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욱] 잔디? 함성? 변명하는 팀에 미래는 없다
2017.09.01 오후 02:53 | 기사원문
[뷰티풀게임=서형욱] "아들 같아서 그랬는데.." (박찬주 前 대장 부인)
"5.18 당시 광주 상황 자체는 폭동인게 분명하지 않나." (민정기, 전두환 前 대통령 대변인)
반성해야 할 사람이 변명으로 일관한다면, 그걸 듣는 입장은 괴롭다. 문제가 자기 안에 있는데, 자꾸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려는 태도를 모른 척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두 문장은 올해 사회적으로 가장 큰 논란이 된 사안에 대한 가해자 측의 변명이다. 대중을 향한 변명의 기저에 깔린 것은 특권의식과 우월함이다. "니깟 것들이 뭔데 나더러 잘못을 인정하라는거야." 그러니 누가 들어도 납득할 수 없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어불성설이 난무하는 것이다. 그들은 저렇게 말을 하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 자기합리화를 정당화하려 한다.
서두에 변명 얘기를 꺼낸 것은 지금 우리 대표팀의 모습과 닮아서다.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는 기량, 쉽게 간파되는 전술, 경기 중 발생하는 변수에 휘둘리는 대응 능력 등, 우리 안에 있는 문제의 원인을 자꾸 밖으로 돌리려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환경에서 경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상대도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패배의 이유를 외부로 돌리는 변명은, 결국 내 부족함이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부정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그게 아니라.."
유효슛팅 0개의 아쉬운 무승부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무려 6만 명이 넘는 관중이 모였다.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월드컵 본선 진출이 위태로운 지경에 몰린 탓이 컸을 것이다. 현장의 열기도 아주 뜨거웠다. 위기일수록 빛을 발하는 국민성은 축구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번엔 도탄에 빠진 대표팀에 힘을 싣는 데에 힘껏 발휘되었다. 송곳 하나 세울 자리라는 뜻의 '입추지지'가 없는 곳이란 사자성어는 이란전의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6만 명이 넘게 경기장에 몰린 팬들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입추의 여지 없이 객석을 메운 관중의 응원도, 위기 탈출을 위해 몸부린 대표팀 스스로의 노력도, 실망스런 결과를 바꿔놓지 못했다. 감독/코치를 싹 바꾸고 K리그 일정을 취소하는 20세기적 긴급조치까지 발령하며 조기 소집을 단행한 노력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1) 홈 만원관중 앞에서 2) 1명이 일찍 퇴장당한 이란에게 3) 2경기 연속유효슈팅 하나 없이 4) 0-0으로 비겼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결과인게 분명하다.
이란이 강해서 vs 이란은 10명인데
결과도 결과지만 내용 면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지켜본 팬들에겐 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미 본선행을 확정한 팀이 10명으로 뛰었는데 이들을 상대로 골대 안을 향한 슈팅을 단 1개도 기록하지 못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망스런 내용이다.
하지만 경기만 보고 실망하는 것은 섣부른 태도였다. 무승부는 실망의 서막일 뿐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도 단견이었다. 신태용호는 부진한 경기력에 이어 경기 후 인터뷰에서까지, 슈틸리케호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듯 실망스런 변명으로 일관했다.
신태용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란이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에 지지 않는 경기를 했다는 듯한 말을 꺼냈다. "이란에게 선제골을 내주면 상당히 힘들어질 것이라 봤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공격을 자제했다." 실제로 케이로스 감독이 이끄는 이란은 지금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이란은 앞선 8경기에서 무실점 무패(6승2무)로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한 뒤 한국에 왔다. A조 2위인 대한민국이 (조에서 두번째로 많은) 10실점을 기록하는 동안, 이란은 8경기 내내 무실점을 유지했다. 신 감독의 조심스러운 접근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란이 강한 것과 우리가 약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란이 아무리 강하다해도 2경기에서 단 1개의 유효슈팅도 만들어내지 못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게다가 이번 경기에서 이란은 오랜 시간 1명이 퇴장당한 채로 경기했다. 그렇다고 이른바 '10백' 수비로 대놓고 잠그는 전술을 택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우리 대표팀의 공략법이다. 수적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공간 확보를 위한 공격 전술 변화가 부족했다. 공을 가진 시간은 늘었지만, 상대 박스 안쪽으로의 침입은 거의 없었다. 교착 상태(deadlock)를 깨기 위한 과감한 중거리슛도, 스트라이커를 목표로 한 정교한 크로스도 실종된 채 의미없이 뒤에서 공을 돌리는 장면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실수도 많았고 종종 상대 속공에 애를 먹기도 했다. 극도로 부진한 양쪽 풀백, 빌드업이 전혀 없는 후방 지원 등에 변화를 주려는 노력이 미진했던 것도 몹시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강한 팀'이라고 무승부를 자위하는건 실망스럽다.
'잔디탓, 함성탓' 위험 수위 넘나드는 변명들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과는 별개로 경기 내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것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상태였다. 일부 보수를 했음에도 경기 전부터 모두의 우려를 자아냈던 경기장 상태는, 결국 홈팀인 우리 대표팀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됐다.
경기 후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은 일제히 잔디 탓에 좋은 경기를 할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잔디가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다. 이란도 마찬가지라 생각할 수 있지만 페르시아인들은 잔디가 밀려도 치고 나가는 힘이 있는 반면 우리 선수들은 몸이 가벼워서 잔디가 밀리면 볼컨트롤이 안된다." (신태용 감독), "공격을 풀 수 있는 잔디 상태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잔디에서 누가 모험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나 되묻고 싶다." (손흥민)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상태가 심각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란전을 앞두고 7천만원을 들여 교체했다는 경기장 잔디 일부는 제대로 뿌리 내리기도 전에 비를 맞아 불량 잔디에 멈추고 말았다. 양팀 선수들모두 간단한 볼처리에서도 실수하는 장면이 여럿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두 팀 모두 같은 경기장에서 뛰었고 같은 잔디를 밟았다는건 팩트다. 신체 구조의 차이에 관한 변명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런 잔디 상태가 예상되었음에도 결과적으로 대처가 미비했던 것도 아쉽다. 대표팀이든 클럽팀이든 이 시기에 축구를 해온 것이 벌써 수 십 년이고, 예상가능한 변수(무더위와 폭우, 고온다습)는 이번에도 같았지만 예상과 대응이 제대로 어우러지지 않으면서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축구의 명운이 걸린, 승리가 절실한 빅 매치를 굳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만 해야 했는지도 한번쯤 돌아봐야 한다. 경기장 위에서 칭찬과 욕을 가져가는건 선수와 감독이지만, 그 판을 까는 것은 결국 협회다. 아예 예방이 불가능한 환경이었을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팬을 탓하는 팀에 미래는 없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관전할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막대한 입장수익에 선수들에게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응원의 함성까지,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능가할만한 곳은 대한민국에 없다. 기대대로 경기장을 가득 메운 함성의 크기는 엄청났다. 관중조차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더 목청을 높일 정도였다. 하지만 경기는 아쉽게 끝났고, 이러한 대단한 함성이 오히려 선수들에게 방해(?)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란전에서 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고 뛴 김영권은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 "관중의 함성이 크다보니 선수들끼리 소통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아 선수들끼리 소통을 하지 못해 답답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선수들끼리 눈빛만 봐도 그 뜻을 알도록 준비하겠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지금까지도 김영권은 네이버 실시간급상승 검색어 1위다. 팬들을 '디스'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리라 믿고 싶다. 아마도 이 발언의 의도는 "예상 못한 변수를 이제 경험했으니 다음 경기엔 준비할 것"이라는 변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구차하긴 마찬가지다. 김영권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선수에게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을까. 올림픽, 월드컵 예선, 그리고 소속팀 광저우의 거대한 경기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그가 관중의 함성이 미처 예상치 못했던 변수였던 것처럼 '탓'을 하는 걸 어떻게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엉망인 잔디를 감수하면서까지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택한 결정이 완벽한 '역효과'로 이어진 셈이다. 역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1) 고성방가, 2) 팬심 이반. '고성방가'라는 표현은 절대 조롱이 아니다. 팬들은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고함을 치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당사자인 선수(그것도 주장)가 함성이 경기에 방해요소였다고 '증언'했다. 피해자의 증언 앞에 가해자의 선의는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이 경기로 인해 적잖은 팬들이 상심했을 것이다. 응원이라 생각하고 고함을 질렀는데 그게 아니라고하니 더 경기장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앞으로 '붉은악마'들은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침묵 응원을 실행할 일이다.
'이런 경기력으로 월드컵 가야하나?'
실망한 팬들의 입에선 "차라리 월드컵 떨어져라"는 말까지 나온다. 탈락해 정신차려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떨어진다고 정신차린다는 보장도, 제대로 될거란 기대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냥 탈락을 기원하는 것도 그리 지지하고픈 의견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답은 경기장으로 향하던 길 내 앞에 걸어가던 커플이 나누던 대화 속에 있지 않나 싶다. 커플 여성이 꺼낸 한 마디엔 이 많은 관중이 몰린 이유의 한 조각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나 3년째 월드컵 기다리고 있잖아. 이제 1년 남았어!"
모처럼 관중석에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면서, 기자석에선 잘 느끼지 못했던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본선을 떠올리며 가슴이 뜨거워지는걸 느꼈다. 살면서 무언가를 기다리며 가슴 설레는게 어디 그리 흔한 경험인가. 그리고 이 땅엔 축구, 그리고 월드컵으로 인해 가슴 뛰는 사람들이 여전히 너무 많이 남아있다.
"이럴 바엔 아예 탈락하고 정신 차려라"는 독설에도 일리는 있지만, 어떻게든 본선에는 나가줬으면 하는 소시민들의 바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평일 저녁에 시간을 쪼개 경기장을 찾은 6만 여 관중이 없었다면, 지금 경기장에서 호랑이 마크를 가슴에 달고 뛰는 선수들의 현재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실망스런 결과의 핑계를 자꾸 외부 기인하는 것은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의 등을 억지로 떠내미는 격이다.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조직력 엉망, 잔디 관리 엉망) 결과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팬들은 떠나고 미래도 사라진다. 세상에 강자는 많고, 경기는 언제든 질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을 실망시키는 시기가 이렇게 길어진다면, 앞으론 축구가 TV로 생중계되는 일이나 경기장에 수 만 명이 운집하는 것이 더는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어쩌면 변명은 그 시작이다. 순간의 모면을 위해 더 큰 것을 잃는 일만큼은 되풀이되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