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경지, 동화의 나라 태백산 --
이정록
한 주막에서 세명의 사내가
탁주를 거나하게 들이켜고 있다
친구가 불교에 정통하다는 친구를 소개했고
우린 금새 친해져 막걸리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이 친구 명문대를 나온 수재답게 중학교 때부터
이미 불교의 핵심을 공부했단다
젊어선 유명한 스님의 애제자로 수행하면서
학생 과외로 돈도 많이 벌었고 모았으나
가장 가까웠던 사람, 한 여인으로 인해 상처 덧내린 땅바닥에 내팽개쳐지고 행자가 되어 입산했으나
육개월 만에 하산한다
사실 산중에서 배울거 보다는 자신이 가르칠게
더 많았기 때문일거라 추측해 보는데
여려 이유중에 한가지, 그는 '칠지보살'의 경지에
든 것으로 주위 사람들이 말한단다
얼마 후, 우린 동서울터미날에서 만난다
태백산에 가기 위해서다
늦은 오후, 차가 힘차게 고속도로를 질주해
여주를 지나자 땅거미가 늘어져 밖은 이미
어둠으로 달렸다
내 호(號)인 "승목"의 승자를 따라
그에게도 승자로 끝나는 호를 짓자고 제안하자
자신은 이미 법명이 있음에도
기꺼이 불자임을 감안해 '승공'으로 호를 지었다
그가 불쑥 나에게 물었다
"승목, '나는 몸이다' 아니면
'나는 몸을 가지고 있다' .. 어떤게 맞다고 생각해?"
나는 거침없이
"그야 '나는 몸이다'가 맞지." 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가는 차 안에서부터, 도착해
태백산 입구의 찜방에 입방해서도 우리의 담론은 계속됐다
태백은 하늘이 하앟게 내려앉아 이미 도시는
눈 속에 파 묻혔고, 찜방은 장작으로 난방을 해서
매우 훈훈했다
은은한 맥주 맛에 간들이진 오징어 알몸을 안주로
겨울 궁전처럼 눈에 소복히 덮힌 아늑한 찜방에서
벗과 이렇게 보낸다는 것이 참 좋았다
긴긴 밤을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그들을
살험대 위에 올려놓고 오징어 씹듯 철저히
잘근잘근 씹어 분해하고
분석한 후 내공의 동공을 확대해 드려다 본다
형이상학을 철저히 배제한 것은 붓다였다
하루는 엘리트 청년 브라만이 붓다에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사후에 영혼은 있는지' 등에 대해 묻자, 붓다는
하나의 비유를 들어
대략 이런 취지로 설명한다
"만약 당신이 독화살에 맞았다면 그것을 치료하는게 급선무지, 독화살을 누가 쐈으며
독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아보는게 우선인가?"
그렇다! 붓다는 철저하게 현상계 너머의
형이상학을 배제했다
조계종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한국은,
대승의 '진아(참나)'가 실체고 우리 몸은 일종의 껍데기라는 사상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도 '우파니샤드'에 이르러 '진아(Atman)'가 '내성적 관점'으로 전환된 영향이 대승으로 나중에 편입된 것 뿐이다
붓다의 '무아' 사상에 따르면, 무언가
'참 실체적 존재'가 몸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
즉 '참나'같은 형이상학적 실체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불교계에서 이 주제는 매우 뜨겁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몸의 실존적 존재를 배제한 고대 히브리인들이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는, 사람의 몸에 내재하는 실존적 존재를 '영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몸은 썩지만
영혼은 하느님께 나아 간다고 이야기 한다
성서는 히브리인들이 시작해,
오랜 세월을 묵고 묵혀 완성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의 사상을 통해 성서의 견해를
알아 볼 수 있는데,
히브리인들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영혼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었을까?
고대 히브리인들은 '영(루아흐)'과 '영혼(네페쉬)'을 명백하게 구분해 사용했다
문제는 영혼에 해당하는 단어의 의미인데,
히브리인들은 영혼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이해했다
이 단어(영혼. 네페쉬)는 구약성서에
칠백오십사 회 나오는데, 살아있어
호흡하는 생명체를 영혼이라고 불렀고,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적용해 사용했다
그런데 하느님이 첫 인간을 창조하는 과정을
보면 이 문제가 명확하게 파악된다
"하느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호흡(영, 루아흐)'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산영혼'(living soul, 네페쉬)이 되었다"
영혼은 죽는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부활'을 기다렸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나흘만에 부활시켰고,
본인도 죽어 사흘만에 부활됐다
나중에 예수의 사도로 채택된 바울도
'마지막날에 부활로 일으킴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신약 성서에 언급된 '천국(Kingdom)'은 무엇일까?
천국에는 불멸하는 영혼같은 실체가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닐까?
이 주제는 전혀 별개의 테마다
천국은 '영혼' 같은 실체가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차원전환)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것이다
현대의학이 "에크모 치료"로 부활시킨
동사자(凍死者)이야기이다
언젠가 일간지에 보도된 내용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지역 방송국(WNEP-TV)이 보도해 다수 외신에 실린 기사가 작년 이월, 저스틴 스미스라는 사람이 친구들과 맥주를 거하게 먹고 집으로 귀가 도중에 필름이 끊겨
영하 날씨의 혹한에 열 두 시간 방치되었다가
동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의학적 사망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그때 리하이 밸리 병원(Lehigh Vally Hospital)
에 응급의사 제랄드 콜맨이 나타나
체외막 산소 공급 치료인 에크모(ECMO)
치료를 제안한다
가족의 동의를 받은 의료진이 저스틴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며 에크모 장비가 있는 계열사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한지 삼십 일 후에
저스틴의 호흡과 맥박이 돌아왔다
일 년 후, 저스틴은 학교에서 심리학 학위를 마무리 중이라고 한다
그는 부활한 것이다
"저 체온에서는 뇌와 다른 장기의 기능을 보존할 수 있다." 리하이 밸리병원, 우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유체이탈 또는 임사체험에 대해서 알아보자
몸에 실존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증명으로
'임사체험' 또는 '유체이탈'을 든다
사람이 의학적으로 죽어 있다가 살아 돌아 온
사람들이 천국을 가 봤다는 얘기를 공통적으로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신뢰한다
또한 깊은 명상 중에 몸을 이탈해
특정한 사람을 만나거나 지구 밖까지 갔다 온
체험을 통해 이를 증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뇌과학자들이
이를 면밀히 관찰한 바에 따르면, 기독교도는 천국, 즉 평소에 이미지화시켜 사유한 모습을 말하고, 불교도들은 나름의 평소 이미지화 시켜
사유한 극락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뇌파가 멈추고 맥박이
정지해도 의식은 살아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의학적으로 죽어 있었지만 의식이 살아있어 자신이 이미지화시킨 영상을 순간적으로 본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명상 중에 본 현상은 무엇일까?
오래전 일이다
감기가 걸려 감기약을 먹고 취해 있을 때였다
조용히 정좌해 내면을 응시할 때
갑자기 눈에 엄청나게 환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혹시 자동차가 우리집을 향해
불을 비추나 하고 눈을 뜨니 불빛이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고 조용히 정좌하자
다시금 환한 불빛이 비추는데 빨간색과 노랑색과
파랑빛이 강렬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너무나 영롱하고 아름다워 감탄을 하고 있는데
몸이 밖으로 나가더니 푸른 보리밭을 건너
소나무 숲을 날아가기 시작했다
너무나 뚜렸해서 현실과 구분이 어려웠다
이때 난 깨달았다
이것은 의식이라는 것을, 평소 의식에 대한
수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새 알아 챘지만
일반인들은 이런 현상을 겪으면 자신의 몸이
실제로 유체이탈해 훨훨 날아 다닌 것으로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의지적으로 다시금 현실로 돌아 오고자
의식하자 금새 현실로 다시 돌아왔다
가위눌리는 현상도 똑 같은 현상이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분리해 생각한다
그래서 늘 "마음을 비워라" "마음을 순수하게 가져라" 라는 따위의 실현 불가능한 관념을 심어주고 이로인해 사람들은 늘 이런 관념에 붙들려 전전긍긍한다
우리는 '나'라는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이자
의식체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몸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몸 전체가 바로 '나'란 관념은 매우
커다란 다른 관점을 갖게 한다
머나먼 우주를 긴긴 밤 여행하며 그분들을 만나고 담론하고 사유하다 돌아오니 높은 선상의 철학들을 좀 섭렵했나 싶었는데 궁금증이 더하다
숙제는 끝이 없는 것 같다
피곤하다
깜빡 꿈길이다
나를 툭 치길래 돌아보니
태백의 바람이다
태백산의 아침이 찬란하다
눈이 덧내려 하얀 지붕이 겹겹히 덮힌 태백산은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하얀 다이아몬드로 치장한
동화의 나라였다
아름답다!
시심(詩心)이 발동하니 시혼(詩魂)이
이천 년 주목과 담론을 나누고
시상(詩想)이 태백산을 섭렵한다
첫댓글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드리구요^♡^