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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눅 2 : 41-51 [추석명절후 주일]
제목 : 찾아야만 한다. 예수님을! 17.10.8 am /진관
[성경본문]---------------------------------
(41)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하시니
(50)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예수께서 함께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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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추석명절을 잘 보내고 주일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한다.
-서로 인사하자. “보고 싶었던 당신이 교회의 얼굴입니다.”
-금년 추석명절은 3일/개천절과 9일 한글날이 끼어있는데다가 -2일은 임시공휴일이어서 무려
그 기간이 열흘이나 되는 긴 연휴였다. 그래서 황금연휴라 부른다.
그러므로 인천공항에는 해외로 가는 수많은 여행객으로 사상 유례없이 몰렸고 연일 고속도로는 수백만의 차들로 인해 몸살을 앓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대장간에 칼이 없다고 하듯이 많은 휴일들이 도리어 찾아볼 분들을 찾아보지 못하고,
가야 할 곳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긴 연휴로 먼 여행을 떠나서인지, 아니면 다른 형제들이 찾아줄 것이라는 생각에서인지 모르지만 정작 본인은 전화마저도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부모형제를 찾아보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2,3일의 짧은 연휴라도 찾아볼 분들을 다 찾아보는데,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긴 연휴 기간이
주어지더라도 찾아야 할 사람들마저도 제대로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찾아야 할 분이 계시다.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잃고 당황하며 찾는 장면이 나온다.
요셉과 마리아는 일주일간의 유월절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하룻길을 간 후에, 생각이 나서 찾아보니 동행중에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친척들이나 아는 사람들 중에 있는가 찾어보지만 만나지 못한다.
부모들은 돌이켜 예루살렘에 가서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듣기도 하고 묻기도 계셨다.
ex)구세군 창시자 윌리암 부스는 말하길 “장차 올 20세기를 맞이하면서 큰 위험은 종교는 있으나
성령이 없고, 교회는 있으나 예수가 없는 시대가 오리라.” 했다.
-그래서 미국 감리교회 알렌 목사는 그 증거로 자기교인을 조사한 결과를 제시했다.
-교인으로 등록은 했지만 -20%는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있으며, -25%는 기도를 하지 않고 있으며, -35%는 성경을 읽지 않고 있으며, -40%는 일정한 헌금eh 드리지 않고 있으며,
-60%는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고 있으며, -85%는 단 한 사람도 전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100%이 천국 가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교인들의 신앙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교인들이 예수를 잃어버리고서도 예수와 함께 가는 줄 알고들 있다.
그러나 성도여러분, 우리가 명절이나 행사로 바쁘게 지내다가 자칫 주님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 -만약에 여러분이 주님을 잃어버렸다면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아 나서듯이 우리는 잃어버린 주님을 찾아야 한다.
▪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야 하는가?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다.
ex) 다윗은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묘사한 분이었다.
-시 18:1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했다.
1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니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 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어떤 경우든지 우리에게 꼭 필요한 힘이시라 고백했다.(1)
-그리고 23: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다.
그러하다. 우리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임마누엘로 오셨다.(마1:23)
그래서 구주가 되시고(요3;16) 목자가 되셨다.(요10:10) 그리고 예비하신 하늘나라까지 인도해 주신다.(요14:1ff)
그러므로 하루라도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하루가 하루만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예수 없이 지나다가 갑자기 인생종착역에 이른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면 그 때 우리가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나의 돌아갈 고향 하나님의 집 앞에서 /“네가 모신 예수님이 어디 있느냐 ?”고 물을 때 그때 예수님이
없음을 발견한다면 마 25장에 나타난 기름 없는 등불들고 신랑을 맞으려 나간 미련한 처녀들과 같이
슬피 우는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교인들의 문제는 예수님을 잃고서도 잃은 지조차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혹시 주님을 잃은 것이라면 다시 주님을 찾아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그렇다면 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잃어버렸는가?
a. 명절의 축제 때문이었다.
-유대인의 절기가운데 유월절은 가장 큰 축제이다. 유대인 남자들은 12세 이상이 되면 예루살렘에
가서 절기를 지켜야 한다.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12살이 되는 예수님은 이 절기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이다.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집집마다 절기축제로 분주한 날들을 보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많은 일들, 많은 행사들, 그리고 유월절 절기의 여러 일로 분주한 나머지
예수를 잃어버린 것이다.
ex)여행하다 보면 삶의 리듬이 쉽게 깨어진다. 복잡한 길을 걷다보면 피곤하고, 그래서 이동하는 차에서 수면을 취한다. 그리고 여러 행사에 참여하느라고 신경을 쓰다보면 자칫 리듬이 깨지고 해야 할 일들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군다나 자칫하면 예수님이 없이 지나는 길이 될 수가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바쁘고 분주한 때 예수를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사업이 힘들 때보다는 사업이
잘되어 일이 번창하여 바쁜 때 예수님을 잃어버린다.
ex)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는 은혜가 충만했다. 그러나 그가 강력한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
없이 마음대로 권력을 남용하는 범죄를 행하고 말았다.
-사람이 일이 잘되면 주님을 중심으로 살기가 어렵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지만 직장이나 사업장으로 빨리 돌아가려하고.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빨리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보다 세상 친목계가 더 중요하고, 친구모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절대적으로 오산이다. 이런 가운데 주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큰 유월절 잔치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처럼 우리는 국가적인 명절이나 세상적으로
성공하여 많은 축하행사에 참여할 때 주님을 잃어버린다.
-중추절 명절이 지나갔다. 많은 사람과 정신없이 시간들을 보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 이런 때 주님을 잃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b. 동행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잃었다.
-유월절명절을 맞아 나사렛에서도 적지 않는 사람들이 참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친척들, 동네사람들도 많이 참석했다. 그러므로 돌아가는 길은 일주일간 서로 본 것들과 경험하고 느낀 일들, 그리고 자신들이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를 재미있고 그럴듯하게 말을 해야 할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어울려 함께 떠들다 보니 예수님을 잃어버렸다.
-오늘날도 친구들과 어울려 이야기하는 재미에 빠져, 혹은 친구나 동료와 함께 모여 등산이나
야외 나들이하는 재미에 빠져 주일을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주님이 없는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믿는다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는 재미로 예수를 잃은 자들도 있다.
믿는 자들이 모여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셔야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입에서는 예수. 하나님, 성령님 믿음 복음이란 이런 단어는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이 듣기에 민망하고 거북한소리만 난무하여 주님이 그 자리에서 떠나시고 마신다.
그러면 예수님이 없는 그 자리에서 별별 소리를 다하고 저마다 잘났다고 하는 인간적인 자랑들만이
나열되어진다.
-예수님을 잃은 부모들의 일행은 다 유월절을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c. 예수님을 잃은 것은 막연한 생각들 때문이었다.
-어느 때나 사람들은 막연하게 생각하는 일들로 예수님을 잃는 경우가 많다.
마리아는 예수가 요셉과 함께 있으려니 했고, 요셉은 예수가 마리아와 함께 있으려니 생각했을 것이다.
유대인의 풍습으로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길을 가는데 아이들은 어느 편이나 따를 수가 있었다. 결국 둘 다 예수님을 잃은 채 하루 길을 간 것이다. 예루살렘을 떠날 때 다른 일행들,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과 함께 동행하고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현대 교회의 군중교인들 속에 예수 없는 신자가 있다. /교인들과 어울리고 끼어서 함께 따라가면
천국에 자연히 도착하려니 생각한다. /예수님을 자기가 모시지 않아도 목사님이나 셀장이나 믿는
부모님을 따라가면 천국에 이르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조심하라. 막연히 따라만 가면 안 된다.
특히 영적 도움이 되지 않는 무리 속에 끼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들은 사탄에게 조정을 받고
살아가는 경계의 대상. 주위의 대상인지도 모른다.
/-여러분 중에는 조상 적부터 신앙적 가문이고, 부모님들이 열심히 믿고 있으니,
내 자신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은 안 계시는가?
성도여러분! 강조하거니와 예수님은 언제나 여러분 자신이 개인적으로 모셔야 한다.
신앙은 개인적이다. 오직 하나님과 단독자의 관계로 내가 서야만 한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따라 사람들 속에 섞여 따라오고 있으리라는 막연히 생각했다.
성도여러분은 어제나 예수님을 앞에 모시고 뒤를 따라가야만 한다.
예수님이 계신 것을 늘 확인하고 바라보고 살아가야만 한다.
ex)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핍박과 시련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고는 신앙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는 박해가 없다. 그래서인지 오늘 이 시대는 등에 믿음의 기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알곡인지 쭉정인지 서로가 모른다. 신앙적으로 환난이 나 박해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점검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데워진 물은 개구리의 몸에 뜨거움을 모르고 물이 끊어 죽어버린 개구리처럼 신앙
생활도 미지근한 물이 끓어 뜨거워져도 알지 못한다.
-은혜 받은 성도가 처음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봉사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불충성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은혜 받는 자가 처음에는 부지런히 좇아 다닌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영적인 나태함에 빠져들고. 거기에 내성이 생긴다. /이런 영적 독성이 자라기
시작하면 이미 영적으로 늙어버린 것이다. 늙고 병들면 결국은 죽음만 남는다.
-요셉과 마리아는 하루 길을 다 간 후에야 예수 없이 걸어온 자신들을 발견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 체만 해서는 안 된다.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있지 말고. 경건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막연한 생각으로 하는 일들 곧 막연한 봉사, 막연한 헌신 등, 깊은 의미도 모른 체 하는 일들로
주님을 잃고 살아갈 때가 많다.
-성도여러분! 혹시 여러분들은 예수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예수를 잃었다는 사실주차도 모르고 지내는 자들이 아닌가?
-주님이 떠난 빈 집인데 지금 자신과 함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는 주님을 바로 찾아서 섬기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그렇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a. 소극적으로 일행가운데서 찾아서는 안 된다.
-44.45절을 보자.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예수님을 잃은 요셉과 마리아는 잃은 예수님을 일행가운데서 찾았다.
친족과 아는 자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저들의 막연한 생각을 따라 주님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신앙의 어려움은 예수님을 떠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을 잃으면 초조하고 불안하다. 두려움이 있다. 늘 하던 일이지만 불안하다.
이런 때에 사람들은 흔히 아는 자들을 찾아가 그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궁극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계속 어려우면 친구를 찾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 숨으려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해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셉과 마리아가 일행가운데 없는 예수님을 친척과
아는 자 중에서 찾아보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찾으려고 군중이나 산속으로 들어가 시간 낭비하지 말라.
b.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아야 한다.
-46절을 보자.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저들이 사흘만에 성전을 갔고 거기서 주님을 만났다.
하룻길에 예수님을 잃은 것을 발견하고 그들이 바로 성전에 왔더라면 만났을 턴데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
찾다가 하루의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그들에게 하루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a.유월절을 일주일간 지내야 하니 그들은 적어도 열흘 이상 지체되어 있었다.
b.고향에는 일거리가 밀려 있었을 것이다./빨리 길을 재촉해야 할 상황이었다.
c.먼 여정에 동행들과 함께 가야 했다./
-예수님 없는 하룻길 자체도 마이너스이지만, 예수님을 찾지 못하고 사람들 가운데 서성이다가 하루를
더 소비했으니 속상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부모는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속상함을 나타냈다.
그러나 주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신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엉뚱한 가운데 찾지 마라.
우리는 사람들 가운데 혹은 세상에서 찾다가 얼마나 많은 손실을 입고 사는지를 모른다.
-마 5:22 절에 나타난 열두 해 혈루병 앓은 여자가 /많은 의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도 다 허비한 것처럼, 우리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동안 인생을 낭비하고 많은 물질을 낭비했다. /세상으로 인하여 유린을 당하고 사람들의 처절한 배신을 맛보아야 했다. /그럼에도 주님을 찾지 못하여 아우성이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예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분은 안계신가?
/사람이나 직장 때문에 향락 때문에 주님을 잃어버렸다면 지금 돌아서야 한다.
/가정생활 염려 때문에 예수를 잃었거나, 남편 때문에, 자녀 때문에 그 문제 걱정하느라 주님을 잃었다면 이제 회개해야 한다.
▫요셉과 마리아는 성전에 들어가서야 주님을 찾을 수 있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았기에 -시23:6절에 “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하고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했다.(시122:1)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교회는 예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교회를 떠나면 곧 예수님을 잃은 고아로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만다.
ex) 초대 교회 교부 카프리아수스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고 했다.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하셨다.
-성도는 졸더라도 성전에 와서 졸고. 취하더라도 성전에서 성령의 술에 취해야 한다.
그래서 시냇가와 같은 성전에서 편하게 쉼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 멘-
-믿음은 주님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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