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청탁서’라는 서식이 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지금 까지 가끔 원고청탁을 전화로 받았었기 때문인데, 어제는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발신으로 ‘원고청탁서’라는 서면 공문을 받았다. 여하튼 공신력 있는 단체에서 원고청탁을 받았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흔히 문단에서는 ‘학력을 묻지 않는다.’ 라는 학력불문(學歷不問)의 원칙(?)이 있다고 들었는데, 원고를 제출할 때 약력으로 출생년도(출생지), 최종학력, 등단년도(등단지), 저서, 수상관계 등을 기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학력불문(學歷不問)이란 원칙은 대외 홍보용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뭐 기입하지 않고 원고만 보낸다고 해서 시비할 것도 아니겠지만 필자가 경복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이전이었다면 차마, 중학교 학력을 기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당당하게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이라고 써넣을 수 있으니 이 아니 자랑스러운가? 사실은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 또 어떤 단체에 자신의 이름을 명예와 함께 학력(學歷)을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고, 자신의 글을 읽어줄 독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필자로서 좀 더 배움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왜? 대학엘 가야 하는가? 의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독자가 작자의 학력을 문제 삼지는 않겠지만 내 작품을 읽어 줄 수준 높은 독자들을 내 작품 속에 묶어 두려면 적어도 그들과 대등한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이 나이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냥 쓰면 된다. 그러나 위에서 논한 그런 최소한의 글쟁이의 양심이, 또 앞으로 더 좋은 작품, 그리고 자신의 저서를 남기고 싶다면, 지금 필자가 대학에 다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글쓰는 방법을 세밀하게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다. 원론적인 것을 가르쳐 주면 학생 스스로 자신의 철학, 자신의 색깔이 담긴 작품을 창작해 내야 하는 것이다. 처음 작품을 쓰려는 욕망과 열정은 대단한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는지 막연하고 막막해진다. 그 첫 번째 문을 열어 주는 역할을 대학이 해준다.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준 높은 문어(文語)와 아름다운 시어(詩語)를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쌓게 된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모교(母校)의 ‘솔’후배들에게 꼭 대학에 진학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 들 중에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2009년 필자가 얼떨결에 문단말석에 이름을 올리고 난후 많은 글을 쓰면서도 단 한 번도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물론 신인상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장의 심사평으로 확인 했으나 그것은 그 작품 한편으로 만족했다. 고등학교에서 전국 문예경연대회에서, 감기 때문에 대충(?= 적어도 그 때는 그랬다.) 낸 작품이 금상으로 입상되었을 때 스스로 ‘내 글이 그런대로 통할 수 있다.’라고 생각 했지만 당당하기엔 무엇인가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지금 이 나이에 대학에 다니고 있다. 필자의 경험이 보편적인지 아닌지는 예외로 하고 자신의 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학력(學歷)을 빼놓고 돌파할 길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필자가 아는 한 지금 모교(母校)의 우리 문학동아리 ‘솔’은 르네상스를 구가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본다. 그것은 현재 집행부를 이끌고 있는 임원들을 비롯한 일반회원(카페회원)들의 글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다는 것과 그들이 솜씨만큼이나 열정적이라는 것을 꼽는다. 조회장의 낮은 자세로의 겸손함, 이선재 수석부회장의 경륜과 열정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다. 차기, 그리고 차차기를 준비하는 미래지향적인 ‘솔’이 되기 위한 포석으로 ‘솔’회원이라면 전원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였으면 좋겠다. 현대문학의 문단에는 같은 장르와 사상을 함께하는 소규모 ‘파(派)가 있다. 우리 경복의 ’솔‘ 이 주축이 되어 한국문단의 한 갈래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것은 필자의 욕심이라고만 생각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