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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6월 2일
너는 아름다운 시(詩)를 좋아한 만큼 성실하게 살겠다고 했지.
늘 빈 세상끝 우리의 영혼을 가득 담아 저 하늘 끝까지 질통을 지고 하루하루를 비틀거리며 아나방 위를 억세개 건넜지. 정말 무거운 삶, 어지러운 공사장 부근의 자재들. 나는 그 불투명한 삶의 옆구리에 앉아 문학의 배반성과 사팔베니어 위에 난무하는 이론의 장난성과 우리의 목을 조이듯이 꽉꽉 반생을 돌려 조이는 인간성 결핍증에 실로 괴로워 했지. 뜨거운 온 몸에 못질을 하는 순간마다 댓방 위에서 콘크리트를 치는 물과 골재에 불순물이 기어들고 기대하는 어느 친구의 좌절감에 그 건물은 부실공사의 근원이 되겠지. 엔젠가 우리의 팔팔한 이 정력도 건물의 밑바락에 깔려 오징어가 될지 몰라. 절규를 해도 두 주먹을 불끈 쥐어도 네가 쓰겠다는 아름다운 시와 성설성은 분명 저 지층 밑으로 가라앉아 흐느끼고 있을지 몰라.
원고지 위에 미, 구조, 기능을 병합하는 우리들의 농사 무척 힘이 들겠지.
- 이재창 시인의 「습작을 위한 노트」 전문, (시조문학 1981년 봄호)
“하늘은 고요하고/땅은 향기롭고/마음은 뜨겁다//6월의 장미가/내게 말을 건네옵니다...6월의 넝쿨장미들이...사랑하는 이여/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내가 눈물 속에 피워낸/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내내 행복하십시오” -이해인 ‘6월의 시’
“나는 혼자서 도보여행을 할 때만큼 많이 생각하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느낀 적이 없다. 말하자면 나는 완전히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걷는 것은 나의 사고를 자극하고 활발하게 하는 마력을 갖고있다. 나는 한 군데 머무르면 거의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전원풍경과 이어지는 매력적인 풍경들, 자유로운 공기, 걸으면서 느껴지는 건강하다는 의식, 예속감을 느끼게 만드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이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대담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나를 소위 사물의 무한함속에 던져넣어 어떤 강요도 두려움도 없이 사물들을 마음대로 내 것으로 만들게 한다. 나는 자연 전체를 다스리는 군주가 된다.” -장 자크 루소(1778년 오늘 세상떠난 프랑스 사상가『사회계약론』 『인간불평등기원론』 『에밀』) 『고백록』
*6월(음력5월 즈음)의 다른 이름=매우(梅雨) 매실을 영글게 만드는 비가 내리는 때라는 뜻
6월을 인디언은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 ‘새끼손가락 달’ ‘전환점에 선 달’이라 부름
*데코레이션 데이: 캐나다
*공화국의 날(Festa della Repubblica): 이탈리아
*민간항공의 날: 아제르바이잔
1225년 [음]高宗 12年, 내투한 동진인 주한을 개경으로 불러 여진문자를 가르치게 함
1298년 [음]충선왕(忠宣王) 즉위년, 원에서 우승 아리회 등을 보내 조인규를 국문하고 고려가 개정한 관제를 철회시킴
--원(元)이 우승(右丞) 아리회(阿里灰, 아릭쿠이)와 홍중희(洪重喜), 중서좌승(中書左丞) 양염룡(楊炎龍)을 보내왔는데,
말을 타고 온 자들이 100여 명이었다. 〈그들이〉 조인규(趙仁規)를 국문하고 마침내 원경(元卿)을 데리고 감찰사(監察司)로 가서 새로 정한 관제(官制)를 거두어들이게 하였다.
1343년 [음]충혜왕(후)(忠惠王(後)) 4년, 기인법(其人法)을 회복함
1400년 [음]정종 2년, 노비변정도감(奴婢辨正都監)을 다시 설치함
--다시 노비 변정 도감(奴婢辨定都監)을 설치하였다. 대사헌 권근(權近) 등이 상소하여 말하였다.
"사헌부에서 받은 바 변정 도감이 노비(奴婢)를 오결(誤決)한 소지(所志)를, 다시 도감을 세워 속히 처결하게 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정을 펴게 하기를 청합니다."
이에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나누어 15방(房)을 만들고, 육조(六曹)·개성유후사(開城留後司)·각문(閣門)과 시(寺)·감(監)의 일이 간략한 자에게 맡기었다.
1411년 [음]태종 11년, 향후 6월에 녹봉을 지급하도록 제도화함
1416년 [음]태종 16년, 호패(號牌) 제도를 폐지함
1456년 [음]세조 2년, 성삼문(成三問) 등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됨
1479년 [음]성종 10년, 왕비 윤씨(연산군의 생모)를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음
--교서(敎書)를 반포하기를,
"바르게 시작하는 길은 반드시 내치(內治)를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니, 하(夏)나라는 도산(塗山)343) 으로써 일어났고, 주(周)나라는 포사(褒姒)344) 로써 패망(敗亡)했다. 후비(后妃)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은 국가(國家)의 성쇠(盛衰)가 매인 것이니, 돌아보건대 중하지 아니한가? 왕비(王妃) 윤씨(尹氏)는 후궁(後宮)으로부터 드디어 곤극(坤極)345) 의 정위(正位)가 되었으나, 음조(陰助)의 공은 없고, 도리어 투기(妬忌)하는 마음만 가지어, 지난 정유년346) 에는 몰래 독약(毒藥)을 품고서 궁인(宮人)을 해치고자 하다가 음모(陰謀)가 분명히 드러났으므로, 내가 이를 폐(廢)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조정의 대신(大臣)들이 합사(合辭)해서 청하여 개과천선하기를 바랐으며, 나도 폐치(廢置)는 큰일이고 허물은 또한 고칠 수 있으리라고 여겨, 감히 결단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뉘우쳐 고칠 마음은 가지지 아니하고, 실덕(失德)함이 더욱 심하여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결단코 위로는 종묘(宗廟)를 이어받들고, 아래로는 국가(國家)에 모범이 될 수가 없으므로, 이에 성화(成化) 15년 6월 2일에 윤씨(尹氏)를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는다. 아아! 법에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있는데,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사사로움이 있겠는가? 일은 반드시 여러 번 생각하는 것이니, 만세(萬世)를 위해 염려해야 되기 때문이다." 하였다.
[註 343]도산(塗山) : 우(禹)임금의 아내를 가리킨 말로서, 우임금이 도산(塗山)으로 장가를 갔으므로, 이렇게 일컬어진 것임.
[註 344]포사(褒姒) : 주나라 유왕(幽王)의 비(妃).
[註 345]곤극(坤極) : 왕비를 가리킴.
[註 346]정유년 : 1477 성종 8년.
1495년 [음]연산 1년, 광릉 부원군 이극배(李克培) 죽음
1507년 [음]중종 2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를 편찬하게 함
1516년 [음]중종 11년, 내수사의 장리(長利)를 혁파함
1516년 [음]중종 11년, 기신재(忌辰齋)를 혁파함
1533년 [음]중종 28년, 이항(李沆)이 ‘작서의 변’(경빈 박씨의 세자 저주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됨
1588년 [윤]선조 21년, 남병사(南兵使) 신입(申砬)이 여진족 정벌 사실을 보고함
1592년 (조선 선조25)임진왜란중 이순신 당포해전에서 적선 21척 격파
--6월2일 이순신 함대를 주축으로 한 연합함대가 경상남도 통영시 당포 앞바다에서 왜선 21척을 격침시킨 해전이다
5월29일부터 6월1일 아침까지 전라좌수영의 이순신 함재를 주축으로 한 조선 연합수군은 사천포해전을 통해 왜군 함선 13척을 격침시키고 왜군 2600여명을 사살하였다
다음날 오전 척후선으로보터 당포 선창에 왜선이 정박해 있자는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 함대는 곧 당포(지금의 통영시 산양읍) 앞바다로 나아갔다
당포 선창에는 왜군 대선 9척, 중선, 소선 12척이 매여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배에는 붉은 일산이 세워져 있고 장막 안에는 왜장 카메이 코레노리가 앉아 있었다
아군 함대가 접근하자 왜군은 조총을 쏘아 맞섰다
아군은 개의치 않고 거북선을 앞장세워 현자총통을 비롯한 전자, 지자총통을 쏘아대는 한편 뱃머리로는 왜장선을 들이 받으며 격파하였다
왜장 커메이 코레노리가 죽자 왜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육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왜선 21척은 모두 격침되었고 많은 수의 왜군이 사망하었다
이순신 함대가 제2차 출전에서 사천포해전에 이어 치른 두 번째 해전이다
1609년 [음]광해 1년, 명나라 사신이 광해군(光海君) 책봉 조서를 가지고 옴
1628년 [음]인조 6년, 금주령을 내림
--간원이 아뢰기를,
"한재(旱災)가 있을 경우 반드시 술을 금하였던 것은, 하늘의 재앙을 두려워하고 낭비를 줄이고자 해서입니다. 서울에 쌀값이 매우 비싸고 각사(各司)의 전복(典僕)들이 몹시 피폐하였는데, 요즈음 포폄하느라 좌기할 때에 주식(酒食)의 비용을 이들에게서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비록 예전의 규례라고는 하나 흉년에 성대하게 베풀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술을 금하는 예에 의하여 우선 정파하도록 명하소서. 각사의 관원들이 쓰는 초[炬燭]를 간혹 값도 주지 않고 하인들에게 마련하도록 하는데, 그 폐단이 작지 않습니다. 일체 금단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초는 값을 주어서 사서 쓰게 하라."
하였다.
1694년 [음]숙종 20년, 숙원(淑媛) 최씨(崔氏, 영조의 생모)가 숙의(淑儀)에 오름
1695년 [음]숙종 21년, 서원의 신설과 중복 배향을 금지함
1762년 [음]영조 38년, 각 궁(宮) 및 공시(貢市)의 민전(民錢)을 상환하여 줌
--임금이 사현합(思賢閤)에 나아가 공시 당상(貢市堂上)·호조 판서를 소견하고, 각궁(各宮) 및 공시(貢市)의 민전(民錢)을 상환(償還)해 주라고 명하였는데, 대개 여러 만 냥[緡]이 되었다.
1781년 [음]정조 5년, 관서·관북에 큰 홍수가 나고 경기와 충청 지방에 가뭄이 듦
1792년 [음]정조 16년, 영남과 호남에 홍수가 발생하여 구휼하게 함
--영남과 호남에 홍수가 나 영남은 대구(大丘) 등 28개 고을에서 8백 25호가 떠내려가거나 묻히고 28명이 빠져 죽거나 깔려 죽었으며, 호남은 전주(全州) 등 5개 고을에서 1백 58호가 떠내려가거나 깔렸고 8명이 빠져 죽었다고 양도의 관찰사가 상문하니, 전교하기를,
"영남·호남의 수재가 이렇게 엄청나니 매우 가엾다. 무너지거나 떠내려간 집은 속히 집을 지어서 머물러 있을 곳을 정해 주고, 가난하고 고독한 집에 대해서는 신구(新舊) 환자(還子)를 징수하지 말며, 가난하고 고독한 자는 아울러 신역(身役)도 징수하지 말며, 죽은 자의 생전 환자와 신역을 아울러 논하지 말라. 양도 영읍(營邑)에서 거행하는 근무 성적을 앞으로 혹 어사(御史)나 혹 선전관(宣傳官)·비랑(備郞)을 보내 추첨하여 적간할 것이니, 이로써 엄칙하라."
하였다.
1797년 [음]정조 21년, 향음(鄕飮)하는 의식을 엮은 《향례합편(鄕禮合編)》이 완성됨
1819년 [음]순조 19년, 화성(華城) 괘서(掛書) 사건의 죄인을 국문함
1823년 [음]순조 23년, 김현근(金賢根)을 명온 공주(明溫公主, 순조의 둘째 딸) 부마로 간택함
1823년 [음]순조 23년, 광주부(廣州府)에 있는 성종의 태실 비석을 다시 세움
1871년 [음]신미양요에 피해 입은 초지진·광성진 민가에 내탕금 1천 냥 지급
1901년 일제강점기의 사회주의 운동가 주세죽 출생.
1906년 한성농공은행 개업
1909년 대한민보 창간, 시사만화 첫 등장
1910년 의병장 이강산·박치일·정인술·박장봉·서성학·양창국, 대구 감옥서 교수형 집행
1923년 김규식을 비롯한 창조파가 임정을 이탈하여 상해에 조선공화국 선포.
1924년 조선총독부, 도일증명 폐지 발표
1933년 충무공 영정 봉안 제승당 중건 낙성
1935년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이회창 출생.
1937년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무기정간(1936.8.29)됐던 동아일보 복간
1940년 사탕배급제 실시
1941년 일제 조선농업보국청년대 결성
1942년 1.21 사태의 주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김신조 출생
1946년 부산 콜레라 창궐, 전국에 만연, 9월말까지 1만 천여명 사망
1948년 미국 하원, 한국 구제안(1억7백만달러 지출) 가결
1948년 한글학회, 『우리말 도로찾기』 발행
1949년 브라질, 대한민국 승인
1949년 반민 특별법 피고 박흥식, 공판에서 한국 독립은 의외였다고 진술
1950년 한국-일본 무역협정 조인
1950년 구라(救癩)시설 `성라자로 마을` 설립.
--성라자로마을(나자로마을)은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에 있는 가톨릭 사회사업시설이다. 한국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 2일에 메리놀회 소속 조지 캐롤 안 주교가 설립한 구라사업기관으로, 무의탁 한센병환자 치료와 치료된 환자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가톨릭이 운영 중인 구라사업[救癩事業] 기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시설이다.
정착촌과 함께 병동, 진료소, 교육관, 수녀원 등을 갖추고 있다.
성라자로마을은 '그대 있음에'라는 제목의 자선음악회를 개최해 수익금을 내고 라자로돕기회를 구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7년 현재 라자로돕기회를 통해 성라자로마을을 후원하는 회원 수는 약 1만2,600명이다. 2008년 4월을 기준으로 73명의 한센병 음성환자가 살고 있으나, 2007년 한해 동안 10여 명이 사망하는 등 숫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 초대원장 이경재 신부 부임(1952),
1961년 부정축재 처리안 중간조사 발표, 11명 부정 축재액 138억 2,350만 환
1963년 진료소와 자립정착촌 분리했고, 1964년 고천국민학교 오전분교 개교했다.
1969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수원교구로 이관했다.
1955년 국회. 국방부원면사건조위 구성
1959년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가입을 정식거부
1959년 국제의원연맹(IPU) 한국가입 정식거부
1964년 서울대 고대생 등 2천여명 박정희 대통령 하야요구 데모
1966년 주한유엔군사령관에 본스틸 대장
1968년 서천·보령지역 선거 당락번복, 김옥선(신민당) 후보가 13표차로 당선
1969년 전국주요도시및 취약지 지서, 파출소 1000개소 경위 소장으로 승격
1970년 특수층의 부정부패를 풍자한 담시 ‘오적’ 필화사건 시인 김지하 반공법위반으로 구속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 시도로 정치·사회적인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1970년, 잡지 ‘사상계’ 에 세상을 들끓게 한 시(詩) 한 편이 발표됐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중략)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 하고 목질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렷다.”
김지하의 담시(譚詩) ‘오적(五賊)’ 이었다.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이었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김지하에게 오적촌이라 불리던 동·서빙고동에 관한 장시를 청탁했고 김지하는 당대의 힘 있고 끗발 있는 사람들을 ‘오적’ 으로 한데 묶어 그들의 부패와 타락상을 풍자적으로 시에 담았다.
이것이 사회적 사건으로 비화된 것은 야당인 신민당이 기관지 ‘민주전선’ 6월 1일자에 ‘오적’ 을 싣고부터였다. 이튿날 민주전선은 압수됐고 김지하는 김승균, 사상계 대표 부완혁, 민주전선 편집국장 김용성과 함께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사상계는 이 사건이 빌미가 돼 그해 9월 폐간되고 김지하 등 관련자들은 보석으로 풀려나 2년 뒤 선고유예를 받았다.
1970년 미 F-4팬텀기 2개 대대 군산에 도착
1970년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개통
--우리나라 최초의 위성지구국인 금산 제1위성통신지구국이 1970년 6월 2일 충청남도 금산에서 개국됐다. 높이 35m의 콘크리트지주 위에 세운 직경 27m의 원형안테나와 부속시설은 체신부가 1969년 5월 총공사비 18억 4천만원을 들여 착공, 1년 만에 완공한 것이었다.
이 지구국을 통해 태평양지역 통신위성 인텔새트(INTELSAT)Ⅲ호에 접속하여 태평양 연안 7개 국가간 136회선의 국제통신망이 구축됐다. 세계에서 31번째로 국제통신위성기구 가입국이 된 우리나라는 이로써 태평양상에 떠있는 통신위성 인텔새트Ⅲ호, F-4의 중계로 전세계에 전파를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또 바다건너 한 구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안방에서 듣고 볼 수 있게 됐다.
금산위성통신지구국 개국 후 우리나라의 국제통신은 경제성장에 발맞춰 빠른 속도로 성장, TV뿐 아니라 태평양연안과의 직통전화 회선도 늘고 빨라지게 됐다.
1979년 버스 트럭 충돌 추락(삼척군 포리고개 버스와 트럭 충돌 추락, 24명 사망 29명 중경상)
1980년 전두환 중정부장서리 사표. 국군보안사령관-국보위상임위원장만 겸임
1980년 정부, 일본 공동통신 서울지국폐쇄 특파원출국령
1980년 장기신용은행 개점
1981년 효창공원 9년만에 일반공개
1982년 전두환 대통령, 일부개각. 안전기획부장 노신영, 외무장관 이범석 임명
1982년 워싱턴포스트, 미국의 방위우선 순위에서 한국 등 태평양권은 3순위 보도
1983년 상공부,약품원료 등 282품목, 샴푸 등 75개 품목 수입자유화 한다고 발표
1984년 대한올림픽위원회, LA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단 명단을 발표
1986년 원전 5,6호기 준공(경남 고리, 각 95만㎾)
1986년 서울대 등 23개대학 교수265명 정통성 있는 민간정부 바라는 시국선언서발표
1987년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표위원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추천
1988년 전국민의료보험실현ㆍ국민연금대상 확대등 의료보험,국민연금제도 중장기발전방향 발표
1988년 일본 후지노키고분서 삼국시대의 것과 같은 금동관 등 발견
1988년 에너지연구소 방사능폐기물 잘못 보관해 방사능유출 토양오염됨
1989년 김영삼 통일민주당총재 한국 정치지도자로는 처음 소련방문
1989년 서총련 산하 34개 대학생 800여명이 고려대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준비위 발족
1989년 한국산 신발류 이탈리아에 이어 프랑스 에서도 간접수입 금지 당함
1989년 삼성종합기술원은 첨단 반도체 소재로 각광 받는 갈륨비소 단결정과 기판을 국내 처음 개발
1990년 제주신문노보 `제민일보` 창간
1990년 베를린에서 범민족대회 실무회담 열림
1990년 부산시경소속 전경-건설부 직원 집단항명-부대해체 불만,조직개편 불만
1990년 1500 경찰병력, 새벽 세종대학 진입. 농성 학생 116명 연행
1992년 징코민 메틸알콜 검사의혹-국립보건원 권위에 치명적
1992년 덴마크 유럽통합안 부결-반대 50.7%, 찬성 49.3%
1992년 한국은행이 91년 매출액 경상이 익률이 1,8%로 82년 0.9%에 이어 9년만에 최저수준기록.
1992년 중국 터키 미국 수입 고추 마늘 파 에서 고독성 농약디엘드린 납이 허용 기준치 초과 검출
1992년 국사편찬위원회는 광주 전남지역에서 73명이 정신대 로 끌려갔음이 확인됐다고 발표
1992년 일본정부 木村내각 外政심의실 심의관은 한국인 前 종군위안부 5명의 체험담 등 증언
1992년 서울형사지법, 민자당 청년외곽조직인 한맥회의 불법 선거운동사건 최승혁 징역 1년 선고.
1992년 전 한국과학기술원 시스템공학연구실장과 안영경씨 5년간의 연구 끝에 펜컴퓨터를 개발
1993년 전국노조대표자회의 출범(전노협등 4개단체 통합)
1993년 정부, 슬롯머신업소 를 관계법 개정해 95년까지 모두 폐쇄키로 결정.
1993년 북-미 뉴욕에서 북한핵문제 해결위해 첫 차관급 고위회담
1993년 후지모리 페루대통령 방한
1993년 잠수함 장보고함 취역
--해군은 1993년 6월 2일 진해항 기지에서 국방부장관, 해군참모총장 등 군수뇌부와 장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해군 최초의 잠수함인 장보고함 취역식을 가졌다. 장보고함은 독일에서 건조된 Type 1200형으로 209급 현대식 잠수함으로 평균속력 22노트로 수중을 항해하면서 대함미사일과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최첨단 지휘통제 및 사격통제 체제를 탑재하고 있다.
독일 HDW사로부터 1천5백억 원을 주고 인수한 장보고함은 전자수행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한번에 최고 7천5백 마일을 항행할 수 있다. 장교 6명을 포함, 모두 3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장보고함의 초대 함장에는 안병구 대령이 임명됐다
1994년 미국무부 북-미 3단계회담 취소 특별성명(대북제재 시사)
1994년 러시아,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 내부 문서 300여종의 사본을 한국정부에 전달
1994년 옐친 러시아 대통령, 러-北우호조약이 2년후 기한이 만료되면 자동폐기 방침 밝혀
1994년 김영삼 대통령-옐친 러시아대통령, 직통 전화를 설치 대북 무기공급 중단 합의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우즈베키스탄공화국 방문
1994년 병원, 의원 등에 환자진료기록, 처방전의 한글사용 의무화
1994년 뉴욕 소더비경매장에서 고려불화 2억4,000만원에 낙찰
1995년 정부, 94년말 현재 국채발행으로 인한 국민 1인당 채무는 46만7000원.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 검찰 서면질의에 계엄군 발포 지시 부인
1996년 증권감독원장 백원구씨 구속
1996년 광주가톨릭평화방송 FM 라디오 개국.
1997년 여, 야 국회의원 `6.10 동지회` 결성
1997년 서울지법, 한보비리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 징역 15년,정치인 은행장 징역 7∼3년 선고
--한보 특혜대출 비리 사건과 관련,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되는 등 피고인 11명에게 전원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지법 형사30부(재판장 손지열)는 2일 회사 공금 1천9백11억원을 횡령하고 32억5천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정피고인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뇌물공여죄 등을 인정,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피고인으로부터 은행대출 청탁과 함께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신한국당 의원 홍인길피고인에게는 징역 7년에 추징금 10억원, 국정감사 선처 부탁과 함께 2억5천만원을 받은 국민회의 의원 권노갑피고인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2억5천만원을 선고했다.
정피고인으로부터 각각 2억∼1억원씩을 받은 전 내무장관 김우석피고인은 징역 4년에 추징금 2억원, 신한국당 의원 황병태피고인은 징역3년에 추징금 2억원, 정재철피고인은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원이 선고됐다.
또 대출커미션으로 각각 7억∼4억원씩을 받은 전 제일은행장 이철수피고인에게 징역 5년 추징금 7억, 전 제일은행장 신광식, 전 조흥은행장 우찬목피고인에게는 각각 징역4년에 추징금 4억원씩이 선고됐다.
정피고인과 공모, 1천7백28억원을 횡령한 한보그룹 회장 정보근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그러나 전 한보그룹 재정본부장 김종국피고인에게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석방했다.
1997년 일본 정부,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
1997년 여천환경(주), 옥내 인화성 액체 폐기물 운반중 폭발사고 발생, 사망2, 부상1.
1998년 김종필 총리서리, 35개 정도의 정당구조로 정계가 정돈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혀
1998년 해태그룹 채권단, 부채 탕감 후 해외 매각 등 해태그룹 해체 계획 발표
1999년 박의정씨 IMF에 대한 항의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붉은 페인트 넣은 계란 던짐, 박의정씨 징역8월 집행유예2년형 받음
2000년 민·관 공동 조사단, 동강댐 건설 중단 결론 발표
2001년 북한 상선 3척, 제주도 해협 침범
--6월 2일 북한 상선 3척이 제주도 해협 우리측 영해를 침범, 항해하다 다음날 3일 오후 서-남해 공해상으로 빠져나간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선박의 제주도 해협 무단 통과는 이 때가 처음이다.
군당국의 지나치게 유화적인 대응에 북한 상선들은 4일에도 해상 휴전선이나 다름없는 서해안 백령도 인근 NLL(북방한계선)과 제주해협, 심지어 동해안 독도 영해까지 잇달아 침범을 시도했다. 군당국은 독도에 한해 해경정이 진로를 차단, 영해 침범을 저지했으나 나머지 서-남해안에서는 침범 행위를 묵인했다.
정부는 북한 선박이 사전 협의없이 영해를 침범할 경우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3일 밝힌 바 있었으나 연이은 영해침범에도 경고사격이나 나포 등 강경조치를 취하지 않아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북한측의 동시다발적인 영해 침범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유례없는 일이며, 남북 해빙무드를 틈탄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의도가 포함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단순히 수송비와 시간을 절감하려는 경제적 실리확보 목적이라기보다 김대중 정부와 미국의 부시정권에 대한 간접적인 불만표시가 담겨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국회에서는 군당국의 소극적인 대응자세를 추궁하고 대책강구를 촉구했다. 특히 국회에서 공개된 남북간의 교신내용을 근거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는 밀약설도 제기돼 2001년 정가를 시끄럽게 달구었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국가기관 최초로 『인권실태보고서』 발간
2004년 국사학계 1세대 사학자 이기백 교수 별세
--평북 정주 출생인 이 교수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거쳐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화여대·서강대·한림대 교수와 역사학회·진단학회 대표간사를 역임했고, 1979년 학술원 회원으로 선임됐다.
그는 우리 역사를 쉽게 소개하는 많은 글을 쓰면서 역사의 대중화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이 교수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한국에 가장 시급했던 ‘식민사관(植民史觀)’의 극복에 앞장섰다. 그는 한민족이 파벌성·의존성 등을 특성으로 하며 이는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에서 비롯됐다는 일본인 학자들의 이론을 비판하고 우리 역사가 내재적 발전 과정을 거쳐 왔음을 밝혔다.
이 교수를 유명 인사로 만든 것은 1961년 간행된 ‘국사신론’이었다. 당시까지의 연구 성과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민족적인 자주성을 강조하는 이 책은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에 목말라하던 대중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1967년 ‘한국사신론’으로 이름을 바꾼 이 저서는 계속적인 증보를 거치며 60만부 가까이 판매됐고, 각국 언어로 번역돼 국제적으로도 대표적인 한국사 개설서 역할을 했다.
2010년 제5차 동시지방선거
--한나라당 대패(16개 광역단체장중 6곳, 기초단체장228개 중 82곳만 이김) 야당은 인천 충남 강원 경남 등 전통적 열세지역에서 이김, 원동력은 야권연대의 위력
2013년 음식물쓰레기종량제 전면시행
2019년 방탄소년단 빌보드 챠트 1위
--방탄소년단(한국, 영어: BTS)은 2013년 6월 13일에 데뷔한 대한민국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7인조 보이 그룹이다. 2013년 방탄소년단은 《2 COOL 4 SKOOL》을 발매하며 데뷔하였고, 이어 《O!RUL8,2?》도 발매하여 그 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발매한 《WINGS》가 흥행하면서 2016년 대한민국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또한, 타이틀 곡 〈피 땀 눈물〉은 첫 가온 디지털 차트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방탄소년단은 그 해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2018년 발매한 《LOVE YOURSELF 轉 'Tear'》는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하였고,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한 최초이자 유일한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이 되었다. 또한, 타이틀 곡 〈FAKE LOVE〉는 빌보드 핫 100 10위에 진입하면서 방탄소년단은 최초로 빌보드 핫 100 10위권 내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이 되었다. 그 해 방탄소년단은 대한민국 주요 음악 시상식의 대상들을 휩쓸었으며, 2019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을 2년 연속 수상하면서 음악적,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한 음악 그룹이 되었다.
이후 《MAP OF THE SOUL : PERSONA》를 발매하면서 발매 첫 주 213만 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해 대한민국 역대 음반 초동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음반은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하였고, 역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음반이 되었다. 이 음반의 타이틀 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는 가온 차트 전 부문 1위를 기록하고 빌보드 핫 100 8위에 진입하면서 이 곡은 방탄소년단의 가장 성공적인 곡이 되었다. 현재까지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약 1,500만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고, 대한민국 역대 최다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음악 그룹이 되었다. 방탄소년단은 15개의 멜론 뮤직 어워드와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14개의 골든 디스크, 12개의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10개의 가온 차트 뮤직 어워드와 기네스 세계 기록, 4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한국대중음악상, 3개의 MTV 유럽 뮤직 어워드, 2개의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와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1개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을 수여받은 최연소 수여자이다.
2020년 프로레슬러 천규덕 세상떠남(88세)
2021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원길 작고.
2021년 직계약 화이자 백신 65만회분 도착...440만회분 반입 완료
2021년 서아프리카 기니만서 한국인 선장.선원 4명 또 해적에 피랍
2022년 경기지사에 김동연, 서울시장에 오세훈 당선...국힘ㅍ12, 민주 5 승리
2022년 대한민국의 드라마작가 나연숙 작고
455년 반달족의 로마 침공으로 레오 1세와 가이세리크가 회담
657년 75대 로마 교황 에우제니오 1세 작고
1815년 나폴레옹, 자유헌법 선포
1835년 교황 비오 10세, 257대 로마 교황 출생
1835년 러시아의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빈시테인 출생
1840년 영국 작가 토마스 하디 출생
--6월 2일 ‘테스’ 의 저자 토마스 하디가 잉글랜드 도싯주 어퍼보컴프턴에서 석공(石工)의 아들로 태어났다. 1862년 런던의 건축사무소에 입사, 건축공부를 하는 여가에 소설을 쓴 것이 당시 문단의 대가 G.메레디스에게 인정받게 되어 그의 권고로 처녀장편 ‘최후의 수단’(1871)을 간행했다.
그의 소설의 대표작으로는 ‘귀향’(1878) ‘캐스터브리지의 시장’(1886) ‘테스’(1891) ‘미천한 사람 주드’(1895) 등이 있지만, 그 밖에도 많은 장·단편 소설을 남겼다. 1910년 그는 메리크훈장을 받았으며 1912년에 상처하고, 2년 후 조수로 있던 여성과 재혼, 그의 만년은 영국 문단의 원로로 자타가 공인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후에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코너’ 에 묻혔는데, 그의 심장만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고향에 있는 부인의 무덤 옆에 묻혔다.
1857년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출생
1878년 독일 황제 암살 미수 사건. 비스마르크 재상 탄압 강화
1882년 이탈리아 통일운동지도자 주세페 가리발디 세상떠남(75세)
1897년 마크 트웨인, 뉴욕저널 지에 ‘내 죽음에 관한 기사는 크게 과장된 것’이라고 기고.
1905년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러시아-일본 전쟁 강화 권고
1941년 잉글랜드의 드럼 연주자, 롤링 스톤스의 멤버 찰리 와츠 출생
1941년 미국야구선수 루 게릭 세상떠남(39세),
--뉴욕양키즈 4번타자로 연속출장기록·타점신기록·3관왕 등 맹활약중 근위축성측삭경화증(그의 이름 따 ‘루게릭병’이라 부름)으로 은퇴, 게릭의 일생 그린 영화가 ‘양키스의 긍지’(주연 게리 쿠퍼)
1942년 미국-중국 무기대여협정 조인
1944년 프랑스 국민해방위원회가 프랑스공화국 임시정부로 개칭
1946년 이탈리아 국민투표로 군왕제 폐지 결정
1946년 프랑스, 국민투표에 의해 왕제 폐지. 공화제 실시 결정
1953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6월 2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이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됐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여왕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는 순간, 런던 시내 모든 교회에서는 타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식이 끝나고 버킹엄궁으로 향하는 여왕의 세계마차 행렬은 3km 이상이나 늘어졌다.
엘리자베스는 원래 왕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태어난 1926년 당시의 왕은 할아버지 조지5세였고, 여왕의 아버지 조지6세는 5남1녀 가운데 둘째였다. 따라서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미국 출신의 심프슨 부인에게 빠져 왕위를 내놓고 윈저공으로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여왕의 아버지가 대신했다. 아버지마저 1952년 2월 7일 암으로 사망하자 스물여섯 나이에 왕위에 오른 것.
올해로 재위 기간 52년째. 윈스턴 처칠로부터 현재의 토니 블레어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총리가 그를 보필해왔다.
1955년 소련-유고 국교정상화 선언, 유고의 독자노선 인정
--5월 26일 소련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베오그라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티토와 악수를 나누고 레닌의 이름으로 국제 노동자 운동을 위해 화해할 것을 요청했다. 독자노선을 취하고 있는 티토에 대한 소련의 이같은 태도변화에는 양국의 관계단절 이후 7년이 소요됐다.
소련수상 니콜라이 불가닌을 포함한 고위대표단을 대동한 흐루시초프는 1948년 공산권에서 축출된 유고에 이념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또한 과거 유고에 취했던 도발적인 태도에 대해 사과하고 이를 1953년 처형된 전 소련 내무장관 라프렌티 베리아의 음모로 돌렸다.
6월 2일 소련의 흐루시초프 수상과 유고의 티토 대통령은 양국화해의 베오그라드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은 1.유고슬라비아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영토권 주장을 지지한다. 2.유고와 소련은 독일문제의 해결을 지지하며 이 해결은 독일 인민의 소원 및 일반안전보장에 대한 기여와 일치하는 민주주의적 원칙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3.양국 정부는 조약체결을 통하여 독립된 구주집단안보기구를 지지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1961년 라틴아메리카(남미)자유무역위원회(LAFTA) 발족
1963년 사우디아라비아, 노예제 폐지
1966년 미국 무인우주선 서베이어1호 사상처음 달 착륙
-- 6월 2일 오전2시17분. 인간의 달 착륙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할 목적으로 쏘아 올린 미국의 무인탐사기 `서베이어1호`가 달의 `폭풍의 바다` 연착륙에 성공했다. 서베이어 1호는 레이다, 컴퓨터, 4기의 로켓을 사용해 세다리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서베이어 1호` 의 달 착륙은 1970년까지 달에 인간을 보내려는 미국 계획에 있어 의미있는 성과였다. `서베이어 1호` 의 달착륙 성공후 360도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TV카메라가 12일간에 걸쳐 1만매 이상의 사진을 보내왔다. 화질도 매우 선명해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이 사진을 통해 폭풍의 바다가 아폴로 달착륙선의 착륙후보지로 적격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착륙 후에는 600개의 주사선(走査線)의 텔레비전으로 주변의 풍경과 X선ㆍ화학분석ㆍ유성진(流星塵) 등의 측정자료를 송신했다.
이로써 달에 인간이 착륙할 수 있는 안전성이 입증되었고 그로부터 3년 후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1967년 이스라엘-시리아 교전
1978년 제11회 아르헨티나 월드컵축구대회 폐막, 홈팀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 꺾고 우승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 폴란드 방문
1981년 스리랑카, 비상사태 선포
1982년 파나마정부, 북한 외교관 5명 추방
1982년 영국군, 포트스탠리 공격 개시
1986년 제13회 월드컵 멕시코서 개막
1987년 스페인의 기타명연주자 안드레스 세고비아 세상떠남(94세)
--“그의 연주는 기타소리로는 극히 이상적이며, 클래식기타의 20세기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소리이다.” -존 윌리엄스 “그의 영향력이 컸던 이유는 그가 유일한 세계적 기타 거장이라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가 하는 일을 옳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줄리안 브림
1988년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여객선 방탕마두라 호 과적으로 침몰 사망200명
1988년 일본 나라현 후지노키 고분석관에서 한반도유물과 비슷한 부장품(신라식 금동관) 등 발견
1991년 시속 100km급 태풍 방글라데시 강타 사상 수백명
1991년 프랑스 핵확산금지조약 가입
1994년 스코틀랜드 헬리콥터 참사: 영국 공군 소속의 CH-47 치누크가 스코틀랜드에서 추락하여 29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
1997년 미국 연방배심, 오클라호마 폭파범 맥베이에 유죄 판결
1997년 미국의 경제학자 마틴 브론펜브레너 작고
2009년 미국 SUV 허머, 중국 텅중중공업에 매각합의
--미국에서 가장 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허머(Hummer)를 중국 업체가 인수했다.
GM은 2009년 6월 2일(현지시각) 자사의 자동차 브랜드인 허머를 중국 쓰촨(四川)성의 텅중(騰中)중공업에 매각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의 대표적인 SUV 브랜드 인수를 통해 미국 자동차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텅중중공업은 특수기계, 고속도로·교량 건설용 부품, 에너지 생산시설 등을 생산하는 회사로 자산이 14억달러에 달한다. 자동차사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허머 인수를 포함해 중국의 해외 자동차 브랜드 사냥이 본격화되고 있다. 상하이차가 영국 로버를 인수했고, 포드가 매각을 추진 중인 볼보도 중국 업체에 인수될 가능성이 크다.
2011년 시리아에서 보안군이 반정부시위대에 발포 사망 최소27명
2015년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 회장 17년만에 회장에서 물러남
--제프 블라터(79·스위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2일(현지시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블라터 회장은 지난달 30일 FIFA 총회에서 열린 회장 선거에서 당선돼 5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최근 FIFA를 둘러싼 부패 혐의가 이어지면서 회장에 당선된 지 불과 닷새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자신이 FIFA 수장을 계속 맡는 데 대해 국제 축구계가 모두 찬동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사임 이유를 밝히고 FIFA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위스 출신인 블라터는 1998년부터 FIFA 회장을 맡아 왔으며, 측근들이 대거 연루된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9일 치러진 선거에서 5선에 성공했다.
2017년 LIGO(레이저간섭중력파연구소) 국제공동연구진 새로운 블랙홀 발견했다 발표
2018년 미국의 생화학자 폴 D. 보이어 작고
2019년 미국의 정치인 도널드 M. 프레이저 작고
2021년 중국서 H10N3형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 첫 사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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