 “악하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구약백성에게, 7년 마다 면제년을 지키게 했습니다. 돈 빌린 사람이 그 해까지 갚지 못하면 돈 빌린 것을 없애 줍니다. 또 가난한 사람이 먹을 것이 없을 때, 돈을 꾸어 주어서 먹고 살게 해 주는 것이 하나님이 이루신 구약사회였습니다. 돈을 빌리고는 전혀 갚을 수 없는 사람도 생존해야 하니까 그들에게 돈을 꾸어 줍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회의 실천 (42절)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이 자비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구약교회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신명기 19장이 나오는) 그 말씀을 나쁘게 이용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빌려둔 돈을 받기 위해 그들의 속옷까지 소송을 해서 받으려 했습니다 (신명기 24장을 불순종함). 그런데, 예수님은 “자, 같은 신명기 말씀 신명기 15장에 말씀을 이루는 그런 나라를 나는 만든다. 내가 만드는 사회, 너희 제자들의 공동체, 하나님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에게 빌려 주고, 혹시 받지 못한다면 그냥 주는 공동체이다.” 고 하십니다. 전에 우리에게 돈을 빌려 주고는 속옷까지 뺏으려고 악한 자들이, 망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우리에게 돈을 빌리려 오면 최소한 먹고 살게 도와 주라고 합니다.
교회는 이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아주 가난한 가운데서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후히 헌금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나움을 칭찬하면서, 고린도 후서 8:9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을 인하여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함이라”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알지 않느냐? 부유한 분인데 너희 위해 가난하게 되고 은혜 주셨으니 너희들도 예수님 처럼 물질을 나누라” 고린도 후서 9:7에서,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라 합니다. “ 인색함”이란 예수님이 인용하신 신명기 15:10에서 “악한 마음”을 말합니다. 꾸어주지 않으려는 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고 사도는 가르칩니다. 가난한 성도들, 가난한 사람의 필요를 돕지 않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초대 교회는 아주 가난할 때도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습니다. 그 교회의 영향 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복지국가가 어느 정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나라는 어떻습니까? 교회에서 성도들의 나눔이 충분할까요? 많은 부유한 기독교인들 중에는 자기 집은 몇 채 있다고, 집 값 올라가는 것은 감사하면서도, 집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뺏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복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비전: 나눔을 위한 명령과 보호
악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위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는 그런 정의로운 사회 정도가 아니라,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사랑의 사회를 꿈꾸고 만드셨습니다. 나눌때 복주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15:10은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 15:11에서 가난한 자는 우리 가운데 항상 있을 것이므로, 우리 이웃에 사는 가난한 자에게 손을 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지요.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이 이 땅에 하나도 없게 만들 수 있지만, 일부러 가난한 자를 우리 가운데 두셨습니다. 그리고는 “너희가 가난한 자를 도와 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우리도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이렇게 교회가 나눔의 정신으로 살아갈 때 축복하겠다 약속하였습니다. 신명기 15:5 는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리,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들이 나누어서,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하나님이 꿈꾸시는 사회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 하면서 나눔이 없는 사회에, 예수님은 신명기 15장, 이 말씀을 딱 들이대면서 이것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아들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희미해 진 하나님 나라를 다시 찾아서 세우셨습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를 돌려 보내지 말라.” 너무나 영광스런 부르심임니다. 하나님 처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해를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다 비취게 하시니까 (마 5:45), 우리도 사랑의 빛을 악한 사람에게도 비추어서 먹고 살게 합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에게 영적인 것을 주셨습니다. 에배소서 5:1-2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예수님은 속제죄와 속건제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고, 다시 예수님의 몸을 번제로 드려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그 몸을 제물로 드려서,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물질을 나누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나눌 때, 예수님은 “네 손에 하는 일에 복주시리라” 우리를 축복해 주시겠다 약속했습니다. 마태복음 7:7에서 예수님은 약속하였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우리가 가난한 사람이 구할 때 주는 그런 선한 삶을 살 때, 하나님도 우리가 구할 때 주시겠다고 약속하셧습니다. 마태복음 6:30-33절에서 약속하셨습니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무엇을 하라고 하시지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아까 읽은 신명기 24장에, 가난한 사람의 속옷을 전당물로 받았다면, 저녁이 되기 전에 돌려 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 네 의”라고 했습니다. 그런 나눔이 있는 사랑, 또 먹을 것이 없어서 빌리려 온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의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질 터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직장에서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 하면서 수고할 때 건강하게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염려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것은 우리에게 구하는 사람에게 주다가, 우리 살림이 위태로와 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까지 우리 성도들은 나눔을 잘 실천해 오셨습니다. 계속 잘 실천해 갑시다. “이렇게 과연 계속 나누어 가져야만 하는가?” 너무나 복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더 하십시오.계속 더 잘 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30절에,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고 꾸짖으십니다. 가난한 자가 이 땅에 없어지는 이 비전은 하나님의 것이고 그렇게 움직이는 우리를 도우시겠다는 것도 하나님이 약속입니다. 믿고 순종하여 조금씩 더 나눕시다. 한나라 당을 지원하건 민주당을 지원하건, 세금을 더 많이 거두건 적게 거두건, 정책의 마지막 목표는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들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꿈을 따라 움직일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주신다는 믿음으로 개인적으로도 나누고 국가의 정책도 정해야 합니다.
둘째, 더 나누기 위해 좀 더 절약하고 좀 더 부지런하게 일합시다.좀 더 절약할 수 없는지,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서 돈 많이 법시다.셋째, 지혜롭게 나눕시다. 나누다가 우리 자신의 재정이 나빠져서 거리에 나가 앉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무조건 도와 준다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잘못 도와 주면 도움받는 사람을 아주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지혜롭게 도와야 합니다. 나눔의 목적은 우리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하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우리가 더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이 경제적으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승진하게 해 주시고, 또 일터를 주시고 직장의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사랑 많으신 하나님은 그 사랑의 나라에 우리들을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책임에서 억지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기쁘게 합니다. 작장에서 해야 할 일도 의무 이상으로 기뻐게 합니다. 재신을 지킬 때도 어떠하든지 재산만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나님 나라를 위해, 사랑을 위해 재산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서로 나눕니다. 이렇게 나눌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남의 것을 뺏아가는 불의한 사회가 아니라 서로의 재산을 지키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표도 합니다. 국가가 정의를 이루고, 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복지 사업을 하며 사랑을 어느 정도 이릅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의 나라는 바로 교회 안에 있습니다. 세상은 불의한 나라에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하지만, 우리는 사랑의 나라의 힘을 불의한 나라 안으로, 정의로운 나라 안으로 밀고 들어갑니다. 사랑의 나라를 물질로 표현합니다. 교회가 물질로서 사랑을 표현할 때, 세상은 교회의 사랑이 어디서 왔는가 궁금해 하면서 예수님을 믿으러 들어 옵니다. 이 사랑의 사회가 교회에서 시작하여 세상으로 점점 번져 가서, 예수님이 오셔서 불의한 사회는 없애고 사랑의 사회만 남길 그날이 오기 까지 우리 사랑의 사회를 만드는 소금과 빛으로 살아갑시다.
((원래 설교 시간에 인용한 마태복음 17장 내용은 착오가 있어서 설교문에서 뺍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7장에서 로마의 세금걷는 사람이 세금을 걷으러 왔을 때, 내지 않은 면제받을 자유가 있지만 실족치 않게 하려고 세금을 내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의 세금은 국가에 낸 세금이 아니라, 성전세금입니다. 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