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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그리스도인 그룹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침례를 행하기때문에 침례교?
장로들이 목회를 하기에 장로교?
행정구역을 지방단위로 나누기 때문에 지방교회?
기쁜 소식을 전하기 때문에 기쁜소식 선교회?
복음을 전하는 교회기에 복음교회?
성결한 삶을 중시하기에 성결교회?
안식일을 준수하기 때문에 안식일교회?
재림을 기다리기때문에 재림교회?
형제라 부르기 때문에 형제교회?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기 때문애 킹제임스교회?
그리스도인은 어떤 명칭으로 우리는 불려져야 하는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가 명칭과 호칭에 어떠했는지를 조사해 보시면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에 대해서 또 친히 성령님을 통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이 하나님의 교회에게 어떤 명칭을 주어야하는가? 아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부르셨는지를 아는 것이 그 해답이라고 본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고전1;2)
바울의 이같은 명칭 사용에 대한 사례가 가장 합당하다고 본다. 성령께서 그렇게 기록하셨기 때문이기 하다.이러한 명칭의 사용은 모든 교회의 표본으로서 후대 교회들의 지침이 된다.
초대 교회시대에는 지역 이름으로만 교회명을 칭했다. 지역 교회 이름 앞에 열두제자 중 뛰어난 영적 경험이나 영적 지식이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큰 역사가 누구에게 나타났을 지라도 파벌적인 이름이나 진리를 표방하는 색다른 표현이나 뛰어난 제자들 중 누구의 이름도 아무것도 어떤 수식어도 부여하지 않았다.
서신서에서 단순하게 부르는 지역교회 명칭은 단순한 지역 이름 그 이상의 깊은 영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원래 교회란 뜻의 엑클레시아는 불러낸 무리란 뜻이다. 고린도 교회란 그 지역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고린도 지역의 모든 성도들을 말한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동일한 자녀들이다. 한 아버지, 한 주님을 모시는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요 함께 영생을 상속받을 공동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의 귀한 신부요 개인적으로는 주님의 피를 나눈 형제 관계이요 서로의 몸이요 피붙이라는 사실이다.그러기 때문에 성도는 주의 몸의 존귀한 지체들이므로 귀하게 대하고 존귀히 여기라, 서로 사랑하라고 주께서 명령하신 것이다. 교회를 다른 이름으로 칭한다는 것은 육신적인 일이요 영적으로는 매우 어린아이 같은 수준이다. 또 주님은 그 일을 책망하신다.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인 데 그 몸을 갈라놓는 일이 된다. 그것은 분파적이고,당파적인 것이요 육신에 속한 일이라고 책망하셨다.
왜 이렇게 교파가 많을까?
중세 종교개혁시대 이후 루터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직접 보고 연구함으로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빛을 받아 교회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게 되었다,
그 때로부터 개혁자들은 스스로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진리들을 재발견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당시 루터의 후예들은 루터의 믿음을 본받고 그의 가르침을 잘 보존하고자 루터교회라 부르게 되고 루터의 교리를 전하는 루터교 신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루터의 제자들을 배출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주님의 몸을 나누는 견고한 입장이 되어 버렸다. 칼빈도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는데 모든 성도가 "만인 제사장'이란 말씀의 발견이 그것이다. 초대교회의 인도자의 자격은 단순했다. 복음을 듣고 믿어 침례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이들 중에서 지역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는 형제들 중에서 주님께와 그 지역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긴 사람들을 사용하셨다. 수도원에서 교육받은 신부를 임명하는 천주교의 성직제도가 아닌것이다. 성령이 회중안에서 신실한 이들을 감독자로 삼고 지체들 가운데서 드러내 세우시는 일을 친히 하시는 것이다. 이들은 주 안에서 많은 영적 경험을 가진 이들이므로 그 중에서 경건하고 연륜있는 그들이 그 회중 가운데 "장로"로서 교회를 인도하는 자격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칼빈은 성경에서 이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고는 그 진리를 순종하고, 같은 이해력을 가진 당시의 신교도 교회들과 함께 이 진리를 나누고 순종하고 가르치고 전파함으로 교회사는 그들을 "장로교 사람들" '장로교도"라 부르게 되었다.
침례교나 감리교 성결교 오순절 등 등도 모든 교파들도 이같은 동일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발견한 진리를 우리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우리에게 복음이 제일 중요하기때문에 이런 말씀은 관게없는 것인가? 아니면 나와 다르기 때문에 배척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고 ,또 주님의 사도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서신서에서 기록하였으며,초대교회가 그 말씀을 역사적으로 실행한 것이 사실이라면 신약시대의 모든 교회는 초대교회가 순종하고 따랐던 그같은 가르침을 교회에게 명하신 진리로 받아 들이고 순종해야 옳은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진리라는 개념이고 기준이다. 초대교회의 실행을 따르는 것은 영적으로 저급한 수준이 결코 아니다. 진화론 교육의 영향으로 초대교회 하면 뭔가 많이 부족한 원시교회라는 사고를 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은 지워야 한다. 초대 교회는 모든 교회시대의 표준이 된다. 원본인 것이다. 그 안에 모든 교회의 기초를 다져 놓았다. 지금 우리가 신약에 기록된 가르침만 따를 수 있다면 우리는 초대교회와 동일한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면 나무와 짚과 풀로서 집을 짓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는 날! 그 날에 짚과 나무,풀처럼 다 불살라져 버리는 헛된 수고를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침례를 베풀기 때문에 침례교라 부르는 것은 맞는 것이 아닌가요?
단순한 마음의 소유자는 그렇다고 할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만약 어떤 이들이 우리는 기쁜소식을 세계 끝까지 전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기쁜소식 선교회가 맞는 것이 아닌가요? 라고 물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교회는 기쁜소식을 전해야 한다. 그것 뿐만 아니라 침례를 주는 것이나 장로들의 공동 목회도 모두 성서적이고 맞는 가르침이다. 장로제도나 기타 다른 진리를 표방하는 다양한 교회들의 실행은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기에 성서적이다.그러나 어느 특정 진리를 순종하다고 해서 그 진리의 특징으로 교회 명칭으로 부르게 된다면 한 몸된 진리를 드러내야 할 세상에게 그리스인의 하나됨의 아름다운 간증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오늘날 대도시에 있는 대형 빌딩 안에 여러 교회들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따로 모이는 곳이 많다.이런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나 세상에게 한 주님을 모시고 섬기는 제자들로서 일치된 아름다운 간증이 될 수 있는가?
물론 그들 모두가 거듭나지 못해서 그렇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거듭난 우리들은 왜 이 처럼 다른 그룹의 형제들을 형제로 인정하지 않고 각자 자기 교회가 제일 신령하고 유일하며 최고라 생각하면서 다른 이들의 수고로 얻은 형제들의 구원을 애써 부정해버리려 하는가?
또 자기 교회만 구원의 복음이 있다고 주장하고 스스로 우월의식 속에 착각하고 있으니...
이런 모습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고 해를 끼치는 자해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죄악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에 대해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져야 하겠다. 주 안의 형제라면 신사적인 자세로 간증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사실을 격려하고 축복해주며 좋은 부분들은 인정하고 세워주며 자기보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채워주는 것이 주님의 사람의 자세라고 본다.
특정 진리의 이름으로 교회 명칭을 쓰게 될 때 오는 피해
주님은 신약시대에 모든 교회에게 다양한 말씀을 여러 부류 사람들에게 합당하게 주셨다.부모에게,자녀에게, 종(종업원)들에게. 국민에게.다스리는 자들에게, 교회 인도자들에게, 인도를 받는 자들에게, 교회 단체에게, 성도 개인에게 등등... 각자의 위치에서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주 앞에 충성되이 섬기도록 말씀을 주셨다. 교회는 주님의 특별한 말씀만 아니라 모든 말씀을 균형있게 순종하도록 해야한다.그래서 루터교도처럼 죄인은 믿음으로구원 받아야 하는 것이고,침례교도처럼 교회는 순종하는 제자들에게 침례를 주어야 하며.성결교도처럼 성도가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장로교도처럼 교회 장로들이 목회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감리교도처럼 장로들이 교회의 감독이 되어 교회를 감독하고 섬겨야 하는 것이며. GNM처럼 교회는 기쁜소식을 땅 끝까지 전해야 하고, 생명의 말씀선교회처럼 교회는 생명의 말씀을 온 누리에 나누어야 하고, 구세군교회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군사답게 주님께 충성해야 하고, 오순절 교파처럼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따라 섬기며 항상 성령의 충만과 능력을 힘입어야 하고,재림교도처럼 교회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며. 킹제임스 성경 그룹처럼 올바른 성경을 보고 말씀을 바르게 나누고 가르쳐야 한다.
위에 각기 다른 특별한 진리주장에 대해 우리에게는 몇가지나 필요하다고 여기는가?
내가 생각할 때 위에 열거한 진리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반드시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이를 모든 교회에서 받아들이고 적용하면 그 교회의 지체들은 풍성한 유익을 반드시 얻게 된다. 이는 교회의 복스런 영적 유산들인데 초대교회를 지나 중세 종교 암흑기를 당하면서 교회는 이 귀중한 진리의 유산들을 대부분 잃어버리게 되었다. 교회는 변질되었더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자기 피값으로 사신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신다. 중세의 교회 개혁자들을 통해 이런 귀한 진리를 다시 드러내 주시고 오늘날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계신 것이다. 현 시대의 우리를 위하여!!!
어떤 그룹의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만을 중시 하고 다른 말씀은 율법처럼 생각하고 버려 버린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어린 아이가 편식하는 것이 합당한가! 교회가 어린 아이처럼 한 두가지 진리에만 치중하고 다른 진리는 순종하지 않고 도외시 한 채 특정 이름으로 분파적으로 나아간다면 그들 교회에 찾오는 영적인 빈곤과 기갈, 황폐함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변질과 타락은 불을 보듯 자명한 사실이지 아닌가! 나와 여러분이 일찌기 경험한 바이다.
그러나 여러분 주위에 아무런 교파명을 쓰지 않고 아무런 총회나 특정 교단에 가입하지 않으면서 순수한 그 지역 이름으로만 불리우는 그리스도인 그룹이 있다면 여러분은 참 좋은 교회를 발견한 것이 된다. 왜냐고 궁금해 할 것이다. 두 가지 사실을 알려 주고 싶다. 순수하게 지역 이름으로만 불리우고 있다는 것은
첫째 그 지역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의 표현이다. 특정한 명칭을 사용하게 되면 그들의 교제의 중심은 그 명칭을 공유하는 그룹, 다시 말하자면 그 신학 노선을 함께 하는 이들과 교제하겠다는 표방인 것이다. 두번째로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이들이다.
어느 특정 교리에 메여 그것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특별한 교리를 명칭으로 브렌드화하지도 않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초대 교회처럼 주님의 모든 말씀과 사도들의 믿음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우리 주변에 이런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발견했다면 그런 분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온전한 교회라면 위의 특정한 진리만 붙드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처럼 진리의 말씀을 모두 다 가지고 누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수 사역의 필요성
장로들(행20;17) 혹은 감독들(빌1;1)
주님께서는 교회에 복수의 인도자를 두게 하셔서 어느 특정한 개인에게 교회의 힘이 집중되어 치우치지 않도록 복수의 인도자를 두어 섬기게 하셨다.
교회에 있는 인도자들은 크게 3가지 유형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데 아래와 같다.
복음의 은사:복음의 열정이 대단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고서도 영혼들을 멸망에서 구원하려는 불타는 마음이 타월함, 그의 마음은 죽어가는 죄인들에게 항상 있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복음전하기를 힘씀, 그런데 이런 복음 전도 은사자에게만 교회의 힘이 집중된다면 교회는 빠른 시간에 큰 부흥을 볼 수 있으나 마치 건물 기둥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처럼 전도의 은사가 거의 섬기게 됨으로 교회는 성령충만을 자주 경험하지 못해 쉽게 무너질 수도 있음,(그의 마음은 전쟁하는 장수의 같아 작은 일에는 게의치 않음으로 성도들에게 상처를 많이 줄 수 있는 스타일)
목 자: 성도를 마음으로 사랑함이 깊어 목자되신 주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 좋다. 특히 성도들이 가까이 하고 싶어하고 마음 속 깊은 것 까지 내어 놓고 교제하기를 원하는 온유하고 부드러움이 탁월한 목자의 성품의 소유자이다. 그의 마음과 눈은 항상 구원 받은 연약한 성도를 향하고 있다. - (그의 겉 모습만 본다면 힘없고 아주 나약한 자처럼 보임, 그러나 세심하고 상대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로 인해 성도들이 주님의 사랑을 그에게서 자주 느끼게 되는 데 이런 사랑의 은사가 부족하면 성도들이 교회를 쉽게 떠남). 그러나 이런 은사자만 교회를 인도한다면 그 교회는 현상유지 정도에 그치고 큰 부흥는 기대하기 어려움.
교 사:복음에 대한 열정이나 성도에 대한 애정은 적을 수 있으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은 과히 존경하지 앟을 수 없다. 교사는 말씀을 잘 정리하고 어렵지 않고 쉽게 가르치는 능력이 있으며 시간이 흐를 수록 깊은 말씀과 어려운 말씀도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이러한 능력은 신학교육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릎 꿇고 주님 앞에서 성령을 통해 가르침을 받는다.그러기에 그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고 있다. 흠이 있다면 다른 그리스도인이 말씀과 다르게 행동하고 거스르면 교사 스스로 쉽게 상처를 받는다. 성도들을 말씀으로 지적도 많이 하여 상처도 자주 주는 스타일이다. 이런 은사자가 없으면 교회는 쉽게 타락할 것이다.그러나 만일 이런 교사에게만 교회의 힘이 집중된다면 교회는 언제부터인가 냉랭해지고 차가움을 느끼게 된다.
여러분의 교회에는 어떤 은사자가 목회를 하는가?
전도의 은사를 가진이가 목회를 하시는가?
목자의 은사를 가진이가 목양을 하시는가?
아니면 말씀을 잘 분별하고 나누는 이가 사역자인가?
위의 세 은사자 중에 누가 여러분의 교회를 인도하고 있는가?
만일 한 부류의 은사자만이 주된 사역을 한고 있다면 어려분은 적은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교회는 은사자의 공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당연히 성도들의 성장에도 한계가 온다.그리고 성장에 필요한 공급이 부족함으로 영적 곤고함 자주 찾아오게 된다.더 힘든 것은 그 어려움에서 쉽게 벗어 나기 어렵다. 교회의 영적인 공급 구조가 빈약한 상태의 통로의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사역자와 성도간에 잦은 충돌이 발생한다.그래서 교회 생활이 어렵게 된다.
그러나 세 종류의 은사자 모두가 일할 수 있는 열린 목장이라면 여러분은 큰 복을 받은 성도들이다. 은사자들이 교회에 다양한 양식을 공급을 해줄 수 있기때문에 여러분의 교회인 목장은 풍요로움을 누릴 것이다. 목자들이 자신의 은사를 따라 그리스도의 풍요를 각기 공급해 줄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교회에서 공동 목회를 담당하는 사역자들은 교회의 짐을 나누어 짐으로 단독 목회자보다 덜 혹사(?) 당함으로 그리스도와 사귀는 안식 가운데서 주님을 깊이 묵상하여 얻는 질 좋은 양식으로 성도들을 즐거움으로 섬길 수 있다.
국가의 권력의 3권 분리
국가 권력에는 3대 권력이 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3권이 그것이다. 국가의 힘이 어느 한 개인에게 치우치지 않고 국가의 안정을 위해 권력의 힘을 분산해서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주님께서도 교회에 이와 같은 시스템을 마련해 놓으셨다.신약적인 교회의 복수사역이 바로 그것이다. 교회는 복수의 사역자들을 통해 특정한 성품이나 특정 은사에 치우치지 않도록 장로들의 공동사역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교회들이 이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고대로 부터 젖어 있는 제왕적인 통치문화, 유교문화, 군사문화에 깊이 젖어 함께하는 사역, 형제 보다 더 낮아지는 그리스도의 겸손의 정신이 부족해 그럴 것이다. 성직자 계급제도는 교회의 큰 폐단이다. 다른 은사의 다양한 활동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특정한 인물이 제왕적 자리를 독차지하고 사역자의 인사권, 재정권, 말씀 선포, 말씀 해석권까지 다 가지게 된다면 그 교회는 몸에 심각한 동맥경화 현상과 같은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영적 순기능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게 된다. 교회의 다양한 기능은 정지되거나 마비됨으로 머지않아 영적인 황무지로 변하게 되고 형식적인 교회생활이 됨으로 성도는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나게 된다.주님께도 큰 손실이 된다. 주님께서 그 교회에게 얻고자 하시는 복스러운 열매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교회는 세상적인 방법을 도입하게 되고 여러 행사에 집중하게 하여 성도의 마음을 채우게 하나 세상제도를 도입할 수록 진리에서 점점 더 멀어져 교회의 거룩과 순수성을 잃어 버리게 된다.시간이 지나게 되면 종교 개혁시대의 교회들이 오늘날 여러 교파로 전락하여 형식상의 종교개혁의 후예들이지만 타락한 천주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주님께서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었다.(계3;1)고 심판하셨다. 누구든지 변질되면 그 전처를 밟게 될 것이다.이는 대단히 가슴 아픈 일이다.
여러분의 교회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교회를 보호하는 진리의 말씀과 성도를 살찌우게 하는 다양한 은사있는 형제들을 귀하게 보지 못하고 복음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지 않으면 능력없는 일군으로 판단하고 가볍게 여김으로 얼마나 귀한 은사자들이 그 곳을 떠났는가? 또 지금도 묻혀 있는가? 한 사람이 구원 받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교회에 유익하도록 귀한 은사를 함께 주신다.그 목적은 교회를 더욱 복되게 할 목적으로 주셨다.그런데 그들의 귀함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래된 일군들을 현직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간 혈연 조직을 만드는가 보다. 성령의 역사를 막는 육신의 시스템을 조직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일인가! 오래 전부터 선교회는 귀를 막고 교회를 살찌울 진리의 말씀을 율법이라 정죄하여 버린지 오래 되었고, 성도수가 늘어자자 우호적인 우군 진영의 형제들과 스스로 담을 쌓았으며 어린 시절 세워주고 가르침을 주던 믿음의 선배들과 이끌어 주신 스승같은 분들도 여러가지 이유를 만들어 단교하였고 이제는 평생을 동고 동락하며 교회를 세워 온 동역자들을 물갈이 하고 있으니 이러한 인간 중심의 조직의 결과는 어떠할 것이라고 여러분은 예상되시는가?
마지막으로 그 곳을 떠나 온 여러분은 어떤 교회를 추구하시겠는가?
이름만 달리 부를 뿐 비슷한 곳에서 둥지를 틀려는가?
신약 교회의 진리를 굳게 붙잡고 그 말씀 중심으로 시작하면 누구든지 행복해 질 수 있고 잘될 수 있다.
사랑의 주님은 진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바로 교회요 은사자요 일군들인 것이다.
사람을 쫒지 않고 말씀을 쫒는 여러분이 바로 신약교회가 되는 것이다.
함께 하는 형제들이 주변에 계시다면 있는그 곳에서 함께 모이시라!
주님이 은사를 드러내 주실 것이며 모이는 무리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출처] 어느 교회가 진짜 교회예요? (두번바뀐인생) |작성자 형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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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원리를 충실하게 실행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지요. 이 땅에도 건전한 모임이 있음에 감사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