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른다
적어도 인지혁명이 일어난 이후부터 인류는 우주를 애해하려 애썼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세계를 지배하는 규칙을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과거의 모든 전통 지식과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1.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기,
현대 과학은 라틴어로 표현하면 '이그노라무스ignoramus ㅡ 우리는 모른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면 틀린 것으로 들러날 수도 잇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개념이나 아이디어, 이론도 신성하지 않으며 도전을 벗어난 대상이 아니다.
2. 관찰과 수학이 중심적 위치 차지,
무지를 인정한 현대 과학은 새로운 지식의 획득을 목표로 삼는다.
그 수단은 관찰을 수집한 뒤, 수학적 도구로 그 관찰들을 연결해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3. 새 힘의 획득
현대 과학은 이론을 창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론을 사용해서 새 힘을 획득하고자 하며, 특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한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근대 이전의 전통 지식이었던 이슬람, 기독교, 불교, 유교는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할 중요한 모든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단언했다.
위대한 신들, 혹은 전능한 유일신, 혹은 과거의 현자들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가 있었고,
그것을 문자와 구전 전통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고대의 문현과 전통을 파고들어 적절하게 이해함으로써 지식을 얻었다.
성경이나 코란, 베다에 우주의 핵심 비밀이 빠져 있다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피와 살을 가진 피조물들이 앞으로 발견할 지도 모르는 비밀이 말이다.
고대의 전통 지식은 오로지 두 종류의 무지만을 인정했다
첫째, 한 개인이 뭔가 중요한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그가 필요한 지식을 얻으려면, 자신보다 현명한 누군가에게 묻기만 하면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무언가를 새로 발견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예컨대 13세기 영국 요크셔 지방 마음에 사는 농부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었다면,
그는 기독교 전통 속에 명확한 답이 있다고 가정했다.
그가 할 일은 동네 사제에게 물어보는 게 전부였다
둘째, 하나의 전통 전체가 뭔가 중요치 않은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위대한 신들이나 과거의 현자들이 우리에게 애써 말해주지 않은 것은
그게 무엇이든 정의상 중요치 않은 것이엇다.
가령 아까 그 요크셔 농부가 거미가 어떻게 거미줄을 치는지 알고 싶었다면,
사제에게 물어보는 것은 무의미했다.
기독교 문헌 어디에도 이에 대한 답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독교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미가 어떻게 집을 짓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짼ㅆ든 하느님은 거미가 어떻게 집을 짓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셧다.
만일 이 정보가 인간의 번영과 구원에 핵심이 되는 것이었다면,
하느님은 당연히 서경에 상세히 설명해놓으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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