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5일 戊辰날
편재 편재 관대. 재살
서울시에 신청한 긴급 생활비가 근 한달 만에 나왔단다.
이리 집 떠나게 될 줄 모르고 선불카드로 신청했더니 직접 와서 수령해가란다.
본인이 아닌 경우 위임장을 갖고 가야하는데 이를 맡아줄 가족도 만만한 친구도 없는터라
날 잡아 귀경길에 올랐다.
야심한 시각, 일주일 만 돌아온 동서울터미널, 흡연실엔 꽁초 꽃이 무성하게 피었다.
담배 한 개비를 태우며 그 만큼의 집행유예의 시간을 누렸을
수많은 꽁초의 주인들은 모두 각자의 생존 열차를 타기 위해 거품처럼 흩어졌을 것이다.
편재가 사모관대를 하고 격을 세운 날.
가진 것 탈탈 털어넣어 얻은 나의 스위트홈은
이미 더부살이 온 남의 집처럼 서름해져버렸다.
이른 아침부터 주민센터로, 슈퍼마켓으로, 재성에 떠밀려 다닌 하루.
꼼꼼히 샘을 따져봤자 큰 차이 없는 액수를 갖고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옷가지 좀 챙기자 했던 것이 또다시 커져버린 짐 가방을 들고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를 타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제천, 안동에 당도하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하고
영덕에 들어서면서부터 진짜 집에 왔구나, 마음이 먼저 나댄다.
펄펄 김 오르는 찐빵 가게의 유혹도 뿌리치고 집에 당도하자마자 창문부터 열고 환기를 시작했다.
담배 한 대 피고, 숨 한번 쉬고 나니 여기가 정말 내 집. 오롯이 내 영토였다.
집보다 더 편안한 둥지였다.
아, 정말 딸라 빚을 내서라도 여기서 살고 싶다. 적어도 1년은 살아야 겠구나...
진심 마음이 터억 내려놓아지는 안락의 순간이 밀려왔다.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고 외롭지만 서글프지 않은 자족의 시간.
선생님은 마을 형님의 새 차 고사를 지내야하는 숙제가 있으셨고
나는 귀환 보고 후 쓸고 닦고 세탁기 돌리고 허기를 채워줄 저녁 상을 차렸다.
아직 싱싱한 텃밭 채소와 슴슴하니 제대로 맛이 밴 만세시장표 열무김치에
강된장을 비벼서 한 양푼 먹었다. 시들어가던 아삭이 고추도 수제쌈장으로 다 해치웠다.
그새 식어버린 커피 한 잔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뼛속까지 퍼뜨려주었다.
참, 내 집에도 식구가 늘었다.
서울에서부터 품에 안고 온 선인장 화분 둘.
책상에 앉는 방향은 천살 방향으로 어떻게 맞추었지만
문제는 막혀 있어야하는 북쪽 장성살 방향으로 현관문이 난 것.
하여 나의 과외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가장 가시 촘촘하게 세운 선인장을 현관에 두었다.
과거엔 장성살을 막기 위해 가시 많은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쳤다고 하는데서
유래한 개운법이다.
재살, 수옥살의 감옥으로 스스로 다시 돌아와
나의 분과 세월의 분을 기껍게 끌어안기로 한다.
이 창살 없는 감옥살이의 세월이 나는 참 조오타.
첫댓글 영해일기 매일 기다리게 됩니다.
동서울터미널에 핀 꽁초꽃. 신산한 삶의 만다라 같지 않나요?
연재(?) 일기가 젤로 기다려지네요~ㅎ
중독성 있어요
잘부탁드립니다. 작가님~^^
훔쳐 보는 일기~~재미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