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연습 중간평가 과제>
21912454 박두환
나는 동성로에 위치한 대구근대역사관을 방문하여 대구의 역사 및 근대 시기 대구 의 풍경, 대구를 방문한 유명 인사들과 대구와 관련된 한국 역사의 큰 사건들을 중심 으로 관람하고 왔다. 언급한 내용들을 설명하기에 앞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던 것 은 건물 외부 디자인이었다. 대구근대역사관의 외부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일제강점기 시대의 건물 디자인을 묘사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정교했다. 처음엔 그냥 예전 건물의 디자인을 본떠서 만들었겠거니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 1932년에 조선식산은행 대구 지점으로 건립된 근대 문화유산 이었던 사실을 알고 조금 놀랐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물은 우리나라 정부 산하에서 거의 다 청산된 줄 알고 있었는데 대구 시내 한복판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건물의 디자인을 보존한 것이 의도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지 100년이 넘어간 지금도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왜인지 모를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박물관에 들어갔을 때, 박물관 구조는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2층에는 휴게 실과 수유실, 문화체험실이 있었고 1층에는 대구와 관련된 근대 역사 기록과 관련된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선, 이 박물관과 가장 관련이 깊은 조선식산은행의 기 록부터 읽어보았다. 조선식산은행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일제가 시행했던 산미증식계획과 관련이 깊고, 일본에 자금 조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 러나 이러한 사실 외에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은 1938년 말 조선은행 대구 지점과 함께 지역은행 총대출액의 80퍼센트를 차지하여 지방 금융지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 사했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80%에 달하는 대출금액 전부가 산업자금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이 돈을 이용해 대구, 경북 지역의 농, 상업구조마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조선식산은행은 단순한 은행 그 이상으로 대구 경북지역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고, 해당 지역민들의 삶을 잔혹하게 좀먹고 있었던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큰 상처임과 동시에 잊을 수 없는 너무나 치욕스러 운 사건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길 바라면서 하루라도 빨리 일제의 잔재 물이 깨끗하게 없어지길 소망하는 바이다.
다음으로 눈여겨보았던 기록은 2.2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기록물이었다. 2.28 운동 은 이승만 중심의 자유당 정권이 대구 시내에 있는 여러 공립고등학교 학생의 일요일 등교를 강요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었다. 그중에서 직접 본 적도 있었 던 대구고, 경대 사대부고, 경북고도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기록을 읽는데도 이질감 이 들지 않았다. 또한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도 들었다. 당연하게만 생각 했던 평화로운 민주주의 사회가 사실 우리 세대 이전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이루 어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면서 드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의 민주 화를 이룩하는 데 노력을 해주신 모든 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대구 근대 역사관을 둘러보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생각보다 의미 있고 뜻깊은 시 간이었던 것 같다. 역사관을 관람하며 기록물들을 읽고, 그 시절에 남겨진 문화재들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또한 가 슴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내가 살고 있는 이 평화로운 세상이 그냥 얻어 진 것이 아님을 알아가면서 스스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역사를 잊은 민 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격언이 있을 만큼, 역사는 중요하다. 이러한 가슴 아픈 일들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우리는 주변 정세에 항상 관심을 쏟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 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