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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오피니언 칼럼
[김정인 교수의 풍수칼럼]
과천 추사 박물관, 충청매일
입력 2023.06.01 16:40
수정 2023.06.01 17:18
서경대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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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경기도 과천은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곳인데, 과천에 가보니 추사 박물관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예산에서 태어났다. 예산의 생가에 가면 추사 기념관이 있고, 추사 묘도 과천에서 이장해 왔다.
증조할아버지 김한신과 증조할머니 화순 공주 묘도 생가 옆에 있고, 김정희가 중국에 갔다가 가져와서 심은 백송도 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서귀포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린 세한도는 그의 대표 작품이 되었다. 거기에도 추사 김정희의 기념관이 있다.
과천 추사 박물관
과천에는 과지초당(瓜地草堂)과 추사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이 있으려면 역사적 자료가 많아야 하고, 학예사도 있고, 매년 학술발표회도 하고, 전시회도 하여야 한다. 그런데 어이하여 과천에 추사 박물관까지 있을까?
과천 과지초당 추사 동상에서
과천의 과지초당은 추사가 말년에 4년간 거주하였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말년에 예술의 혼을 쏟은 곳이다. 추사 서거 150주년을 맞아 추사의 흔적을 찾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 경성제국대 교수로 있던 일본인 후지츠카 치카시(1879~1948)가 추사를 사모하여 추사의 자료를 모으고 추사 연구를 시작하였다.
1945년 추사의 자료를 모두 일본으로 가져갔고, 그 자료는 그의 아들 아키나오(1912~2006)가 보관 중이었다. 이것을 수소문하여 찾고 기증을 다시 받아 과천으로 가져왔다. 그리하여 과천에는 추사박물관이 생기게 되었다.
문화재를 찾아오려는 노력과 정성이 높이 평가되어 2대째 추사의 자료를 보관하던 노교수의 아들은 과천시에 자료를 돌려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자료 반환을 약속했다.
과지초당은 1824년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1766~1837)이 과천에 마련한 별서이다. 추사는 아버지 김노경이 별세하자 청계산 옥녀봉에 장사를 지냈고 이곳에서 삼년상을 치뤘으며, 1852년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뒤 4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과지초당
촌노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채소요,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 딸, 손자라고 하였다. 그중에서 오이 과(瓜)자를 따와서 오이를 재배하면서 인생 말년에 예술의 혼을 꽃 피웠던 곳을 과지초당이라고 하였다.
그는 인생 70년 동안 벼루 10개, 붓 천 자루를 다 닳게 하는 엄청난 노력으로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우리가 어떤 분야이든 그런 노력이 있어야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가 있을 것이다.
과천을 거쳐 간 역사적 인물을 찾는 과천시의 노력이 돋보이고, 그러한 노력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도 혼신의 힘을 쏟았을 것이다.
과천은 관악산을 주산으로 청계산과 마주하며 좌로는 우면산 우로는 인덕원 고개로 연결되며, 양재천이 관악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서에서 동으로 서출동류한다. 서출동류하는 물길은 아침 일찍 햇볕을 받기 때문에 생기를 공급하며 최고로 친다.
추사 박물관은 청계산 옥녀봉 아래 우면산을 바라보며 북향으로 자리 잡았다. 양재천이 서출동류하고 한양 땅을 바라보는 곳이니 추사가 날마다 나라를 생각하며 인생 말년을 보내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과지초당에 들려 추사의 방에도 들어가 보고 박물관에서 그의 일생을 돌아보았다. 각 지역마다 역사적 인물을 찾아 그의 생애를 통하여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배움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과지초당 추사의 방
충청매일 CCD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