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67〉업(業) 제어 능력도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다
사람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칼
행복·불행, 자기 의지에 의해 결정
후천적 노력으로 최고 성인군자 돼
혜월(1861~1937) 선사는 대중법회가 있어 설법을 하면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에게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활인검(活人劍)과 살인도(殺人刀) 두 자루의 명검이 있다.”
경상남도 전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일본인 헌병대장이 어떤 경로로 소문을 들었는지 혜월을 찾아와 선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께서 활인검과 살인도, 두 자루의 명검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왔소이다.”
“그러신가. 그럼 보여줄 테니 나를 따라 오시게.”
혜월은 말을 끝내자마자, 섬돌 축대 위로 성큼성큼 올라섰다. 헌병대장도 선사의 뒤를 따라 섬돌 축대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 순간, 혜월이 느닷없이 돌아서서 헌병대장의 뺨을 후려쳤다. 순식간의 일인지라 헌병대장은 축대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선사는 축대 밑으로 내려와 한 손을 내밀어 헌병대장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방금 전에 내가 당신의 뺨을 때린 손은 죽이는 칼이요, 지금 당신을 일으켜 세우는 손은 당신을 살리는 칼이오.”
헌병대장은 그제서야 깨닫고 선사에게 삼배를 올리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또 고려 말 나옹혜근(1320∼1376)에게도 이런 비슷한 일화가 전한다. 나옹혜근은 지공과 평산처림(1279∼1361) 두 선사의 법맥을 모두 받았다. 나옹이 원나라에 들어가 지공 문하에서 공부를 마친 뒤 평산을 찾아갔다.
나옹은 평산을 만나자마자, 좌복으로 선사를 내리쳐서 넘어뜨린 다음, 다시 평산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살릴 수도 있다.”
활인검 살인도는 화두 가운데 하나로 스승이 제자를 제접할 때, 자재한 작용을 칼에 비유하기도 하고, 선승들이 서로 선기(禪機)를 겨루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납이 선사들의 선기를 함부로 언급할 만큼 근기가 수승하지 못하니, 삶과 관련해 이야기해보자.
전쟁 중에 죽어가는 군인이 있다면 의사가 칼을 사용해 수술 도구로 활용하지만, 이 의사가 혹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면 칼로 사람을 살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손에 칼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칼이란 바로 인간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최고의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 그 반대로 마음을 방치하면 최고의 악인도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칼(마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소납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을 매우 좋아한다. 인간의 소중한 성품을 어찌 무생물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은 말도 있다. ‘호랑이나 사자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성품이 어떠하길래 저렇게 상반대 말이 있을 수 있을까? 바로 마음 작용 때문이다.
부처님도 당시 인도 종교와 철학계에 만연되어 있던 업설을 받아들였다. 불교 업설이 당시 외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노력 정진은 의지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행위의 결과는 그 사람이 받지 않으면 않된다’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행동들은 숙명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의해 순간 순간 행복과 불행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칼로 행복을 만들 수도 불행을 만들 수도 있다. 행복과 불행은 자기 자신의 책임에 의해 결정되며 업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도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활인검으로 쓸 것인지, 살인도로 사용할 것인지는 바로 그대에게 권한이 있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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