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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론과 대북제재, 그리고 출구전략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1. 제재의 시각: 협상론과 붕괴론
탈냉전이후 경제제재는 국제정치에서 빈번하게 사용되었지만,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아이티, 이라크, 보스니아 등 1990년대 이후 UN 안보리가 발의한 경제제재 중에서 전쟁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 사례에서 경제제재는 결과적으로 군사력 사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드는 수단이었지, 그 자체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또한 대체로 경제제재는 해당국가의 정권을 약화시키기 보다는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고, 해당국가의 집권층이 아니라 취약계층에 심대한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비인도적 수단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북한에 대한 제재의 역사는 길다. 1990년대 핵문제 이후 북한에 대한 제재는 ① 한국전쟁이후 미국의 제재 ② 대량살상무기 통제체제나 유엔 안보리결의안 등의 다자 제재 ③ 한일 양국의 독자제재 등이 중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제재는 다른 국가의 제재와 다른 특징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대북 제재는 법률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2010년 5.24 조치의 경우는 ‘통일부 장관 담화라는 행정처분’의 형태로 2016년 개성공단 폐쇄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개성 공단 폐쇄를 ‘정치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남북교류협력법이 규정하는 협력사업의 취소에 관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재조치가 법률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처럼 제재이행에 대한 평가나 이에 따른 해당 조항의 강화와 완화의 근거가 없고 당연히 해제 절차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정책수단으로서의 대북제재와 관련, 두 가지의 입장이 대비된다. 중국은 협상론의 입장에서 제재의 역할을 한정한다. 왕이 외교부 부장은 3월 8일 기자회견에서 “제재는 필요한 수단이고, 안정은 시급한 과제이며, 협상은 근본적 길”(制裁是必要手段,维稳是当务之急,谈判是根本之道)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비해 박근혜 정부는 붕괴론의 시각에서 제재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본다.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결정되었지만, 붕괴론에 입각한 대북정책은 그 이전부터 추진되었다. 북한 붕괴론은 새롭지 않다. 미국 아이젠하워 정부의 한국전쟁 휴전에 맞섰던 이승만의 북진 통일론,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영삼 정부의 붕괴론, 이명박 정부의 붕괴론과 5.24 조치, 박근혜 정부의 붕괴론과 개성공단 폐쇄는 상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인식 동일한 맥락 동일한 순서로 이루어졌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부정하면서 ‘결과로서의 통일’만 강조, 남북 회담에 대한 부정적 인식, 5.24 조치의 지속적 추진, 반복적인 흡수통일론을 강조했다.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 ‘북한 붕괴론’이 위치하고 있다.
협상론과 붕괴론은 전제가 다르고 목적도 다르기 때문에 충돌할 수밖에 없다. 협상론의 입장에서는 협상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붕괴론은 협상을 ‘정권연장 조치’로 해석한다. 협상론은 북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만, 붕괴론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 대해서도 협상론은 분리 혹은 병행의 입장이지만 붕괴론은 연계론을 채택한다.
협상론과 붕괴론은 유엔안보리 결의안 2270호의 해석을 둘러싸고도 벌어지고 있다. 결의안 50항은 분명히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의 지지’를 명시했다. 제재로 북한을 붕괴시키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생각은 국제사회의 합의와 거리가 멀다. ‘한반도 평화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49항의 정신과도 충돌한다.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붕괴론은 대체로 북한이 정세를 결정한다고 본다. 그러나 정세는 어느 일방이 아니라, 상호 관계에 따라 결정 된다. 남북관계와 마찬가지로 북핵문제는 ‘관계의 산물’이며,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핵 억지력의 강화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2. 제재의 한계
1) 북중 무역과 중국의 선택
북한의 4차 핵실험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에 대한 역대 최강의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한국은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사업인 개성공단을 양자 제재 차원에서 중단했다. 북한 선박에 대한 국제사회의 감시망이 작동하고 금융부문에 대한 제재도 강화되고, 전략물자의 북한 유입이 훨씬 어려워졌다.
그러나 제재의 그물망은 완벽하지 않다. 제재는 봉쇄조치와 다르며, 일반적인 무역 활동 전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외화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해외 노동력 수출은 여전히 가능하고, 북한의 광물 수출도 민생목적을 예외로 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대북 제재의 효과가 중국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90% 정도이고, 2016년의 경우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통계로 드러나는 북중 무역은 양국의 무역과 중국을 경유하는 3국의 무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중국 경유는 단순히 북한의 농수산물이 중국산으로 둔갑하여 3국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또는 옷이나 신발 혹은 단순 전자제품의 일부 공정을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중국산(Made in China)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유엔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된 이후 북한의 대중수출에서 철광석과 석탄 수출이 대폭 감소한 것을 두고 ‘제재 효과’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 어렵다. 이미 북한의 광물 수출 감소는 제재 이전에 나타났던 현상이다. 북한의 석탄과 철광석의 대중 수출 감소는 국제원자재 가격 하락, 중국의 경기둔화와 환경정책 강화, 중국의 철강 산업 구조조정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전략물자에 대한 통제는 강화하겠지만, 정상적인 무역은 허용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딜레마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을 원하지 않는다. 한미 양국은 중국의 협력을 기대하면서도 중국이 협력하기 어려운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북 제재의 국제정치학’은 모순적이고 그래서 효율적이기 어렵다.
또한 길림성과 요녕성 등 중국의 지방정부가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라는 점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동북지역은 2000년대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고속성장을 했지만 2013년부터 정부주도의 성장 전략이 한계에 직면했다. 성장률이 하락했고, 인구가 빠져나갔으며, 임금이 상승했다. 단둥, 훈춘, 허룽 시가 북한과 ‘변경 경제 합작구’를 추진하는 이유가 있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북한의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기준 길림성 대북 접경지역 경제개발구의 북한 노동력 고용인원은 5천여명이 넘는다. 지방정부는 접경의 특성을 활용해서 관광산업의 활성화도 추진한다.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신압록강 대교는 공사가 끝났고, 10월에는 훈춘과 나진을 잇는 신두만강 대교도 완공될 예정이다.
북중 무역에서 북한의 의류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남북위탁가공이 중단되면서, 북중 위탁가공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14년에는 전년대비 28.4% 증가했고 2015년(1~11)에도 6.5% 증가했다.
2) 제재와 핵개발의 악순환
한미일 3국의 양자 제재는 북한과의 거래관계가 없기에 실질적인 압력이 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입장인데, 중국은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제재 에 대해 소극적이다. 제재에 대해 동북아 주변국의 입장도 일치하기 어렵다. 당연히 제재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기에 북한에 대한 압력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북한은 제재의 효율성과 관계없이 제재의 의도를 주목한다. 제재의 목적이 북한체제에 대한 붕괴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붕괴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우라늄 농축방식으로 핵물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고, 중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탄두의 소형화 경량화도 진전시키고, 운반수단의 성능개선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이나 이동발사 미사일 등 다양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제재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압력의 효과는 제한적이면서, 억지의 정당성 근거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제재와 핵개발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악순환의 과정을 밟았다.
북한의 핵능력이 강화되었는데, 과연 과거의 방식인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져볼 수 있다. 강화된 핵능력만큼 협상도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제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악순환의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3) 북핵문제의 이성적 접근
핵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는 한반도 냉전체제의 산물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따라서 북핵 문제의 해법은 관계의 성격을 변화시켜야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핵무기를 가져도 재래식 제한전쟁이 일어나고, 반대로 양국 관계가 나아지면 핵무기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처럼 친구가 되면, 서로 핵무기를 가질 이유가 없다. 양국은 국제적인 비확산체제에 대한 국내의 거부감을 완화하기 위해 양자검증체제를 추진했다. ‘이웃을 지켜보는 이웃’이란 취지의 공동기구는 비확산의 새로운 모델이었다. 양국 전문가들의 교차근무나 공동근무는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쌓아온 신뢰와 투명하고 안전한 원자력 산업 발전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재의 압력으로 핵무기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일방적이고 근거가 없고 비현실적이다. 2003년 리비아와 2015년의 이란 사례를 들지만, 이 또한 강력한 제재가 아니라 적극적 외교의 결과였다. 북핵문제의 과정을 봐도 마찬가지다. 협상의 실패를 말하지만, 지난 25년의 북핵 역사에서 협상국면은 짧았고 단속적이었지만, 제재는 지속적이었다.
북핵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괄적 관계 개선이고, 그중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중요하다. 평화협정은 포괄적인 평화체제의 구성요소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2월 23일 왕이-케리 회담에서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을 합의했다. 새로운 합의가 아니라, 2005년 9.19 공동선언의 핵심 합의를 재확인 한 것이다.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것은 9.19 공동선언의 합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선후’가 아니라 ‘병행’이 기존합의다.
물론 6자회담 재개의 형식으로 협상이 열린다고 해서 문제가 쉽게 풀릴 것으로 보지 않는다. 협상은 쉽지도 않고 오래갈 것이며 과거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때때로 중단될 수 있다. 핵심은 협상의 과정을 관계의 변화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관계의 근본적 변화, 즉 한반도 평화체제, 그 중 평화협정에 대한 합의수준이 북핵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3. 출구전략: 3개의 분리론
남북관계는 갑자기 악화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불신의 악순환을 거쳐 현재의 상태에 이르렀다. 2010년 5.24 조치 때 대부분의 남북경제협력이 중단되었고, 마지막 남아있던 개성공단마저 2016년 4차 핵실험이후 중단되었다. 남북관계는 ‘실질적인 제로’시대로 접어들었다. 현재는 초보적인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교류도 중단되었다.
정부는 개성공단 임금이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되었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재가동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했고, 대남담당 비서이며 통일전선부 부장으로 추정되는 김영철을 2016년 3월 8일 정부의 독자제재 발표 시 제재 대상에 포함 시키면서 회담 가능성 자체를 원천 거부했다. 통일전선부장이 적십자 회담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남북회담에서 북측의 회담 전략을 총괄한다고 보면, 어떤 회담도 불가능하다. 제재 대상과 회담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남북관계가 재개될 수 있을까? 남북관계는 양측의 일시적인 정치적 필요로 재개될 수 있지만, 현재의 불신의 수준을 고려하면 그것이 쉽지 않고 일회적으로 가능해도 지속되기는 어렵다. 2017년 대선국면으로 진입하면 오히려 ‘대북정책의 국내정치화’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연계하고, 정부와 민간을 연계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연계하고 있다. 제재 국면의 출구는 연계론에서 분리론으로 전환해야 하고, 비정부 주체의 역할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1) 핵문제와 남북관계의 분리
핵문제와 남북관계의 연계론은 핵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남북관계 또한 개선하기 어려운 악순환을 초래했다. 김영삼 정부의 ‘핵연계론’은 이미 ‘공백의 5년’의 원인이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연계론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핵 문제는 국제적인 성격이고 장기적인 해결과정이 필요하다. 이란의 핵 해결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협상을 통한 해결’은 신뢰구축 과정을 포함하고 단계적인 해결을 시도한다. 2005년 9.19 공동선언의 원칙 역시 ‘비핵화와 관계정상화·평화체제·에너지 경제지원의 동시행동’이다. 196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비핵지대화 협상부터 최근의 이란 핵문제까지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관계가 변해야 핵 억지의 필요성이 해소된다.”
핵문제의 해결과정이 장기적인 과정이라면, 남북관계는 해결해야 할 시급한 현안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현안이나 호혜적 경제협력을 비핵화할 때까지 유보해야 하는가? 인도 분야의 협력은 정치군사적 현안과 분리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원칙이다. 경제협력도 남북한의 양자협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북중, 남북러 삼각협력 같은 다자적 협력사업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좌초 과정을 보더라도 남북협력을 부정하면 국제협력 자체가 불가능하다. 남북한의 군사 분야도 마찬가지다. 핵문제 해결이전에도 해결해야 할 초보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분야는 적지 않다.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분리하고, 서로 보완하여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문제와 남북관계의 선순환이 중요하다.
2)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리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교류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은 사실 지방자치의 원칙과 어긋난다. 지방자치 단체는 중앙 정부의 정책 방향과 완전히 자유롭지 않지만, 일정 부분에서 분권의 권한이 허용되어 있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교류 분야에서 모든 권한을 중앙정부가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자치단체 또한 의회의 견제기능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남북교류에 나설 경우, 당연히 관련 법률에 따라 관련 예산의 심의과정을 거친다. 동시에 지방의회에서 적실성 검토과정을 충분히 밟는다. 남북교류를 단체장이 의회와 관계없이 추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방자치 단체의 내부 견제 과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도시 교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북관계에서도 도시교류의 중요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접경 지역들은 대부분 현안들을 가지고 있다. 분단된 강원도는 오랫동안 도 차원에서 혹은 기초단체 차원에서 도시교류를 추진했다. 서울이나 경기도, 인천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고, 자체적으로 남북교류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져 있고 기금도 적립되어 있다. 다른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지방 자치 단체들은 대부분 지역적 특성을 살려서 남북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역사 문화적 특성이나 지리적 인접성, 혹은 산업적 특성이 기본이다. 과열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경험이 있고 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사업들은 대부분 지역의 NGO나 관련 산업과 연관되어 있어서 남북교류의 범위를 확장하는 효과도 있다.
다만 앞으로 지방자치 단체의 교류 분야와 관련해 사회문화 분야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산업협력이 훨씬 우리 측의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지역공단을 별도로 조성할 수 있고, 기후변화로 온도에 민감한 작물의 생산지를 북한지역으로 넓혀야 할 필요도 있으며, 해양생태 환경의 보존과 양식업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협력을 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남북교류협력 법제에서 지방자치 단체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교류협력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지방자치단체가 남북한 교역당사자 규정을 통해 법률상 남북교류 주체로 명기했으나, 2009년 1월 30일 개정을 통해 이 조항이 삭제된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를 남북교류 주체로 명기하는 방향으로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자체 간 협력체계 구축도 필요하다. 접경지역 지자체 협의회나 환동해권·환황해권 등의 지자체 협력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3) 민관분리: 정부와 민간의 분리
미국이 북한에 대해 포괄적인 제재를 하면서도 관광이나 인적 접촉을 허용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만남이나 대북인도 지원 사업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북한을 방문할 수 없지만, 미국 시민권을 비롯한 대부분의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북한 방문이 가능하다.
민간교류 분야는 일반적인 제재의 대상이 아니다. 민간교류는 거창한 의미를 내세우기 전에 당장의 효과가 적지 않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북한에 가봐야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북한은 민간과 정부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교류가 동시에 북한 정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민간교류 과정에서 얻는 정보들은 정부차원의 정책 수립에 도움을 줄 것이다.
민간교류에 대해서는 민관분리 원칙이 필요하다. 정부간 관계가 악화되어도 민간교류를 계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교류는 남북관계가 필요이상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고, 동시에 남북 정부간 관계가 재개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모든 분야에서 정경분리가 어렵다면, 우선적으로 정부와 민간의 관계를 분리하는 민관분리의 지혜가 필요하다.
북한주민 접촉을 비롯해서 남북교류에 관한 법률과 관련, 모법인 남북교류협력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하위법인 시행령이나 고시를 적용해서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대 국회에서는 상위법을 구체적으로 개정해서 정부의 자의적인 행정조치를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소한 ‘특정한 목적의 제재’와 ‘일반적인 인적 교류에 대한 법률’이 분리될 필요가 있고, 가능하면 국제사회의 관행을 따를 필요가 있다.
4. 20대국회와 초당적 협력의 방향
선진국에서 외교는 단절적이기 보다는 지속적이고, 정파의 이익보다는 국가 전략으로서의 가치를 우선한다. 독일에서 보수적인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가 집권했을 때, 우려와는 달리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결국 독일 통일을 이루어냈다. 미국에서도 클린턴 행정부 시기 여소야대 상황에서 초당적인 대북정책 조정관의 신설이나 오바마 행정부 시기의 ‘이라크 스타디그룹’ 등은 초당적 협력의 중요한 사례로 거론 할 수 있다.
여소야대 국회를 ‘합의의 정치’를 실천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하며, 특히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국회의 기능을 확대하여 분열을 최소화하고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의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다만 초당적 협력의 생산적이고 실현가능한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왜곡된 이념대표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상투적인 진보와 보수의 대화 형식이 국민 다수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이런 방식은 차이를 확인할 뿐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고 공감대도 모을 수 없다. 대표성을 왜곡하고 지극히 비생산적인 방식이다. 이념중심의 논의에서 정책중심의 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으며, 구체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대표의 선정과 논의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 협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도적 지원분야, 경제협력 관련 단체, 인권 단체 등 분야별로 전문성이 있고, 대표성이 있으며, 협의체 형식의 시민단체가 구체적인 정책 방안에 대한 합의와 실행방안을 제시하고 합의 가능한 초당적 협력의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셋째, 초당적 협력을 위한 국회의 역할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발전법은 여야가 발전위원을 추천하고 통일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5년마다 남북관계발전계획을 작성하고 매년 이행계획을 수정하도록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법률은 존재하나 사문화되었다. 남북관계발전위원회나 혹은 남북관계발전특위를 활성화해서 초당적 협력을 제도화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능하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며 철학적인 논의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대신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재가동, 5.24 조치의 해제와 같은 시급하고 중요한 현안을 중심으로 국회가 해당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고 전문가 자문을 받고 논의의 과정을 거쳐 국민적 합의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